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시인이 쓴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로 조명하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5권이 나왔습니다. 아무도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에, 우리가 잘 모르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 주리라던 이 시인의 집념이 어느 덧 5권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군요.
▲ 이윤옥 《서간도에 들꽃 피다》 5, 도서출판 얼레빗
한 권에 스무 분의 삶을 오롯이 드러냈으니, 이 시인 덕분에 우리 후손들이 늦게나마 1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관순!’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입을 우물우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지하기에, 그만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계속 시로 조명하는 이 시인의 작업에 대해서는 아무리 박수를 쳐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인은 단지 책상머리에만 앉아 시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발품을 팔아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 나섭니다. 이번에도 북간도로 날아가, 이의순 지사의 흔적을 찾아 러시아와 중국 국경인 수분하 거리까지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과 이번 북간도 답사길을 동행한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군요. 바로 도다이쿠코(戶田郁子)라는 일본 여자입니다. 일본 여자가? 도다이쿠코는 도서출판 <토향>의 대표로서 중국통이자 그 자신이 일제침략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작가라고 합니다. 일본 여자가 단순히 일제의 침략 역사를 이해하는 정도를 넘어서 직접 이 시인과 함께 그 흔적을 찾아 북간도를 누비고 다녔다니, 도다이쿠코라는 일본 여인을 다시 보게 되는군요.
《서간도에 들꽃 피다》가 5권까지 나오는 동안 1권에 나오셨던 이병희 선생은 이제는 먼저 간 독립운동가들을 만나시려고 머나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이 시인은 5권을 펴내면서 이병희 선생이 자신의 손을 꼭 쥐고 하시던 말씀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꼭 알려라.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면 우리들도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조국 침탈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예! 이병희 선생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성의 삶을 포기하고 조국을 위해 독립전선에 뛰어든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과 존경의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번 5권은 유달산 묏마루에 태극기 높이 꽂은 김귀남 지사로부터 시작하여 비밀결사로 임시정부 군자금 댄 최갑순 지사로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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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운경을 비롯한 기생들이 독립선언서를 쓰고 있다. (그림 한국화가 이무성) |
김귀남(1904~1990) 지사를 비롯한 정명여학교 학생들은 1921. 11. 14. 만세운동을 벌입니다. 당시 구미 열강들은 미국 워싱톤에서 군비감축회의를 열어 만주를 비롯한 원동(遠東) 문제를 의제로 다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우리 임시정부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서는 이승만, 서재필, 정한경 등을 대표위원으로 뽑아 군비감축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를 제출하기로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김귀남을 비롯한 정명여학교 여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의 시위 소식을 들은 영흥학교 학생들이 뒤이어 만세 시위를 벌였고, 또 이에 자극받은 목포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구요. 학생들 중에는 유달산으로 올라가 산마루에 대형 태극기를 꽂기까지 하였답니다.
여기서 저는 제 무지와 무관심을 고백하며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저는 목포에 근무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까요? 더구나 김귀남 지사가 이로 인하여 징역 6월을 선고 받았다면 제가 근무하던 목포지원에서 재판을 받았을 텐데, 제가 그 목포지원에 근무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니, 정말이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물론 제 자신 이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제일 큰 잘못이지만, 제가 목포에 있는 동안 목포의 유지들이나 지식인들 중에서도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해준 사람이 없습니다. 이 시인은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낼 때마다 책 시작에 ‘이 한 권의 책을 이 땅의 모든 남성들에게 바칩니다.’라고 쓰는데, 사실 이 문구는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 땅의 남성들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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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온순 애국지사(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또 책을 보면서 제 눈길을 끈 것은 김알렉산드라(1885~1918) 지사입니다. 이 시인의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랄산맥 타고 아무르강 절벽으로 불던
한줄기 바람이여
너는
끓어오르는 붉은 피 감추고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흘리던
혁명가 눈물을 보았느냐
김알렉산드라는 최초의 한인 여성 공산주의자입니다. 만주 동중철도 건설현장에서 통역 일을 하던 아버지 영향 때문에 김알렉산드라도 어려서부터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잘 하였답니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1914년 우랄산맥 벌목장에서 통역일을 하다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 한중 노동자들과 함께 우랄노동자동맹을 만들었고, 이후 한인 여성 최초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도 하였습니다.
원래 혁명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한동안 피를 부르는 싸움이 있지 않습니까?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도 혁명세력의 적군과 제국주의 열강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백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었지요. 1918. 9. 2. 백군이 하바로프스크를 공격할 때에 김알렉산드라는 아무르주로 피신하다가 백군에 체포되어 끝까지 무릎을 꿇지 않다가 총살당합니다.
처형 직전 김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눈에 감긴 붕대를 떼어내고, 자신의 죽음의 장소를 스스로 택하겠다고 하면서 13 발자국을 걸었답니다. 그 13 발자국이란 다름 아닌 조선의 13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지요. 이 시인이 스스로 여성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해낸 것은 아니고, 정부에서도 이런 김알렉산드리아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더군요.
책에 나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 얘기할 수는 없으니 마지막으로 한 분만 더 얘기하렵니다. 바로 유관순 열사입니다. 유관순 열사라면 제일 먼저 1권에 나왔을 것 같은데, 이 시인은 우리가 제일 많이 안다고 하여 이제야 소개하는 건가요?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신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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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형무소 수형자 카드 속의 유관순 열사 (1919) |
유관순 열사는 1919. 4. 1.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잡혀 갖은 고문 끝에 1920. 10. 12. 옥중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런데 1919. 4. 1.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 부를 때, 거기에는 유관순 열사뿐만 아니라 유관순 열사 아버지 유중권 지사와 어머니 이소제 여사도 계셨는데,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은 안타깝게도 일본 헌병과 수비대의 흉탄에 바로 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같이 있던 유관순 열사의 작은 아버지 유중무 지사는 형과 형수가 왜놈의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는, 형의 주검을 둘러메고 주재소로 달려가 한 맺힌 항의를 하다가 체포되어 3년의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관순 열사의 오빠 유우석, 사촌 언니 유예도, 올케 조화벽, 조카 유제경, 오촌조카 한필동도 만세운동에 참가하거나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모두 국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정말 우리가 존경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열사의 집안입니다.
남자들처럼 대한독립을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어간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들 중에서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분은 불과 246명뿐입니다. 이 시인은 앞으로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우리 앞에 내보이기 위해 계속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이 시인의 노고에 깊은 고마움의 인사를 올리면서 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