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궁중기록화(宮中記錄畵)란 조선시대 국가와 왕실에서 있었던 여러 의식과 행사를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이는 양반사대부의 집안 행사를 그린 사가기록화(私家記錄畵)와 다른 공적인 그림이지요. 궁중기록화에는 의궤(儀軌)에 수록된 의궤도(儀軌圖)도 왕실과 국가의 각종 행사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에서 궁중기록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궁중의 행사를 기록한 것 곧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만을 말 할 때도 있습니다. 궁중기록화에는 대개 그림의 제작 동기가 적힌 서발문(序跋文)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림의 제작 시기와 제작에 합의한 관료들의 성명자호(字號)생년본관거주지과거 급제년 따위를 기록한 좌목(座目)이 있습니다. 좌목에 적힌 사람들은 그림 제작의 주체이면서 그림의 소장자임을 나타냅니다. 궁중기록화의 제작자는 대부분 도화서의 화원이었는데 제작 화원의 이름이 알려진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화원들은 한꺼번에 여러 기록화를 남겨야 해서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완성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지요. ▲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주요 내용은 궁중연향(잔치), 기로소(耆老所), 과거시험과 방방(放榜),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내가 들으니, 황희(黃喜)가 하루는 취해서 누워 있는데 비가 내려서 천정에서 물이 새니 우산을 펴 비를 피하면서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우산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우산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하였다는데 청간(淸簡, 탐욕이 없고 대똑같은 이)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이는 《인조실록》 8년 (1630) 1월 27일 기록으로 황희 선생(1363년~1452년)이 청빈한 삶을 살았음을 잘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태종부터 세종 때까지 임금의 보살핌과 신임이 매우 중하여 대소사(大小事)를 막론하고 궁중 안의 비밀스러운 일에 이르기까지 의논 할 정도로 황희 선생은 조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방촌 황희 선생은 고려 공양왕 1년(1389)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그 뒤 1431년부터 1449년까지 영의정이 되어 세종대왕을 도와 국정을 이끌었고 관직을 벗은 뒤에도 중대사에 대해 세종의 자문을 해 주며 영향력을 발휘하였지요. 그는 4군 6진의 개척, 외교와 문물제도 정비, 문화진흥을 지휘하여 세종대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삼천리 제7권 제3호 (1935)>에는
[한국문화신문 = 이한영 기자]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장과 술 등 발효음식을 만들어 즐긴다.라는 기록이 있고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백제인 인번(仁番)이 술 빚는 기술로 일본술의 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 겨레는 전통주의 역사가 깊다. 그러나 우리 전통주는 일제강점기 이후 이름도 거의 잊혔다. 이제 다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며 곧 다가올 설날에 올릴 차례 술도 준비해야만 한다. ▲ 전통주 갤러리 모습 ▲ 개소식행사로 테이프자르기를 하고 있다. ▲ 행사관계자들이 갤러리를 들러보고 있다. 어제 2월 11일 늦은 4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이하 문체부)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이동필, 이하 농식품부)와 협력하여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 전통주 갤러리를 마련하고, 개소식 행사를 열었다. 개소식에서는 양 부처 관계자를 비롯 전통주와 문화예술 분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테이프자르기를 한 뒤 갤러리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어서 전통주 갤러리 관람과 전통주 시음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다. 특히, 양 부처의 협업을 기념하여, 농식품부가 추천한 하얀연꽃 백련막걸리(14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계명주(鷄鳴酒)는 말 그대로 ‘황혼에 빚어 다음날 새벽닭이 울 때면 술이 다 익어 마실 수 있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진 술로 ≪임원경제지≫, ≪유원총보≫에도 나오는 술입니다. 