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소작면적이 증가하면 그 만큼 생활이 좋아져야 하는데 금일의 생활은 빈궁이 깊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5월 18일치 동아일보에 나온 군산발 기사 내용입니다. 소작지는 증가하되 생활은 더욱 빈궁이라는 제목으로 군산 옥구 농민의 생활 실태를 알리는 기사지요. 속된 말로 뼈 빠지게 일해 봐야 빚만 늘어간다는 이런 기사는 일제강점기에 흔히 보는 기사로 특히 식민지 조선의 쌀을 착취하여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군산은 일본으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전국의 쌀 집산지였습니다. ▲ 소작지는 증가, 생활은 더욱 빈궁'이라는 1934년 5월 18읠 동아일보 기사(왼쪽), 쌀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군산세관 1925년 일제에 의해 출간된 《군산개항사》에 보면 세관 옥상에도, 부두에도, 길에도 눈길 가는 곳마다 곳곳에 수백 가마씩 쌓여 20만 쌀가마니가 정렬하였으니 오호 장하다! 군산의 쌀이여! 라는 글이 넘칩니다. 조선총독부의 산미증산계획에 따라 1934년에는 당해 생산된 1,672만 석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891만 석이 일본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가운데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300만 석 이상이 군산을 통해 일본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둘째 우수(雨水)입니다.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어서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을 맞게 된 것이지요.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슬슬 녹아 없어짐을 이르는 뜻으로 우수의 성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트지요. ▲ 우수, 대동강물도 풀려 빨래하기 좋아(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꽃샘 잎샘 추위에 반늙은이(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계절에 나누는 전래의 인사에도 "꽃샘 잎샘에 집안이 두루 안녕하십니까?"라는 것도 있지요. 이 꽃샘추위를 한자말로는 꽃 피는 것을 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말로 화투연(花妬姸)이라 합니다. 하지만, 우수가 되면 봄기운이 서리기 시작하는데 풀과 나무가 깨어나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이때는 논밭을 둘러보고 새해 농사 계획 세우며, 삽질 한 번, 낫질 한 번으로 몸을 풀지요. 특히 이 무렵에는 농사일 한발 앞서 장을 담가야 합니다. 장 담그는 일은 시골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어젯밤 산 속에 비가 내렸으니(昨夜山中雨) 앞 시내 지금 물이 불었으리라(前溪水政肥) 대 숲 집 그윽한 봄꿈 깨어나니(竹堂幽夢罷) 봄빛이 사립문에 가득하구나(春色滿柴扉) ▲ 이른봄의 정경(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아직 꽃이 피기는 이르지만 서서히 봄빛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위 한시는 선조 때 삼당시인(三唐詩人, 조선 선조 때의 세 시인 곧 백광훈(白光勳)ㆍ최경창(崔慶昌)ㆍ이달(李達)을 말함)으로 이름났던 백광훈의 계당우후(溪堂雨後)입니다. 산에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났고 그 봄비가 그치자 사립문 앞에 봄빛이 완연하다는 내용이지요. 이렇게 이른 봄을 노래한 한시로 윤휴(1617~1680)의 만흥이란 시도 있습니다. 말을 타고 유유히 가다서다 하노라니(騎馬悠悠行不行) 돌다리 남쪽 가에 작은 시내 맑기도 하다(石橋南畔小溪淸) 그대에게 묻노니 봄 구경 언제가 좋은가(問君何處尋春好) 꽃은 피지 않고 풀이 돋으려 할 때이지(花未開時草欲生) 말을 타고 맑은 시내 주변에 펼쳐진 이른 봄의 경치를 느릿느릿 즐기다가, 아직 꽃이 피지는 않고 풀이 막 돋아나려 하는 때가 봄 경치 가운데 가장 좋다고 중얼거리는 내용입니다.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조선 중기의 사대부 화가 낙파 (駱坡) 이경윤( 李慶胤, 1545∼1611)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에는 한 남자가 달을 보며 무심하게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이 거문고는 줄이 없는 무현금(無絃琴)입니다. 중국의 도연명이 음악을 모르면서도 무현금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흥취만 알면 되지 어찌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랴.’했다는 그 무현금이지요. ▲ 낙파 (駱坡) 이경윤( 李慶胤, 1545∼1611)의 월하탄금도(月下彈琴圖) 선비들이 마음을 닦기 위해 연주했다는 거문고. 그래서 줄이 없어도 가능했던가 봅니다. 세조는 배우지 않았어도 즐겨 배웠던 안평 대군(安平大君)과 임영 대군(臨瀛大君)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거문고를 잘 타서 아버지 세종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피리를 불자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는 세조는 그러나 거문고로 마음을 닦은 것이 아니어서 조카를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아! 이 오동은 /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 서로 기다린 게 아니라면 / 누구를 위해 나왔으리오.” 위 시는 지금 전해지는 거문고 가운데 오래됐다는 “탁영거문고”에 새겨진 것입니다. “탁영거문고”는 탁영 김일손(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K-Pop을 백과사전은 한국 외의 나라에서 한국의 대중가요를 일컫는 말이다.라고 풀이한다. 그러면 K팝페라란 무엇일까? 듀오아임 그룹이 공연에 인문학K팝페라 갈라콘서트라 이름 붙이고, 한국 최초로 시도하는 새로운 장르이다. 그냥 팝페라라 하면 오페라를 팝처럼 부르거나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 또는 대중화한 오페라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K팝페라는 오페라와 팝, 서양음악과 국악을 넘나드는 광대역 LTE급 음악? 어쨌든 2월 14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코우스)에서한국 최초 인문학K팝페라 갈라코서트가 열려 청중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팝페라테너 주세페김과 소프라노 구미꼬김 부부(듀오아임)가 부부음악가로 함께한 15년 결산이자 새롭게 발돋움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무대 앞 공간에까지 방석을 놓고 앉아야 하는 그들은 인기절정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작부터 찰떡궁합 부부의 매력과 직접 작곡과 편곡을 하고 악단 지휘는 물론 공연 기획까지 혼자서 1인 다역을 해낸 주세페김의 내공이 빛나 보이는 공연이었다. 공연은 우선 푸치니 곡의 오 사랑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오늘은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대보름엔 초저녁 뒷동산에 올라가서 달맞이를 하는데, 떠오르는 달의 모양, 크기,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한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습니다. 