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송강 정철은 “성산별곡”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風入松)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험한 세상사를 잊고, 벗과 함께 술을 권커니 자커니 하다가 거문고를 타니 누가 손님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니 술 탓일까 거문고 탓일까? 벗과의 자리뿐만이 아니라 혼자 즐기는 거문고의 세계도 절제와 내면세계로의 침잠을 통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고 소리(琴)와 하나가 되는 주객일체의 경지로 갔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이수자 한민택의 연주 ▲ 중국 지린성 지안의 장천 1호분 벽화, 여성의 거문고 반주에 맞춰 남자가 춤을 춘다. 금은 중국 악기, 거문고는 한국음악을 위한 악기 고구려의 옛 서울인 만주 지안현[輯安縣]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고분 무용총 벽화와 제17호분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4현 17괘의 현악기가 그려져 있고, 또 안악에서 발굴된 고분 제3호의 무안도(舞樂圖)에도 거문고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가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6월 8일 미국 메사츄세츠 뉴튼 공립 도서관에서는 아주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책 ≪41명의 영웅들(41 Heroines: Flowers of the Morning Calm)≫ 출판기념회를 겸한 포스터전과 음악회가 그것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지역 주민과 한국 교민을 포함한 100여명이 참석하여 학생들이 손수 그린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린 포스터를 둘러보고 설명회, 번역시 발표회, 한국의 멜로디 콘서트 및 다과회를 하면서 약 4시간에 걸친 행사를 진행했다. ▲ ≪41명의 영웅들(41 Heroines: Flowers of the Morning Calm)≫을 번역한 학생들 일부 교민 가운데는 “이제 와서 새삼 지난 과거사를 왜 꺼내느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직접 와서 학생들이 준비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포스터와 번역시 낭송 등을 들으며 이들이 진정한 뜻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는 “어른들도 하지 못한 일을 어린 학생들이 해냈다”고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행사는 박혜성 홍보대사(미국 보스턴 지역 한국 문화 홍보 프로그램) 주관으로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 5월 5일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시가 나옵니다. “단오 옷은 젊은 낭자(娘子)에게 꼭 맞으니(戌衣端稱少娘年), 가는 모시베로 만든 홑치마에 잇빛이 선명하다(細苧單裳色鮮). 꽃다운 나무 아래서 그네를 다 파하고(送罷秋天芳樹下), 창포뿌리 비녀가 떨어지니 작은 머리털이 비녀에 두루 있다(菖根簪墮小髮偏). 단오옷을 술의(戌衣)라고 한다(端午衣曰戌衣).” ▲ 단오에는 단오빔 잇빛 "술의"를 입고 그네를 탄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왼쪽), 또 이날 제철과일 앵두로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앵두회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에 세 번 신의 옷인 빔(비음)을 입습니다. 설빔, 단오빔, 한가위빔이 바로 그것이지요. 단오빔을 ‘술의(戌衣)’라고 해석한 유만공의 할주(割註)에 따르면 술의란 신의(神衣), 곧 태양신을 상징한 신성한 옷입니다. 수릿날은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지요. 단옷날 쑥을 뜯어도 오시(午時)에 뜯어야 약효가 제일 좋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태양신[日神]을 가장 가까이 접하게 되는 날이 수릿날인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보면 중하(中夏, 음력 5월)에 함도(含桃)를 제수로 삼아 사당에 제사 지낸다고 하였는데,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한국사람 치고 경주 최부잣집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최부잣집은 한국 종가 가운데 나눔을 실천한 가장 대표적인 종가로 꼽힌다. 하지만, 최부잣집을 아는 사람들도 진정 그 속내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있는 나눔의 삶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을 취재하려면 경주와 서울 두 곳을 찾아야만 한다. ▲ 경주 최부잣집 12대 종손 최준 선생(1884 ~ 1970), 나눔정신을 확실히 실천한 분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자금을 댔으며, 해방 뒤엔 영남대학교에 전 재산을 기부했다. ▲ 경주 최부잣집 종택 전경(경주 최부잣집 제공) 원래 최부잣집 종택은 경주시 교동에 있으며, 주손(이 종가는 특히 종손이 아니라 주손이라 한다) 최염(81) 선생은 수도권에 살고 있고,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사무실(경주최씨중앙종친회 회장)이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 먼저 종택을 찾아 사진을 찍고 종택을 관리하고 있는 최용부 선생을 찾아보기로 했다. 찾아간 날은 여름 기운이 완연한 6월 1일이었다. 기다렸다 반갑게 맞아주는 최용부 선생은 자신을 종택 관리인이면서 경주광광지킴이로 소개한다. 경주를 아끼는 시민으로 경주 관광의 문제점을 조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아홉 굽이라 고개 돌려 지난 일을 한탄한다(九曲回頭更然)이내 마음 산천이 좋아한 게 아니거니(我心非爲好山川)샘의 근원 오묘한 진리 어이 말로 다하리오(源頭自有難言妙)이곳을 버려두고 다른 세계 찾을 것인가(捨此何須問別天) 이는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 정구 (寒岡, 鄭逑,1543~1620)선생의 '무흘구곡(武屹九曲)' 한 수입니다. 정구 선생은 성주 수륜면에서 김천 증산면 수도리까지 35km에 이르는 대가천과 계곡의 뛰어난 풍광을 '무흘구곡(武屹九曲)'으로 이름 지었지요. 특히 맑은 물과 기암괴석,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인 수도계곡은 '김천의 강원도'로 불릴 정도로 청아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용소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쉼 없이 쏟아내고 있는 곳입니다. ▲ 김천 수도리 용소폭포(김천시청 제공) 이 상사(喪事)는 시종 정구(鄭逑)가 마음을 다한 성의 덕분이다. 