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도 해가 나긴 했지만 하늘엔 구름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는 비가 오기도 할 거라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날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하늘을 보며 마음에 쉼을 얻곤 합니다. 구름이 한두 조각 떠다니지만, 또 어떤 날은 크고 작은 구름이 한데 뭉쳐 큰 무리를 이루며 하늘을 덮을 듯 밀려올 때가 있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바로 이처럼 커다란 구름 모습을 나타내는 '떼구름'입니다. '떼구름'은 '떼'와 '구름'이 만난 말입니다. '떼'는 '무리'를 뜻하는 아주 살가운 우리말이지요. '양 떼', '오리 떼', '개미 떼'처럼 여럿이 모여 무리를 이룬 모습을 가리킬 때 씁니다. 말집(사전)에서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떼를 이룬 구름 《표준국어대사전》 커다랗게 무리 지어 있는 구름. 또는 무리 지어 모여드는 구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두 가지 풀이를 아울러 보면, '떼구름'은 낱낱이 흩어져 있지 않고 여럿이 한데 뭉쳐 있거나, 마치 큰 물결처럼 한꺼번에 몰려드는 구름 무리를 일컫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구름'이나 '비구름'이라고 부르는 구름들이 하늘을 뒤덮을 때, 그 모양새가 바로 '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가도 가도 왕십리’라는 말이 있지요? 글자 그대로의 뜻은 왕십리가 워낙 넓어 가도 가도 아직도 왕십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 조선 시대 왕십리란 한양 도성 동쪽 바깥쪽으로 십 리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을 말하였습니다. ‘성저십리(城底十里)’란 말이 있는데, 한양 도성 바깥으로 10리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저십리는 한양도성을 둘러싼 10리나 되는 넓은 지역을 말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에서 동쪽의 성저십리를 왕십리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외(城外)’라고 하지 않고 ‘성저(城底)’라고 하는 데서, 도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성 바깥 지역을 깔보는 심리가 들어간 것처럼 느껴지네요. 김소월의 시 <왕십리>에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라는 표현이 있지요? 시인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의 무력감도 표현한 것 같은데, 그래서 ‘가도 가도 왕십리’는 지리적으로 넓다는 뜻 말고도 삶의 지루함이나 계속 노력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 허탈함 등을 표현할 때도 쓰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에서는 ‘왕십리’가 다른 의미로 쓰이지요? 조선 초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도 하늘에는 구름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해와 어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쪽에는 곧 비를 뿌릴 듯 검은 낯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구름을 보며 그저 '희다', '검다' 또는 '비가 오겠다' 하고 생각하지만, 구름에도 저마다 다른 됨됨(성질)이 있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따뜻한구름'입니다. '따뜻한구름'이라니, 왠지 햇볕을 받아 따끈해진 구름을 말하는 것 같지요? 그런 느낌도 담겨 있지만, 이 말은 날씨 갈말(기상 용어)로서 좀 더 깊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따뜻한구름'을 '온도가 평균 이상으로 높은 구름'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높은 하늘은 기온이 낮아 춥습니다. 그래서 많은 구름이 물방울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얼음 알갱이(빙정)'들을 함께 품고 있지요. 하지만, '따뜻한구름'은 다릅니다. 이 구름은 구름을 이루는 모든 곳의 따뜻한 정도(온도)가 물이 어는 0도보다 높은 구름을 가리킵니다. 곧 얼음 알갱이 하나 없이 오롯이 작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날마다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구름입니다. 어떤 날은 솜사탕처럼 피어오르고, 어떤 날은 빗자루로 쓴 듯 흩어지기도 하죠. 오늘 우리가 함께 만날 토박이말은 하늘 낮은 곳에 뭉게뭉게 펼쳐지는 ‘두루마리구름’입니다. '두루마리구름'은 이름 그대로의 모습과 하늘의 됨새(상태)를 함께 알려주는 살가운 우리말입니다. 말집(사전)에서는 '두루마리구름'을 두 가지 모습으로 풀이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층층의 덩어리구름입니다. 하늘 낮은 곳(땅에서 2킬로미터 안팎)에 떠 있으면서, 두툼한 덩어리들이 층을 이루거나 줄지어 늘어선 모양을 하고 있지요. 주로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는데, 낮에는 뭉게뭉게 피어올라 뭉게구름(적운)처럼 보이다가도 저녁이 되면 스르르 옅어지기도 한답니다. 우리가 흔히 한자말로 '층적운(層積雲)'이라고 부르는 구름의 고운 토박이말 이름입니다. 둘째는 그 이름처럼 생긴 모양을 가리킵니다. 꼭 둥글게 만 롤빵이나 털실을 꼬아 감아 놓은 ‘두루마리’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때로는 아주 길고 둥근 막대기 모양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볼 때가 있는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날씨가 좋은 만큼, 책 한 권을 들고 밖에 나가 읽으면 그만한 호사가 없다.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참 좋은 벗이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일종의 성향이라, 옛날에도 책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다. 책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은가 하면,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동청소년문학기획팀 ‘마술연필’이 쓴 이 책,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책을 좋아했을까?》에는 옛사람 가운데 책을 유난히 아끼고 좋아했던 이들의 모습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책에 소개된 세종대왕, 신사임당, 유희춘, 허균, 김득신, 이덕무, 조신선, 정약용, 김구 가운데 ‘집을 도서관으로 만든 책 사냥꾼’, 유희춘의 이야기가 퍽 흥미롭다. 유희춘은 1513년 해남에서 태어나 간신들의 모함으로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미암일기》를 남긴 조선의 문인이다. 그는 학식이 높기로도 이름났지만, 한양의 으뜸 책 수집가로 더 유명했다. 한번 마음먹은 책은 조선 팔도를 뒤져서라도 손에 넣고 마는 집념이 있었다. 그가 모은 책은 대략 4천 권쯤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책 4천 권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을 강 시월의 저 강물 쓸쓸하구나 (달) 낙엽으로 용비늘 걸쳤으니 (빛) 하늘로 날아오름도 슬프다 (심) 높이 오른 용 뉘우침 있으니 (돌) ... 