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상 최장의 장마', '사상 최악의 무더위'... 매년 여름이면 우리는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 올 여름엔 장마도 있었고 무더위는 진행형이라거 여름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난 늘 사람들이 "정말 올 여름엔 왜 이러는거야?"라던가 "지구가 미쳤어!" 라던가 "봄 가을이 없어지니 여름 겨울만 너무 길어 힘드네." 라던가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냥 푸념으로만 여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람들이란 존재는 다소는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뎌지고 당장 눈 앞에 펼쳐지는 현상은 마치 생전 처음 이 세상이 오고 있는 듯 얘기하는 것이 조금은 경망스럽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기인된 마음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더운 것은 사실이었다. 더운 여름에 어쨌든 출근하는 사람들은 사무실이 있어서 그 속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살았는데 집에서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더위와 직접 맞대고 사는 수 밖에 없는 지라 더욱 더위가 몸으로 느껴진다. 장마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더위가 없었던 것이 아님에,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넣어두었던 부채를 찾는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 아니라 하선동로(夏扇冬爐) 현상이라고나 할까? 이제 에어컨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집집마다 더위에 지쳐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이럴 때에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는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근 채로 갖고 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으뜸일 것이다. “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그러나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설이 있어서 물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만큼 뭔가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가 극심하면 바람이 잘 부는 나무그늘에 갔다고 한다. 옛날에는 활엽수가 우거진 곳보다는 침엽수, 곧 소나무가 있는 곳이 더 바람을 잘 전해주어 시원했던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곧 소나무 숲에서 솔잎사이로 부는 바람이 이른바 ‘풍입송(風入松)’이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풍입송의 경지를 무척 즐겼던 것 같다. 앞머리 김수장의 시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풍입송이란 단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다이(영주)의 장례식이 끝난 어느 날이었다. 아수친마님(박씨부인)에게 지출장부를 들고 왔던 안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수친의 얼굴이 굳어졌다. “박연폭포가 떨어지던 고모못을 잊었습니까? 이렇게 가을바람이 불면 젊은 부부들이 채련가(採蓮歌)를 부르며 연밥을 따지 않았습니까? 연꽃은 붉고, 연잎은 넓적하고 연밥은 많고 많았지요. 나는 노를 잡고 당신은 소쿠리를 들고 연잎 속으로 배를 저어 가지 않았습니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저는 아직도 돌아오는 돛대에 어리던 그 달빛이 눈에 선합니다. 아내가 부르던 채련가도 전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예뻤고 노랫소리도 곱고 빼어났지요. 요즈음도 잠자리에 누우면 그 노래가 귓전에 들립니다. 그러면 연뿌리 끊기듯 애간장이 끓고 연밥알인양 눈물이 방울방울 흐릅니다.” 왜 이 구절이 다시 생각나는 것일까?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년 만에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난 것은 소설가 이인화가 쓴 《시인의 별(부제:채련가, 주석 일곱 개)》라는 소설의 이 구절이었다. 2000년 제24회 이상문학상의 당선작이다. 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니 줄기의 속은 통하고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맑고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이란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도 없는……. 송나라 때의 신유교철학, 곧 성리학의 비조라고 할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이란 글에서 묘사한 연꽃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데, 주돈이는 꽃의 덕을 견줘 설명하면서도 국화는 꽃 중의 숨은 선비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함인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로다 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좇아 모란을 좋아할 것이지만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좋아했고, 자신은 이제 연꽃을 좋아한다고 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주돈이란 분이 원래 “인품이 매우 고결하고 마음결(胸懷)이 쇄락(灑落:깨끗)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는 평을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으로부터 들은 분이다. 여기서 ‘광풍제월’이란 말은, 글자그대로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경인철도회사에서 어제 개업예식을 거행하는데, 인천에서 화륜거가 떠나 삼개 건너 영등포로 와서 경성의 내외국인 빈객들을 수레에 영접하여 앉히고 오전 9시에 떠나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1899년 9월 19일 독립신문에 실린 경인철도 개통관련 기사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6년 전 일이고, 경술국치를 당하기 11년 전 일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철도 개통은 세상이 떠들썩하게 자축해야할 크나큰 경사겠으나,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마냥 웃으며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구미 열강들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극동의 작고 힘 없고 늙은, 조선이라는 한 나라를 서로 삼키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청나라와 러시아, 좁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이 가장 적극적이어서 이들은 조선지배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조선지배와 대동아(大東亞)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경인철도 개통이 그 시발점이었다. 