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한 나라의 서울이 되려면 첫째 군사적으로 방어하기 편리한 곳, 둘째 강과 해상을 통하여 물자를 수송하기가 편리한 곳, 그리고 셋째는 사방으로 거리가 균등하여 교통이 편리한 곳인데 한양은 이 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한양의 인문지리적 위치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역사적 사실들은 조선 초 한양천도의 여러 원인 중에서도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보다 더욱 중요한 요인들이 있었다. 태조가 한양 천도를 서둘렀던 까닭 또는 천도론의 배경은 다음 세 가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 18세기에 나온 도성대지도 2-1. 한양 천도 과정 첫째는 새 왕조를 열려면 임금과 신하들 모두 심기일전하여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고려왕조의 서울이었던 송도는 그에 충성하던 무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어서 고려왕조에 대한 미련이 많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전부터 있어 오던 풍수도참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조에서도 일찍부터 송도의 기운이 다했기 때문에 무신난과 몽고전란 등의 환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이에 태조는 즉위와 함께 천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조선왕조를 열면서 생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1965년 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RCY)가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날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이후에 모두가 따라하는 것입니다.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날이 스승의 날임은 누구나 알지만 우리 겨레의 가장 위대한 스승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날인지는 잘 모릅니다. 더더구나 세종대왕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세종실록 총서에는 태조 6년 정축 4월 임진에 한양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에서 탄생하였다.라고 나옵니다. 서기로는 1397년 5월 15일 태어났고 이름은 도이고, 시호는 장헌(莊憲)으로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지요. ▲ 세종대왕 어진(김학수 화백,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그럼 태어난 곳 준수방은 지금의 어디일까요? 준수방은 현재 종로구 통인동, 옥인동 일대로 경복궁 서쪽문인 영추문길 맞은편 의통방 뒤를 흐르는 개천 건너편인데, 청운동을 흘러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과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인왕산 골짜기의 깨끗한 물줄기가 합치는 곳입니다. 현재는 경복궁 전철역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은 오는 15일 세종대왕 탄신 제616돌을 맞이하여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英陵)에서 대왕의 위업과 유덕을 기리는 숭모제전(崇慕祭典)을 봉행한다. ▲ 2012년 숭모제향 가운데 아헌례 모습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념하는 숭모제전은 중세 문예부흥시대에 탁월한 리더십으로 한글창제는 물론 국방, 과학, 문화 등 수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신 대왕의 위업과 애민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이다. 제향에 앞서 중요무형문화재 대금산조와 경기민요의 공연이 있다. 본행사인 숭모제전은 참여자가 각자 정해진 자리로 나아가는 취위(就位), 제관이 술을 따르는 작헌례(酌獻禮), 대통령을 대신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헌화(獻花)와 분향(焚香), 의식을 마치는 예필(禮畢)의 순서로 제향이 이루어진다. 제향에 이어 참석자들은 세종대왕의 창작 궁중음악인 여민락(與民樂)의 반주에 맞춰 펼쳐지는 궁중무용 봉래의(鳳來儀)를 관람하게 된다. 이와 함께 행사 당일 세계유산 조선왕릉 사진전(10.31.까지 계속)과 훈민정음 금속활자본 탁본체험행사, 과거시험 재현행사, 세종대왕 전국 한글휘호대회 입상작 전시 등 세종대왕의 탄신을 축하하는 다채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이 주최하고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이사장 임돈희)가 주관하는 중요무형문화재 합동공개행사인 궁, 樂(악)을 만나다가 오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4일 동안 창경궁에서 펼쳐진다. ▲ 전통 가무악(歌舞樂)의 향연에서 대금을 연주할 이생강 명인 이번 행사는 7개 종목 8명의 보유자가 참가한다. 