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우리 들꽃 가운데는 바람꽃이 있는데 나도바람꽃이라는 꽃도 있지요. 그것처럼 제비란이 있는가 하면 나도제비란도 있습니다. 나도바람꽃이나 나도제비란은 샘도 많은 녀석들인가 봅니다. 나도제비란은 지리산과 제주도 한라산, 함경도의 높은 산 물기가 있는 양지쪽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지요. 키는 10~15㎝ 정도로 작고, 꽃은 봄부터 연분홍색으로 피며 보통 줄기 끝에 2개씩 달립니다. ▲ 나도제비란, 지리산산야초교실 제공 이 꽃은 우리 들꽃이 거의 그렇듯이 그냥 쓰윽 지나치면 볼 수가 없습니다. 숲길을 천천히 둘러보며 걷고 있노라면 발아래 작고도 앙증맞은 이 꽃이 보입니다. 손가락 한 마디 높이의 작은 풀꽃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 채 연분홍의 꽃을 피우고 있어 허리를 굽히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볼 수 없지요. 설렘으로 그 꽃을 가슴에 담아오면 그 감동은 오래 오래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나도제비란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어떤 이는 이 꽃이 제비집에서 입을 쫙쫙 벌리며 새끼들이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정답게 두 송이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한복에도 유행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저고리를 보면 조선 초기인 1580년 청주 한씨의 덧저고리 길이는 무려 81cm나 되어 엉덩이까지 내려갔는데 1670년대의 누비 삼회장 저고리를 보면 42cm로 짧아집니다. 그러던 것이 주선 후기로 오면 극단적으로 짧아지지요. 1780년 청연군주의 문단 삼회장저고리는 19.5cm이며, 조선말 1900년대에 아주 짧아진 저고리는 길이가 12cm밖에 안 된 것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짧아진 저고리는 젖가슴이 보일락말락 하는 것은 물론 배래(한복의 옷소매 아래쪽 부분)도 붕어의 배처럼 불룩 나온 붕어배래가 아니라 폭이 좁고 곧은 직배래여서 이 정도 되면 혼자는 도저히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맵시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했던 것이 1930년대에 오면 다시 저고리 길이가 길어져 현대와 비슷한 26cm가 되었습니다. ▲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어물장수>, 국립중앙박물관 그래서 조선시대 후기 풍속화를 보면 이렇게 짧은 저고리들이 많이 보입니다. 특히 혜원 신윤복의 그림 <어물장수>를 보면 두 사람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생선 행상을 하는 젊은 아낙의 저고리가 짧아 젖가슴이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DJ 재벌개혁 서슬 칩거하던 정 회장 소 1000마리 北에 보내겠다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 휴전선 개방됐다 외신‧전문가들 극찬 이어지는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합의 남북경협 확대‧교류 물꼬 터 [내년 탄생 100주년-소처럼 우직했던 천재적인 뚝심의 기업가] 내년이면 현대그룹을 창립한 고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지속가능 경제를 이끌고 있는 그린경제는 기업인은 많아도 사람냄새 나는 기업인이 적은 현실에서 한국경제의 거목 정주영 회장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정주영 회장은 우직한 소처럼 기업을 일군 기업경영자로서, 더 나아가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거인이었다. 기업가 정주영 회장의 삶은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현대인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말 오전 임진각. 화환을 목에 건 황소 옆에 정주영 명예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한 마리의 소가 1000 마리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1998년 6월 16일 언론은 이렇게 83살의 정주영 회장이 트럭 50대에 500마리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하기 맑은 물을 닮고 단단하기 바위와 맞먹네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었나 보구려 가늘게 꽃 무늬를 점 찍었는데 묘하게 정성스런 그림 같구려 이렇게 고려 후기 문신학자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는 청자를 노래합니다. 