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랍신다.” 이는 <대취타>를 시작할 때 철릭(무관이 입던 공복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힌 옷)을 입고 전립(戰笠, 무관이 쓰던 벙거지)을 쓴 집사(執事)가 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들고 호령하는 소리입니다. 이는 징을 한번 크게 울려서 관악기를 크게 불고, 타악기를 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대취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임금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그리고 개선 등에 사용한 대규모 연주입니다. 악기는 징ㆍ장구ㆍ북ㆍ나발ㆍ소라ㆍ태평소 등으로 편성되지요. <대취타>는 ‘무령지곡(武寧之曲)’, ‘구군악(舊軍樂)’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 ‘무령지곡’은 씩씩하고 편안하다는 뜻으로 조선시대의 공식 이름입니다. 그리고 ‘구군악’은 구한말에 신식군대가 생겨난 이후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대취타>는 군대에서 군사 훈련 때 사용한 것 말고도 외국의 사신들과 관련된 의전용으로 쓴 것으로 보아 요즘 외국 대통령이 오면 군악대가 나가서 연주하고 사열하던 것과 비슷합니다. 또 김세렴(金世濂, 1593~1646)이 쓴 《해사록(海槎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까 치 밥 - 김정원 늦가을 햇살 거푸 불러와 할머니는 감 너댓 개를 가지 끝에 다독였다 쪽마루에 앉아 푸른 산맥 굵은 손등을 만지며 혼자 중얼거렸다 ‘시린 추위 치열해도 잘 버텨 줘야 해 허기진 까치가 올 때까지 알았제......’ 텅 빈 하늘에 주홍빛 까치밥 자비의 눈빛에 반짝거렸다 온 마을 등불 같이 환히 노을 속 번져가는 할머니의 하얀 박꽃미소. 이틀 뒤면 24절기의 열아홉째인 ‘입동(立冬)’인데 이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으로 입동이라 부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궁궐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이런 궁궐의 풍습처럼 민간에서도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도 있다. 이는 입동 등에 나이 든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이다. 이때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운 집이라도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이는 동아일보 1945년 12일 27일 기사의 제목입니다. 광복 뒤 독립정부 수립을 원했던 한국 사람들은 동아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반대성명을 발표함은 물론 신탁통치 반대 집회를 온 나라에서 격렬하게 일으켰습니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고통을 끝내고 찾은 광복인데 다시 외국의 간섭을 받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해냄에듀에서 펴낸 《한 컷 한국사》에서는 이 동아일보 기사는 물론 조선일보 등 다른 신문도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왜곡한 가짜뉴스를 보도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따르면 1945년 12월 미국ㆍ영국ㆍ소련 세 나라 외무장관들은 이 기사와는 다르게 “한국의 독립을 위한 조선 민주주의 임시정부의 수립,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한 미ㆍ소 공동위원회 개최, 미ㆍ영ㆍ소ㆍ중 네 개 나라가 공동 관리하는 신탁통치를 최고 5년 기한으로 실시한다.”라고 합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반도에서의 신탁통치는 오히려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었고, 미국은 한국을 즉시 독립시킬 뜻이 없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마디로 미호종개 없는 미호천, 팥소 없는 진빵!!!” <애니멀파파> 블로그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블로그에 따르면 잦은 개발과 보 건설로 인하여 미호천의 특산종인 미호종개는 미호천에서 전멸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미호종개 증식연구를 시작했고, 드디어 인공부화에 성공하여 지난 10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 지천에서 미호종개 어린 물고기 2천여 마리를 방류했습니다. 미호종개는 미꾸리과의 물고기로 금강수계의 미호천과 그 인근 물에서 살았는데 1984년 처음 알려졌지요. 한국 고유종이면서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이 물고기는 2005년 3월 17일에 천연기념물 제454호로 지정되었으며, 폐수와 골재채취 등으로 그 수가 크게 줄어 2012년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되어 환경부로부터 보호받고 있습니다. 미호종개는 몸 가운데는 굵지만, 앞쪽과 뒤쪽은 가늘고 깁니다. 보통 몸길이는 7㎝로서 머리는 옆면으로 납작하지요. 미호종개의 몸은 담황색 바탕에 갈색의 반점이 있는데 머리의 옆면에는 주둥이 끝에서 눈에 이르는 암갈색의 줄무늬가 있으며 몸의 옆면 가운데는 12∼17개의 원형 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 날 - 김미숙 읍내 오일장 서는 날 새벽밥 지어 놓고 십 리 길 나선 엄마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용바우재 넘어간다 이리저리 해종일 보내다가 산그림자 길게 내려오면 엄마는 보따리 이고 지고 험준한 고갯길 넘느라 작은 키가 더 작아진다 바다가 없는 산골 마을 저녁 밥상에 노릇노릇 구워 놓은 고등어 한 마리에 여섯 식구 얼굴들이 달빛처럼 환해진다 우리나라에 상설시장이 들어서기 이전 온 나라 곳곳에는 닷새마다 ‘오일장’이라는 장이 열렸다. 인천 강화군에 에 ‘강화풍물시장(매 2, 7일)’이 서고, 경기 화성에 발안만세시장(매 5, 10일), 강원도 정선 ‘정선아리랑시장(매 2, 7일), 전남 순천 ‘웃장(매 5, 10일), 경남 함야 ’함양토종약초시장(매 5, 10일) 등이 현재도 열리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조 때 펴낸 《동국문헌비고》에서는 1770년대 당시의 전국 장시의 수를 1,064개로 헤아리고 있고, 19세기의 《만기요람》에서는 1,057개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서 오일장이 운영 중인데 김동리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이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 등은 소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문화재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목조불상인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복장유물」 그리고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복장유물」을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두 불상이 조성될 때는 모두 통일신라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하지요. 