오는 29일부터 3일 동안은 창경궁 통명전 내부에서 대금산조(이생강), 대금정악(조창훈), 가야금산조(문재숙), 가곡(歌曲, 조순자)이 연주된다. 이 공연은 별도의 기계장비 없이 연주자의 몸짓과 소리만으로 우리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원래 한국문화는 한 마당에서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로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기계장비는 원래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대형무대를 선호하는 추세에 기계장비는 중요한 것이 되어 연주자의 호흡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불평을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그런 불만이 해소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돌리라 기대를 받고 있다. ▲ 전통 가무악(歌舞樂)의 향연에서 전통가곡을 노래할 조순자 명인 또 6월 1일에는 창경궁 양화당 앞마당에서 학과 연꽃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요즘 한 사람의 공직자를 두고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세상사 특히 나랏일에는 인사가 정말 중요한 일이고 인재등용에 있어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런 고민은 물론 조선시대 세종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자신보다 30여 살이 더 많은 아버지 태종 때의 재상들 곧 황희ㆍ허조ㆍ맹사성 등을 재등용하고, 관노 출신 장영실을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치적에 큰 공헌을 하게하였는데 인재등용에 관한한 최고의 임금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 세종이 관노 출신 장영실을 등용하여 만든 자동시보장치 달린 자격루, 중국도 만들지 못했던 자격루를 만든 것은 세종의 인재등용이 이룬 쾌거. 세종실록 20년(1438) 3월 12일 기록에 보면 세종은 말합니다. 대저 열 집이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직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있는 것이거늘, 하물며 온 나라 안에 어찌 사람 없음을 걱정하랴. 다만 한스러운 것은 구하기를 정성껏 못하고 천거하기를 조심하지 않는 것이니, 너희들이 어진이가 온 나라에 가득하게 하려는 나의 뜻을 본받아서,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게 하라. 세종은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절조와 염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정결한 소와 염소로 선농(先農)에 정성껏 제사하고, 따비와 쟁기로 밭을 몸소 밟으셨습니다(聿躬履於甫田). 빛나고 성대한 의식이 이루어지니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중략) 촉촉한 가랑비 꽃가지의 바람을 재촉하니 / 동쪽 들의 버들이 봄빛을 띠게 됐네 / 황도(黃道)에 먼지가 맑게 걷히니 / 보연(寶輦)에 봄빛이 도네 / 곤룡포·면류관 차림으로 몸소 따비 잡고 밭갈이하여 / 우리 백성들 농상(農桑)에 힘쓰게 했네.” ▲ 쟁기질을 할 수 없는 곳의 땅을 고르는 '따비'(왼쪽), 논밭의 흙을 평평하게 하는 '번지' (제주 선녀와 나무꾼) 이는 성종실록 24년(1493) 음력 3월 10일 기록입니다. 임금이 손수 따비를 들고 농사일을 해보는 일은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던 조선시대에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들녘에는 푸르름이 더하고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허리를 펼 새 없이 농사 준비로 바쁠 때입니다. 그러나 따비와 쟁기 같은 농기구를 들고 논밭으로 나갈 농부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도 기계화가 진행되어 이런 농기구들은 이제 농업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작은 다랑이는 그나마 쟁기를 댈 수가 없어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서양의학만을 과학적이라 여기고 우리의 전통 의학은 미신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그 학문적 바탕이 전혀 다름에도 현대 과학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태도 때문에 한의학의 과학적 우수성이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와 같은 문화사대주의는 한의학만이 아니라 의복을 비롯한 우리 문화 전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향과 맛이 뛰어난 우리 차는 외면하면서 가짜인지도 모를 중국 보이차에 열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대한 발효 항암식품인 우리의 된장을 제치고,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일본의 미소된장을 사먹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또 지금 한국 사람들의 옷은 양복과 양장, 그리고 캐주얼 옷 일색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일상의 옷이 서양옷으로 바뀌어버렸을까? 