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 조윤화 작가의 봄날은 간다 ▲ 손현목 작가의 청산별곡 ▲ 새김작품 체험을 하는 모습 ▲ 새김 작품 체험을 하려고 20여m 긴줄을 선 관람객들 ▲ 휘호대회에서 붓글씨를 쓰는 참여자 ▲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옥색 두루마기를 입은 참가자들이 붓글씨를 쓰거나 수묵화 그리기에 열중한 참가자들 ▲ 한글 붓글씨전에서 청농 문관효 선생(오른쪽)이 관람객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 붓글씨 작품전에 걸린 윤동주 서시(왼쪽)와 이윤옥 목포 정명의 여린 전사들 ▲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자는 등 한글과 관련해서 정부에 요구하는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 동문회와 10여 단체 회원들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제568돌 한글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여러 가지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걸려 제대로 걸어다니 못할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 그 가운데 가장 사람들의 인기를 끈 것은 한국목판각협회의 새김 체험마당이었다. 아직은 뜨거운 10월의 햇볕 속에 20여m 줄을 서서 기다리는 체험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악한 상황에서는 체험지도를 위해 고생하는 작가들의 열정이 빚어낸 모습이었다. 체험마당 뒤에는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세종실록》 26년(1444) 2월 20일 기록에 따르면 세종이 “형살(殺)에 대한 옥사(獄辭)같은 것을 이두 문자로 쓴다면, 문리(文理)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한 글자의 착오로 혹 원통함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언문으로 그 말을 직접 써서 읽어 듣게 하면,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모두 다 쉽게 알아들어서 억울함을 품을 자가 없을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두도 한자의 음과 훈(訓:새김)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이었기에 이도 어려웠던 것이지요. 이에 최만리 등은 “비록 언문을 쓴다 할지라도 무엇이 이보다 다르오리까. 이것은 형옥(刑獄)의 공평하고 공평하지 못함이 옥리(獄吏)의 어떠하냐에 있고, 말과 문자의 같고 같지 않음에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은 신 등은 그 옳은 줄을 알 수 없사옵니다.”라고 장문의 상소를 써서 반박했습니다. ▲ 훈민정음반포도 (訓民正音頒布圖)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하지만, 세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훈민정음을 창제합니다. 최고 지식인 집단인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학사들이 벌 떼 같이 달려들어 반
[그린경제/ 얼레빗 = 김영조 기자] 500년 인삼의 본 고장 2014 영주 풍기인삼축제 가 지난 10월 3일부터 영주시 풍기읍 남원천변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힐링 중심, 행복 영주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인삼대잔치에는 다채로운 인삼 관련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풍기인삼의 진가를 맛보러 가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한편에서는 뜻 깊은 전시회가 열려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로 대한광복단 창설 101주년을 맞아 사단법인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회장 김병수)에서는 문화재 지정 태극기 전시를 비롯하여 대한광복단 독립투쟁 형상화 패널 전시와 여성독립운동가 자료 전시 등 독립정신을 널리 알리는 전시부스를 만들어 이곳을 찾는 많은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지는 풍기 인삼의 진가를 만끽하며 마시는 한 잔의 인삼 찻잔 속에서도 타오르던 조국광복의 한 서린 붉은 화염으로 / 교활한 제국주의 침략의 오만함을 불사르고/ 이천만 조선인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준 / 임들이 지켜낸 금수강산 / 무궁화동산 되어 / 또 다시 억겁의 역사를 꽃피울 ... -이윤옥 시인 억겁의 역사를 꽃피우리라 일부- 영주, 풍기 출신의 대한광복단의 활약상을 알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흩어진 노을처럼 내 아픈 기억도 바래지면 그땐 웃어질까요 이 마음 그리운 옛 일로 저기 홀로 선 별 하나 나의 외로움을 아는 건지 차마 날 두고는 떠나지 못해 밤새 그 자리에만 2001년 우리는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조수미의 저 노래 <나 가거든>을 들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통곡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MBC “K-POP” 프로그램에서 젊은 가수 정은지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가슴 속으로 폭풍 같은 눈물을 쏟습니다. 오늘은 1895년 대한제국 국모 명성황후가 일제의 “여우사냥”이란 음모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당한 날입니다. ▲ 대한제국의 국모 명성황후 영정 명성황후의 시해가 있은 뒤 조선은 일본의 칼날 아래 풍전등화 같은 처지가 되었고, 결국 1910년 경술국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동북아재단 김영수 연구위원이 쓰고 경인문화사가 펴낸 《미쩰의 시기(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보면 명성황후 시해범은 단순한 낭인이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지난 3월에는 정조임금이 쓴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이 경매에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은 정조가 만 3~4살부터 46살인 정조 22년(1798년)까지 큰외숙모인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보낸 한글편지 16점을 모아 묵은 편지첩입니다. 특히 원손시절인 5~6살 무렵 쓴 한글편지의 내용을 현대어로 바꿔 보면 가을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기를 바라오며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도 그리워하였사온데 어제 봉한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워하였사오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시오니 기쁘옵나이다. 원손이라고 되어 있어 어린 정조의 의젓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정조임금이 원손 시절 외숙모에게 쓴 한글편지 그런가 하면 선조가 옹주에게 보내는 편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지요. 선조가 아픈 옹주의 건강을 염려하며 쓴 것으로 아버지로서 딸을 염려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편지입니다. 