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15호(1928년 8월 1일 발행)에는 “단돈 20전 피서비법”라는 글이 보입니다. 편집국장이 기자들에게 20전만 가지고 피서할 방법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이 총동원 됩니다. 한 기자는 “베고의 등거리에 수건 하나 억개에 걸고 맨발에 구무신 신고 부채 하나 손에 들고 골목 밧갓 가가에서 참외 두 개 골라 드니 7전 달라 하는지라. 한푼이라도 앗기느라고 전에 아니 하든 짓을 애걸애걸 깍거서 5전 주고 포켓트 위스키-뷔인 병 하나를 빌려 가지고 선술집에 드러 가서 안주 업시 10전 어치 소주를 너어 달나 하니 ‘이건 또 왼 일이 심닛가’ 하고 주인이 웃는다. 소주는 등거리 주머니에 넛고 참외는 손에 들고 취운정에 드러가 약물 한 바가지 마시니 가슴 속 뼈 속까지 서늘한 법이 제법 더위를 물니친 것갓다.”라고 20전 짜리 피서를 말합니다. ▲ 동아일보 1931년 6월 27일, 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스크림 하나로도 피서 한다는 사진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기자는 돈 5전 내고 전차 맨 앞 운전수 등 뒤에서 전차 안을 들어오는 바람을 맞는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한 기자는 빙수를
[그린경제=김영조 편집국장] 새로운 국악음반이 나오면 음반사나 연주자들로부터 평을 써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런데 잘 아는 분의 부탁이어도 몇 번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음반에서 된장 냄새가 아니라 버터 냄새만 진동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퓨전 연주를 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국악기의 연주인데 마치 서양악기로 연주할 때의 맛이 난다면 그건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고 거짓으로 칭찬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내 혹평만 해댈 수 없음이다. 그런데 음반은 그 음악을 들을 때만 시간을 쓰면 되지만 공연은 공연장에 다녀오는 시간과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하기에 최소한 4시간여 투자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공연의 경우 그런 느낌이 난다면 더욱 낭패이다. 최근 그런 경험을 했다. 제법 알려진 국악그룹이라고 했다. 그 국악그룹이 서양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단다. 사실 국악의 발전을 위한다면 그런 시도는 사실 바람직한 일이 아니던가? 공연은 한 오케스트라가 성악가의 독창과 이중창, 마린바 연주자와의 협연을 했으며, 국악그룹과도 협연을 했다. 그리곤 팝송 연주도 한 다양한 연주 형태였다. 물론 나는 서양음악도 제법 좋아하기에 공연 내내 흥겨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
[그린경제=김영조 기자]어린 시절 우리는 전기 없는 방에서 등잔에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 등잔 밑에서 공부를 했고, 어머니는 구멍 난 양말을 꿰메시기도 했던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그 등잔을 쓰려면 저녁에는 석유를 부어줘야 했고, 심지를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새카맣게된 손을 머리에 쓰윽 문지르거나 바지에 쓱쓱 문대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등잔 밑에 오래 앉아있으면으레 콧구멍은 새까매지기도 했지요. 이웃 창수네는 전기를 놓고 흑백텔레비전까지 있었지만 우리집 형편으론 언감생심 전기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전기를 놓으려면 전봇대를 세워야 하는데 그 전봇대 값이 큰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치를 보면서 밤마다 창수네로 텔레비전 동냥을 하러다닐 수밖에 없었고, 어떤 아이는 혹시나 창수가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할까봐 창수에게 아부를 하기도 했지요. 그 등잔은 나무, 토기, 사기, 쇠를 쓴 것들이 있었지만 근현대로 오면서는 대부분 사기로 된 것을 썼습니다. 한지 또는 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꽂은 뚜껑이 위에 있었고, 아래쪽엔 손잡이가 달린 기름 넣은 잔이 한 쌍이었지요. 그러나 등잔을 올려놓는 등잔대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등잔대는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통천댁이라 불렸다는 강릉 선교장을 찾아가는 날은 비가 매섭게도 내렸다. 언론은 이런 비를 호우라 부르지만 우리 겨레는 무더기비나 억수, 채찍비로 불렀다. 