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얼레빗 = 김영조 기자] 3~4월 매사냥할 때 오후에 하인들이 몸이 허하고 갈증이 나면 상실주를 냉수에 타서 마시도록 한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다리 힘이 붙는다. 위는 조선 중기 안동 유생 김유(金綏)가 지은 ≪수운잡방(需雲雜方)≫에 나오는 상실주(橡實酒)의 효능에 대한 기록입니다. 매사냥을 할 때 하인들은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하는데 이때 다리에 힘이 붙을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상실주(橡實酒) 부분 여기서 상실(橡實)이란 너도밤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큰키나무인 상수리나무 열매를 말합니다. ≪수운잡방≫의 상실주 빚는 요령을 보면 껍질을 깐 상수리 1석(120근)을 흐르는 물에 오래도록 우려내고, 그 굵은 가루를 햇볕에 말려 곱게 빻는다. 찹쌀 6말을 많이 씻고,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이를 서로 섞고 푹 쪄 식힌다. 두 가지를 섞어 두 말을 만들고 좋은 누룩 3되를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익기를 기다린다. 고운 찹쌀가루에 죽 한 동이를 만들어 항아리에 넣는다. 맑은 웃물이 바닥까지 내려가면 맑은 술을 떠서 쓰고, 묽은 찰죽에 용수를 박아 술을 뜬 다음 술지게미를 햇볕에 말려 갈무리한다.라고 나오지요. ≪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이나 경복궁 정문 광화문 앞에 가면 수문장 교대식을 보게 됩니다. 그때 취타대의 연주도 함께 볼 수 있는데 취타대의 악기 가운데는 "운라(雲鑼)"라는 것도 있습니다. "구운라(九雲鑼)" 또는 "운오(雲璈)"라고도 하며, 둥근 접시 모양의 작은 징[小鑼]10개를 나무틀에 달아매고 작은 나무망치로 치는 악기입니다. ▲ 취타대를 화려하게 하는 운라(雲鑼) 틀(架子)의 아래에 자루가 달린 것과 방대(方臺)가 붙은 것이 있는데, 길을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행악(行樂) 때에는 이 자루를 왼손으로 잡고 치며, 고정된 위치에서 연주할 때에는 대받침(방대)에 이를 꽂아놓고 치게 되어 있지요. 징의 지름은 10개가 모두 같으나 두께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서, 얇으면 낮은 음이 나고 두꺼워질수록 높은 소리가 납니다. 운라는 3개씩 3열로 배열하되 하나는 가운데 열 맨 위에 놓입니다. 운라는 《고려사 악지(高麗史樂志, 1451)》나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년)》에는 보이지 않는데 조선후기 풍속화인 평양감사 도임을 그린 병풍에 처음 보이며, 조선 순조 때의 《진연의궤(進宴儀軌, 1828)》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조선후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에는 책을 놓고 읽거나 붓글씨를 쓰던 낮은 책상 서안(書案), 사방이 트여 있고 여러 단으로 된 사방탁자(四方卓子), 여러 권이 한 질로 된 책들을 정리, 보관하는 궤인 책궤(冊櫃), 안방의 보료 옆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편지서류 같은 물건이나 일상용 기물들을 보관하는 가구인 문갑(文匣) 같은 소박한 가구들이 꼭 있었습니다. ▲ 선비가 사랑했던 고비(왼쪽), 죽제고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런데 사랑방에는 그것 말고도 선비들이 아끼던 고비도 있었습니다. 고비는 방이나 마루의 벽에 걸어놓고 편지나 간단한 종이말이 같은 것을 꽂아두는 실내용 세간을 말합니다. 고비는 가벼운 판자나 대나무 같은 것으로 만드는데 위아래를 길게 내리 걸도록 만들었지요. 또 두꺼운 종이로 주머니나 상자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종이띠를 멜빵 모양이나 X자형으로 벽에 붙여서 쓴 소박한 형태도 있었습니다. 등판과 앞판 사이를 69㎝쯤 떼어 23단 가로질러 놓음으로써 편지를 넣어두기에 알맞도록 했지요. 어떤 이는 이 고비를 考備, 또는 高飛처럼 한자로 쓰기도 하지만 이는 소리를 빌려 쓴 취음일 따름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만영(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몇 년 전 가수 조관우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아버지 조통달 명창이 득음을 위해 똥물까지 마셨다고 고백하여 많은 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득음을 한 조 명창의 소리는 우렁찬 천구성으로 유명하지요. 판소리는 일반적으로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탁하면서도 맑은 소리라고 하지만 판소리 성음을 크게 나누면 수리성과 천구성이 있습니다. 