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남들은 한 가지 악기도 제대로 다루기 어려워하는 터에 당신은 가야금이면 가야금, 아쟁이면 아쟁, 북이나 장고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만능이었고 또한 즉흥연주나 퓨전, 작곡의 능력까지 인정받게 되어 세인의 부러움과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배경에는 당신이 음악적 재기(才氣)를 안고 태어났고, 다음은 어려서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이며, 그리고 누구보다도 음악에 대한 사랑이나 열정이 강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전) 보유자 신영희 선생과 제자들의 씻김굿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고 백인영 명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론으로부터 즉흥음악의 1인자라는 별명을 얻은 가야금과 아쟁의 천재적 연주자 고 백인영을 우리 곁에서 떠나보낸 지 어언 한해가 지났다. 우리는 다시 백인영 명인을 추모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10월 13일(일) 저녁 5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산조보존회 주최, 국악방송(주)아츠로(사)한국구악협회전주국악사 후원으로 고 백인영 명인을 기리는 추모음악회가 있었다. 한국문화의집이 물론 소극장이긴 하지만, 보통의 국악 공연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세종임금은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존경해마지 않은 위인이다. 아니 세계적 위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터이다. 세종은 세계 최고의 글자 훈민정음 창제만이 아니라 자격루 등 여러 가지 과학기구를 만들게 했고, 나아가 절대음감으로 음악을 정리한 천재였다. 하지만, 그동안 세종음악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세종음악에 대해 확실하게 규명해 낸 이가 있었는데 바로 고 최종민 박사가 그 사람이다. 그는 생전에 음악교육학 석사와 국어국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듣고 싶은 세종대왕의 음악 용비어천가, 훈민정음과 세종악보의 상관성 연구 등의 논문을 썼다. ▲ 여는 말씀을 하는 최기호 몽골 울란바토르대학교 총잧 그 최종민 박사를 추모하는 이들이 모여 고 최종민 박사 추모학술제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어제 곧 10월 12일 늦은 3시부터 한글학회 강당에서 방송인 이종구 씨의 사회로 세종한말글연구소 주관, 한글학회∙역락출판사∙한국문화신문 얼레빗 후원 훈민정음과 세종음악이란 제목의 고 최종민 박사 추모학술제를 열었다. 학술제는 먼저 최기호 몽골 울란바토르대학교총장의 여는 인사말로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수학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다. 학창시절 수학시간엔 늘 잠만 잤던 사람들도 있다. 수학하면 무조건 어렵고, 일상생활에선 필요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수학은 그저 대학 가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여기에 과감히 아니다를 외치는 이가 있다. 배재대학교 컴퓨터수학과 교수로 있는 이규봉 박사가 그이다. 미국 버지니아 주립공과대학교(VPISU)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공부만 한 것이 아니다. 마라톤을 두 번에 걸쳐 완주했고, 트라이애슬론을 한 번 완주했다. 자전거 타기를 즐겨 기행문을 남긴 자전거 여행만 현재 10,000km에 이른다. 베트남과 한국의 불편한 역사가 담긴 베트남 자전거 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을 2011년에 펴냈고,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와 쿠바의 역사가 담긴 자전거 기행문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을 2013년 하반기에 펴낼 예정이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대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전에서 클라리넷과 피리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지은이는 자신의 전공인 수학 외의 일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10월 5일부터 6일까지 단양에서 열린 제5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평안남도의 “향두계놀이(향두계놀이보존회)”가 대상(대통령상)의 기쁨을 안았다. 한국민속예술축제는 1958년부터 각 지역의 민속예술을 한자리에 모아 공연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지역의 향토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열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개최 시·도가 주최하여 1994년부터는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와 병행하여 열리고 있다. 제 48회 대회까지 이 축제를 통하여 중요무형문화재 36종, 시·도무형문화 103종 등 139종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향두계란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기 위한 자치조직인 동계(洞契) 곧 두레의 일종이다. 두레의 용례는 지역에 따라서 두레․돌개․둘개․돌개김․향도․향도품어리․공굴․공굴이․농계․농상계(農商契)․농청(農廳)․계청(契廳)․목청(牧廳) 따위로 불렀고, 그 밖에 풍물이나 물 퍼붓는 도구(두레박, 용두레 등)을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두레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모임 개념을 의미하는 계(契)․보(寶)․도(徒)․접(接)․사(社)․회(會)․모갯지․회치․대일이 등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 향두계놀이 모습 1 ▲ 향두계놀이 모습 2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어제 10월 9일은 제567돌 한글날이었다. 특히 법정 공휴일로 재 지정된 첫해여서 그 의미가 자못 큰 날 한글학회는 100여명의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제567돌 한글날 경축 큰잔치를 열었다. ▲ 한글학회 주최 제567돌 한글날 경축 큰잔치 모습 먼저 단상에 오른 김종택 한글학회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인사말을 했다. 특히 이날 공로회원으로 모시는 김리박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장과 신창순 중국 흑룡강성 전 지회장 그리고 한글날 공휴일 지정에 앞장섰던 최광식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인사말씀이 끝난 뒤 권재선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가 2013 한힌샘 주시경 학술상을 받았다. 권재선 교수는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국어학 발전사를 비롯한 훈민정음 연구는 국어학사상 길이 남을 불멸의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인사말씀을 하는 김종택 한글학회장(왼쪽), 축하 말씀을 하는 김주성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 2013 한힌샘 주시경 학술상을 받는 권재선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이어서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한글나라 큰별로 모시는 메달 증정식이 있었다. 