이런 비속에서 사진은 제대로 찍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선교장 이강백 관장과 어렵사리 잡은 약속을 깰 수는 없었다. 다행히 강릉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 비도 잦아들었다. 선교장의 이웃사랑을 많은 이에게 알리라는 하늘의 도움일까? ▲ 아름다운 선교장 전경 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 거리라지만 10분은 족히 될 것 같다. 아니 빨리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 속에 청청하게 자리 잡은 선교장을 빨리 만나고픈 마음이 조바심을 낸 것일 게다. 선교장은 효령대군 11세손으로 가선대부를 지낸 이내번(李乃蕃1703~1781)이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 300년을 이어온 집이다. 기자를 기다리고 있던 이강백 관장은 인상이 우선 선하고 소박하다. 차분하고 기품이 있는 생활한복 차림에 말투도 가식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웃사랑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통천댁 먼저 이웃사랑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통천댁 이야기를 해주시죠. 나는 대뜸 본론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 통천댁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하루는 선군(박지원)이 담헌(홍대용)의 집에 갔을 때 구리철현금(양금) 몇 벌이 있는 것을 보았다. 대개 중국에 갔던 사신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는데 당시 연주할 사람이 없었다. 선군이 시중드는 자에게 그것을 내리게 하니 담헌은 웃으며 ‘연주할 줄 모르는데 무엇에 쓰려나?’ 하였다. 이에 선군이 작은 관으로 시험 삼아 연주하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가야금을 가지고 와서 현을 따라 함께 연주하여 그것이 어울리는지 시험해보지 않겠는가?’ 하였다.” ▲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화음을 내는 생황(왼쪽), 서양에서 전해온 현악기 양금 위는 연암의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회고담을 듣고서 기록해둔 내용입니다. 이 글의 뒷부분을 보면 그들이 여러 번 맞춰 연주하니 드디어 화음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또 이후 금사(김억)와 같이 연주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고요한 밤에 음악이 시작되자 선배인 효효재(김용겸)가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곳에 왔지요. 그는 생황과 철금을 번갈아 연주하는 것을 듣다가 서안 위의 구리쟁반을 두드리며 흥겨워하더니 슬그머니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들이 달빛을 받으며 찾으러 가자 효효재는 수표교에서 무릎에 금을 놓고 두건을 벗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한여름 무더위가 몹시 심하지만 / 盛夏苦炎熱 밤 마루에는 풍경이 아름다워라 / 宵軒美景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 珠涵星照澗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 / 金漏月穿霞 이슬이 무거우니 매화꽃이 촉촉하고 / 露重梅魂濕 바람이 싸늘하니 대나무 운치 많구나 / 風凄竹韻多 앉았노라니 함께 구경할 사람 없어 / 坐來無共賞 그윽한 흥을 시에 담아서 읊노라 / 幽興屬吟" 조선 중기의 문신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가 쓴 《옥담유고(玉潭遺稿)》 에 있는 <여름 밤 산가 마루에서 본 풍경[夏夜山軒卽事]> 시입니다. 한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라고 노래하니 더위도 범접을 하지 못할 듯합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째 대서(大暑)이며, 잡절 중복(中伏)입니다. ▲ 김천 청암사 들머리 폭포(사진작가 최우성)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 무더위와 힘겹게 싸웠습니다. 함부로 의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법도가 있었으니 겨우 냇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멀리
