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 가슴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았노라 옥경의 신선 벗이 나를 지성스레 생각해 주어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보내주었구려 무더위가 쇠를 녹인다는 말은 한여름 더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는 1940년에 펴낸 옥담 김위원(金偉洹)의 시문집 《옥담고(玉淡稿)》에 나오는 한시 ‘부채선물에 화답’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 번째로 오는 “대서(大暑)”입니다. 사무실 안에서야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겠지만 들판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이나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서와 같은 한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절기입니다. 더울수록 혀끝에서는 찬 것이 당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운 음식으로 몸을 보양해온 게 옛사람들의 슬기로움입니다. 흔히 이열치열로 먹는 먹거리로는 전설의 동물인 용과 봉황 대신 잉어(혹은 자라)와 오골계로 끓인 “용봉탕”, 검정깨로 만든 깻국 탕인 “임자수탕” 그리고 보신탕, 삼계탕, 추어탕 등을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더운데 땀을 줄줄 흘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은 여름철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고 피부 근처에 쏠리는 많은 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 늘 - 노원호 그늘이 있어 참 좋다. 땀 흘리며 걷다가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곳 내 가슴 어딘 가에도 잠깐 머무를 수 있는 그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늘은 그늘진 곳이 아니라 마음을 앉힐 수 있는 시원한 마음자리다. ‘그늘’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 불투명한 물체에 가려 빛이 닿지 않는 상태. 또는 그 자리”가 기본적인 말 풀이지만, 그 밖에도 “상황을 가리어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는 영향력”, “근심이나 불행으로 어두워진 마음. 또는 그 마음이 드러난 표정”,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裏面)의 상황이나 처지. 불우하거나 부정적인 환경이나 상황”처럼 어두운 면을 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의지할 만한 사람의 보호나 혜택”이라고 풀어놓은 것을 보면 늘 한 면만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지금은 한창 더울 때지만, 예전 농민들은 이때도 피사리와 김매기에 땀으로 온몸이 파죽이 되었다. 그때 솔개그늘은 농부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였다. 솔개그늘이란 날아가는 솔개가 드리운 그늘만큼 작은 그늘을 말한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헤매며 김을 매는 농부들에겐 비록 작은 솔개그늘이지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거기에 실바람 한 오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흔히 사람들은 ‘가곡’ 하면 가고파, 꽃구름 속에, 동무생각 등의 근현대에 만들어져 서양 성악가들이 부는 노래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전통가곡 곧 거문고ㆍ가야고ㆍ대금ㆍ단소ㆍ세피리ㆍ장구ㆍ해금 등으로 편성된 실내악 반주에 맞추어 시조시(時調詩)를 노래로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말 무렵 한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풍류대장> 프로그램에 이 가곡이 소개되어 그동안 전통가곡을 모르던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원래 가곡은 정가(正歌)라고도 부르는데 곡조가 아담하고 바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가객들이 우선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바로 높은 기품과 바르고 당당한 태도입니다. 가곡은 ‘삭대엽(數大葉)’ 또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하며, 판소리, 불교음악인 범패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꼽는데 2010년 유네스코 무형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곡은 남자가 부르는 남창가곡과 여성이 부르는 여창가곡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곡은 또한 우조와 계면조로 구성이 돼 있는데요. 우조는 밝거나 힘 있고 활기찬 느낌의 가락이고, 계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5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완초장 보유자 이상재 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완초장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인 왕골로 살림살이에 쓰는 도구들을 만드는 장인을 말합니다. ‘왕골’은 키가 60~200cm에 이르는 풀로 용수초(龍鬚草), 현완(懸莞), 석룡초(石龍草)라고도 부릅니다. 왕골제품으로는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손바구니), 합(밥그릇) 따위가 있지요. 《태종실록》에 보면 관청에서 수요를 빙자하여 민간에게 공납을 강요하는 몇 가지 품목 가운데 왕골도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에도 왕골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만화석(滿花席), 만화방석(滿花方席), 만화각색석(滿花各色席), 용문석(龍文席), 화문석(花文席), 잡채화문석(雜彩花文席), 채화석(彩花席) 등 여러 이름의 왕골제품이 있어 궁중과 상류계층에서 썼고 또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지요. 1991년 12월 31일 조사에 따르면 609호가 왕골 생산에 종사하여 20,624매의 꽃방석을 생산하였고, 206호가 종사하는 꽃삼합은 연간 30,371매를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엇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 거문고 줄을 엊어 풍입송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선비들은 거문고와 함께 한 삶이었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서 시(詩)ㆍ서(書)ㆍ금(琴, 거문고)ㆍ주(酒)로 노니는 것을 풍류라 하여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삼았다. 고악보 《양금신보》에는 “금자악지통야 고군자소당어야(琴者樂之統也 故君子所當御也)”라 하는 글귀가 있는데 “거문고는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하라.”라는 뜻이다. 이 말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고 하여 가장 귀하고 중요한 악기로 여기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실제 전통사회에서는 피리나 젓대(대금)를 하는 잽이들이 전문음악인이고, 거문고를 하는 풍류객들은 아마추어 음악인이었는데도 풍류를 할 때는 거문고를 하는 선비가 이끌곤 했다. 