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 대웅전의 연등 ▲ 대웅전 앞 보제루 연등 ▲ 추녀 밑의 나부 ▲ 대웅보전 측면 ▲ 대웅보전 전경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역사의 고장 강화도. 강화도는 고조선시대 단군의 세아들이 쌓았다는 마니산에삼랑산성이 있다. 또 마니산의 꼭대기에는 참성단이 있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는 선조들이 스스로 하늘의 자손으로 스스로의 존재성을 자부심있게 지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였다. 우리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자각하고 살았던 시대는 고려시대로 끝이나고, 유학이 정치이념이 된조선에 들어서는 충과 효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제후국으로 만족하고 살았고, 감히 하늘에 제사라도 지내는 것은 큰나라 중국에 대한불손한 행동으로 알고 살았다.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참성단이 있고, 그 아래에는 삼랑산성이 있으며, 삼랑산성의 안에는 전등사가 자리하고 있다.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만큼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며, 그만큼 크고 당당한 행동을 하면서 살기 마련이다.전등사(傳燈寺)란 이름은 진리를 밝히는 등을 전한다는 뜻이다. 이 등은 석가모니 부처가 밝힌 진리의 등불일 것이니 등 중에서 가장 귀한 등으로삼랑성 참성단과도
길목을 지키는 노점아주머니 개나리 진달래가 함께 피어난 길목 호젓한 산길에는 청순한 진달래가 탐스럽게 피어났다. 진달래 처녀들.. 진달래에 감싸인 무덤들 진달래를 찾아 나선 탐방객들 햇볕에 빛나는 진달래 가녀린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한국문화신문 = 최우 성기자]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아니더라도 우리 겨레는 오랜 세월 진달래 꽃과 벗하며 살았다. 그런 우리 땅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봄이면 벚꽃(사쿠라)놀이로 어지럽다. 여기 우리의 오랜 벗 진달래 동산이 있어 소개한다. 강화도 고려산이 그곳이다.지난 주말에 찾은 진달래꽃 동산은찾는이가 많았지만 아직 조금 이른 시기라, 다음 주가 절정이 될 것 같다. 꽃도 한철이 있던가?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쯤 가보면 어떨까 싶다. 고려산은 산이 커서 하루 온종일 올라야한다. 산 중턱을 넘어 올라야 장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에는 영변약산, 남에는 강화 고려산 진달래 동산이 쌍벽이다.견줌은 통일이 되어야 할 수 있겠지만, 이만한 장관 다시 보기 어려운 고려산 진달래, 평생에 한 번은 가보아야 하지 않을까? 진달래 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
운조루 집 앞에서 본 지리산과 논 밭 운조루 전경 집 앞에는 명당수가 흐른다 솟을 대문 앞에 모인 사람들 솟을 대문.龍 虎라고 크게쓴 대문앞 글씨 운조루 사랑채와 마당 사랑채 정면. 앞에는 마당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배려한 무인 뒤주. 타인능해 곧 누구든 식량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 안채 안마당과 장독대 안채 뒷뜰과 담장 너머. 안채로 들어가는 쪽문 마을 입구 길에서 보면 나무들이 일차적으로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지리산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자리잡은 고택 운조루! 운조루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 한국의 몇 안되는 고택이다. 이 집은 임진왜란때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던 충신 서애 유성룡의 후손인 유이주가 1776년인 영조 52년에 상량한 집으로 어언 250년이 되어가는 집이다. 유이주의 본래 고향은 대구였으나, 경상도 지방은 평야가 적고 산이 많아 자신과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기 좋은 곳이면서도 또 전란의 피해도 없을 만한 곳을 찾아 다니다가 지금의 운조루터를 발견하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이 터를 발견하고 집터를 다듬으며 하늘이 자신을