[그린경재=김영조 기자] 범접할 수 없는 천상의 목소리, 팝페라 여왕 사라 브라이트만이 4년 만에 초대형 프로젝트 [DREAMCHASER]로 돌아온다. 어제 7월 21일 부산 벡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7월 26일 서울 체조경기장까지 한국 순회공연을 확정하였고 추가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2004년 첫 내한공연 [HAREM]과 2009년 [Symphony] 그리고 2010년 [IN CONCERT WITH ORCHESTRA]까지 총 3번의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온 공연의 여신, 사라 브라이트만! 이번 순회공연 제목 [DREAMCHASER]는 음악가 최초로 2015년 우주관광을 앞두고 있는 사라 브라이트만이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였던 우주 여행과 이를 현실로 이룬 감동을 담아 제작한 동명의 신보 기념공연으로, 그 규모만으로 제작단계부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음반 표지와 살짝 보여준 영상을 통해 공개된 달과 우주의 이미지, 몽환적인 느낌을 생생히 재현하기 위해 최고의 연출진이 투입되었으며 이번 공연만을 위해 총 30억 원 규모의 프로덕션과 최첨단 장비를 제작, 자신의 여행지가 될 우주여행의 감동을 관객들과 함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극 중 훤은 무녀 월이 연우였음을 깨닫고 연우가 있는 활인서로 한걸음에 달려 가 감격적으로 재회합니다. 훤은 연우를 편전으로 데려가 과거 연우에게 선물했던 봉잠 해를 품은 달 한 쌍을 준 뒤 하나는 내 달이 돼달라는 청혼의 징표로, 또 하나는 그대가 나의 정비가 되는 날 이곳에서 줄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하나가 됐다며 키스하는 장면이 방영된 지난해 인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보셨나요? ▲ 영친왕비 대봉잠(大鳳簪, 중요민속문화재 265호) /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왕비들이 가체에 꽂던 비녀에는 매화를 새긴 매잠, 석류를 새긴 석류잠, 봉잠, 댜나무 마디 무늬를 넣은 죽절잠 등이 있는데 그 화려함이 보는 사람 누구나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 가운데 해품달에 등장했던 봉잠은 머리 부분에 봉황의 모양을 새긴 큰 비녀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 1897 ~ 1970) 이은의 비 이방자 여사가 썼던 중요민속문화재 265호 대봉잠(大鳳簪)이 있지요. 이 대봉잠은 그 기법의 다양성만큼이나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데 전체 길이 39.6 cm, 봉황 길이 12 cm, 봉황 날개 폭 6 cm의 크기입니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자라포(헌천화복식) ▲ 자라포(헌천화복식) 재현 : 김경옥 전통복식연구원장 무동과 여령의 복식에는 검기무(劍器舞), 선유락(船遊樂), 춘앵전(春鶯轉), 공막무(公莫舞), 헌천화(獻天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헌천화(獻天花)는 선녀가 하늘의 꽃을 왕에게 바치는 내용의 춤으로 효명세자가 부왕을 위해 만든 춤이다. 이 자라포(헌천화복식)는 이 헌천화(獻天花)를 출 때 입는 옷이다. 효명세자(1809~1830)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세자로 순조 27년 이후 약 3년 동안 대리 청정을 하였으며 정재(궁중무용)를 집대성하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복식 재현 : 김경옥 전통복식연구원장
▲ 연극의 지도, 연출과 축제의 사회를 맡은 서정화 씨 [그린경제=김영조 기자]서울 종로구엔 세종임금이 태어난 세종마을이 있다. 그 세종마을 주민들이 모여 일냈다. 일주일 만에 연극 순 초보자들이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객석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이다. 7월 20일 토요일 오후 세시,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세종마을 행복극장을 채워졌다. 세종마을 행복극장 무대에 사회자가 올라섰다. 연극 책 할아버지를 만들고 연출까지 맡아 한 서정화 씨이다. 서 씨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하는 행복한 잔치임을 분명히 한다. 모두가 아마추어지만 마음은 모두가 프로이고, 이 마을에 사는 주인이다. 우리 다 같이 큰 손뼉으로 함께 하자.라고 말이다.드디어 첫 공연으로 경복고등학교 마술동아리 L.O.M의 김석균 군과 오효룡 군이 마술을 선보인다. 고등학생이 뭘? 하던 관객들은 마술을 하는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환호를 지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학생들은 관객에게 큰 만족을 주는 대성과를 거둔다.이어서 나이 지긋한 주민들 곧 환비무용단이 나서서 전통무용을 한다. 좁은 무대지만 그들 3명의 춤꾼은 최선을 다한다. 특히 두 번 째 나온 한량무는 내공이 쌓였음을 증명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