수리성은 좀 더 탁하고 거친 소리를 말하고, 천구성은 보다 맑고 깨끗한 소리를 말합니다. 요즘은 수리성이 더 인기가 있지만 예전 19세기에는 우렁차면서도 밝은 목소리의 천구성을 더 좋아했습니다. ▲ 천구성과 수리성을 함께 가지고 있어 최고의 소리꾼이라는 임방울 명창 그런데 이렇게 거칠고 탁한 소리에 큰 값어치를 주는 판소리지만 참 득음은 ‘곰삭은 소리’, 곧 ‘충분히 삭은 소리’여야 한다지요. 음식이 발효를 통해 깊은 맛과 향기를 갖게 되듯이 목소리도 수련을 통해 깊은 내면의 맛과 향기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또 판소리의 맛과 향기를 대표하는 것은 ‘슬픔’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만, 충분히 삭은 슬픔은 절망 속의 슬픔이 아니라 슬픔을 준 대상에 대한 증오까지 승화시킨 그래서 모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조선 중기 선비화가 홍수주(洪受疇, 1642 ~ 1704)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도승지 시절 생일을 맞았습니다. 이때 그 부인이 이웃에서 치마를 빌려 딸에게 입혔지요. 그때까지 딸한테 비단 치마를 입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환갑 잔칫날만은 빌려서라도 입히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손님들은 치마를 빌린 줄은 모르고 홍수주 딸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음식상을 다루던 딸이 그만 실수하여 치마에 간장 방울을 튕겨 얼룩이 지고 말았습니다. 큰일이었지요. 가난하여 치마를 해줄 형편이 못되던 홍수주는 고민 끝에 얼룩진 치마에 포도 그림을 일필휘지로 그려나갔습니다. 그리곤 얼룩진 곳에 탐스러운 포도송이와 포도 잎사귀를 그리자 치마는 한 폭의 훌륭한 그림이 되었지요. 홍수주는 이 치마를 중국 사신단을 따라가는 역관에게 부탁하여 비싼 값에 중국인에게 팔았습니다. 그래서 이웃집에게 치맛감을 갚았음은 물론 치마폭 몇 감을 더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 빌린 치마에 간장방울이 얼룩지자 포도 그림을 그린 홍수주(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3대에 걸쳐 관찰사를 지낸 가문에다 도승지까지 한 홍수주는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24절기 중 봄 절기는 입춘부터 시작하여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가 된다. 또 여름 절기는 입하부터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까지다. 이어서 가을 절기는 입추를 비롯하여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이며, 겨울 절기는 입동과 함께 소설, 대설, 동지, 소한을 지나 대한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24절기는 무엇인가? 이 절기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지으려고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오죽 했으면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농사지을 때를 알려주는 일 곧,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임금의 가장 중요한 의무와 권리의 하나였다고 했을까? 그래서 한해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사지을 때를 알려주는 절기는 중요했던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이 쓰던 달력에는 태음력(太陰曆), 태양력(太陽曆),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 등이 있다. 태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이다. 1년을 열두 달로 하고, 열두 달은 29일의 작은 달과 30일의 큰 달로 만들었다. 태양력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경칩(驚蟄)입니다.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서는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뒷날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 자를 피하여 놀랠 경(驚)자로 바꿔 경칩(驚蟄)이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돼지날(亥日, 해일)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하였으며, 경칩 뒤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지요. 