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이놈들은 밤이면 모여드러 도적질할 니약이 남의 것 빼아슬 니약이 남과 쌈할 니약이 남 죽일 니약이 그따윗 니약이 뿐이데 그려. 자-이것 보게. 파리통 가저 오너라 모긔향 가저 오너라 빈대약 가저 오너라 벼룩약 뿌려라...이 따위 소리가 말금 죽이자는 니약이가 안인가. ▲ 파리를 유인해서 잡는 파리통(안동민속박물관) 위 내용은 1920년대의 대중잡지 별건곤 제8호(1927년 08월 17일 발행)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특이한 것은 파리통이지요. 이 파리통은 유리통에 물을 부어 채우고 파리가 많이 모이는 곳에 놓은 다음 뒤 가운데 바닥에 밥덩이나 된장을 놔두고 맨 위 구멍을 막아둡니다. 그러면 밥덩이를 먹으러 밑으로 기어들어간 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유리벽에 부딪혔다가 물로 떨어져 죽게 되지요. 조선 전기의 학자 성현(成俔)의 수필집 ≪용재총화(齋叢話)≫에는 파리를 사러 다니는 승목사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만 해도 이 파리통이 쓰인 듯합니다. 요즘이야 위생적인 생활 덕에 파리가 많이 없어지긴 했는데, 지금은 파리를 잡으려 파리채, 전기채를 쓰거나 끈끈이를 붙여놓거나 독한 살충제를 씁니다. 이런 것들보다는
수백억대 전 재산 처분 후 만주서 항일 독립운동 임정 국무령 역임 "나라를 찾기전까지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이장말라…" 유언 남겨 아들은 일제 변절강요에 '수치' 자결…가문 풍비박산 후손들 고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라를 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이장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안동 유림의 거목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대통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石州 李相龍·1858~1932) 선생이 태어난 경북 안동의 임청각(보물 제182호)을 찾아 간 날은 5월 중순인데도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런데 임청각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입구)가 왜 이리 복잡할까? 낙동강을 따라 난 육사로에서 법흥교와 맞닿은 법흥6거리를 지나자 왼쪽으로 ‘임청각’이란 안내판이 보이지만 철도길이 놓여 있어 쉽게 접근할 길을 찾지 못해 전화 통화 뒤에서야 겨우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임청각, 일제의 흉계에 의해 훼손되다 그 까닭을 확인하니 일제강점기 일제의 흉계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일제는 중앙선 철도를 놓으면서 항일투사의 집을 아예 없애려 했다. 그러나 여론이 좋지 않자 집 몇 채를 허물고 마당으로 철길을 내버린 것이다. 철길이란 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유홍준 교수가 1993년 처음 세상에 내놓아 답사기 붐을 일으켰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이후 20년 동안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남도답사 일번지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까지 모두 7권 330만부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문화유산 답사기는 이미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송남수(宋枏壽, 1537~1626)가 펴낸 ≪해동산천록(海東山川錄)≫이 바로 그 책입니다. 1622년(광해군 14)에 편찬된 이 책은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같은 유명한 산과 강 그리고 명승지를 도별로 나누어 역사적인 유적을 기록한 책이지요. 함경도 9곳, 평안도 7곳, 황해도 4곳, 경기도 18곳, 강원도 40곳, 충청도 22곳, 경상도 15곳, 전라도 9곳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생 온 나라의 명승지를 두루 돌아다닌 뒤 그곳의 위치와 모습 그리고 유명 인사들이 남긴 시나 기행록 등을 함께 적어 놓아 요즘의 문화답사기와 다름없습니다. ▲ 금강산을 여러 차례 담사하여 그린 금강전도 송남수는 호가 송담(松潭)이며, 호조정랑, 임천군수 등을 지냈는데 젊어서부터 산과 강을 즐기며, 유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우리나라 전통 옷들은 옷에 주머니가 없었는데 근대에 마고자와 조끼가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옷에 주머니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그마한 주머니(囊)를 달고 다녔지요. 