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26년 전인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11월 16일치 아사히신문이 크게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편지는 단순한 시해사건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이 궁궐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자백의 편지라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들이 왕비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은 당시 조선의 영사관보였던 호리구치 구마이치(1865~1945)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호리구치가 자신의 고향인 니가타현 나카도리무라(현 나가오카시)에 사는 친한 친구이자 한학자인 타케이시 사다마츠에게 1894년 11월 17일자로부터 사건 직후인 1895년 10월 18일자까지 보낸 8통의 편지다. 이 편지 가운데 여섯 번째가 명성황후 시해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자다. 이 편지에는 사건 현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진입은 내가 맡았다. 궁궐 담장을 넘어 황후침전에서 왕비를 시해했다’ 라고 하면서 '생각보다 시해가 간단해 매우 놀랐다'라는 느낌까지 적고 있다. 편지에서 밝힌 이른바 ‘왕비 시해 그룹’은 일본 외교관, 경찰, 민간인 등이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 편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을 기리고 그분들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억하기 위한‘제82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오는 17일(수) 오전 10시, 독립기념관(겨레의 큰마당)에서 거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념식은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 가운데,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주요인사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 ‘또 하나의 별을 노래하자’ : 독립운동가이자 저항 시인인 이육사 선생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착안한 것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수많은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이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비추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순국선열 한 분 한 분의 유업을 본받아 이어 나가자는 다짐을 표현함 특히, 올해 기념식은 국민의 뜻으로 모아 건립된 독립기념관 겨레의 큰마당에서 ‘순국선열의 날’ 정부 기념식으로는 처음으로 개최된다. 기념식은 독립기념관 내 추모의 자리에서 참배로 시작되며, 본식에서는 국민의례, 여는 영상, 여는 공연, 독립유공자 포상, 기념사, 헌정공연(추모연주 영상, 추념문 낭독, 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 안동대학교 인문대학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하여 경북지역 여성들의 항일투쟁기를 주제로 모두 6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3편은 영화 ‘암살’에서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걸 ‘안옥윤’ 역할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지사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여성들은 대부분 한인 사회의 안정과 같은 후방기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남성들과 함께 항일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활약한 여성들도 존재했다. 남자현 지사가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한 실제 주인공이었다. 남자현 지사는 영양남씨의 후손으로 1872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남정한(南珽漢)과 진성이씨 사이에서 막내였다. 의성김씨 김영주(金永周, 1871~1896)와 혼인하였다. 남자현 지사가 주체적으로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함께 가족의 비극적인 환경이 함께 작용하였다. 혼인하고 5년 밖에 안 된 1896년, 항일 의병 활동을 펼치던 남편 김영주가 전사하는 비극을 맞았다. 남편의 죽음 이후 생계를 맡아 시부모를 봉양하고 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1월, 일본의 전통 행사인 ‘시치고상(七五三)’ 풍습을 볼 수 있는 달이다. 예전에는 11월 15일에 ‘시치고상(七五三)’ 행사를 했으나 요즈음은 ‘10월부터 11월 사이에 형편이 좋은 날’을 잡아 행사를 치르는 이들이 많다. 시치고상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일본 어린이들을 위한 신사참배 날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에는 한국 아이들처럼 돌잔치가 없다. 그 대신 시치고상을 신사에 가서 치른다. 말 그대로 3살, 5살,7살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전통 옷을 입혀 신사 참배를 시킨다. 이 무렵이 되면 시치고상을 위해 어린아이들에게 입힐 기모노를 파는 가게, 머리 손질을 해주는 미용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등이 분주해진다. 시치고상은 남자아이의 경우 3살과 5살 때 여자아이는 3살과 7살이 되는 해에 치룬다. 이러한 풍습은 어린아이들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비는 일생의 통과의례 행사인 것이다. 유래는 1681년 도쿠가와 집안의 5대 장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川綱吉)의 장남 도쿠가와 도쿠마츠(川松)의 건강을 빌기 위해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신사에서 시치고상 의식을 치른 아이들은 손에 ‘치토세아메(千歲飴)’를 하나씩 받아 드는데 이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어제(9일) 낮 2시부터 용인시청 국제회의실(문화예술원 3층)에서는 아주 뜻깊은 학술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앞두고 신흥무관학교 개교 110주년 기념 ‘신흥무관학교에서 활약한 용인 사람들’ 이란 주제의 학술 발표였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용인문화원 주최,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학연구소 주관, 경기도 및 경기문화재단 후원으로 이뤄졌다. 제1주제는 여준과 신흥무관학교 (박성순, 단국대 교수), 제2주제는 오광선의 신흥무관학교와 만주 독립군 활동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 제3주제는 김공집의 신흥무관학교 활동과 독립운동(박환 수원대 교수), 제4주제는 이영선의 신흥무관학교와 신흥학우단 활동(김태근 용인학연구소장)의 발표가 있었다.