거문고라는 악기가 합주를 이끌어 가도록 음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성종실록》 119권, 성종 11년(1480년) 7월 9일 “의금부에서 어을우동(於乙宇同, 어우동)과 간통한 방산수 이난 등을 죄줄 것을 아뢰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어우동과 놀아난 이난(李瀾)과 이기(李驥)는 종친이라 국문할 수도 없었고, 대신 먼 지방 한 곳을 지정하여 그곳에서만 머물도록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관련된 중신들 모두 심문도 하지 않고 석방하거나 가벼운 처벌로 끝냈습니다. 하지만, 그해 10월 18일 어을우동은 교형(絞刑, 목 졸라 죽이는 형벌)에 처해 죽었지요. 어우동은 정3품 승문원 지사 박윤창의 딸로 효령대군의 손자인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과 혼인하였던 여성입니다. 그녀는 태강수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자 남편 태강수는 그녀를 외면하고 기생 연경비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어우동은 집안에 들인 은장이를 유혹하여 수시로 간통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태강수 이동이 분노하여 내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종실의 사무를 관장하던 종부시(宗簿寺)에서 태강수가 종친으로서 첩을 사랑하다가 아내의 허물을 들추어 제멋대로 버렸다며 임금에게 고발했는데 이를 보면 어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즘 장마가 한창이다. 그 장맛비를 뚫고 제자들이 국가무형문화재 서도소리 전승교육사이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음악감독인 유지숙 스승을 기리는 공연 <청출어람>이 어제(7월 9일) 저녁 4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사)향두계놀이보존회(이사장 오현승) 주최ㆍ주관으로 열렸다. 그 시작은 유지숙 선생의 막내 제자인 초등학교 4학년 김리예 어린이가 열었다. 김리예 어린이는 직접 쓴 편지를 통해 “선생님께서 저를 꼬옥 안아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라면서 스승께 사랑을 전했다. 그리고 유지숙 선생의 제자로 서도소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나라ㆍ장효선 두 소리꾼이 좌창 수심가와 엮음수심가로 무대를 열었다. 민요를 가벼운 노래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듯 두 사람은 진중한 청음으로 공연의 무게를 잡아주었다. 이어서 김유리ㆍ류지선ㆍ김무빈의 산염불ㆍ자진염불, 김초아ㆍ박지현ㆍ최민정의 간아리ㆍ자진아리, 최정아ㆍ김세윤ㆍ김미림의 긴난봉가ㆍ자진난봉가가 서도소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또한, 장구를 든 황승환과 북을 든 7인의 고등학생들이 산타령인 뒷산타령ㆍ경발림을 흥겹게 불러주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취우(驟雨, 소나기) - 추사 김정희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나무 사이에 더운 바람 불어 잎들이 나란한데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서) 몇몇 봉우리 서쪽에 비 품은 구름 새까맣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쑥빛보다 더 파란 한 마리 청개구리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파초 잎에 뛰어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내네 추사 김정희가 쓴 글 가운데는 한여름 소나기가 내린 정경을 노래한 <취우(驟雨)>란 제목의 한시도 있다. ‘취우(驟雨)’는 소나기를 말하는데 요즘처럼 한여름을 불볕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 사람들이 기다린다. 지루하게 오래 내려 기청제를 지내야 하는 장맛비와는 달리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여 시원하게 쏟아붓고는 저 멀리 예쁜 무지개를 하늘에 걸어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진다. <취우>를 읽으면 멀리 산봉우리 서쪽에는 비를 품은 새까만 구름이 몰려오는데, 파란 한 마리 청개구리가 파초 잎에 뛰어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내고 있다고 노래한다. 시는 이렇게 시각(視覺)과 청각(聽覺)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어 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되는 김광균의 “와사등”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해바다에 불끈 솟아오르는 독도는 늠름하구나 동도와 서도 마주 바라보면서 함께 사는 형제섬이다 울릉도에서 네 얼굴이 보이고 오랜 우애가 바다처럼 깊구나 동도와 서도에 무지개다리가 있어 하얀 갈매기도 건너가는구나 동해바다에 불끈 솟아오르는 독도는 아름답다 위 노래는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 등으로 알려진 김현성이 2008년 독도에서 지은 <독도찬가>다. 이 노래는 서정적이고 애잔한 멜로디가 가슴을 울리며, 독도의 아름다운 광경이 와닿듯 생생한 감동을 준다. 이 독도! 이 노래처럼 독도는 우리 겨레에게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섬이다. 이 독도를 지도 제작자며 독도연구가로 2005년부터 2022년까지 17년 동안 90일 정도를 독도에 머물며 독도의 지형과 식생을 조사하고, 사진을 찍어온 안동립 씨가 이번에 《독도 / 안동립의 독도 이야기(2005~2022)》를 펴냈다. 일반인들이야 독도에 갔다고 해도 잠깐 들러볼 뿐이기에 독도의 풍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독도에서의 해돋이와 해넘이, 별 헤는 밤은 물론 괭이갈매기 등의 동물, 해국 등의 식물들도 실제 맨눈으로 본 사람이 없을 터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한째로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든 ‘소서(小暑)’입니다. 하지 무렵까지 모내기를 끝낸 벼는 소서 때쯤이면 김매기가 한창이지요. 요즈음은 농약을 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예전처럼 논의 피를 뽑는 일인 피사리나 김매기 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허리가 휘고 땀범벅으로 온몸이 파김치가 되는 때입니다. 이때 솔개그늘은 농부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이지요. ‘솔개그늘’이란 날아가는 솔개가 드리운 그늘만큼 작은 그늘을 말합니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헤매며 김을 매는 농부들에겐 비록 작은 솔개그늘이지만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거기에 실바람 한 오라기만 지나가도 볼에 흐르는 땀을 식힐 수 있지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소서 날 남을 위한 솔개그늘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때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므로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집니다. 특히 시절 음식으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때 가장 맛나서 열무국수나 수제비를 즐겨 해 먹습니다. 채소류로는 호박이며, 생선류로는 민어가 제철인데 민어포는 좋은 반찬이 됩니다. 또 민어는 회를 떠서 먹기도 하고, 매운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