그 주머니들은 모양이나 꾸미는 방법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달랐습니다. ▲ 진주두루주머니, 귀주머니, 자라줌취(왼쪽부터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먼저 두루주머니는 엽낭, 염낭, 낭으로도 불렸는데 주머니 들머리에 있는 끈을 잡아 오므리면 둥근 모양으로 되었고, 그 모양새가 두루뭉술하여 ‘두루’라는 이름이 붙여졌지요. 귀주머니는 가장자리가 각이 지고 아래 부분의 양쪽에는 귀 같은 세모꼴 부분이 있는 주머니입니다. 귀주머니는 주로 몇 가지 빛깔의 옷감을 이어 만들었습니다. 자라줌치는 넓이 9센티, 길이 14센티 정도의 네모다란 주머니를 위에서 4센티쯤 넘겨 끝을 세모지게 한 주머니인데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남자가 차는 주머니와 여자가 차는 주머니의 빛깔이 달랐는데 남자들은 주로 옥색이나 초록색 같은 푸른 빛깔을 주로 썼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분홍, 다홍, 초록 등 선명하고 화려한 빛깔을 좋아했습니다. 주머니의 겉에는 수를 놓거나 진주와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예부터 전해오던 풍속으로 “기자신앙(祈子信仰)”이란 것이 있습니다. 기자신앙은 자식이 없는 특히 아들이 없는 부녀자가 아들을 낳으려고 비손하는 민간신앙의 한 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기자신앙이 더욱 발달했지요. ▲ 옛 사람들은 남근석에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안동민속박물관) 그런데 기자행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시조탄생신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늘 신단수 아래에 가서 아이를 잉태하고자 빌었다고 하지요. 이런 기자신앙은 신단수, 용왕당, 삼신당, 미륵보살에 빌기도 했지만 특히 남근(男根)을 닮은 기자석이 인기 있었습니다. 남자의 성기를 닮은 남근석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원초적인 믿음을 옛 사람들은 가지고 있었지요. 물론 이런 믿음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미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기자신앙에 담긴 여인들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정성과 절박한 염원, 그리고 생명체에 대하여 지녔던 존엄성 따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생각 아닐까요? 또 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경성측후소 말을 듯건대 재작일 저녁 중국 양자강 연안에 잇든 저긔압(저기압)이 조선 중부를 지나가서 이로 인하야 조선에는 대개 한 평에 닷말여섯되칠홉가량(약 삼십 밀리)왔다하며 그 긔압(기압)이 작일 아츰에 강원도 방면으로 흘러갓슴으로 그곳에 큰비가 왔슬터이며 인하야 한강근원디가 그도에 만흡으로 금명간 한강물도 증수를 보리라 한다. 그리고 아즉 우긔(雨期)가 아님으로 이것으로 금년의 우량을 말 할 수는 업스나 작년 동월보다는 다소간 적다더라 ▲ 1968년 모내기 풍경(왼쪽), 논에 수차로 물 대는 모습(제주 '선녀와 나무꾼') 이는 1924년 5월 25일치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대충 내용은 전 조선에 흡족히 내린 단비(甘雨)로 모내기에 적당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경성측후소의 강우량 표시로 밀리(mm) 단위가 아직 정착이 안 되어서인지 닷말여섯되칠홉가량 비가 내렸다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이제 슬슬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모내기철에 내리는 비야말로 단비 가운데 단비 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농사가 나라의 바탕인지라 임금이 직접 농사를 챙겼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봉산탈춤은 황해도 지방의 전통적 민속춤으로서 북녘지방의 큰 명절인 단오에 주로 즐겼던 놀이이며, 사상좌춤으로 시작하여 굿으로 끝나고 있으나 다른 가면극에 비하여 신앙적 내지는 종교적 의의는 적고 민중의 오락적 요소가 훨씬 우세하다. 봉산탈춤보존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 된 봉산탈춤을 문화재청 후원으로 일반인에게 전 과장을 공개하는데, 이는 1년에 한번 있는 문화재청 사업이다. 공연은 5월 26일 오후 3시에 KB국민은행 청소년 하늘극장에서 열린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공연 모습 봉산탈춤은 사상좌춤, 팔목중춤, 사당춤, 노장춤(취발이, 신장수 포함), 사자춤, 양반춤, 미얄할미 영감춤 등 모두 7과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소무ㆍ무당 역에 김애선 보유자가 출연하며 그밖에 전수조교 장용일, 김종엽, 최장주, 김호석, 박용호 씨가 함께 한다. 이번 공연은 무료로 진행하는데 입장권을 선착순 예매해야 한다. 