내용을 보면 자연히 나을 것이라며 딸에게 염려 말라고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한자도 물론 섞인 편지지만 한글이 주로 쓰였음을 볼 수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가 보내는 한글편지도 있는데 고모가 아프다는 것을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흰구름 사려고 맑은 바람 팔았더니 집안이 전부 비어 뼛속까지 가난하다 겨우 한 칸짜리 초옥일지언정 길 떠나면서 병정동자에게 부탁하리라 이는 “백운화상어록”에 남아 있는 말입니다. 백운화상(白雲和尙, 1298∼1374)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지은 스님으로 《직지》는 독일의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으로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직지》는 보통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따위로도 불립니다. 이 책을 지은 백운화상의 호는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景閑)으로 1298년(충열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 백운화상(白雲和尙, 1298∼1374)이 지은 세계기록문화유산 《직지(直指)》 1351년(충정왕 3) 5월 백운화상은 나이 54살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석옥(石屋)선사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전해 받게 됩니다. 1년 뒤 귀국한 백운화상은 77살로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할 때까지 스승에게 받은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연구하여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살리고 여기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내가 전경련 회장으로 있을 때다. 나한테는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5월 어느 날,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 결재까지 맡았다고 하며 자신을 위원장으로 한 민간 7인 위원회라는 것을 누런 종이에 시커멓게 프린트한 것을 들고 왔다. 그러면서 정부의 체면이 서도록 해주면 좋겠다.라고 사정했다. 결국 그 임무는 돈이 있다는 것과 전경련 회장이란 명분으로 정주영에게 떠넘겨 진 것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올림픽을 치르려면 경비가 약 8000억 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곳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겨진 올림픽 유치 민간추진위원장을 정주영은 원래 그의 생각대로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이왕 맡은 이상 정주영의 진가를 발휘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세계 사람들은 당시 한국에 가면 아직도 전쟁고아가 득실거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줄로만 알던 때였다. 또 그보다 10여 년 전 1974년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다가 개최 능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반납한 적이 있었다. 아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수림문화재단(이사장 하정웅)은이번에 처음으로 사진분야의 역량 있는 작가와 사진계를 위해 공헌한 공로자를 발굴 지원하는 제1회 수림사진문화상사업을 시작했다. 시상분야는 작가상과 공로상 2개 분야다. 이번에 최종 선정된 수상자는 사진작가 분야에서는 류은규 작가를 비롯하여 박현두, 이원철, 임수식, 임안나 씨가, 공로상 분야에서는 윤세영, 이규상 씨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제1회 수림사진문화상을 수상하는 사진작가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류은규 씨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1993년부터 항일운동의 후손들과 조선족의 오늘을 기록해왔으며, 동시에 한중일 근대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오고 있다.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한 류은규 작가의 이번 수상작은 항일독립운동가 김규식선생의 딸 김현태 여사님을 찍은 사진으로 1994년 중국 헤이룽장성 상지시에서 허리가 꼬부러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항일독립운동가 김규식선생의 따님 김현태 여사님(1994년 중국 헤이룽장성 상지시) 류 작가는 2002년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우수외국인 교수상(中華人民共和國 吉林省 優秀外國人 敎授賞) 등 국내외서 많은 수상 경력을 갖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오늘은 4346주년 개천절입니다. 서기전 2333년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웠음을 기리는 날이지요. 그동안 우리는 단군조선을 신화라 했습니다. 그것은 일제하의 식민사학자들이 꾸며낸 거짓이었음이 밝혀져 이제는 단군조선이 실재했던 나라였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군조선과 관련되어 일제강점기 초 계연수(桂延壽)가 펴냈다는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한 위서 논쟁은 여전합니다. 《환단고기》는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三聖紀)》,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태백일사(太白逸史)》 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했다고 전합니다. ▲ 1911년 계연수(桂延壽)가 썼다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러나 강단사학계(제도권내의 사학)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합니다. 그것은 환단고기 원문이 사라진 점, 펴낸 70년 뒤에야 제자 이유립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 점, 단군조선의 인구를 19억 명이라고 하는 점, 책을 펴냈을 때의 용어라고 보기 어려운 말들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개천(開川)이라 불렀던 청계천은 길이 10.84km입니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로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하나 돼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이 청계천은 홍수가 나면 집들이 물에 잠기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구정물이 괴어 매우 더러웠지요. 그래서 영조임금 때에는 대대적으로 준설한 것은 물론 청계천 양 언덕을 돌로 쌓았으며, 물 흐름을 바꾸는 공사를 하는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했습니다. ▲ 한양전도(漢陽全圖), 1780년대 필사본, 72.5×88.5cm청계천 오른쪽 파란 점 부분이 오간수문이고 붉은 점은 살곶이다리다. 이때 개천공사를 하고나면 나오는 흙과 모래를 지금은 방산시장이 있는 동대문 옆 오간수문 근처에 쌓아 놓곤 해 인공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산 주변으로 시골에서 땅 잃고 일터를 빼앗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엔 이마에 먹물로 문신을 새긴 전과자 곧 “경을 친 사람”도 있었고 땅꾼도 있었지요. 땅꾼은 원래 땅에다 움을 파고 살았던 사람을 가리키는데 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