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진행은 김용달(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맡았고, 김병기(광복회 학술원 원장), 박숙현(용인신문 대표), 이은성(용인학연구소 연구위원), 한동민(수원박물관장) 등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첫번째 발표에서 박성순 교수는 “여준(1862~1932)은 독립운동사에서 일군 크나큰 공적에 견주어 학술적 연구가 매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격렬한 투쟁성을 지녔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무너지기 전부터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전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만주 등지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 항쟁으로 발전하는 등 해방되기까지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의 맥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의열투쟁이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일어난 무력적 투쟁이다. 이러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된 의열투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자행한 테러와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 1884~1928) 의사(義士)는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다. 그는 팔련오계(八蓮五桂)로 유명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 숙부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1845~1914)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김병황은 당시 한학자로서 명망이 높았고, 의병이 일어날 당시 풍산김씨 문중을 대표하여 의병을 지원하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울긋불긋 단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단풍이라 하면 일본도 그 어디에 뒤지지 않을 만큼 명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면 앞다투어 단풍 명소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 코요 월커 플러스(koyo.walkerplus)의 경우에는 단풍명소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1)지역 중심으로 찾기 2)전국 단풍 랭킹으로 찾기 3)지금 가장 볼만한 명소로 찾기 4) 가까운 시일내에 볼만한 곳으로 찾기 5) 지난해 11월, 아름다웠던 곳으로 찾기 등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전국단풍명소랭킹’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랭킹 1위는 도쿄 다치가와시(立川市)에 자리하고 있는 국영소화기념공원(国営昭和記念公園)이다. 이 공원은 소화(昭和)왕 재위 중인 1983년에 설립한 공원으로 ‘보고, 놀고, 먹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으며 4계절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공원 안에는 소화천황기념관도 조성되어 있다. 2위는 기후현 다카야마시(岐阜県高山市)에 있는 히다미노개울가도(飛騨美濃せせらぎ街道)이다. 히다미노지역은 64km 길이의 드라이브 코스로 참나무, 너도밤나무, 낙엽송 등 활엽수가 황금색으로 변하는 광경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0월 28일 “기암 이중업의 학문과 독립 활동”의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 행사는 지역의 숨은 역사 인물들의 삶과 학문을 재발견하기 위해 안동시의 지원으로 매년 개최되는 역사인물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금년은 문봉 정유일 학술대회에 이은 두 번째이다. 기암 이중업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경술국치 후 일제의 통치를 항거하며 단식을 시작한지 24일 만에 순국한 향산 이만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5년 아버지가 을미의병을 일으키자 격문을 지어 독립운동을 확산시켰으며 향산의 아우인 유천 이만규와 함께 유림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올해는 기암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학술대회에서는 기암 이중업의 학문과 독립 운동뿐만 아니라 향산의 아우인 유천 이만규의 학문과 독립 운동 및 일가의 독립 활동에 대한 주제로 심도 있는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였다. 3대 문과 급제 3대 독립운동 가문 퇴계선생을 잇는 기암 이중업의 가문은 증조 이가순(1768-1844), 조 이휘준에 이어 부 향산 이만도까지 3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한 명문 가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과 한국의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인상 깊은 것 하나를 들라하면 ‘결혼한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르는 법 제도’이다. 일본은 예컨대 다나카(田中) 성씨의 여성이 나카무라(中村) 성씨의 남성과 결혼을 하면 나카무라(中村)로 바꾸는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자녀가 태어나면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그러니까 남편의 성씨를 부인과 아이들이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김(金)씨 성의 여성이 이(李)씨 성의 남성과 결혼하더라도 성씨는 변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볼 때 이러한 한국 여성들의 ‘고유 성씨 유지’가 어떻게 비쳐질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 해답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일본에 있을 때 이름하여 ‘부부별성제도(夫婦別姓制度)’라는 주제의 티브이 토론을 종종 목격한 적이 있다. 부부별성제도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결혼 전까지 사용하던 성씨를 남편 성으로 바꿈으로써 야기되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웃나라인 한국 여성들은 부부가 각각의 성씨를 쓰지 않는가?” 라는 주장을 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부부가 각각의 성씨를 쓰면 가족 구성원 간의 결속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 안동대학교 인문대학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하여 경북지역 여성들의 항일투쟁기를 주제로 총6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2편은 1910년대 만주로 건너가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시기를 조명한다.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남편을 따라 일가족과 함께 고난의 길에 동참한 여성들은 종속적인 삶을 살았던 전근대 여성의 모습을 넘어 주체적으로 만주의 한인 사회를 안정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들이야말로 만주 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0년대 만주에 정착한 독립운동가들은 군대를 양성하여 일본과 전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따라서 전쟁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를 위해, 첫째 만주 지역 동포 사회의 경제적인 안정, 둘째 독립 운동의 근거지가 될 자치기구 조직, 셋째 민족교육기관의 설치와 교육 활동, 넷째 군사양성시설인 병영의 설치를 주도했다. 이들 활동에 여성들 역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첫째, 만주지역 동포사회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였다. 특히 생존의 근간이 될 안정적인 농업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