신라의 경주 교동법주, 백제의 한산 소곡주에 이어 고구려 술이 계명주라 할 수 있습니다. 평양지방에서 널리 알려진 전통주인 계명주는 고구려시대부터 즐겨마시던 술로 현재 기능보유자인 최옥근 명인은 시어머니로부터 제조법을 전수 받아 87년 ‘경기 무형문화재 1호’로 등록하여 명주를 빚고 있지요. 이 술은 96년 농림부의 ‘전통식품 명인 12호’로 지정되었고 최근에는 경기 우수 관광상품으로 뽑힌 술입니다. 계명주는 쌀을 주원료로 하는 일반 민속주와 달리 옥수수와 수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옥수수와 수수가루를 섞어 솥에서 60℃ 정도 불로 풀을 쑤고 엿기름을 넣어 25℃ 온도에서 삭힙니다. 그런 다음 죽이 맑아지기를 기다려 100℃ 이상 불로 끓여 식혜처럼 되면 누룩, 조청, 솔잎을 넣고 술독에 담은 뒤 28∼29℃ 온도에서 발효시키지요. 조청과 엿기름이 많이 들어가 ‘엿탁주’로도 불리는데 문헌에는 뒤끝이 개운하고 숙취가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고
▲ 《서간도에 들꽃 피다》5집 표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북간도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나 봅니다. 9월말 용정의 명동학교를 찾아가는 길은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두껍지 않게 입고 간 옷자락을 연신 여며야 할 정도로 쌀쌀했습니다. 이의순, 이인순 애국지사는 이번 5집에서 다루는 분으로 이동휘 선생의 두 따님입니다. 용정하면 윤동주의 고향으로 알려졌지만 이곳은 20세기 초 독립운동을 위해 몰려든 조선인들로 중국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학문과 문화 수준이 높던 곳입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도서출판얼레빗)을 2월 초에 펴낸 이윤옥 시인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북간도 답사는 여성독립운동가 이의순, 이인순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길이었으며 그 내용은 이번에 나온 신간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에 오롯이 들어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현장을 직접 발로 뛰고 자료를 찾아 시와 그 일생을 기록하는 이윤옥 시인의 다섯 번째 작품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 5집에는 모두 20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유달산 묏마루에 태극기 높이 꽂은 김귀남 애국지사는 목포 정명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옻(漆)의 용도가 매우 많아 생옻의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관아의 용도에 쓸 것과 영문(營門)에서 책정하는 것을 반드시 생옻으로 백성들에게서 징수해 받아들입니다. 매번 영문에서 책정해 징수해갈 때에는 반드시 북을 치면서 백성들을 동원하여 사방에서 찍어내는데 한번 겪고 나면 밭둑에 줄지어 섰던 나무가 하나도 남지를 않습니다. 옻을 생산하는 곳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나무가 자라는 것은 한도가 있고 옻의 용도는 끝이 없으며 옻을 생업으로 삼는 백성들도 점점 줄고 있으니 옻이 어찌 귀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응당 사용해야 할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달인 옻(火漆)으로 내도록 책정하고 값도 일정한 액수에 맞추어 주도록 할 일을 문서로 만들어 불변의 법식을 삼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이는 전라도 암행어사 유경(柳)이 옻(漆)에 대한 폐단을 임금께 아뢰는 내용으로 《정조실록》 23년(1799) 5월 7일 기록입니다. 여기에는 이 밖에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진상해야하는 품목이 많아 백성들이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위 기록에 보면 생옻(生漆)과 달인옻(火漆)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생옻은 나무에서 그 재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임진왜란의 패전 요인을 두 가지로 분석한다. 바다의 이순신과 육지의 의병들 때문이라고 말이다. 바다의 이순신이 왜군의 보급로를 끊고, 퇴로를 막아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육지의 곽재우 역시 신출귀몰하는 전술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식량을 확보하려했던 왜군들의 호남진출을 막아 군량미 현지조달을 차단함으로써 육지의 명량대첩을 일군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곽재우 의병장을 이름 정도만 알지 그가 어떻게 대단한 인물이었던가를 잘 모른다. 