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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영웅의 장 104회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감히 날 외면해?’ 칸의 막사를 물러 나오자마자 일패공주가 김충선에게 따지듯이 대들었다.

“왜 위험을 자초하는 거죠? 날 떼어 두고 혼자가면 성공할 것 같아요?”

“그렇소.”

“뭐라고요? 당신은 우리 여진족들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리가 있겠소? 당신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난 이미 경험을 했는걸.”

김충선은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일패공주는 매우 심각한 표정이었다.

“장난할 때가 아니죠. 예당카를 암살하기 위해서는 예허부족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야 하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작전이라고요.”

“위험하지 않은 전투는 없소.”

김충선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패공주는 수긍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오겠다고 약조하고 떠나요.”

김충선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하겠소.”

일패공주는 마주 손가락을 걸지 않고 몸을 돌렸다. 왠지 새끼손가락을 서로 걸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진의 장녀로 누르하치의 명을 받고 조선을 종횡했던 그녀였다. 어떤 사내들보다도 강했던 일패의 심경이 이토록 무기력하게 흔들릴 줄은 그녀 역시 예상하지 못했었다. 당혹감과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이......런 감정이었던가.’

그녀는 김충선을 남겨두고 걸으면서 눈을 잠시 감았다. 그러고 보니 김충선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녀가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장예지의 모습이었다. 김덕령의 약혼녀이며 김충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 일패는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었고 오표의 살해 계획을 묵과 했었다. 어쩌면 지금쯤 장예지는 영혼이 되어 이승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오표는 먹이를 절대 놓치는 법이 없는 전문 자객이므로. 장예지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이었으나 일패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머물다가 사라졌다.
 

   
 

* * * 김충선은 건주여진의 병사들에 안내를 받으면서 밤새 삼 십리 가량을 이동했다. 적진에 접근할수록 군데군데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경비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예허부족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대들은 여기서 돌아가시오.”

병사들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칸의 명령입니다. 장군과 돌아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만 돌아간다면 그 자리에서 군령을 거역한 죄로 참수 당하고 말겁니다.”

건주여진의 군율이 이토록 엄격하다는 것은 실상 놀라운 일이었다. 누르하치의 군대가 용맹하여 여진족을 하나씩 통합해 가는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돌아올 때 까지 이곳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시오.”

“알겠습니다.”

“만일 날이 밝을 때 까지 내가 오지 않는다면 실패로 알고 칸에게 돌아가 보고 하시오.”

건주여진의 병사가 입술을 악물었다.

“그래도 우린 돌아갈 수 없소. 장군을 기다려야 합니다.”

“장군의 실패는 우리 모두의 실패이며 죽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