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보통 법원에는 재판부마다 그 재판부가 전담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전담한다고 하여 그런 사건만 하는 것은 아니고, 이를 위주로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199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단독 재판장을 할 때 저는 환경전담 재판부를 맡았습니다. 당시 저는 환경사범은 엄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하여 제가 환경전담 재판부를 맡고 나서 그 전에 선고된 판결들을 보니 실형 선고한 판결이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내가 맡은 이상 엄단하는 쪽으로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환경전담 재판부를 맡고 나서 얼마 후, 검찰에서 환경사범을 일제단속 하여, 죄질이 중한 쪽은 구속기소하고, 가벼운 쪽은 약식기소, 그 중간 사건은 불구속 기소하였습니다. 사람이 구속되면 다급하니 변호사를 찾을 것 아닙니까? 사건을 상담한 변호사들은 종전에 실형 선고한 예가 별로 없고, 판결 선고 전에 보석으로 풀려난 예도 많아 석방시켜주겠다며 자신 있게 사건을 맡았겠지요. 그런데 저는 보석 신청 들어온 것을 모조리 기각했습니다. 선임된 변호사들은 아마 보석은 안 되었지만 집행유예는 틀림없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모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침에 출근을 하며 봄날의 긴 하루를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각종 모종을 파는 가게를 지나면 왠지 풋풋한 마음이 됩니다. 그 모종을 심을 텃밭 한 뙈기 없는데도 말이지요. 유년시절 농사지을 때는 얼마나 바쁜지 고사리 손을 빌리기도 해야 했습니다. 산자락에 달라붙어있는 다랭이 논은 전형적인 천수답이었는데 모내기를 위하여 논에 물을 들이고 소에 써레를 달아 논을 삶아 놓으면 부드러운 흙이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감촉이 참 좋았습니다. 땅을 파고 무언가를 넣고 다시 흙을 덮는 것엔 묻는 것과 심는 것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는 생명의 유무에 있습니다. 논이나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을 심는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나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쓰레기나 불필요한 물건은 묻는다고 표현합니다. 그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음을 의미하지요. 곧 심는 것은 생명이지만 묻는 것은 죽음입니다. 흙 속에 무언가를 심게 되면 그것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뭄엔 물을 주기도 하고 성급한 사람은 싹이 얼마나 나왔는지 땅을 파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묻음은 잊음을 전제로 합니다. 우린 심는 것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어떤 판사가 재판 잘 하는 판사일까요? 명쾌한 법논리를 통해 쾌도난마식으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판결하는 판사? 속전속결로 신속하게 재판하는 판사? 상급심에서 판결이 파기되지 않도록 요령있게 판결하는 판사? 물론 다 재판 잘 하는 판사에 들어가겠지만, 저는 그 가운데서 하나를 꼽으라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판사가 재판 잘 하는 판사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일반국민들이 송사로 법정에 서는 일은 일생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사자들은 재판 결과도 중요하지만 법정에서 자기 얘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어하고, 또 판사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판사는 하루에 재판 한, 두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건을 들고 법정에 들어오기에 당사자들의 장황한 얘기를 다 들어주다간 다른 사건 재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개 당사자들의 얘기는 처음 얼마간 들으면 무슨 얘기하는지 다 파악할 수 있기에 조리 없이 중언부언하는 당사자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판사들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당사자의 얘기를 중간에 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당사자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은 특수한 몇몇 경우를 빼고 나면 대체적으로 국력과 궤를 같이하는데, 특수한 경우란 어느 한 민족의 고유문화가 선진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와 선진문물이 들어와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는 것으로, 다방은 그 후자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이른 바 “70,80 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 청춘을 보냈던 음악다방을 회고하면서 다방이 흘러온 길을 따라가 본다. 차를 마시는 장소에 대한 기록은 ‘다연원(茶淵院)’이라 하여 통일신라 문헌에 이미 등장하고 있으니 천년이 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방(茶房)’이라는 용어는 고려 때의 기록에 나타나긴 하나 차를 마시는 곳은 아니고 차와 술, 과일 등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이었다 한다. 이 땅에서 차(茶)가 가장 많이 음용되던 시기는 요즘을 빼고 나면 고려 때이다. 이는 불교의 융성과 맞물려서 절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말미암아 차 문화는 된서리를 맞게 된다. 