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궁중자수 포스터 [그린경제=김영조 기자]궁수(宮繡)는 궁중 수방(繡房) 내인이 숙련된 솜씨로 놓은 자수를 말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인사의 옷과 꾸미개(장신구)를 궁수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그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그림과 글씨를 수놓아 병풍을 만들었다. 그런 아름다운 궁수를 감상할 특별전이 열린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오는 6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열리는 궁중 자수전(Royal Court Embroidery)이 그것이다. 궁중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작할 때 각 공정마다 전문 인력들이 동원되듯이 자수 역시 도화서 화원이 그린 밑그림을 수방 내인이 비단 천에 옮겨 수를 놓았다. 따라서 궁중 자수는 민간 자수의 자유분방한 구성에 비해 무늬가 단정하면서도 섬세한 특징이 있다. 또한 천연 물감으로 물들인 고운 빛깔의 색실로 수놓고 값비싼 금실, 은실로 윤곽선을 둘러 왕실 공예품다운 아름다운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조선왕조는 임금이 몸소 검소한 삶을 살았기에 궁중 자수 역시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 보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담긴 것이다. 이번 궁중 자수 특별전은 우리나라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열째 하지입니다. 이 무렵 해가 가장 북쪽에 있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합니다.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 14시간 35분이나 되지요. 한해 가운데 해가 가장 오래 떠 있기 때문에 지구 북반구의 땅은 해의 열을 가장 많이 받아 이때부터 날이 몹시 더워집니다. 그런데 하지는 양기가 가장 성한 날입니다만 음양이 교차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지는 양기가 가장 높은 점을 찍는 날이면서 이때부터 서서히 음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동지에는 음기가 가장 높은 점이면서 서서히 양의 기운이 싹 트는 시작점입니다. 하지와 동지의 음양처럼 사람의 삶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음이 내리막길이라면 양은 잘 풀리는 때이겠지요. 삶이 팍팍하여 죽을 것 같지만 어쩌면 이때가 다시 행복한 삶으로 들어가는 시작점인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고통스러웠거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지니면 세상이 훨씬 환해지겠지요.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는데 하지를 맞아 24절기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됩니다.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임금이 제사를 지낼 때 백관이 입는 배사복(陪祀服)으로 나라 잔치, 설날, 종지, 조칙을 반포할 때 입는다. 사진의 옷은 흥선대원군이 조복을 입은 초상화를 보고 재현한 것으로 전통견직물 5족 항라 손바느질이다. (김경옥 전통복식연구원장 제공) ▲ 임금이 제사 지낼 때 백관이 입는 배사복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거문고 연주도 과학이 만들어낸 거문고와 가야금의 아름다움 서울대 뉴미디어 통신공동연구소가 얼마 전 가야금에 대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울림통 위에 가루를 뿌린 뒤 주파수를 달리해 진동을 가하는 ‘클라드니 도형’ 실험이다. 그 결과, 현에서 생기는 주파수인 10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떨렸지만 현이 만들지 않는 주파수인 8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려야 한다는 '고운 소리의 비결'을 눈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울림통 재료로 쓰는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하며, 비중도 0.35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바이올린의 재료인 가문비나무는 규칙적이며 촘촘한 세포 구조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우리의 현악기는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 부드럽다고 한다. 또 울림통 재료가 되는 나무 무늬의 형태도 소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좋은 가야금과 거문고는 일반적으로 국수무늬 목재를 사용한 울림통이다. 국수무늬는 늙은 나무의 중심부를 긁어낸 목재가 아래로 쭉 뻗은 무늬를 갖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늙은 나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반다시 입으시오. 우리 2천만 동포시여, 우리 손으로 맨든 갑싸고, 모양 조코도 튼튼한 녀름 옷감 해동져(海東苧)를 반다시 입으시오. 우리 손으로 맨든 옷감을 입어야만 우리도 남과 갓치 빗나게 살슈잇슴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5월 30일 중외일보에는 위와 같은 옷감 광고가 실렸습니다. 여기서 “해동저”는 비단의 하나인데 2천만 동포에게 서양에서 들어온 옷감이 아니라 국산 해동저를 쓰자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를 한 것입니다. 당시 옷감들은 어떤 종류들이 있었을까요? 100여 년 전 서울 살던 소리꾼 이현익(李鉉翼)이 부르기 시작했다는 ‘비단타령’의 한 대목을 보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각종 비단 이름을 생산지와 사용처, 특징별로 나열합니다. ▲ 국산 비단 "해동저" 광고(중외일보 1929년 5월 30일치), 비단 옷감(오른쪽) “중국에서 나온 소주포(蘇州布), 하늘에서 내려온 천진포(天震布), 씨가 성근 항래포, 특특한 세반저(細半苧), 한산모시 세경저, 조선모시 반도저, 동양저 서양저 하절천에 해동저로구나.” 그때는 일부 사람들 말고 모두가 한복을 입던 시절이어서 이렇게 비단의 종류가 많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광고를 낸 것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2009년 11월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고려시대 배가 인양되었고 배의 이름은 마도1호선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마도1호선에는 날렵한 어깨선과 날씬한 모양을 하고 있는 매병도 있었지요. 그리고 매병과 함께 목간(木簡, 글을 적은 나뭇조각)도 출토되었습니다. 그 목간에는 이 매병을 누구에게 보내며 내용이 무엇인가를 적어 두어 흥미롭습니다. ▲ 충남 태안 마두 앞바다에서 인양된 고려시대 배에 있던 매병과 목간 예를 들면 중반도장교오문부(重房都將校吳文富) 곧 중방 도장교 오문부에게, 택상진성준봉(宅上眞盛樽封) 곧 참기름을 담아 올린다.