24.10.17. 불한시사 합작시 한가위도 지나고 찬 이슬 내리는 한로(寒露) 절(節)이다. 곧 이어질 절기는 만물이 스러지는 상강(霜降), 본격적으로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계절이다. 서릿발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초목(草木)을 시들게 하고, 단풍잎은 누렇게 물들다 흩날린다. 며칠째 내린 가을비가 기온을 낮추어, 산방(山房)에서는 한기가 더욱 사무친다. 상경한 김에 시우(詩友)들과 함께 양수리 벗을 찾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 나룻터를 이룬 섬두랫길을 따라, 따스한 햇살 속을 천천히 걸었다. 그곳 다산(茶山)의 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었기에, 그 운(韻)에 화답하여 동이문(東夷文, 漢文-한문의 근원은 갑골문 따라서 우리 겨레의 동이문이라고 생각한다.)으로 한 수를 지었다. 주역(周易)의 건괘(乾卦) 첫 효(爻)인 초구(初九)에 “잠룡(潛龍)이니 헛되이 쓰지 말라(勿用)” 하였고, 이어 둘째 효인 구이(九二)에는 “용이 밭에 나타난다(見龍在田)” 하였다. 셋째 효인 구삼(九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홍신자 씨가 1993년에 쓴 <푸나의 추억>이라는 책을 읽어 보았느냐고 미스 K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책은 읽어 보지 않았다고 한다. 푸나는 홍신자씨가 인도의 명상 철학자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어 머물렀던 도시 이름이다. 푸나는 인도의 서쪽 해안 도시 봄베이(1995년에 뭄바이로 이름이 바뀜) 근처에 있는데, 구글 지도에는 도시 이름이 푸네(Pune)로 표기되어 있다. K 교수는 <푸나의 추억> 책에 나온다고 말하면서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불교의 한 지파로서 탄트라(tantra)가 있다. 우리말로는 밀교(密敎)라고 번역된 탄트라는 절대자인 신(神)은 남성 원리를 나타내는 쉬바(shiva)와 여성 원리를 나타내는 샥티(shakti)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쉬바는 순수한 존재로서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진 로고스(logos)라고 볼 수 있다. 샥티는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에너지이며 자기실현의 기쁨과 사랑을 나타내는 에로스(eros)라고 볼 수 있다. 서양철학적으로 해석하면 쉬바와 샥티는 이성과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철학적으로 해석하면 절대자인 신이 양과 음의 양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아침 바람이 어제와는 다르다는 것이 살갗으로 느껴집니다. 조금 있으면 시린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런 날 잿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듯 묵직한 낯빛(표정)을 하고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조용한 설렘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바로 흰 눈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처럼 겨울 하늘의 느낌을 오롯이 품은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눈구름’입니다. ‘눈구름’은 그 이름 그대로 참 숨김없고 거짓없는 멋을 지닌 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이 말에는 두 가지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눈과 구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하늘에 흩어진 구름과 그 사이로 흩날리는 눈송이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낼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마치 그림이(화가)가 흰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겨울 바람빛(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더 낯익은 쓰임새로, ‘눈을 내리거나 머금은 구름’을 뜻합니다. 금방이라도 펑펑 함박눈을 쏟아낼 것처럼 잔뜩 물기를 머금어 짙은 회색빛을 띠는 구름을 떠올리면 꼭 맞습니다. 하늘에는 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을 하늘을 담뿍 담고 한들거리며 손을 흔드는 살사리꽃은 가을의 진수입니다. 살사리꽃은 코스모스의 우리나라식 표현이죠. 어렸을 적에는 코스모스가 지금보다 더 예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땐 내 키가 작아 코스모스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리고 있었거든요. 코스모스를 왜 코스모스라고 했을까요? Cosmos는 우주인데 말이지요. 그 명명의 이유는 생김새에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노란 수술 사이로 암술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 작은 암술 하나하나가 별 모양입니다. 별이 빼곡하게 들어있으니 그 자체가 우주인 셈이지요. 코스모스는 참 특이한 꽃입니다. 씨앗이 사방에 날려 아무데나 싹을 틔울 것 같은데도 꼭 길가에 열병하듯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사랑에 대한 열망이 커서인줄도 모릅니다. 가을입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코스모스가 지천이지요. 그 가녀린 몸짓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욱이 색색으로 치장한 하염없는 손짓을 받고 나면 더욱 그러하지요. 가을의 길목에서 만나는 코스모스는 너무나 청조하고 단아해서 벅찬 감동을 줍니다. 마치 우주의 축소판인 듯, 수많은 별을 품고 피어난 꽃잎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평화(平和)란 무엇일까?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극히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 사전에는 평화를 일러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평화란, 어떤 존재든 마땅히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극히 신성하고 인류사회에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한 지향점이며, 목적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렇지만 평화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평화는 진정 누가 만드는가?’라는 물음에는 모두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평화란 의미를 맑은 생수와 같고, 청정한 공기와 같은 것이며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모습에서,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동물들을 비추어 보면서 마냥 평화를 동경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들은 평화를 끊임없이 갈망(渴望)하고 살고는 있지만 사실 진정 평화롭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한 평화 속에 살고들 있다. “평화”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두 가지 축인 「평화의 근본이념(철학적ㆍ윤리적 기반)」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