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전쟁의 역사는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농촌 진흥청 산하단체인 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8년 동안에 토종작물의 74%가 집중적으로 멸종된 기간이었음이 드러났다. 100여 년 전인 1890년에 미국의 최대 육종업체인 뉴욕 피터 핸더슨 회사에서 배재학당 등 기독교 재단학교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까지 우리의 잔디씨를 인천항을 통해 소쿠리째 실어 내갔으며 개량을 거듭한 끝에 정원이나 야구장, 축구장, 테니스장, 골프장에 심는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금잔디를 만든 것을 비롯하여 1970년대 중반에 미국의 식물학자들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허락 하에 전국의 산야를 1년여에 걸쳐 샅샅이 뒤져 261종에 달하는 우리의 식물들을 빼내 간 것도 종자 전쟁이었다. 그때 우리 정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반출에 최대한 예산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도 구상나무는 1917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부설 아놀드 수목원의 직원이 미국으로 가져가 지금까지 15개 품종으로 개량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흔히 태극기가 중국의 태극도설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학설입니다. 중국에서 주렴계가 태극도설을 발표하기 약 400년 전부터 우리는 이 도형을 신비의 부호로 국가기관이나 개인이 쓰고 있었다는 것이 여러 가지 역사적인 유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주렴계가 처음으로 태극도설을 발표한 것은 송나라 신종 때의 희령 초기로서 우리나라 고려 문종 24년경에 해당하며, 서기 1070년경입니다. 그런데 1959년 12월에 국립박물관에서 발굴한 신라시대의 절인 감은사 장대석에 새겨진 태극도형은 당나라 개요 2년인 서기 682년(감은사 준공년도)으로서 주렴계가 태극도설을 처음 발표한 시기보다 388년이 앞서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정주학의 수입은 서기 1314년인데 그보다도 170년을 앞선 서기 1144년에도 태극 도형이 발견되었으니 고려 인종 갑자년에 죽은 호부상서 검교태위 허재의 석관 천판天板무늬 한가운데에 새겨진 태극 도형입니다. 이 석관은 일본 강점기에 고려자기를 발굴할 목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고분들을 캐내던 일본 도굴대가 발굴한 것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