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큰보름달 (경기도 고양시에서 저녁 7시무렵 찍은 달)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가위 큰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높고 밝은 저 달을 바라다 보면 무슨 소원들을 빌까? 궁금하다. 달은 지구의 주위를 27.3217일 주기로 자전한다. 그런데, 달은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언제나 같은 면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보는 달 속의 옥토끼 형상도 지난 달 보았던 그 모습이고, 지난해 보았던 그 면이다. 수십 년 수백 년 지구에서는 항상 똑같은 면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태양계의 많은 행성들이 지구처럼 위성을 가지고 있지만, 신비하게도 행성을 돌고 있는 위성들은 대부분 달처럼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다고 한다. 한편, 달은 지구의 주변을 완전히 원형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타원형으로 돌기 때문에 타원의 위치에 따라 때로는 우리 지구에 가까이 왔다가 때로는 멀리 갔다가 한다. 그래서 가까이 올 때는 큰달이 되고, 멀리가면 작은 달이 된다. 마치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어 줄에 매달고 공중애서 돌리면 그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이 되는 것 같다. 올해 한가위 보름달은 달의 타원공전궤도상 지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게 되어 어
100세 주인공 어머니의 100세 장수를 축하해주는 딸들 딸들과 함께 한 백세 주인공 그동안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딸들의 절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들의 절을 받는 백세주인공 자손들과 함께 한 백세주인공 증손자 증손녀들의 재롱잔치 80이 넘은 딸과 증손자들의 춤 손녀와 손녀사위가 함께 부르는 감사의 노래 즐거워하는 주인공과 딸들 감사의 노래에 즐거워하는 주인공 지나간 한 많은 세월도 다 잊고 즐거워하는 주인공 자손들의 재롱잔치에 답하는 주인공.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역경과 함께하는 것이다. 누구나 오래살고 풍족하게 살고 멋지게 살고싶은 마음이야 다 있지만, 그것은 다 욕심에 속하는 것이고, 그 중에 하나라도 누리면서 살기는 쉽지가 않다. 태어날 때는 누구나 핏덩이로 연약하지만, 2~3살이면 귀엽고 예쁘기 그지 없으며, 7~8살이면 미운짓을 하다가 15~6살이 되면 말썽을 부리기 일쑤이고, 20~30이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또 다른 인생길에 접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삶을 살기위한 과정일뿐, 그것으로 인생의 행복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때부
노부부의 동행길에 가을이 깊어갑니다. 고개숙인 벼이삭들 들깨도 익어갑니다. 터널같은 하우스에주렁주렁수세미 열매도 익어갑니다. 기침, 폐에 좋다는 수세미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산골짜기의 작은 논 밭에도 가을이 깊어갑니다. 오곡 백과가 가을의 결실을 향하여 하루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시작되면 언제나 올해가끝이날까 싶고, 365일그 길이 멀어보이지만, 어느덧 하루 하루가 쌓여서1년의 절반을 넘어 계절은 1년의 종착점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음을 들녘의 곡식을 보면서 새삼 느낍니다. 올해도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한민족의 한가위만은 풍성하고 즐겁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미황사 일주문 일주문 기둥에 수호신으로 들어서있는 청룡 대웅전을 향해서 오르는 백팔계단 달마대사상 달마산에 기대어 들어선 대웅전 외부단청이 벗겨진 대웅보전 외부 대웅보전 안에 모셔진 삼존불 부처님 위에 매달린 닷집 대들보에 그려진 부처님들 완전히 퇴락산 단청. 거의 백골집과 같다 대웅보전의 추녀에 매달인 풍경 대웅전 초석에 그려진 바다거북과 연꽃잎 대웅전 주변의 담장위에 동자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해남군에서 진도대교를 넘어가 진도의 이곳 저곳을 돌아본 후, 다시 진도대교를 넘어서 해남땅으로 나왔다. 