정구가 아니었다면 그 유해(遺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었겠는가. 정구의 덕을 나는 갚을 길이 없다. 우선 당상(堂上)으로 승진시키라. 위는 선조실록 41권 (1593)에 나오는 기록으로 선조의 둘째형 하릉군(河陵君)의 시신을 거둔 정구 선생에 고마워하는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조선시대 옷 재현] 연화대무여령복 화관, 녹초삼, 홍수대, 홍초상, 오색한삼으로 이루어지며, 조선시대 동기(童妓, 어린 기녀)들이 연화대 춤을출 때 입는 옷이다. (소재 : 항라, 기법 : 손바느질) ▲ 연화대무여령복 ** 연화대무여령복 복원 / 김경옥 전통복식연구원장 제공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용(龍)은 오랜 세월 우리 겨레의 문화 속에 자리한 상상의 동물로 그 용 모습이 새겨진 귀한 유물이 금동용형당간두에 남아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부리부리한 모습의 눈과 쑥 내민 윗입술, 쩍 벌린 입안 쪽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송곳니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하고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목을 앞으로 쑥 내밀어 휘어진 역동적인 몸통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비늘을 촘촘히 음각하였는데 각 비늘마다 안쪽에 꽃무늬와도 같은 무의가 새겨 있습니다. ▲ 금동용형당간두(보물 제1410호, 국립대구박물관) 금동용형당간두는 1977년 경북 풍기에서 발견된 것으로 용의 입을 가로지른 철봉에는 실패모양의 도르래가 끼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르래는 그 앞의 여의주에 의해 가려져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턱 밑은 뚫려 있어 쇠줄을 도르래에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은 도르래 부분의 부식이 심하여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용의 조각으로 보아 경주의 성덕대왕신종보다는 다소 늦은 기원 800년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절 들머리(입구)에는 멀리서도 절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1926년 6월 10 순종황제 국장일에 일어난 만세 사건은 기미년 3·1운동 이래 버금가는 조선의 영웅적 독립투쟁이었다. 왜정의 혹독한 탄압 아래서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주의 타도와 일제가 수탈해간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라는 구호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은 세계 민족운동 사상 찬연히 빛나는 영웅적 투쟁으로 우리 민족의 면목을 전 세계에 알렸던 운동이다. 그 20년을 맞이하여 조국의 완전광복이 극도의 혼란에 처하여 3천만 민족의 흥망이 걸린 이때 미소공동위원회의의 시급한 속개로 조선통일정부 수립과 민주주의 발전을 촉진 할 것을 강조하여 민주주의 민족 전선에서는 10일 오전 10시부터 성대한 시민대회를 치룰 계획이다.” ▲ 6·10 만세 운동 때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진압하는 일제 경팔(경향신문 자료) 이는 1946년 6월 6일 자유신문에서 “항일투쟁회고, 6·10 만세 운동 성대히”를 다룬 기록입니다. 1926년 6월10일 고종황제의 아들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장례식을 기하여 전국적으로 제2의 3·1운동이라 일컫는 6·10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순종황제는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고 황제에서 임금으로 격하시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이색은 타고난 자질이 밝고 슬기로웠으며, 학문이 정박(精博)하고 마음가짐이 관대하였다. (중략) 후학을 가르치는 데에도 애를 쓰고 부지런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문장을 짓는 데는 붓만 잡으면 즉시 쓰되 사연이 정밀하고 간절했었다. 문집 55권이 세상에 나왔다. 집을 위해서는 재산의 유무(有無)를 묻지 않았으며, 평시에 경솔한 말과 갑자기 노여워하는 얼굴빛을 보지 못했다. (후략) ▲ 해촌 남극만이 조선 영조 51년(1775년)에 지었다는 괴시마을 해촌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9호) 이는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졸기(卒記)로 태조실록 9권(1396년)에 있는 기록이다. 그는 경상북도 영덕 괴시마을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곳은 고색창연한 기와집이 즐비한 곳으로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괴시리의 다른 이름은 호지촌(濠池村)인데 그런 만큼 주변에는 동해로 흘러드는 송천(松川) 주위에 늪이 많다. 목은 선생은 뛰어난 문장가로 원나라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이란 마을이 호지촌과 풍경이 비슷하다 하여 그 이름을 따 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요즘뿐만이 아니라 옛날에도 우리 겨레는 음주가무를 즐겼는데 그 중의 하나는 풍류회(風流會)'이다. 풍류회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임이고, 여기에 한시를 짓고, 붓글씨를 쓰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이 풍류회에서는 율객(律客)들이 거문고, 가야금, 젓대(대금), 해금, 장고, 양금, 단소 따위로 줄풍류(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를 연주하며, 남녀 가객(歌客)들이 가곡을 부른다. 이 때 남녀 가객이 교대로 20여 곡의 가곡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마지막에는 남녀가 태평가를 같이 부른다. 그런 조선시대의 풍류를 오늘에 재현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일요풍류회가 그들인데 내일(6월 9일)(일요일) 저녁 17시 30분에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일요풍류회 주최, 서울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일요풍류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 일요풍류회 공연 모습 최종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열리는 공연은 특히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기가 높은 생소병주 수룡음도 연주된다. 수룡음은 생황과 단소가 함께 연주하는 병주(竝奏)인데 이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연주에는 단소 김상준, 생황에는 김계희가 함께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