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깃부고나 오날날 / 五월 一일은 / 우리들 어린이의 / 명절날일세 /복된 목숨 길이 품고 / 뛰여 노는 날 / 오-날이 어-린이-의 날 / (후렴) 만세-만세-를 / 갓치부르며 / 압흐로-압흐로- / 나아갑시다 / 아름다운 목소래와 깁분 맘으로 / 노래를 부르며 가세 / 깃부고나 오날날/ 五월 一일은 / 반도정긔 타고난 / 우리 어린이 / 길이길이 맷터날 / 새목숨 품고 / 즐-겁게 뛰-여 노-는날”
위는 동아일보 1927년 4월 26일 자에 나온 <어린이날 노래>입니다. 노래의 뒤엔 “곡조는 야구가(野球歌)”라 하여 아마도 야구응원가 곡조에 붙여서 부르라는 듯 합니다. 조금은 유치한 듯 하지만 당시로는 그 정도도 대단한 노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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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의 어린이날 행진 사진, 동아일보 1924년 5월 4일자 | ||
이 <어린이날 노래> 옆에는 “어린이날 준비 어린이날을 명절로 직히자”라는 기사도 보입니다. 내용을 보면 “다못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파멸을 당하여 전조선 땅덩어리가 아둠과 고초로 지내오는 오늘날 우리의 처디에 잇어서 오직 순진한 조선 정신으로 성립된 이날이 과거에 우량한 성적으로 지내왓고 미래에 또한 조흔 결과가 밋칠 것을 상상하는 동시에 머지 아니하야 이 귀중한 어린이날을 맛게 됨으로 이날을 의의잇게 지내고 귀하야 여러분께 말슴들이고저 하는 것임니다.”라고 되어 있지요.
조선이 어려운 처지에 지내고 있지만 어린이날 만큼은 명절처럼 지내자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라는 이름을 걸고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최초의 해는 1923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파 방정환(方定煥) 선생이 1923년에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그해 5월 1일 어린이날을 만들었는데 1939년 일제가 금지해 해방되기까지 어린이날을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