▲ 진리를 위하여는 목숨도 기꺼이... ▲ 설산동자가 투신하는 모습 ▲ 마귀인 나찰이 기다리는 모습 [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한국의 사찰에는 벽화가 많이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절에 가 본 사람은유난히 한국의 사찰 건물 벽이 벽화로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 절에는 사찰의주요전각인 대웅전뿐 아니라, 여타 다른 전각들에도 건물의 안과 밖에 그림들이 빼곡하다. 그 그림들은 전각에 모신 부처나 보살과 관계 있는 이야기이고, 부처님이 설법했던 경전의 이야기거나,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중국이나 한국의 고승들의 일화들을 한폭 또는 여러폭의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또 주제는 같은 이야기이지만,사찰마다 벽화를 그린 화사(畵師)에 따라 다양하고 재치있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시대에 따라 유행하던 그림도 느껴볼 수 있다. 벽화 말고도 단청은 한국 절에 필수지만이웃 일본의 절에는 단청도 없고 벽화도 없다. 뿐만아니라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곳도 있고 있다해도 협시불 없이 불상만 달랑 모셔놓은 곳이 있어을씨년스럽끼까지 하다. 한편중국의 절에는 불보살상이 모셔진 전각의 내부에 들어가보면 더러 벽화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네 사찰에서처럼
[한국문화신문=최 우성 기자] 절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알리는데 꼭 필요한 불전 도구로 4물이 있다. 그 4가지 소리를 내는 음향도구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다. 그런데 탁발 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바랑속에 필수품이 목탁이다. 목탁은 본래 목어에서 유래한 것으로,물고기 형태를 간소화하여 만든 것이다. 목탁은아이들 머리통처럼 둥근 통에 손잡이를 달아서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에작은 방망이를두들겨서 소리를 낸다. 목어는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물고기'라는 뜻으로 그 원형은 '물고기'에 있다.목어가 만들어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옛날 중국에 큰 스님으로 유명한스님의 제자로 말썽만 부리고, 공부를 게을리하던 제자가 있었다. 제자는 공부를 게을리하고, 수행도 하지 않아 스승의 애를 태웠다. 그러자스승은 제자를 일깨우기 위하여 잠시 벌을 주어 그 말썽꾸러기 제자를물고기로 변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제자는 스승의 체벌에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처음 보는 물속 세상이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리되자벌을 주어 제자가참회하기를 바랐던 스승은 물고기가 된 제자에게더 큰 벌로 물고기 등에 나무가 자라게 하였다. 그리되자 물고기는 다니기도 어렵고
▲ 1.심우(尋牛): 소를 찾아 산속을 헤매는 장면 ▲ 2.견적(見跡): 산속에서 소가 지나간발자국을 발견함. ▲ 3. 견우(見牛): 동자가 멀리에 있는 소를발견함 ▲ 4. 득우(得牛): 힘겹게 소를 붙잡아 소코에 고삐를 꿰어 길들이는 모습 ▲ 5. 목우(牧牛): 거친소를 완전히 길들여 자연스럽게 놓아두어도 동자의 마음대로 됨 ▲ 6. 기우귀가(騎牛歸家): 길들인 소를 타고 동자가 한가롭게 집으로 돌아옴 ▲ 7. 망우존인(忘牛存人): 집에 돌아와서 보니 소는 간데 없고, 혼자만 남아있음. ▲ 8. 인우구망(人牛俱忘): 자기 자신도 잊어버림. ▲ 9.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임 ▲ 10. 입전수수(入廛垂手): 바랑과 지팡이를 들고 중생구제를 위하여속세로 나오는 모습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사찰의 벽화 가운데서 가장 많이 그려지는 벽화가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이다. 본래 십우도는 불교의 선종에서 자신의 본성을 소에 비유하여 그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중 그 수행의 단계별로나타난 깨달음의 경지를 소를 찾아 길들이고 돌아오는 과정에 비유하여 그린 선종화의
▲ 빈두설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전남 강진 백련사 대웅전벽화 [한국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이 이야기는 빈두설경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어떤 사람이 들판에 나가서 놀다가 미쳐 날뛰는 코끼리 한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놀라서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다가 코끼리를 피하기 위하여 들판에 있던 옛 우물터로 뛰어들었다. 우물 안에서 그는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한동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숨을 돌리고 보니그곳에는 또 다른 적이 있었다. 우물 바닥네 구석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우물 한 복판에는 무서운 독룡이 독기를 내품고 있는 것이었다. 