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그동안 직계 후손이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유공자 이석영 선생의 서거 88년 만에 직계 후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이석영의 장남인 이규준 선생은 온숙ㆍ숙온ㆍ우숙 세 딸을 뒀고, 그 세 딸의 자녀 가운데 10명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후손 확인은 지난해 7월에 이석영 선생의 외증손녀이자 장남 이규준 선생의 외손녀라고 주장하는 최광희ㆍ김용애(이하, ‘후손 신청인’) 씨의 언론사 대담과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신청(2021.8.2)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후손 신청인의 제적부에 기재된 조부모 이름이 선생의 장남(이규준)과 일치하지 않아 후손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에, 지난 1967년 10월 14일 자 언론에 보도된 기사(대만에 살던 이우숙 씨 관련)를 바탕으로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대표부에 협조를 구해 대만 사는 ‘이우숙’의 대만 호적등기부와 자녀 관계, 연락처 등을 확보하였다. 확보한 ‘이우숙’의 대만 호적등기부 ‘부모’란에 선생의 장남과 며느리, ‘이규준, 한 씨’가 기재된 사실을 통해 선생의 직계 후손을 처음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대만 거주 후손과 국내 ‘후손 신청인’과의 관계규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돕는 사업으로 나라사랑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자생의료재단(명예이사장 신준식)에 감사패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감사패 수여식은 16일(수) 오전 11:30, 자생한방병원(서울 강남구)에서 진행됐으며,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하며 그동안의 독립유공자 복지증진 사업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생의료재단은 독립유공자의 헌신에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함께 의료지원ㆍ교육지원ㆍ주거지원 사업 등을 통해 나라사랑을 지속해서 실천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2월 국가보훈처와 ‘생존 애국지사 한방주치의’ 업무협약을 맺고 자생한방병원장이 직접 생존 애국지사 자택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침 치료, 한약 처방 등 의료서비스를 제공했고, 지난해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 100명에게 1인당 300만 원 상당의 한방 의료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2019년부터는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업무협약을 맺어 해마다 100명의 고등학생을 뽑아 1인당 100만 원의 장학금을 주는 교육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울러, 나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은 스물일곱 청년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숨을 거둔지 77주기를 맞는 날이다. 어제(16일) 저녁 6시 30분,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 본관 3층 다목적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육첩방의 시인> 행사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모두 2부로 구성했는데 1부는 윤동주의 마지막 유학시절을 보냈던 교토를 중심으로 만든 손장희 감독의 다큐영화 <타카하라(高原)> 상영이 있었고 2부에는 다큐영화를 만든 손장희 감독과 심원섭 (와세다대학 교수 역임) 교수의 대담 그리고 참석자들과의 질의 문답 시간이 있었다. 입춘이 지나 한동안 푹하던 날씨가 어제는 갑자기 영하 10도로 떨어져 몸을 움츠리게 하는 가운데 열린 윤동주 77주기 추모회 모임에서 사회를 맡은 심원섭 교수는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후쿠오카 형무소의 추위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는 말로 이날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후쿠오카 형무소, 추위, 돌아갈 수 없는 북간도 고향, 어머니, 도시샤 대학, 다카하라 하숙집, 가모가와강변, 정든 친구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기자는 유달리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던 윤동주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월북작가인 박팔양(1905~1988)시인은 한국 사회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작가의 시집을 지난해 번역하는가 하면 올해는 이 작가에 대한 연구발표의 시간을 갖는 등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어 주목된다. 박팔양 시인의 시집인 《여수시초(麗水詩抄》는 2021년 8월 15일,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75)씨에 의해 일본 오사카에서 일본어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시집을 번역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시집 《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일본 도쿄. 2015)을 일본어로 완역, 출간하여 일본 사회에서는 꽤 알려진 문단의 중견 시인이다. 그런 우에노 미야코 시인이 지난 2월 13일(일), 교토에서 다시 한 번 ‘박팔양 시인’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우에노 시인이 이번에 발표한 주제는 <박팔양 여수시초 – 한 자루의 펜과 다채로운 면모(朴八洋 麗水詩抄 - 一本のペンと多彩な面差し)>라는 내용으로 이날 발표는 ‘청구문고연구회(靑丘文庫硏究會)’가 주최하였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로 비대면 ZOOM으로 진행되었다. 청구문고연구회가 다루는 주제는 일본의 근·현대사 및 한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제103돌을 맞는 3.1만세운동과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이하여 오는 2월 28일(월) 3.1절 전야 문진오 서사 콘서트 “독립운동가의 노래”가 열린다. 이번 콘서트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를 담아 ‘천도교 중앙 대교당’에서 만날 수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주관으로 191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21년에 완공되어 지난해에 건립 100주년을 맞이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이기도 하다. 건립 당시 교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공사비로 충당하였고, 공사비 일부가 3·1만세운동 자금으로 쓰여 완공이 늦어지기도 하였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김구 선생이 환국한 뒤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천도교가 없었다면 중앙대교당이 없고, 중앙대교당이 없었다면 상해임시정부가 없고, 상해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도 없었을 것이외다.”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3.1만세운동 뿐만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집회를 열고 독립을 꿈꿨다. 