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이 오기는 왔구나. 꽃들은 다 피어나고 잎들은 다 얇은 나들이옷을 입고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숨이다. 울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상한 전염병이 몸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머니까지 털어가니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지는 것인가? 사정이 딱한 분들도 점점 많아진다. 그런 분들 가운데는 울고 싶은 분들도 있다. 그런데 울지 말아야 한단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이 시인에게 울음을 주는 것은 외로움인 모양이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는 모양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위 시의 제목은 특이하게도 <수선화에게>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이다. 수선화를 보면 노랗고 생기있고 밝은 표정인데 거기서 외로움과 눈물을 본다. 과연 시인의 감수성은 다르구나. 그런데 요즈음 울고 싶은 것은 그런 외로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는 게 힘이 들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환향녀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끌려간 여자들도 많지만 끌려가기 전에 죽은 여자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우리가 ‘병자호란’이라고 간단하게 말하지만, 그 전쟁사를 미시적(微視的)으로 들여다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서에 보면 ‘포개진 시신들 사이로 젖먹이들이 어미를 찾아 기어다니며 울고 있다’라는 처참한 표현도 나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는 많은 왕족들과 고위관료 가족들이 피난 가 있었습니다. 인종은 이렇게 피난시켜놓고 뒤따라 강화도로 들어가려다가 청군에 의해 길이 막히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었지요. 청군이 강화도에 들어왔을 때, 강화도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 성리학의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사대부 여인들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에 보면 유인립의 아내는 끝까지 버티다가 청군이 총을 난사해 몸의 살이 다 뜯겨나갔지만 꼿꼿하게 선 채 넘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호선의 아내는 토굴 안에 숨어 있다가 적병이 불을 질렀는데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타죽었답니다.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어머니 얘기도 나옵니다. 청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저(長沮)ㆍ걸익(桀溺)이 나란히 밭을 갈고 있었는데, 공자가 지나가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를 묻게[問津]하였다. 장저가 “수레 고삐를 잡은 이는 누구요?” 하여, 자로가 “공구(孔丘)라고 합니다.” 하니, 장저가 “노나라 공구라는 사람이요?” 하여, 자로가 “맞습니다.” 하니, 장저가 “그는 나루터를 알 것이다.” 하였다. 다시 걸익에게 물으니 “당신은 누구요?” 하여, 자로가 “중유(仲由)라고 합니다.” 하니, “노나라 공자의 제자입니까?” 하여 그렇다고 하였다. 이에 걸익이 “천하의 도도한 물결이 다 그러한데 누가 바꾼단 말이오?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기보다는 세상을 피해 사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나을 것이오.” 하고 여전히 김을 매었다. 자로가 그 내용을 가지고 가서 공자에게 고하니 공자가 서글픈 표정으로 말하기를 “조수(鳥獸)와는 함께 살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이 백성들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 이야기는 장저와 걸익이라는 도가(道家) 계열의 은자(隱者;숨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방효유(方孝孺)는 명(明) 초기의 학자로 건문제의 스승이다. 주체(朱棣)가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인 2대 황제 건문제(建文帝)를 죽이고 황제에 오르자, 그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가 역사상 최악의 필화사건의 장본인이 된다. 영락제(永樂帝)가 있었다. 그는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체(棣), 열한 살에 연왕(燕王)에 봉해졌다. 태조가 죽자 장남 표(標)의 아들인 윤문(允炆)이 2대 황제에 오르게 된다. 야욕가인 그는 비밀리에 군사력을 키워 “황제 주변의 간신들을 토벌 한다.”라는 구실을 달고 반란을 일으켜 황제 자리를 빼앗는다. 조카 건문제 주위의 신하들을 모두 살해했으나 방효유만은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즉위조서를 써 달라며 구슬렸다. 완강히 버티던 방효유는 영락제의 거듭된 종용에 마침내 붓을 든다. 잔뜩 기대하며 지켜보던 영락제에게 전해진 종이에는 단 네 글자 연적찬위(燕賊簒位, 연나라 도둑이 황제 자리를 빼앗다)였다. “네 이놈! 구족을 멸하리라.” “구족이 아니라 10족을 멸해 보거라. 내가 눈 하나 깜빡 하나!” 방효유의 입은 그 자리에서 찢기고 10족 색출의 회오리가 분다. 당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에도 드디어 봄이 왔다. 지난 가을옷을 벗어버리고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도로변 개나리들이 일제히 노란 치마저고리를 아래위로 한 벌씩 차려입고 나서서 자기를 봐 달라고 온갖 표정을 다 짓는다. 강을 낀 둑방길에는 다시 벚꽃이 피었다. 우리집 앞길에서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꽃길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로 도는 유명한 벚꽃길도 꽃 속에 갇혔다. 전혀 예상도 못 하던 이상한 초강력 바이러스 때문에 전 지구인들의 발길이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서도 따뜻한 햇살에 우리들의 꽃나무들은 철을 지키며 자신들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누구는 꽃이 피는 것도 기억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꽃들의 화려한 잔치는 세상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교 북단에서부터 국회의사당 뒤를 돌아 여의광장 끝까지 이어지는 약 1.8 킬로미터의 이 길은 이제 전에 부르던 윤중로란 이름이 아니고 <여의서로>다. 오래 전 '윤중제(輪中堤)'라는 일본식 용어가 쓰일 때 그 이름을 딴 윤중로라는 이름이 습관적으로 쓰이다가 '둑방길'이란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제는 도로명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종문화회관 뒷길에서 경복궁역 쪽으로 가다 보면 ‘종교교회’라고 있습니다. 