이는 해인사가 802년 창건된 점에 비추어 볼 때, 법보전과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이 해인사 창건 시기와 머지않은 시점에 조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임을 말해 줍니다.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뛰어난 조각기법을 보여주지요. 비로자나 부처의 수인(手印, 두 손의 손가락 모양)인 지권인(智拳印, 두 손을 가슴까지 들어 올린 뒤 왼쪽 집계손가락을 펴 세워서 위쪽 오른손 주먹 속에 넣은 모습. 이 수인은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하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 둥근 얼굴과 당당한 신체표현, 신체를 자연스럽게 감싼 옷 주름 등은 9세기 석굴암 불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조각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입니다. 복장유물도 한국불교사, 미술사적 값어치가 매우 높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11월 한 달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예인열전’, ‘팔일’ 등 전통 공연을 선보인다. 피리의 정수를 만나다. ‘예인열전(藝人列傳)- 최경만의 피리 소리 스치고’ 2011년부터 이어진 한국문화의집KOUS 의 기획공연 ‘예인열전’ 시리즈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이 시대 예인의 삶을 집중 조명하는 전통 가무악 공연이다. 지난 4월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평난 수건춤 보유자 한순서 명인의 뒤를 이어 오는 1일에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삼현육각* 보유자 최경만 명인의 삶과 피리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삼현육각(三絃六角): 해금, 젓대, 피리, 북, 장고 등으로 구성된 국악에서 널리 쓰이는 악기 편성법 최경만 명인은 피리의 대가 지영희 명인의 수제자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악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대풍류* 전곡을 재구성하여 호평받기도 했다. 특히 대령산과 같이 느리고 장단이 불규칙해 전승이 끊길 뻔한 악곡을 지영희 편 《민속음악연구집》을 참고하면서 재현하였고, 서울 경기의 대풍류 원가락이나 푸살**, 굿풍류***와 같은 곡들도 재구성하는 등 공연종목을 확충해 왔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는 11월 8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옆에 있는 무형문화재전수관 풍류극장에서 이병옥 교수의 해설로 박경랑ㆍ김진옥ㆍ정명자 3인의 명무전이 펼쳐진다. 멋을 알고 휘어 감는 관능미를 지닌 무용가 박경랑 명무, 열정과 진취적인 무용지도자로 단아한 전통미를 갖춘 춤꾼 김진옥 명무, 팔방 춤색이 역력한 매력 있고 다부진 춤꾼 정명자 명무의 3인 3색 몸짓이다. 먼저 박경랑 명무는 4살부터 외증조 김창후로부터 대를 이어 영남춤의 맥을 올곧이 이어 가고 있다. 부산ㆍ진주 시절 춤 선생 김수악ㆍ김진홍, 동래 권번(捲番)의 마지막 기녀인 강옥남으로 부터 엄격한 규율과 강한 성품으로 무용 수업을 받아 오늘날 든든한 교방청춤 전승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박경랑은 50여 년 전통춤과 함께 살아 온 2세대 중심 춤꾼으로 깊숙이 자리매김한 본능적인 끼가 확연히 자리 잡힌 풀뿌리 춤꾼이다. 명인 등용문인 전주대사습 무용부 장원, 서울전통공연예술대회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김수악류 진주교방굿거리 1기 이수자로서 영남 교방청춤하면 바로 박경랑을 전무후무한 독보적으로 떠올릴 만하다. 반듯한 춤 태와 완성도 높은 내공으로 무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0월 22~23일 이틀 동안 은평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서울 은평구(구청장 김미경) 주최, (사단)청강판소리고법보전회 주관으로 ‘제23회 청강 정철호 국악제 전국대전’이 열렸다. 판소리에서는 ‘1고수 2명창’이라고 한다. 그만큼 판소리에서 고수의 중요성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고수를 판소리의 지휘자로 말하기도 하는데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은 2020년 4월 13일 <우리문화신문>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에서 “고수는 소리 속을 훤하게 꿰고 있으면서 창자(唱者)의 넘치고 모자라는 부분까지도 헤아릴 줄 아는 융통성 있는 ‘능력상의 정확’이 고수에겐 전제되어야 한다.”라면서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청강 정철호 국악제 전국대전’에서 기리는 정철호(鄭哲鎬) 선생은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가운데 고법(鼓法) 보유자로 지정되어 지난해 세상을 뜰 때까지 그의 80년 삶을 국악 전승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서한범 교수의 “소리 속을 훤하게 꿰고 있으면서 창자(唱者)의 넘치고 모자라는 부분까지도 헤아릴 줄 아는 융통성 있는 ‘능력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는 최만리를 비롯한 대다수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창제했어도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이 언문이라며 외면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문헌을 보면 임금부터 왕실 어른들은 한글로 편지를 썼음을 알 수 있지요. 또 이렇게 왕실이 한글편지를 썼다면 사대부 벼슬아치들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정조임금은 어렸을 때부터 한글을 썼던 임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정조가 만 3~4살부터 46살 때인 정조 22년(1798년)까지 큰외숙모인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보낸 한글편지 16점을 모아 묵은 편지첩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이 그 확실한 증거입니다. 《정조국문어필첩》에 보면 5~6살 무렵 쓴 한글편지의 내용에 “가을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기를 바라오며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도 그리워하였사온데 어제 봉한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워하였사오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시오니 기쁘옵나이다. 원손”이라고 되어 있어 어린 정조의 의젓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에겐 선조가 옹주에게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