그 아름다운 청자 가운데 연꽃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 주전자가 있습니다. 청자귀형수병(靑磁龜形水甁)이라고도 부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제96호 청자구룡형주전자(靑磁龜龍形注子)입니다. 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 주전자로, 높이 17㎝, 밑지름 10.3㎝의 크기지요. ▲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제96호 청자구룡형주전자(靑磁龜龍形注子) 얼굴 모습은 거북이라기보다 오히려 용에 가까운데, 그래서 거북 구(龜) 자와 용 룡(龍) 자를 써서 구룡형주전자입니다. 뿔과 수염, 갈기, 눈, 이빨, 비늘 따위가 모두 정교하면서도 부드럽게 표현되어 숙련된 도공의 작품임을 알 수 있지요. 두 눈은 검은색 물감을 써서 점을 찍고, 목과 앞가슴의 비늘은 오목새김인데, 발톱은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효는 공의 천성이라 사람들이 법으로 삼았네. 효로서 관직을 받고 나라에서 상을 주었네. 사람의 아들 이렇게 해야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니 공의 이름이야 부끄럼 없어서 내 이렇게 명을 쓴다. 위는 효성이 지극하여 벼슬까지 받았던 귀전 박준(朴峻, 1559~1625) 선생의 묘갈문 마지막 부분입니다. 글을 지은 이는 이조판서에 홍문관대제학 벼슬에 있었던 이명한(李明漢)이지요. 선생의 지극한 효성에 감복한 향교 유림들이 조정에 그 효행을 추천하여 정문((旌門,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고자 그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이 내렸고, 무안현감(務安縣監)을 제수 받았습니다. 선생은 아버지 부사공(府使公)이 중풍으로 몸져누우니 주야로 하늘에 기도하고, 어의(御醫)인 허준(許浚)을 모시려 하였으나 감히 얼굴도 볼 수 없었지요. 날마다 새벽닭이 울면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애원하자 허준도 그 효성에 감복하여 약을 지어 주었는데 그 약을 먹고 다소 회복되었습니다. 다시 병이 위중해지자 선생은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흘려 넣어 소생케 하기도 하였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죽만 먹으며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박기(朴琦)는 영산(靈山, 경남 창녕지역 옛 이름) 사람인데, 그 어미 공씨(孔氏)가 미친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된 지가 9년이 되었는데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으므로, 스스로 왼쪽 무릎 위의 살을 베어 화갱(和羹, 여러 가지 양념을 하고 간을 맞춘 국)을 만들어 바쳐 어미의 목숨을 잇게 함으로써 오늘에 이르도록 보양(保養)하고 있다 한다. 이는《성종실록》 21년(1490 ) 6월 20일 기록입니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에는 효자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나옵니다. 효도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보았던 조선시대이기에 당연한 기록들이지요. 조선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효성스러운 임금은 정조입니다. 뒤주에 갇혀 숨을 거둔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九泉)에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하던 정조는 보경(寶鏡)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듣게 되고 이에 큰 감동을 받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합니다. 그래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을 천하의 명당이라는 화산(華山, 경기도 화성)으로 옮겨와 현륭원(顯隆園 - 뒤에 용륭'隆陵'으로 승격)이라하고 이곳에 융릉의 원찰(願刹)로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악한 행동에 따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음은 마치 소에서 우유를 짜내는 것과 같고 죄에 따른 과보가 숨겨져 나타나지 않음은 잿더미 속에 불씨가 숨어 있는 것과 같다. -법구경 악행품 13장- 법구경(法句經)은 서기 원년 전후의 인물인 인도의 법구(Dharmatrata, 法救)가 편찬한 불교의 경전으로 석가모니 사후 삼백년 뒤에 여러 경로를 거쳐 기록된 부처의 말씀을 묶어 만든 경전입니다. 주된 내용은 폭력, 애욕 등을 멀리하고 삼보(불,법,승)에 귀의하여 선한 행위로 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내용으로 오늘날은 꼭 불교 수행자가 아니라도 일반에게 널리 읽히는 책입니다. 