예매는 누리집 www.bongsantal.com 으로만 가능하며 자유게시판에 소속, 이름, 필요수량, 손말틀(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신청하면 추후 결과를 알려준다. 다만, 예약 결정이 됐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천연기념물 454호인 미호종개를 인공산란을 통해 자연 방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충북도내수면연구소 남부지소는 31일 미호종개 자원복원 사업의 성공으로 치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곧 환경부 등 관계기관의 승인을 얻은 뒤 내년 초쯤 치어들을 서식지인 금강에 풀어놓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 물 흐름이 느리고 물 깊이가 얕은 물의 몰래 속에 몸을 파묻고 사는 미호종개(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천연기념물 제454호) 위는 한국일보 지난해 10월 31일 기사입니다. 금강에 사는 참 예쁜 물고기 미호종개는 몸길이가 약 10㎝ 정도이며 몸은 가늘고 길지요. 주둥이는 끝이 뾰족하고 몸통은 굵지만 꼬리는 가늡니다. 입가에는 3쌍의 수염이 있고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에는 3줄의 갈색 띠가 있습니다. 미호종개는 물 흐름이 느리고 물 깊이가 얕은 물의 모래 속에 몸을 파묻고 살지요. 5~6월에 알을 낳고, 모래 속에 있는 플랑크톤을 먹는 미호종개는 한국 고유종으로 금강 수역에만 드물게 삽니다. 그런데 물이 더러워지고 모래를 파가 미호종개가 살 수 있는 환경이 파괴되었습니다. 따라서 살아남은 미호종개 수가 크게 줄어 없어질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잔 다르크는 15세기 전반 백년전쟁 후기에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인 소녀이다. 그 잔 다르크가 한국에서는 한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 있었다. 바로 일제강점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독립투쟁을 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이 그들이다. 그 한국의 잔 다르크들을 소개한 이윤옥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가 드디어 5월 16일 미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 ≪서간도에 들꽃 피다≫ 미국판 ≪41 Heroines: Flowers of the Morning Calm≫ 책 표지 박혜성 홍보대사(미국 보스턴 지역 한국 문화 홍보 프로그램)가 주관하여 미국 교포 고등학생 16명이 지난해 여름부터 이 책의 번역작업에 참여하였는데 드디어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41 Heroines: Flowers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이름의 이 영문판 시집은 CreateSpace(출판사)에서 펴냈다. 이번 책에는 겨레의 큰 스승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수원의 논개 김향화, 황거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고양 동막상리 만세운동 주동자 오정화 애국지사 등 41명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세종임금 때 청백리 영의정으로 유명한 황희정승과 관련된 얘기는 참 많습니다. 거기엔 속담도 있는데 황희 정승네 치마 하나 가지고 세 어이딸이 입듯이 그것이지요. 황희가 얼마나 청빈했던지 황희의 아내와 두 딸이 치마가 없어 치마 하나를 번갈아 입고 손님 앞에 인사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인데 여기서 어이딸은 어미와 딸이란 말로 한자말 모녀(母女)와 같은 뜻의 말입니다. 바로 이 어이딸은 한자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모녀에게 안방을 내줬습니다. ▲ '어이딸'이란 토박이말은 한자말'모녀(母女)'에게 안방을 내웠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지난 주 MBC뉴스에서 AI, 한파 여파 어디까지‥계란 파동 우려라는 제목의 뉴스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계란은 鷄卵이라고 쓰는 한자말임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닭이 낳은 알은 '달걀'입니다. '닭의 알달긔알달걀'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말이지요. 물론 계란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쉽고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한문에 익숙했던 양반들이야 한자말이 더 편했을지 모르지만, 일반 백성은 토박이말 위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토박이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