또 달집태우기도 대보름날 밤에 하는데,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 위에 쌓아 놓은 다음 소원을 쓴 종이를 매달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맞이를 하고, 쥐불놀이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하지요.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 중 ‘월견상극(月犬相剋)’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달과 개는 상극이란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정월 대보름날에 개에게 하루 종일 밥을 주지 않거나 혹은 저녁밥 한 끼만 주지 않습니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달의 정기를 먹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여자의 본질인 음력의 에너지원은 달이어서 개에게 밥을 주는 여자는 개에게 자기의 음력을 도둑질시키는 것으로 본 때문입니다. 월식도 옛사람들은 개가 먹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지요. ▲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개보름쇠기,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또 다른 대보름 풍속으로 “개보름쇠기”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의 명절 정월대보름으로 한자말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합니다. 상원이란 중원(中元 : 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 : 음력 10월 15일)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이것들은 다 도교적인 이름이지요. 이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큽니다. 최상수의 논문 “한국의 세시풍속(歲時風俗, 年中行事記)”에 보면 한해 12달 동안 세시풍속 행사는 모두 189건인데 그 가운데 정월 한 달이 세배를 비롯하여 78건으로서 전체의 거의 절반이 되어, 한해 세시풍속 중에서 정월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큼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농한기인 점도 그렇지만 봄을 맞아 농사를 준비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월 가운데서도 대보름날 하루에 관계된 세시풍속 항목은 40여건으로 정월 전체의 반이 넘음은 물론, 한해를 365일로 봐서도 매우 비중이 큼을 알 수 있습니다. ▲ 경남 창녕의 영산줄다리기 장면(왼쪽), 영산줄다리기네서 암줄과 수줄 고리를 건 모습(문화재청 제공) 특히 대보름의 세시풍속 가운데서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땅의 여신에게 풍년을 비는 것이 마을마다 지내는 동제의 보통인데 그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1940년 2월 12일 치 동아일보를 보면 “금일부터 창씨제를 실시“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옵니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내선일체(內鮮一體, 1937년 일제가 전쟁협력 강요를 위해 취한 조선통치정책)에 획기적 중요성을 보이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개정에 따라 조선의 창씨제(創氏制)는 오늘의 빛나는 기원가절을 복하야 전조선에 일제이 시행하기로 된 바”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도구인 “내선일체”의 하나로 총독부가 조선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한 것이지요. ▲ "창씨개명제"를 실시한다는 동아일보 1940년 2월 12일 기사 그날 아침 관리들이 문을 여는 시각을 기다려 가장 먼저 달려가 등록을 마친 사람은 조선 최고의 작가라는 이광수였습니다. 그가 창씨개명을 한 까닭을 직접 그의 말을 통해서 들어봅니다. “내가 향산(香山)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과 독법을 같이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운서(韻書)에 이르기를 동무(同舞)는 바로 마주 서서 춤을 추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동무(同)라고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이 글은 조선후기의 학자 조재삼(趙在三)이 쓴 백과사전 격인 책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나오는 말입니다. 이 동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고 하여 언젠가부터 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 동무(同舞)'는 바로 마주 서서 춤을 추는 사람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두문불출 골방에 엎드려 한서나 뒤적이는 이가 다 빠진 늙은이는 내 걸음동무다. 이 글은 신경림 시인의 산동네라는 시 일부입니다. 걸음동무는 같은 길을 가는 친구 곧 동행을 말하지요. 우리가 사는 동안 걸음동무 한 사람만 있다면 참 좋을 일입니다. 또 어깨동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나이나 키가 비슷한 동무를 말하며, 1967년 육영수 여사가 창간하였던 월간 어린이종합잡지도 있었지요. 동무와 비슷한 말로 벗과 친구도 있습니다. 벗은 비슷한 나이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말하며, 친구(親舊)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오늘은 5년 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탔던 날입니다.(2008년 2월 10일) 그때 온 겨레는 눈물을 흘렸고, 큰 충격을 받았었지요. 그런데 불이 나기 전 우리는 숭례문을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숭례문 옆의 큰 시장은 숭례문시장이 아닌 남대문시장이라 불렀고, 그곳에 있는 수입상가도 남대문도깨비시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남대문이란 이름은 일제가 숭례문을 비하하고자 부른 것이다.란 말이 상식처럼 알려졌습니다. ▲ 불탄 숭례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조선소나무와 백성 하지만, 남대문이란 말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태조실록》 5년(1396) 9월 24일 치 기록에 보면 정북(正北)은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은 홍화문(弘化門)이니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 하고, 정동(正東)은 흥인문(興仁門)이니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하고, 동남(東南)은 광희문(光熙門)이니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 하고,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소북(小北)은 소덕문(昭德門)이니,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 하고, 정서(正西)는 돈의문(敦義門)이며, 서북(西北)은 창의문(彰義門)이라 하였다.라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