해남은 육지의 최남단이라 하여 땅끝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진도대교는 해남의 땅끝마을로 내려가지 전해남군의 서쪽지점에 있는 것이기에, 진도를 돌아본 후 진도대교를 넘어서 해남으로 나와서 해남의 남쪽으로 한참을 가야 땅끝마을로 내려간다. 달마산은 그 땅끝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한참을 가야 있으며, 미황사는 달마산의 서쪽면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산중턱임에도 자동차 길이 잘닦여 일주문 앞까지 차로 갈 수 있기에 진도대교를 넘어온 뒤 50여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 거리는 꽤 먼거리이기에 진도 향토문화회관에서 나와서 1시간 정도 달려
진도읍 향토문화회관 전경 역광으로 본 진도향토문화회관 향토문화회관 로비 진도군 국악예술단원들의 공연모습 신명나게 북을 치는 고수 신명나게 꽹과리를 치는 고수 장고의 흥에 몰입하는 장구잽이 비나리 공연 모든 이들의 소원을 다 들어줄 것 같은 소리로 한을 풀어준다 옛날에는 저렇게 살았는데...한데 어우러져 춤추는 무용수들 신명나게 놀아보자 !!! [한국문화신문=최우성기자] 무더운 삼복더위에 진도를 2박 3일동안 발바닥이 달토록 다녔다. 예향으로 이름 있는 진도는 내노라는 소릿꾼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그래서 웬만한 소릿꾼도 진도에 가서 소리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농촌의 밭매는 동네 아낙네도 일하다 지치면 당장에 일어나 들노래 한곡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진도가 아닌가. 그런 진도에는 읍내에 진도향토문화회관이 번듯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는 토요일이면 오후 2시부터 2시간에 걸쳐 진도군 예술단원과 초빙된 예술가들이 멋진공연을 펼친다. 이를 보기 위해 우리는 공연시간에 맞추어 부지런히 이곳 저곳을 돌아보고, 점심까지 먹은 뒤에 진도향토문화회관에 들러 마지막으로 진도의 멋을 마음껏느껴보기로 하였다. 인구는 얼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 있는 배중손장군 사당 전경 다른 각도에서 본 배중손장군 사당전경 배중손 장군 사당의 정면(동상 사당 출입문 그리고 비석이 있다.) 사당 앞에는 잡초들이 수북하다. 담장 안에는 잡초만이 수북하다. 배중손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 담장 밖에 있다. 배중손장군의 동상 결사의 항전을 외치는 배중손장군 [한국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진도 답사를 하는 동안 진도의 구석 구석많은 문화유적을 보았다. 처음 시작은 울돌목 명량해전의 현장과 벽파진이순신장군의 전적비로 시작한 진도의 역사여행은 참혹한 전쟁의 상처로 안타깝기도 하였고, 또한 긍지를 느끼기에도 충분하였다. 고려 중기에 당시 세계최강의 몽골군대에 여러 차례에 걸쳐 결사항전을 하였고, 중앙 정부는 항복한 상황에서도 삼별초를 중심으로한 장병들의 항전 또한 세계역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삼별초는 강화도의 임시도성이 함락하자 1,000여척의 배에 병사들과 유민들을 싣고서 1,500리 뱃길을 통하여 이곳 진도까지 내려와 또 다시 몽골에 항전할 뜻을 품고, 용장산성에 행궁을 지었다. 이후 한동안 남해지방의 세금을 거두어 장병을훈련시켜본토회복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으나
길상사 대문 앞에서 길상사 대웅전 꽃무릇-1 꽃무릇-2 꽃무릇-3 꽃무릇-4 꽃무릇 상세 꽃무릇을 찍는 사진가 불탑에소원을 빌며...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해마다 무더운여름이 끝나가고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부는9월이 오면 땅속에 뿌리를 두고 있던 꽃무릇에서 새싹이 나온다. 그런데 그 싹은 잎이 아닌 연녹색의 꽃대로 딱딱한 땅을 뜷고올라와 정렬적인빨간색으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보통 식물들은 잎을 먼저 싹틔운 뒤에 꽃봉우리가 맺히고 꽃을 피우지만, 꽃무릇은 맨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꽃대에서 꽃을 피우고, 속절없이 그 꽃이 시들고 나면, 그 뒤에 땅속에서 또다시잎이 나온다. 그래서 잎과 꽃이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서로가 그리워만할 뿐 절대 만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여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뜻으로 상사화라고 한다. 한국에서 꽃무릇으로 유명한 절들은 전라남도 용천사, 불갑사가 있고, 전라북도에는 선운사가 있다. 이 절들은 절의 주변에 수천 수만평에 달하는 사찰주변이 온통 꽃무릇 천지가 되어 지금쯤 많은 사진가들이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번 주말이면 아마도 3개 사찰은 발디딜틈이 없을 것 같다. 비