《성종실록》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하였듯이,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반겨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되는데 풀과 나무에 싹이 돋아나고 겨울잠 자던 벌레들도 땅속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또는 도롱뇽, 두꺼비) 알을 건져다 먹지요. 또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구진비는 붓듯이 온다 / 눈정에 거룬님을 오늘밤에 서로 만나자 허고 / 판첩처서 맹서 받았더니 / 이 풍우 중에 제어이 오리 / 진실로 오기 곧오랑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이는 여창가곡 우조 우락 "바람은"의 가사입니다. 전통성악의 하나인 가곡, 그중 여자가 부르는 여창가곡 가운데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이지요. ▲ 전통가곡을 부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 보유자 김영기 명창 이 노래의 주인공은 아마도 기생인 듯한데 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아무리 맹세하고 약속했지만 이 폭풍우 중에 과연 올까?”라고 걱정하면서도 만일 온다면 우리는 진정 인연일 것이라는 가냘픈 기다림으로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한 기생은 과연 그날 밤 꿈같은 만남을 이루었을까요? 가곡은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부르는 노래로 피리·젓대(대금)·가야금·거문고·해금의 관현악 반주와 함께 하는 한국의 전통 성악곡이며,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합니다. 2010년 11월 16일 열린 제5차 무형유산정부간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오른 가곡은 그 예술성이 시조와 가사에 견주면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고려시대 우리 겨레는 찬란한 청자문화를 꽃 피웠습니다. 그러다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청자 대신 백자가 유행했습니다. 고려는 불교와 귀족의 나라였기에 사후세계의 구원에 관심이 많았고, 환상적이며, 불교적, 경향이 있었는데 그런 까닭으로 상감기법을 이용한 많은 무늬와 화려한 색깔의 청자가 발달했지요. 반면 조선은 성리학이 중심이 된 나라이기에 사후세계보다는 현실적, 합리적,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했고. 그래서 그릇으로서의 도자기는 무늬, 색깔보다는 견고하고, 기능적인 것을 선호한 탓에 백자가 발달된 것입니다. 곧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두 나라의 철학적 배경이 만들어 낸 것이지요. ▲ 국보 제166호 백자 철화매죽무늬 항아리 그 조선백자 초기의 것 가운데 높이 41.3m, 입지름 19㎝, 밑지름 21.5㎝. 국보 제166호 백자 철화매죽무늬 항아리가 눈에 띕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이 항아리는 약간 높직한 입 부분이 안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어깨와 몸체 윗부분이 풍만하게 부풀었다가 조금씩 좁아져 내려오면서 당당하고 힘찬 선을 그으며 바닥에 이르지요. 입 부분에 당초 모양의 구름무늬가 있고 어깨에 변형된 연꽃무늬가 있습니다.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흉년 들자 자신의 녹봉과 사창미 풀어 규제 경술국치 땐 단식 일경들이 미음 먹이려하자 날 총으로 쏴서 죽여라 호통 24일 만에 숨져 愛民과 절개 조선 선비의 기개 몸소 보여줘 ▲ 안동댐 공사로 수몰되어 1976년 현재의 안동시 안막동으로 옮겨온 향산고택 얘 얘 이 책도 담아라. 단식원을 가려고 짐을 꾸리는 나에게 엄마는 《향산 이만도》라는 책을 찔러 넣어 주셨다. 나는 올해 스물여섯 살로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고질적인 아토피로 이 약 저 약을 쓰다 급기야 엄마 손에 이끌려 화순군에 있는 한 단식원에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 아마도 엄마는 내가 밥을 먹지 못할 때 이분을 떠올리라고 책을 넣어 주신 것 같다. 새삼 엄마의 마음 씀에 눈가가 촉촉이 적셔옴을 느낀다. 단식은 죽음에 이르는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다른 어떤 자결보다 고통스럽고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이번 단식을 통해 깨달았다. 향산 이만도 애국지사의 강인한 저항정신이 절절이 몸에 와 닿았다. 이 글은 기자가 1만여 명의 독자들에게 누리편지로 보내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에 어떤 독자가 보내온 글이다. 아토피를 고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