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금산 신안사 대광전(大光殿)」을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로 지정하였다. 「금산 신안사 대광전」의 건립연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2007년 해체수리 공사 때 발견한 상량문을 통해 중창(다시 지음, 1638년)과 중수(대대적인 보수, 1840년)된 것이 확인되었고, 2023년 주요 부재에 대한 연륜연대 분석*에서 1583년 부재가 다수 확인되어 대광전이 16세기에 처음 건립된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 기둥(2본), 보(2본), 평방(3본) 모두 7개 부재가 1583년 부재로 확인 대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맞배지붕이면서도 측면과 모서리에 공포*를 배치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공포의 구성과 장식 요소 등은 대광전의 첫 건립시기인 16세기의 건축적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 맞배지붕: 지붕면의 앞뒤로만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 * 공포 :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기둥 위에 설치하는 목조 * 다포 : 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리는 주심포와 달리,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형식 대광전 부재를 보면 일부 기둥에서 약간의 배흘림*이 보이고,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진주 남강 촉석루 일원」을 국가지정자연유산 명승으로 지정 예고한다. 「진주 남강 촉석루 일원」은 남강의 물길과 수직으로 솟은 암벽, 누정이 조화를 이루는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촉석루에서는 남강의 수경을 전경으로 개방된 조망이 형성되고, 남강변에서는 수면·자연암석·촉석루·성곽이 연달아 이어지며 입체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진주 남강 촉석루 일원」은 남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문인들이 시를 읊으며 서로 왕래하고 교류하며 경치를 즐기는 장소로 활용됐다. 하륜의 「진주촉석루기」를 비롯하여 이곡ㆍ이색ㆍ김일손 등 많은 문인의 시문과 제영(題詠)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촉석루에서는 사신과 빈객을 맞이하거나 연회ㆍ풍류가 이루어지는 등 오랜 누정문화가 이어져 왔다. * 제영(題詠): 시나 글을 지어 올림 또한 임진왜란 당시 남강과 절벽은 진주성전투에서 천연의 방어지형으로 기능하였으며,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김시민, 일본군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들어 순국한 논개 등 인물들의 이야기도 깃들어 있는 장소로, 역사적 공간으로서 값어치 또한 우수하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 여주시(시장 이충우)와 협력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ㆍ전시해 온 보물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驪州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을 본래 자리인 여주 고달사터(사적)로 이전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여주 고달사터 쌍사자 석등은 고려 전기(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쌍사자 석등의 사자가 대부분 서 있는 자세인 데 견줘, 이 석등의 사자는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특징적이며 고려의 창의적인 조형미가 돋보여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간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은 고달사지에서 넘어진 채로 발견된 뒤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겼으며*, 1959년 경복궁 내 경회루 앞에 옮겨 보관하던 것을 2003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지금까지 소장됐다. * 마을주민 보관 → 종로구 소재 동원예식장 후원(1958년) → 경복궁(1959년) → 국립중앙박물관(2003년) 국가유산청은 국립중앙박물관, 여주시와 협의를 거쳐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을 제자리로 이전하기로 했다. 올해 8월 국가유산위원회(건축문화유산분과) 심의를 마쳤으며, 고달사터에 대한 현장 정비와 국립중앙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