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둘째 아들도, 며느리도, 큰아들도 모두 내 눈앞에서 잡혀갔어 모두 걱정 말라면서 떠나갔는데 아무도 안 돌아와 아직도 가슴이 가득해오면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너무 억울해서 나는 몇 백 년이고 아들을 다시 보기 전에 죽을 수가 없어 절대로 죽을 수가 없어…….” ▲ 두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고 윤희춘 할머니 증언(제주 4.3평화기념관) 위 말은 4.3항쟁 때 두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고 윤희춘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오늘은 제주도 무고한 양민 3만여 명이 학살당한 제주4.3항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이 일어난 뒤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 단독선거, 단독정권 수립 반대를 목표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때 죽은 3만이란 숫자는 제주도민의 1/9 정도가 되기도 하지만, 이 희생자 가운데 33%가 노약자와 여성이며,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났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미군정이 제주도민의 70%가 좌익 동조자라 하여 제주도를 빨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서양에서 들어온 꽃이나 사람이 재배하는 꽃들에 견주면 우리 들꽃들은 사람이 키를 낮춰야 보이는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각시, 애기, 병아리, 왜 등의 앞가지(접두사)가 붙으면 암시하는 것처럼 여지없이 작은 꽃들입니다. 예를 들면 “각시"는 작고 아담한 것이란 뜻으로 각시붓꽃, 각시취가 있지요. ▲ 작다는 뜻의 앞가지(접두어)가 붙은 들꽃들 / 병아리난초, 각시붓꽃, 왜솜다리, 애기현호색(왼쪽부터) 그런가 하면 "애기"는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작은 것이란 뜻인데 애기나리, 애기원추리, 애기현호색 같은 것들이 있으며, "병아리"도 작고 앙증맞고 아담하다는 뜻을 지녀 병아리난초, 병아리풀들이 있습니다. 또 "왜"는 일본에서 왔거나 역시 작다는 의미로 왜현호색, 왜제비꽃, 왜솜다리, 왜당귀, 왜골무꽃들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이와 반대로 "큰"이란 앞가지가 붙은 큰구슬붕이, 큰복주머니난, 큰꿩의비름, 큰까치수염, 큰꽃으아리 등은 봄 큰 것이고 "왕"도 키가 크다는 의미인데 우리가 잘 아는 왕고들빼기, 왕골, 왕원추리 등이 있지요. 이밖에 "참"도 크다 ‘실하다’를 뜻하는 것으로 참나리, 참꽃마리, 참개암,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고, 소나무 장작불로 밥을 해 먹었으며, 아궁이에 불을 때서 잠을 잤습니다. 또 소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솔잎을 넣어 송편을 쪄 먹었으며, 솔잎주를 빚었지요.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笭)은 약제로 쓰였으며,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인 송연(松烟)으로 먹(墨)을 만들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흔들리는 소나무의 운치 있는 맑은 소리를 즐긴 것은 물론, 죽을 때는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나무에게 신세를 졌던 것이 우리겨레입니다. ▲ 마치 용틀임하듯 뒤틀리면서 180 휘어진 신령스러운 모습인 반룡송(蟠龍松) 그런 소나무 가운데는 신령스러운 모습도 많이 있는데 경기도 이천 도립리 어산마을 반룡송(蟠龍松)도 그 가운데 하나지요. 천연기념물 제381호로 지정된 이 소나무는 용이 하늘로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몸을 감고 엎드려 있다, 주위를 빙 감아돌다란 뜻의 반(蟠)이란 한자를 용(龍) 자에 붙여서 반룡송이라 했습니다. 나이 500살 정도이며, 나무의 높이는 4.25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장군”이란 독보다 조금 작고 배가 부른 오지그릇 중두리를 뉘어놓은 모양의 것으로 한쪽 마구리(길쭉한 물건의 양 끝에 대는 것)는 평평하고 다른 한쪽 마구리는 둥그런 모양이며 배때기에 좁은 아가리가 나 있는 그릇입니다. 오지로 만든 작은 것에는 물이나 술 따위를 넣으나 큰 것에는 오줌을 담아 지게로 운반하지요. 