경인철도의 부설권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필라델피아의 ‘Sting Theory School’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Sting Theory School’은 과학(S)과 수학(M) 교육에 기술(T)과 공학(E)을 연계해 가르치는 융합교육방식을 잘 하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 화장실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저를 웃음 짓게 합니다. 70년대의 공중화장실을 기억하시는지요? 냄새나고 더럽고. 불편하고, 불결함의 상징이었던 공중화장실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깨끗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를 배우러 오는 나라도 많으니까요. 일부 선진국을 돌아다녀 봐도 우리나라처럼 깨끗하고 정갈하며 위생적으로 우수한 시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화장실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재미있습니다. 대부분은 ManㆍWoman, ladyㆍgentleman, ♂ㆍ♀을 사용하기도 하고 아래와 같은 그림을 쓰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픽토그램(pictogram)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학교 화장실에 M과 W를 써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물론 ManㆍWoman의 약자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는 있었지만 글자의 생김새의 대비가 묘하게 대비되어 약간의 야한 생각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웃는 도깨비 - 신영훈 어릴 적에 동리 노인들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곰의 불알로 북을 지으면 그 소리가 벽력같아서 전장(戰場)의 요괴가 달아나고 군신(軍神)이 이쪽 편이 되어 승전하게 되므로 그 북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북을 휘몰아 제쳐 치면 그 소리가 울려 퍼져 군사들의 마음을 흥분시켜 지쳐 들어가는 발길에 힘을 주게 되고 예기(銳氣)가 충천(衝天)하여 접전(接戰)의 이(利)가 재아(在我)하게 되므로 저절로 승리는 이쪽에 온다. 반대로 북채에 힘이 빠져 겨우겨우 두드린다면 군사들은 사기(士氣)가 떨어져 패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노인들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충무공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검어쥐고 다그쳐 지쳐 들어가도록 요란스럽게 북을 두드려 사기를 높이던 기록을 거론한다. 유탄에 맞아 쓰러지도록 독전(督戰)하던 그 북소리의 울림은 결국 왜수군을 참패시켰고 중국 장군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소리, 그것은 하나의 집단최면으로 유도하는 마(魔)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인디언이나 토인족(土人族)들이 기분 나쁘게 두드리는 장면 뒤에 주인공들이 생포되던가 제물로 바쳐진다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평소 가깝게 지내는 황평우 전 은평한옥박물관장이 지난 일요일에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더니 나중에 사진을 하나 보내준다. 병상에 누워계신 분을 문병하는 사진이었다. 한옥전문 건축가이신 신영훈 선생님이란다. 신영훈 선생님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한옥 건축의 큰 기둥이셨다. 특히나 한옥 건축의 해설분야에서는 그 구수한 말씨와 알기 쉬운 설명으로 많은 팬들을 갖고 계셨다. 황평우 관장은 신영훈 선생님이 자기를 건축문화인으로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신영훈 선생님이 나를 '민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 분이 젊을 때의 동글동글하고 온화하고 인자하신 얼굴을 다른 데로 보내시고 여윈 모습으로 누워계신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후배들로서는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살아있는 것의 운명이 곧 탄생과 죽음일진데 그것을 어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황평우 관장과 카톡을 하면서 나는 이제 우리들이 선생님을 기억해 줄 차례라고 말해주었다. 그 사진을 보고 신영훈 선생님과의 인연을 다시 회고해 보았다. 80년대 초인 1983년 KBS의 문화부 기자였던 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 칠월엔 이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둘만 살고 있는데 공간이 너무 넓다는 허허로움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평수를 줄여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살면서 20여 차례의 이사를 했지만 공간을 줄여가는 것은 처음이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을 좀 덜어낸다는 나름 무소유에 입각한 이사일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사는 18층 아파트, 같은 통로를 쓰는 36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에어컨이 없는 집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예산 관계가 아니라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모님과 아내 덕분이지요. 물론 이들이 찬바람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에어컨 없는 여름나기는 저에게 큰 고통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마음 다부지게 먹고 올해 신형 에어컨을 놓았습니다. 문제는 그 에어컨을 켜보지도 못하고 새집으로 이사를 할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이지요. 새집은 매립 형으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으니 집안 경제력만 낭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 가운데 우리 인류는 출현의 역사가 가장 짧다.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것이 대략 250만 년 전 일이고, 조금 느슨한 기준으로 라마피테쿠스를 인류의 조상으로 친다 하더라도 500만 년 정도이니 지구의 역사에서는 바로 조금 전 사건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과학발전은 선악을 떠나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 가운데 인류의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게 바로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의 발전일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수레의 발명과 말의 이용은 교통과 통신에 비약적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데, 제정로마는 제국전역에 숙박 및 편의시설을 갖춘 역참을 설치하고 공영우편제도 실시하여 교통과 통신의 혁신을 가져왔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에는 교통과 통신 분야도 암흑기를 맞아 새로운 도약을 하기 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19세기 초 조지 스티븐슨이 개발한 증기기관차가 상용화에 성공하고, 반세기 뒤 그레이엄 벨이 전화라는 가공할 발명품을 들고 나와 우리 인류는 대변혁을 겪게 된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