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백영춘의 절규,하늘이 내 눈은 가져가도 소리는 못 가져가요.라는 제목의 글, 즉 그가 지켜오고 있는 재담소리의 열정을 이야기 하였다. 장대장타령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흥청망청 즐기다가 몽땅 날려 버린 장대장이란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무당(巫堂)이었던 그의 아내와 점쟁이 허봉사의 이야기가 익살스럽다는 이야기, 일제강점기 때는 박춘재였으나 지금은 백영춘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그러나 백영춘은 당뇨의 합병증으로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수술을 한다면 약간의 시력 회복이 가능하나 6개월간은 일체의 소리나 공연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는 이를 거부하였고, 그 후, 신부전증으로 주 3회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극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진짜 봉사가 그 역을 맡아서 해야 하는 법이라며 자신이 잃어가고 있는 시력을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는 이야기, 여류명창 최영숙이 백영춘을 모시기로 마음먹고 선생님의 눈이 되고 사지가 되어 평생토록 그분을 보필하며 살겠다는 결심 아래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느 때이고 일어나면 그 때가 아침이고 그때부터 소리를 하게 되는데 그에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 말 가무연구회의 자체발표회나 흥행 공연에서 산타령을 불렀던 이창배와 정득만(鄭得晩)을 소개하였다. 정득만은 선소리 산타령이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최초의 예능 보유자 5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벽파 이창배와 함께 80년대 초반까지 경서도 소리의 중흥을 위해 애쓴 명창이라는 이야기, 20세 이후, 문세근과 최경식에게 배웠으며 맑고 높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특히 사설지름시조를 비롯해 12잡가 중 유산가, 소춘향가, 제비가와 노랫가락, 건드렁타령, 금강산타령, 풍등가 등을 잘 불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창법 중, 조르는 목은 누가 흉내를 내지 못했으며 강약이 분명해서 맛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이야기, 아끼는 제자가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찾아가 지도해 줄 정도로 경기소리의 내일을 걱정했던 명창이었다는 이야기, 정득만이 부르던 산타령은 과천패의 모갑이 소완준이 전해준 산타령이며 합창으로 부르는 경우, 가사나 가락, 장단, 시김새가 서로 다르게 전해오고 있는데, 이를 인지한 벽파 이창배는 사설만이라도 통일시키기 위해 《가요집성》을 저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벽파 이창배가 지은 《가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