이를 오줌장군·오줌추마리(경상남도 창녕)·소매장군(전라남도 보성)·장군(전라남도 보성·구례, 강원도 강릉)이라 합니다. ▲ 국립경주박물관 <천마특별전>에 나온 신라 때 달걀을 넣은 장군 장군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큰 것은 지름 30㎝, 길이 60㎝ 정도로서 서말이 들어가며, 작은 것은 한 말들이도 있습니다. 사기로 조그맣게 만든 것은 술·간장 등을 넣어 나르며, 질그릇으로 크게 구워 만든 것은 오줌을 지어 나르는 데 쓰지요. 나뭇조각으로 통을 메우듯이 짜서 만든 나무장군은 공사장에서 물을 져 나르는 데 썼구요. 그런데 여기 아주 작은 장군도 있습니다. 지름은 약 8cm 정도이고 길이는 15cm정도로 일반적인 장군에 견주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이 장군은 금관을 비롯하여 모두 11,526점의 껴묻거리(부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편경(編磬)은 고려 1116년 (예종 11)에 중국에서 편종과 함께 들어와 궁중제례악에 사용된 악기입니다. 처음에는 편경을 만들 돌이 없어서 중국에서 수입해서 만들거나 흙을 구어서 만든 와경(瓦磬)을 편경 대신 썼습니다. 그러다 세종 7년(1425년) 경기도 남양에서 경석(磬石)이 발견되어 1427년(세종 9) 12 매 짜리 편경 한 틀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편경은 습도나 온도의 변화에도 음색과 음정이 변하지 않아 모든 국악기 조율의 표준이 됩니다. 《세종실록》 권128에 나오는 편경은 12개로 편성됐지만, 성종(1469~1494) 때 쓰인 편경은 16매짜리였고 이후 지금도 16매를 씁니다. 이 ㄱ자 모양으로 만든 16개의 경돌은 음높이의 순서대로 위·아래 두 단에 8개씩 붉은 노끈으로 매어다는데 경이 두꺼우면 소리가 높고, 얇으면 그 소리가 낮지요. 편경의 틀을 보면 두 개의 사각대 방대 (方臺) 위에 흰 기러기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나무틀을 세워 양편에 봉황머리를 조각하였습니다. 여기서 암수 사이가 좋은 흰기러기는 절개 있고 청빈한 선비를 상징한다고 하지요. 기러기가 하늘을 날듯이 편경 소리가 멀리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26일 경찰청 지능수사대는 중요무형문화재 신응수 대목장(71세)이 문화재청으로부터 공급받은 광화문 복원용 금강송 4주와 숭례문 복구용 국민기증목 154본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주는 벌목한 온전한 형태의 나무를 말하고, 본은 동강이를 내 다듬은 나무다. 경찰은 또 신응수 대목장(71세)이 경복궁 복원공사에 참여하기 위해 시공업체 ㅈ사에 2,500만원을 주고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을 빌렸다는 혐의도 추가했다. 이와 함께 ㅈ사 김 아무개 대표(75세)는 신 대목장 등 목공사‧석공사 등 5개 하도급업체와 공모, 총5억여 원의 공사비를 횡령하고,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을 23건이나 불법으로 빌려주어 6억7,000만 원의 돈을 챙긴 것으로 확인했다. 또 신 대목장과 김 아무개 대표는 2012년 1월 경복궁 수라간 복원 공사 때 10억 원짜리 공사 대금을 11억 원으로 부풀리는 짬짜미도 함께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 2008년 숭례문은 한 노숙자에 의한 화재로 쓰러졌다. 조선소나무와 백성이 말없이 처참한 숭례문을 바라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광화문‧경복궁 공사감독을 담당한 문화재청 공무원 6명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저녁 7시 반. 광화문의 푸른역사아카데미 강의실에는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어느새 가득 찼다. 스무 명이 모이면 딱히 좋을 듯한 공간은 그 배나 되는 숫자가 모였는데 모두 하나 같이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을 쓴 이규봉 작가처럼 체 게바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저자 특강을 하는 이규봉 교수,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푸른역사)》책 표지 자전거 하나로 역사의 현장을 달리는 이규봉 작가의 직업은 대학교수다. 그것도 얼핏 보면 역사와는 관계가 없는 듯한 수학과 교수다. 그런 그가 역사학자보다 더 쉽고도 재미난 그러면서도 무언가 시사 하는 듯한 점을 콕콕 찍어 책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저자 소개가 시작되고 쿠바의 역사와 체 게바라의 일생에서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1시간 반 동안의 그의 강연을 듣는 동안 청중들은 숨 한번 크게 쉬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작가는 아주 편하게 이웃 아저씨 같이 쿠바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거기에는 자신이 교수라든가 작가라는 의식이 깔려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딱딱한 남의 나라 역사를 자신이 이해한 방식대로 청중에게 편하게 들려주었다.