라고 쓰인 것이지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목간은 바로 소포나 택배의 송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물 발송자는 2007년 태안 대섬에서 발굴된 목간에서처럼 호장 송(戶長 宋) 죽산현 아무개 군(君) 등 죽산현과 회진현, 수령현의 지방 향리로 적혀 있었고 수신자는 대장군, 별장과 같은 직책이 표기돼 있었지요. 발송지가 세 곳이고 수신자가 경창(京倉)이 아닌 각 개인으로 돼 있다는 점은 마도1호선이 국가 세금을 운반하는 조운선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곧 이 배는 무신정권 실력자들이 지방 영지에서 거둬들인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우리는 윤동주 시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려진 몇 편의 시를 기억 할 뿐,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 연희전문학교를 다녔고, 일본유학시절에 이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것 그리고 무엇을 알고 있을까? 가수 김현성은 지난해나온 이정명의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으며 새삼 윤동주의 시를 다시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늘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그의 시처럼 노래도 또한 그를 잘 기억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세월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윤동주의 시는 노래가 꼭 되지 않더라도 좋은 작품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처럼 누구나 사랑하는 노래가 된다면 더욱 반가운 일이다.라며 뜻 깊은 공연을 준비했다. 바로 소설과 노래로 듣는 시인 윤동주 음악회가 그것이다. ▲ 이등의 편지 를 작곡하고 노래한 가수 김현성 작곡가이자 가수인 김현성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의 시들, 곧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자화상 등 윤동주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새롭게 노래로 들려준다. 특히 별 헤는 밤은 시 전문을 담아 모두 3곡으로 나뉘어 작곡 되었다. 이등병의 편지등 서정적인 작품들을 발표한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죽 가운데 쌀가루를 끓이다가 우유를 부어 만든 타락죽(駝酪粥)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우유가 귀해 아무나 먹기 어려운 음식이었지요. 명종실록 20년(1565) 8월 14일 치 기록을 보면 윤원형의 죄악을 26조목으로 올린 대사헌 이탁과 대사간 박순 등의 봉서가 나옵니다. 그 내용 가운데는 “타락죽은 임금께 바치는 것인데 사복시(궁중의 가마나 말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낙부(酪夫, 우유를 짜는 이)가 젖짜는 기구를 제 집에 가지고 가 조리하게 하여 자녀와 첩까지도 배불리 먹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 조영석의 소젖짜기(우유짜기) 그런 사건으로 임금의 외척이며, 영의정이었던 윤원형도 내칠 정도였으니 타락죽은 임금이 내려주는 것 외에 먹을 수가 없던 귀한 음식이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범의 젖’, ‘유락(乳酪)’ 같은 말이 나는 것은 물론 일본 옛 문헌에 도래인(한국인) 복상(福常)이 효덕왕(孝德王)에게 우유를 바치니 우유가 몸에 좋은 약이라며 화약사주(和藥使主)라는 성을 내리고 자손대대로 조정에서 이 일을 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밖에 ≪고려사(高麗史)≫ 권99 “열전(列傳)
[그린경제=김영조 기자]현악기 해금은 단 두 줄이다. 6줄에서 12줄까지인 다른 찰현악기에 견주면 줄이 둘뿐이지만 두 줄만 가지고도 해금은 가슴을 에는 애절함과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시원함, 어떤 때는 흐느끼고, 어떤 때는 앙증맞은 음색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 그 해금을 10년 동안이나 부여안고 살아오던 비전공자들이 드디어 10돌 기념연주회를 가졌다. ▲ 40여 대의 해금 연주자들, 상주함창를 연주하는 모습 ⓒ 이도 어제 6월 16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비영리단체 해금협회(상임대표 안진성) 회원들의 소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무대가 열린 것이다. 두 줄로만 연주를 해야 하기에 전공하지 않으면 그 음색을 제대로 연주해내기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을 깨고 그들은 당당히 무대에서 격찬을 받았다. 무대는 먼저 정악 천년만세로부터 시작한다. 전공자들도 흔히 청중의 기호에 맞춰 크로스오버만을 연주하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비전공자들은 정악으로 그 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어려운 정악 연주를 당당히 해낸다. 40여 대의 해금이 품어내는 마의 소리에 청중은 우선 넋이 나간다. 이어서 올린 한범수류 해금산조 한바탕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요즘도 가끔 길에서 탁발하는 스님들을 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그림에 탁발하는 스님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가운데 법고입니다. 그림을 보면 가운데서 법고를 두드리는 스님이 있고, 그 왼쪽엔 패랭이와 감투를 쓴 사내들이 꽹과리와 목탁을 칩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고깔을 쓴 비구니 스님이 부채를 펼치고 시주해주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스님들만으로 만든 놀이패를 굿중패라고 합니다. ▲ 혜원 신윤복 그림 혜원전신첩 가운데 법고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쓰개치마와 장옷을 쓴 다섯 명의 여인네들이 시주하려고 서 있지요. 쓰개치마는 그야말로 치마를 둘러 쓴 것과 같은 형태이고, 장옷은 두루마기 같이 소매가 있는 모양입니다. 두 가지 모두 여인네들이 바깥나들이 할 때 얼굴을 가리려고 쓰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한 여인네가 쓰개치마를 개켜 머리 위에 얹고 있습니다. 그런데 왼쪽에는 옥색 도포를 입은 한 사내가 한 여인네들을 바라다봅니다. 이 사내는 시주할 생각은 없고 그저 여인네들을 느끼한 눈으로 바라보는 듯합니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유학자들이어서 불교에 관심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여인네들은 다릅니다. 사대부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