그래서 K-Musical 육지의 명량 홍의장군 곽재우는 탄생되었다. 육지의 명량 홍의장군 곽재우는 서울 호원아트홀에서 지난 1월 24일부터 오는 2월 12일까지 공연되고 있다. 어제 2월 8일도 역시 만석인 가운데 공연은 진행되었다. 사실 곽재우 장군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도 없어서 어떻게 뮤지컬로 만들 것인지 굼금했었다. 공연은 총 2막 13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막은 임진년의 봄으로부터 일본의 꿈, 난리났네, 북소리, 의병 한 가족, 한양점령, 기강전투로 이어지며, 2막은 구사일생, 모여드세, 진퇴양난, 정암진 전투, 남강은 흐른다, 구국의 등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강원도 명주 학산리에 한 처녀가 살았는데 굴산사 앞 돌샘에 비친 아침 해를 떠먹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범일국사라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범일(梵日, 810년~889년)국사는 신라의 고승으로 신라 구산선문을 연 스님이지요. 고승의 탄생이 샘물과 관련이 있지만 이러한 예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나정이라는 우물가의 알에서 태어나 동쪽 샘에서 몸을 씻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이나 시조들은 예전부터 샘물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 악귀를 쫓는 의미로 금줄을 친 우물 우물이 사람의 손으로 판 것이라면 샘은 자연 상태로 샘솟아 고인 물을 일컫는데 새어나온다는 뜻에서 새암, 샘이 된 것으로 서리의 “설”과, 설거지의 “설”도 물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샘은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는데 지방에서는 정초에 정제(井祭)를 지내는 곳이 많았습니다. 전통마을에는 마을마다 대동샘이 있었고 이러한 곳은 신성시 되었지요. 제사를 지낼 때는 묵은 물을 퍼내고 새물이 괼 때 새물을 떠서 치성을 드렸습니다. 샘물에 관한 이야기로는 백제군을 토벌하고 돌아오던 김유신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유신은 싸움터에서 돌아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사복시(司僕寺)는 조선시대 병조에 소속된 기관으로 말 사육과 전국의 목장, 임금의 가마 따위를 관장하는 기구였습니다. 조선의 사복시 제도는 태조 1년(1392)에 고려의 제도를 기초로 한 것으로 《경국대전》이 완성될 무렵 사복시는 정3품 아문의 관청으로 정비됩니다. 사복시의 지방조직인 목장은 《세종실록》지리지에 53개, 《동국여지승람》에 87개, 《대동여지도》에 114개, 《증보문헌비고》에 209개가 전해지고 있지요. 지금의 성동구 일대에 비교적 규모가 컸던 살곶이 목장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이곳은 호랑이가 나타날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곳으로 중종 21년(1526)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살곶이 목장에 나타나 말을 상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마정(馬政)은 군국(軍國)의 중한 일인데, 각도에서 생식하는 말이 눈비로 인하여 많이 죽게 되니, 비옵건대, 한 섬 안에 초가 서너 곳을 적당히 지어서 말들로 하여금 추위와 더위를 피하게 하고, 또 목자들로 하여금 매년 늦가을에 들풀을 베어서 쌓게 하여, 눈바람과 배고픔과 추음에 대비하소서. 또 근래에 무릇 말을 기르는 사람이 대개는 모두 거세한 말을 만들어서 종자를 없애니, 비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배꼽은 힘줄과 맥이 모이는 곳이요, 오장육부를 거느리는 관문이다. 배꼽이 깊고 넓으면 지혜롭게 보이고 복이 있으며, 얕고 좁으면 어리석고 천하다. 위쪽에 가까우면 부(富)하고 아래쪽으로 가까이 나면 가난하다. 들어가서 위로 향하면 지식이 있고 튀어나와 아래로 향하면 지혜가 없다. 커서 물건을 담은 듯하면 이름이 드러나고, 작아서 움푹하면 좋지 못하다." 이는 조선 말기 학자 최한기의 《인정 측인문》 용모편에 나오는 배꼽 이야기입니다. ▲ 김홍도의 "우물가", 사내가 배꼽을 내놓고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던 탯줄을 자르면 배꼽이 되는 것으로 예부터 배꼽은 사람의 목숨을 있게 한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밤을 / 너는 깨문다 / 차가운 밤 / 말이 없는 밤 / 수염만 있는 밤 / 추억만 있는 밤 / 배꼽만 있는 밤” 이라고 이승훈 시인은 ‘말라가는 밤’에서 ‘배꼽’을 시들어가는 생명으로 견주기도 했습니다. 배꼽을 한자로 쓰면 제(臍) 또는 제(齊)라고 쓰는데 이는 중심을 뜻하는 말로 시황제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즉위할 때 천제(天祭)를 태산(泰山)에서 지냈으며 태산을 다른 말로는 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