종교교회는 캠벨 선교사가 1900년 부활절에 배화학당 기도실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는데, 교인이 늘어나면서 1908년 지금 자리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역사 오랜 교회지요. 저는 대학 다닐 때 제 고교, 대학 선배가 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여 처음 ‘종교교회’라는 이름을 접하였습니다. 처음에 종교교회라고 하니, 당연히 ‘종교(宗敎)’가 먼저 떠올랐겠지요? 그래서 “굳이 교회 이름에 ‘宗敎’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나?” 하며, 피식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宗敎’교회가 아니라 ‘琮橋’교회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종다리교회’가 될 텐데, 교회 이름에 다리 ‘橋’자가 들어가는 것도 여전히 특이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 여기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청계천의 상류 부분인 백운동천과 백운동천에 합류하는 사직동천이 여기에 있어서 이를 건너가는 종침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거지요. 백운동천과 사직동천은 지금은 복개되어, 그곳을 지나다녀도 여기에 시내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교회가 들어설 무렵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4월은 사랑스러운가? 대중음악가 그룹인데 좀 느낌이 안 좋은 Slaughter를 이름에 쓰는 음악그룹의 리더인 Mark Slaughter는 4월이 사랑스럽다며 빨리 오기를 재촉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4월이여 사랑스런 4월이여 April, Dear April 4월이여 사랑스런 4월이여 빨리 오렴 달콤한 앵초꽃도 빨리 피어 수선화 잔치에 참가하려무나 하늘이 새 햇살을 선사할 때에 4월이여 사랑스런 4월이여 축복받은 봄의 아들이여 노랑과 흰색으로 온통 화려한 그대 새들을 간질러 노래를 부르도록, 하늘을 날아 춤을 추도록 하는 너 이 노래의 주인공은 수선화이다. 이른 봄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의 경우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는 벚꽃인데 외국의 경우, 다른 데는 잘 모르겠고 내가 있었던 영국의 경우 체리가 있기는 하지만 많이 넓게 피는 것으로는 들판의 수선화가 보편적이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1770-1850)가 제일 먼저 노래하는 꽃도 수선화다. 수선화 (Daffodils)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 하늘 높이 골짝과 산 위를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 문득 나는 보았네, 수 없이 많은 황금빛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해진 오스카 쉰들러(1908~1974)라고 아시지요? 쉰들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유대인 약 1,200명을 자신의 공장 노동자로 빼돌려 자기 재산을 소모해가며 끝까지 지켜낸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의인이 있어 한국판 쉰들러라고 불리지요. 도올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한국의 쉰들러는 바로 6. 25 당시 제주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문형순 경감(1897~1966)입니다. 문 경감은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직전에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입니다. 그는 광복 뒤 경찰에 투신하여 1947년 7월 제주도로 부임합니다. 그다음 해에 4.3 민중항쟁이 발생하였으니, 문 경감은 4.3 민중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신 분입니다. 1948년 12월 말 무렵에 진압군인 제9연대는 여순진압 작전에 공적을 세운 제2연대와 맞교대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9연대는 떠나기 전에 자기들도 제2연대의 여순진압에 필적할만한 공적을 세우기 위해 군인으로서 기본적인 양심도 버립니다. 곧 이들은 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춘분이던 지난 주말 북한산 둘레길에 가보니 많은 사람이 나들이 겸 산보 겸 나온 가운데 길옆에서 못 보던 미인들이 인사를 한다. 바로 진달래꽃들이 여기저기서 봉오리를 터트리면서 살포시 웃고있는 것이다. 아직 다른 관목들의 잎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꽃들은 자신들이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너무 일찍 나왔다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개나리도 막 노란 꽃잎이 나온다. 남쪽에 견주어 많이 늦었지만 북한산 뒤편에도 봄이 오는 것이다. 진달래나 개나리나 혹은 산수유나 모두 봄이 온 것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전령임은 분명하다. 봄기운이 대지를 싱그럽게 데우고 있는 것이다. 人父乾而母坤 사람은 하늘과 땅을 부모로 삼았고 物吾與而幷生 만물은 나와 함께 나란히 태어났으니 雖一草與一木 비록 한 포기 풀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亦稟氣而生成 또한 기운을 받아 생성된 것이로세 覽庭中之交翠 뜰 가운데의 무성한 풀을 보고 揖濂溪之胸次 염계의 가슴속을 헤아려 보니 輸萬物於度內 만물을 내 몸속에 옮겨 놓아서 認一般之意思 자신의 의사와 같음을 알았구나 - 《동계집》 속집 제1권 조선시대 숙종 때를 산 동계(東溪) 박태순(朴泰淳:1653~1704)은 새봄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갔을 때 기념품점에서 눈이 머문 글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대련(對聯: 문짝이나 기둥 같은 곳에 걸거나 붙이는 서로 나란히 붙어있는 두 문장)인데 글귀는 이랬다;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발음으로 읽으면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인데 흔히 이렇게 해석들 한다.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가을 물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기념품으로 팔지만 실제로 이 미술관 소장품인 이 대련 글씨는 추사가 남긴 대표적인 명작이다. 흔히 추사체는 필획의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하고 글자는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데, 이 대련이 바로 그런 경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글씨가 뛰어난 것도 뛰어난 것이지만, 이 대련이 사랑을 받는 다른 이유는 바로 이 글의 뜻 때문일 것이다. 다시 문장을 들여다보자. 春風大雅能容物 춘풍은 봄바람이고 대아는 크고 우아하다는 것인데, 그게 왜 갑자기 튀어나올까? 그것을 알려면 공자가 편찬한 시경을 알아야 한다. 시경은 공자가 자신의 시대에까지 전해지는 각지의 노래를 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