한국전쟁 전만 해도 한국인들의 흰색 두루마기를 입는 것은 예사로 볼 수 있었고, 여자들이 치마, 저고리도 입는 것도 남의 눈길을 끄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연예인은 물론 지도급 인물들이 서양옷을 입으니 자연 그를 따르게 되었다. 서양옷이 좋은 옷인지 분석해보고 입은 것이 아니란 얘기다. ▲ 한복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부채춤 모습 한복 입던 한국인
▲ 고루소식 2013년 봄호 한[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한글사랑과 민족사랑에 헌신한 이극로 선생. 평생을 《조선말큰사전》 펴내는데 앞장서고 항일운동에 매진한 이극로 선생은 우리 겨레에게 커다란 은인이다. 그 이극로 선생을 기리는 (사)고루이극로박사기념사업회가 소식지를 펴내고 있는데 이번 4월 30일에 통권 제3호를 엮어냈다. 이번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조지아대학교 비교문학과 강사인 이승재 씨의 고루 이극로 박사의 한글 사랑이다. 그는 글쓴이는 유학비용의 충당을 위해 얼떨결에 한국어를 보급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극로 박사에게는 그것이 삶이자 목숨이었고, 향후 일생을 결정하는 업이었다.라고 밝히면서 이극로 박사야말로 식민지 시대 한글운동의 명실상부한 1인자 임을 강조했다.또 경남대학교 이승철 교수가 쓴 세종대왕 친필 발견한 이극로 선생이라는 글도 관심이 갔다. 이에 따르면 이극로 선생은 충북 청주 송천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서원행록》에서 세종대왕世宗大王 수서사手書賜 가전충효家傳忠孝 세수인경 世守仁敬 팔자八字란 글귀를 찾아내 이 족보의 앞장에 있는 글이 세종대왕의 친필임을 증명하였다는 것이다.또 소식지에는 이극로 선생이 쓴 조선 문화와 한글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아리랑은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요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공주아리랑보존회 회장이며,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이수자인 남은혜 명창은 그 아리랑을 묵계월 선생에게 굵고 맑은 청을 가장 잘 이어받은 제자로 알려졌으며, 호흡이 길어 어렵다는 정선아리랑(서울제)과 긴아리랑, 그리고 한오백년의 절창자로 유명하다. 그 남은혜 명창이 오는 5월 18일(토) 오후 3시 국립민속박물관 공연장에서 남은혜의 아리랑 한 마당 공연을 펼친다. 남은혜 명창은 이번 공연을 통해 아리랑의 다양성, 특히 경서도토리(본조아리랑 등), 메나리토리(정선아리랑공주아리랑 등), 육자배기토리(진도아리랑)의 특징과 북간도아리랑과 공주아리랑을 통해 역사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공연은 아리랑연구의 대가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의 진행으로 아리랑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 공연중인 남은혜 명창 이번 공연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주아리랑・긴 아리랑・엮음 아리랑인데 충청도 공주지방의 토속민요로 충청도를 대표하는 아리랑이며 정적이면서도 높고 낮음이 적은 편이다. 충청도지방을 대표하는
▲ 한복을 입고 근무하는 종로구청 민원실 직원들 [그린경제=김영조 문화전문기자] 조선왕조 600년의 상징 경복궁이 있고, 3・1만세운동의 발원지 탑골공원이 있는 곳, 그래서 겨레의 중심지인 서울 종로구(구청장 김영종)가 또 특별한 자치구가 되고 있다. 바로 매월 둘째 화요일을 한복 입고 근무하는 날로 정하고 실천에 들어간 것. 한복 입는 날은 김영종 구청장의 제안으로 지난 3월 5일 처음 시작하여 5월 7일에 세 번째 선을 보였다. 종로구청에서는 현재 5급 이상 직원들을 중심으로 의무적으로 한복입기를 실천하고 있다. 먼저 구청장을 중심으로 문화공보과, 민원여권과, 혜화동, 구청 민원 도우미, 보건소 민원실, 구민회관 및 문화체육센터 안내데스크 직원 같은 민원인을 대하는 대민부서 직원들도 한복을 입는다. 6급 이하는 한복이 있는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입도록 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정부 문화관광부는 매달 첫째 토요일을 한복 입고 근무하는 날로 정하고 한복입기를 적극적으로 뒷받침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운동이 정착이 되어갈 무렵 IMF경제위가가 닥쳐왔고, 한복입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뒤 오랫동안 한복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