위에서는미친 코끼리가 내려다 보고 있고, 밑에서는 독룡과 뱀이 혀를 날름거리니,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나그네는 등나무 넝쿨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흰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서로 번갈아 그 나그네가 붙잡고 있는등나무 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머리 위의 큰 나뭇가지에는 몇 마리의 꿀벌들이 꿀을 따다 나르고 있었다. 그 꿀벌의 집에서는 그때마다 꿀이 한방울씩떨어져서 지친 나그네의 입안으로 똑똑 떨어져들어 갔다. 그는 절체절명의 힘든 상황에서도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위 사진은 의정부 도봉산 원효사의 천연 동굴 나한전에 있는 석상들이다. 한국의 사찰에 들러보면 많은 건축물들이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 이름들을 살펴보면 어떤 건물은○○전, 어떤 건물은○○각 이라 현판이 붙어있다. 이처럼 건물에도 건물 나름대로 위계가 있어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공간은 부처님을 모신 건물로 사찰의 규모에 따라건물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만, 그 이름만은 어느 건물이나 모두가○○전(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미륵전, 대적광전 등등)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아닌 보살상을 조각상으로 모신 건축물에도 역시○○전이라 하고 있는데이런 건물로는 관음전 문수전 보현전 원통전, 나한전등등이 있고,○○각이라 이름붙은 건물도 있는데, 이는 부처님과 보살이 아닌 사람의 형상을 모시거나, 아니면 부차적인 건물이다. 그 ○○각이라 이름하는 건물들을 살펴보면 삼성각, 칠성각, 산신각, 종각 등이 있다. 오늘 보는 의정부 원효사나한전은 불교에서 부처남이나 보살의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사람으로서는 많은 수련을 통하여 불보살의 버금가는 경
▲ 차탁에 놓여있는 찻잔들이 정겹다. ▲ 차탁에 놓여있는 찻잔들 ▲ 찻잔에 우려낸 차를 따르는 모습 ▲ 찻잔을 정리하는 중 ▲ 스님이 찻잔을 닦으시는 모습 ▲ 차담(차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장면)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스승 혜장스님으로부터 차를 배우고 다산 정약용선생이 자주 찾던 강진 백련사에서 백련사 주지스님으로부터 차를 대접받았다. 소박한 차탁은 본래 떡판으로 인절미를 쳐대던 넓적한 판자였다고 한다. 소박한 차탁을 사이에 두고, 아침일찍 스님께서 내려주시는 녹차 한 잔을 마시며, 차에 대한 이야기, 백련사와 초의선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정한 모습에 정성으로 내려주시는 시원한 차는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듯 청량감이 느껴졌다. 불교에서는 선사들의 선문답에 '차나한잔 마시고 가게'라는 말이 있다. 이를 끽다거(喫多去) 어려운 화두를 들고 인생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 끙끙대며 고민하다가스승을 찾아가 고민을 해결하고자, 심각한 표정으로 물으면, 스승은 편안한 얼굴로 끽다거 한다는 것이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3월 말, 남쪽 강진에서
▲ 계단과 뜰앞에 떨어진 동백꽃잎을 카메라에 담으며.. ▲ 한송이 빨간 동백 물확에 떠있고, ▲ 스님의 부도탑 주변에도 동백꽃잎은 떨어지고, ▲ 승탑과 주변에 떨어진 동백에 머리숙이고..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남쪽나라 강진의 백련사에 피어난 동백꽃. 겨울을 지나고 봄이오니 흐드러지게 피었던 동백이 이제는서서히 지고 있다. 강진 백련사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18년간 귀양와서 살았던 다산초당이 바로 옆에있다.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산길로 800m 떨어져 있다. 백련사는 다산을 통하여잊혀졌던 조선의 차맛을 다시금 되찾게 해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당시 다산이 귀양와서 있을 때, 이곳 백련사에는 혜장스님이 있었는데, 다산은 혜장스님을 통하여 조선의 차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곳 만덕산 주변에는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다. 서기 43년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지고 왔던 차가 자리잡아 토종으로 야생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들어서면서부터 선비들은 차를 마시는 대신 술을 마시기 좋아하게되면서 차는 한국인의 삶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리하여 사찰 이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