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안중근 의사는 려순구 감옥에서 적의 해를 입어 사생취의할 때에 그 아우 공근에게 닐러 갈아대 ‘나의 유해를 려순구 바다 언덕 우에 무더 두어 외로운 무덤으로 하여금 고국 산천을 바라보게 하고 이 다음 우리나라가 독립하거든 반장하여라.’” 이는 1941년 11월 13일 신한민보에 실린 안중근 의사의 유언입니다. 안 의사는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했다는 까닭으로 지금으로부터 104년 전 여순 감옥에서 31살의 나이로 순국했으며 오늘이 바로 안 의사 순국일입니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하얼빈역 1층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에는 오전 9시 30분에 멈춰선 시계가 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 의사가 동양평화를 파괴하려는 이등방문을 저격한 바로 그 시각인 것입니다. 안 의사의 의거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을 압죄의 울타리 속으로 밀어 넣기 위한 일제국주의 앞잡이 이등박문을 응징한 것이요, 국가수호를 위한 정당한 행동임을 세계만방에 알린 쾌거였습니다. ▲ 사형선고를 받고도 의연한 안중근 의사(왼쪽), 1941.11.13 신한민보 '안중근 의사 유언' 그러나 안 의사 순국 104주기를 맞는 지금까지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경기도 이천 백사골은 산수유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산수유마을에는 느티나무와 여섯 선비가 시회와 학문을 논하며 우의를 기리자는 뜻으로,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것에서 비롯된 육괴정(六槐亭)이 있지요. 육괴정에는 조선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의 화를 피하기 위해 조광조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꿈꾸던 신진사류들이 난을 피해 내려와 머물던 곳입니다. ▲ 여섯 선비가 심었다는 500년 된 느티나무의 하나 여섯 선비란 김안국, 가은, 오경, 임내신, 성두문, 엄용순으로 이들은 서로의 우의를 기리고자 정자를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판 뒤 둘레에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지요. 그로부터 495년이 지난 지금도 느티나무 세 그루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여섯 선비 가운데 김안국은 동생 김정국과 더불어 조선중기의 선비이자 학자였으나 기묘사화로 동생 김정국과 함께 고양으로 낙향하여 19년간 후학 양성에 힘썼고 형인 김안국은 이천의 백사골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그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아우는 호수 서쪽에 있고 형은 동쪽에 있어도 / 임 향한 일편단심 너와 내 없이 / 때때로 영주 / 봉래 향해 머리를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위 한시(漢詩)는 시와 술을 즐기며 당대 석학들과 어울린 고려시대 학자 이인로(李仁老, 1152 ~ 1220)의 조춘강행1(早春江行1), 이른 봄 강가를 걸으며입니다. 이른 봄 아직 꽃들은 망설이고 있지만 휘휘 늘어진 버들은 마치 허리를 흔들 듯 춤을 춥니다. 우리는 능수버들이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한다하여 버들강아지라 하는데 버들강아지는 다른 꽃들보다 먼저 봄나들이를 하지요. 시인은 또 새봄을 맞아 물결 속에서 뛰는 물고기의 붉은 빛과 하늘가의 흰빛 해오라기를 잘 견주고 있습니다. 이인로는 시문(詩文)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능해 초서(草書)·예서(隸書)가 특출하였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은대집(銀臺集)》, 《후집(後集)》 《쌍명재집(雙明齋集)》, 《파한집(破閑集)》 따위가 있지만 현재는 시화집(詩話集)인 《파한집》만 전합니다. 그는 《파한집》을 쓴 까닭을 “만약 우리들이 진정으로 선인들의 글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훌륭한 글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인로가 아니었다면 훌륭한 옛글을 지금 우리가 읽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