한역(漢譯) 법구경은 악행품, 무상품, 교학품, 다문품, 독신품과 같은 39개의 품(品)과 서문으로 이뤄져있습니다. ▲ 낙산사 의상대 연등(사진 최우성 작가) 어진 사람이 사람을 물들이는 것은 좋은 향기를 가까이 하는 것과 같다 힘써 지혜를 추구하고 좋은 것을 익히다 보면 깨끗하고 아름답게 행하는 습성이 몸에 밴다 -쌍요품 16장-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들리는 말에는 불교행사에 기독교나 천주교 쪽 관계자들도 함께 모여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개국부터 끝까지 정치, 외교, 군사, 법률, 통신, 종교 등 인간사의 모든 부분을 종합하여 기록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정확한 기록물로 평가받는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실록이 편찬되었지만 한 왕조가 조선왕조실록처럼 긴 시간에 걸쳐 풍부하고도 엄밀한 기록을 남긴 예가 없다. ▲ 《조선왕조실록》 표지들(왼쪽부터 태조실록, 중종실록, 광해군일기,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세종실록) 《조선왕조실록》은 궤짝에 담아 보관해왔다. 그리고 실록이 서로 닿는 것을 막도록 사이에 초주지를 끼워 넣고 악귀를 쫓는 붉은 보자기로 쌌다. 또 그 보자기에는 벌레와 습기를 막으려는 청궁, 창포 등의 한약재 가루를 담았다. 한 궤짝에는 15~20책을 담아 철저하게 봉인하고 자물쇠를 채웠다. 이렇게 자물쇠를 채운 왕조실록은 처음엔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사고에 보관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를 뺀 나머지 사고가 모두 불타자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등의 산속 사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었으며, 실록을 관리하는 사람조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일곱째 입하(立夏)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때입니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르지요. 이때가 되면 봄기운은 멀어지고 산과 들에는 녹음이 짙어지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이때 낮에는 온갖 나비가 날아들고, 해가 지면 반딧불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하는가 하면, 들에는 토끼풀꽃, 산에는 으아리꽃 향기가 짙어지지요. 그뿐만 아니라 뽕나무 잎이 활짝 펴 아낙네들은 누에치기 바쁘고, 소나무 꽃이 피어 온 동네가 노란 송홧가루로 뒤덮입니다. 입하에 관련된 속담도 많습니다. 예전에 벼를 이모작 할 때 입하 무렵엔 못자리를 하므로 바람이 불면 씨나락이 몰리기에 이때 못자리 물을 빼서 피해를 막으라는 뜻에서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라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또 입하 즈음이 되면 모심기가 시작돼 농가에서는 들로 써레를 싣고 나온다는 뜻으로 "입하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 라는 속담도 있었으며, 입하 무렵에 물을 잡으면 한 달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세종문화회관 누리집(http://www.sejongpac.or.kr) 안의 개요, 인사말, 시설소개 따위에 특별히 세종대왕을 들먹이진 않는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한글가온길 시작점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세종대왕을 기리는 문화시설이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이란 이름에서 “세종”만 빠지면 세종대왕을 기린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먼저 시설 이름들 가운데 세종M씨어터, 세종체임버홀, 세종예술아카데미처럼 영어가 들어간 곳이 많다. 지난 해 세종M씨어터를 우리말로 바꾼다며 전문가 자문회의를 했지만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그뿐인가! 안에 들어가면 우선 SEJONG CENTER, Ticket Box, SEJONG HALL, Artpia처럼 시설 이름을 영어로 쓴 것은 물론 세워둔 선펼침막(배너)과 포스터도 영어 일색이다. 심지어 안내를 뜻하는지 영어 “information”을 “인포메이션”이라고 한글로 표기한 곳도 있으며 공중전화 시설은 아예 Telephone와 SEJONG CENTER라는 영어만 쓰여 있다. 세종문화회관 보람(마크)도 영어로 디자인하엿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세종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