최 전 장관은 특히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 피리명인 최경만 선생의 추천을 받았는데 어떤 인연인가요? 제가 군대 있을 때 유지숙 선생님의 공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최경만 선생님이 오셨고, 선임병들의 도움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서울로 짐을 싸가지고 와 월세 14만 원 짜리 반지하 살면서 선생님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뒤 2년 동안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았는데 교습비를 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님께서 농사 지신 배, 쌀, 배즙 등을 보내주신 게 전부입니다. 나중에 선생님께 들었는데 차마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선생님은 마음이 여리고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크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만난 게 어쩌면 제 일생의 가장 큰 복일 것입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그것도 연주할 때 담아내는 감정까지도 세세히 가르쳐주셔서 제 피리는 모두 선생님으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 그럼 어떻게 피리를 만나게 되었나요? 제 고향이 밀양인데 어렸을 때부터 꽹과리를 치시는 아버님을 따라다니면서 징을 치고 아주머니들께 칭찬도 받고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게 어쩌면 피리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오늘은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지 제567돌 되는 한글날입니다. 절대군주이신 임금은 백성과 소통하려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입니다. 자신은 한문에 통달했기에 굳이 다른 글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야 했고, 또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또 어려운 한자 때문에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대로 당해야 하는 백성이 없도록 하기 위한 백성 사랑의 뜻도 있었지요. 그런데 최근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달 11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자를 병용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합니다. 그 바탕에는 모든 언론이 한글만 쓰는데도 굳이 아직 한자를 섞어 쓰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3천억 원이라는 한자 학습지 시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국민이 편하게 말글생활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들에게 들어올 돈이 필요한 사람과 자신들의 일을 일반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 저렇게 文靑이라고 한자로 쓰면 이해하기 쉬울까?(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여전히 한자를 섞어서 쓴다. 그들은 한자를 쓰지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영국총영사 힐리어는 왕비는 복도 아래로 내달렸지만 추적당해 쓰러졌다. 그녀의 암살자는 그녀의 가슴 위에 반복적으로 칼로 찔렀다.고 기록했다. 러시아공사 베베르는 왕비는 복도를 따라 도망쳤고, 그 뒤를 한 일본인이 쫓아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왕비를 바닥으로 밀어 넘어뜨리고 그녀의 가슴으로 뛰어들어 발로 세 번 짓밟아 찔러서 죽였다.고 보고 했다. 위 글은 동북아재단 김영수 연구위원이 쓰고 경인문화사가 펴낸 《미�의 시기(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나오는 글입니다. 명성황후 시해 당시 외교관들이 썼던 기록으로 비교적 정확한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내용을 보면 우리는 왈칵 통곡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 조선이 어쩌다 국모가 시해될 정도로 일본에게 처참하게 당했는지 말입니다. 오늘은 바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날입니다. 김영수 연구위원의 말에 따르면 명성황후 시해범은 단순한 낭인이 아니라 분명히 일제 순사 와타나베라고 말합니다. 황후가 시해된 이후 조선은 맥없이 쓰러지고 결국은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잃게 됩니다.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알 텐데 /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내일은 24절기의 열일곱째로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드는 한로(寒露)입니다. 한자말 그대로 한로는 찬이슬(寒露)을 일컫는 말로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인데 이때는 오곡백과를 수확하고,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며, 여름새 대신에 기러기 등 겨울새가 날아오는 때입니다. ▲ 가을계곡 그림 운곡 강장원 한국화가 부지런히 나락을 베고, 메주콩과 팥을 베어 도리깨로 털고, 그것들을 다시 햇볕에 말립니다. 하지만, 가을걷이가 바빠도 틈틈이 겨울농사도 준비해야 합니다. 겨울농사로 보리씨를 뿌리고 심어야 겨울이 오기 전에 뿌리를 내려 추위를 이겨냅니다. 한로 때부터는 시절음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습니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가을(秋)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는 뜻으로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를 잘 알려주는 것이 한로입니다. 양기가 성하던 것이 음기가 점점 많아지니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찬 이슬은 서리로 바뀌고 드디어 음기의 끝인 눈으로 변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농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종로 거리에서 보쌈당한 선비 이야기 ▲ 조선시대엔 외간남자 보쌈과 과부업어가기가 있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조선 광해조 때 문인 유몽인이 지은 ≪어유야담≫에는 과거를 보러 서울에 왔다 괴기한 일을 겪은 선비 이야기가 있다. 인적이 끊긴 종가(현재의 종로)에서 장정 네 명에게 보쌈을 당한 일이다.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가 예쁜 여인과 동침할 수밖에 없었던 선비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왔다가 밤마다 그 종가를 서성였으나 그 장정들을 또 만날 수는 없었다. 조선시대 때는 과부가 된 여인은 죽을 때까지 개가를 못한다는 법이 있어 이런 일도 벌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산군 4년(1498년) 송헌동이라는 사람이 이 법을 폐하고 개가를 허락해달라고 임금께 청하였지만 대다수 대신이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보쌈에는 여자집에서 외간남자를 보(褓)에 싸서 잡아다가 강제로 동침시키는 경우와, 남자가 과부를 보에 싸서 데려오는 과부 업어가기가 있었다. 옛 추억이 서린 종로 피맛골 ▲ 벼슬아치의 말을 피해 다닌 피맛[避馬]골 조선시대는 양반과 서민이 분명히 구분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서민들은 종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