남도석성 전경 석성 남문과 주변을 흐르는 개천 석성 밖 민가-1 민가-2 석성 밖에 있는 수군 만호들 공덕비 석성 안 관아건물. 본래 있던 석성안에는 주민들이 들어와서 살았다. 이후 주민들을 퇴거시키고 다시금 복원한 관아건물들. 석성안 관아건물들. 석성의 옹성 성안에서 본 성벽 성안 관아들과 어우러진 코스모스 성벽 위에서 본 성문과 성벽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남도진성은 사적 127호로 지정된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위치한 석성이다. 남도진성은 그 축성재료가 주변의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져있어 남도석성으로 불리우며고려시대 말기부터 출몰한 왜구들이조선 초기자주 출몰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한국의 남도에 있는섬들에 많은 성들을 쌓았는데, 이곳 진도에 있는 남도석성도 그 때 지어진 것으로, 왜구들의 침략시 대피시설로주민들을보호하고 군사들이 방어하기 위하여지어진 것으로 처음 축성은 세종 20년 이후로 알려져 있다. 남도석성의 둘레는 610m 이며, 그 폭은 3m정도이고 그 성벽의높이는 2.8~4.6m에 이른다. 성벽의남쪽에는 아래는 출입문을 두고 위에는 문루를 세웠고, 동측 서측 북측에는 옹성을 두었으나 남문 외에는문
▲ 구름이 띠를 두르고 있어 낙조를 보지 못할 것 같은 상황 ▲ 구름이 앞을 가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기다렸다. ▲ 바다로 떨어지기 전에 모습을 보여준 노을 빛 석양 ▲ 그나마 얼마나 반가운 해의 모습인지...!!! ▲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는 해.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진도에서의 두 번째 해를 보낸다. 첫 번째는 우수영에서 진도대교를 보고 떨어지는 해를 보았다. 울돌목은 이순신장군의 12척(대장선을 합해서 13척이라고도 함) 으로 330척의 왜선을 쳐부수고 이룩한 기적의 해전 현장이었고, 오늘은 진도의 남서쪽 반대쪽에 있는 세방낙조에서의 일몰이다. 우리나라 낙조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노을을 보게 되었다. 전망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전망대에 데크를 만들어 놓고, 바다쪽으로는 난간을 둘러 사고에 대한 방지를 해두었다.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일몰은 앞으로 툭 터진 바닷가에 말 그대로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널려있고, 그 섬들과 바다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부지런히 일몰을 보기 위해 도착한 세방낙조의 전망대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으나, 지는 해가 제 모습을 보여 주질 않고 앞에 구름으
세월호 희생자들의 고통을 짊어지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위로하는 리본들마저 이제 쓸쓸하기 그지 없다 희상자들을 추모하는 리본과 설치미술작품 그리고 꽃들 무심한 바다는 잔잔한 바다와 뭉개구름만 떠 있을뿐 그날의 아픔을 기억할까? 인적마저 쓸쓸해진 팽목항 방파제 위 한 사람이 등대쪽으로 걷고 있다. 팽목항의 비극을 파도와 리본으로 표현한 설치작품 이제 백골이 되어있을 희생자들을 잊을 수 없는 가족들. 쓸쓸해진 바닷가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팽목항에서 앞으로 보이는 섬들을 지나 맹골수로의 거센 물결이 치는 곳에 세월호가 있다는 안내판 오후 빛에 바닷바람을 맞아 펄럭이는 등대앞의 추모깃발들 무심히 보면 아름답기만 한 팽목항 방파제와 등대 그리고 하늘과 바다 방파제의 난간에 매달린 리본을 달고 있는 작은 풍경들 찾는 이 많지 않지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설치된 법당 피우지 못하고 산화한 단원고 희생자들의 작은 영정사진들. 그 앞에는 제단이 마련되어있고, 촛대와 과일들이 놓였다. 그리고 추모객들이 놓고간 각종 물건들이 즐비하다. 추모제단에 놓여진 그림, 그리움과 미안함을 그림으로 표현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