그때 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안 의사는 1909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원동보(遠東報)〉를 통해 이등박문이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의 대장대신(大藏大臣)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기 위하여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쯤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했다. 이등박문을 처단한 직후 안중근 의사는 코레아우라(대한만세)를 삼창하고 곧바로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안 의사는 체포된 뒤 일본 검찰관 미조부치에게 심문을 받으면서 자신은 대한국 의병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등박문을 처단했으며 그 동기가 이등박문의 죄악 15개조 임을 당당히 밝혔다. 안중근 의사가 밝힌 이등박문 처단에 대한 15가지 죄목은 다음과 같다. ①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② 고종을 폐위시킨 죄 ③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④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⑤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⑥ 철도, 광산, 산림을 강제로 빼앗은 죄 ⑦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⑧ 군대를 해산 한 죄 ⑨ 교육을 방해 한죄 ⑩ 한국인 외국유학을 금지한 죄 ⑪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⑫ 한국인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월 8일, 한국인에게 이 날을 물으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2.8도쿄독립선언’을 말할 것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지 9년이 되던 해인 1919년 2월 8일, 일본 수도 도쿄에서는 조선인 유학생들의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2.8도쿄독립선언’이다.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103년 전 1919년 2월 8일, 조선으로서는 적국(敵國)의 수도인 도쿄에서 일어난 조선청년들의 투지에 찬 함성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침략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은 사람들에게는 ‘2.8도쿄독립선언’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오희옥 지사다. “어제(2월 8일)어머님과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2.8도쿄독립선언이 있던 날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갑자기 태극기를 달라고 하시더니 몇차례 흔드시며 독립만세를 어눌하지만 크게 외치셨습니다.” 이는 오희옥 지사님의 아들인 김흥태 선생이 전해온 소식이다. 병상에 계시지만 오미크론 확산 세가 빠르게 퍼지고 있어서 몇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는 2월 16일(수)은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지 77주기를 맞는 날이다. “스물일곱 청년 시인 윤동주는 도시샤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모국어(한국어)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으로 잡혀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의 차디찬 감옥에서 옥사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 윤동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한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4) 시인의 말- 스물일곱 청년 윤동주(1917-1945) 시인, 그는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 일본땅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해마다 그가 숨진 날이 돌아오면 명치끝이 아려온다. 누가 왜, 그를 우리 곁에서 데려간 것일까? 윤동주 시인의 죽음과 식민침략의 역사는 영원히 분리할 수 없는 악연일 수 밖에 없다. 윤동주 서거 77주기를 앞두고 윤동주를 기리는 영화 『高原타카하라』가 인천의 한국근대문학관 3층 다목적실에서 상영된다. 이 영화는 윤동주 시인의 교토 유학시절 하숙집이 있던 다카하라에 세워진 일본의 교토조형예술대학(京都造形藝術大學)에 다니던 손장희 씨가 만든 영화다. 손장희 씨는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니가타현에 속하는 사도섬(新潟県 佐渡島)을 알게 된 것은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소설인 《산쇼다유(山椒大夫)》를 통해서다. 《산쇼다유》는 헤이안시대(794~1185) 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사회 혼란기를 틈타 인신매매로 가족이 흩어지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인기리에 방영되는 바람에 근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도섬(佐渡島)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근대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사도는 그 옛날, 발해국 사신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에 건너온 기록 등 우리와도 관련이 깊은 땅이다. 《속일본기(續日本紀)》 권제18, 천평승보 4년(752년)조에 “발해사보국대장군모시몽 등 75인이 도착했다.(渤海使輔国大将軍慕施蒙ら75人が着く)” 라는 기록이 있다. 발해국에서 일본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사도섬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로 접어들면 사도섬은 유배지로 전락하게 된다. “승구 3년 (1221), 승구의 난으로 순덕상황이 사도로 유배되었다(承久の乱、順徳上皇が佐渡に流される)” 라는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일왕의 아버지인 상왕조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도쿄)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한국인 유학생 6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결의문을 배포한 ‘2·8독립선언’의 고귀한 업적과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 103주년 기념식’이 오는 8일(화) 오전 11시, 일본 도쿄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YMCA) 한국문화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기념식은 재일본한국와이엠시에이(이사장 정순엽) 주관으로 열리며, 독립유공자 후손, 재일단체 관계자, 유학생 대표, 교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다. 이번 행사는 국민의례, 기념사, 성경봉독, 2‧8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된다. 이남우 보훈처 차장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영상으로 대신한 기념사를 통해 “이번 기념식을 통해 자주독립의 꿈을 이어가게 했던 2·8독립선언의 정신을 되새겨,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와 도전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힐 예정이다. 한편, 2·8 독립선언은 1919년 동경(도쿄) 한복판에서 재일 한인유학생이 조국독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