조선사회에서 맥이 끊기다시피 한 차가 역사에 다시 등장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따봉’이란 포르투칼어 단어가 있습니다. ‘정말 좋다’는 뜻일 텐데, 아마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많이 아는 포루투칼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따봉’이란 단어가 우리나라에 유행하게 된 것이 1989년 롯데칠성음료의 델몬트 오렌지 주스 광고 때문이지요. 당시 광고 화면에 브라질 오렌지 농장이 나오는데, 농장에서 오렌지 품질을 검사하던 남자가 ‘엄지 척’ 하면서 ‘따봉’이라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따봉’이 대유행하면서 사람들도 가게에서 ‘따봉주스’를 많이 찾았답니다. 그런데 정작 따봉주스가 없어 롯데칠성음료로서는 기껏 광고를 히트 치고도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뒤늦게 ‘따봉주스’로 상표 등록을 하려고 했으나, ‘따봉’은 상품의 성질을 직접적으로 표시하는 단어라고 하여 상표 등록이 거절되었다고 하고요. 이렇게 시중에 ‘따봉’이란 말이 유행할 때에 저도 한 때 ‘따봉판사’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따봉판사’로 불렸다면, 뭔가 제가 재판을 잘 했거나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그 사연을 말씀드리지요. 제가 부산지방법원에서 민사단독판사를 할 때입니다. 새로 민사단독재판장을 맡으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주취감경 얘기하다보니 꼭 감경해주어야겠는데 술도 먹일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던 사건이 생각납니다. 제가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할 때인데, 강도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올라온 사건입니다. 강도가 상해까지 입혔는데 무슨 봐줄 것이 있느냐고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명만 강도상해로 거창하지 실제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사건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직장을 잃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데 하는 것마다 안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 학비며 병원비며 나가야 할 돈은 많습니다. 그래서 방문판매를 시작합니다. 사건 당일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해보나 별 성과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 00원의 돈이 필요한데……. 한숨을 푹푹 쉬며 어느 아파트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준 안주인에게 상품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앞이 캄캄해오는 피고인의 눈에 피해자의 손가방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 피고인은 순간적으로 가방으로 손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제지하려는 피해자를 뿌리치다가 피해자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혔고요. 도둑이 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녹비에 가로왈”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녹비’는 원래 鹿皮(녹피)가 맞습니다. 사슴 가죽을 의미하지요. 사슴 가죽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그리하여 당기는 대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합니다. 곧 녹비에 曰(가로왈)자를 써 놓으면 위 아래로 당기면 日(날일)자가 되고 좌우로 당기면 曰(가로왈)자가 됩니다. 곧 법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린 자신의 경험 속 범주 안에서 살아갑니다. 저는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하여 아이들에게 15년 동안 한문을 가르치다가 뜻한바가 있어 컴퓨터 부전공을 이수하고 정보로 전과하여 19년째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과자인 셈이지요. 문과와 이과 공부를 더불어 했는데 문과 공부를 할 때는 수학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단순히 마트에서 장보고 계산을 제대로 하면 불편하지 않다고 느꼈었지요. 하지만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노라니 수학이 아니면 풀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 수학이 없다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아프게 깨달은 적이 있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녹비에 가로왈처럼 자신의 입장에 따라 살아가는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특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예전 재판에서 판사들이 많이 한 ‘주취감경’이 생각납니다. ‘주취감경(酒醉減輕)’이란 술에 너무 취하여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렀다고 형을 감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술 먹고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지만, 제가 형사재판장을 할 당시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술 먹고 발생하는 범죄 가운데 많은 범죄가 폭행입니다. 그런데 당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여 남을 폭행하는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고(3조 1항), 특히 야간에 이런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3조 2항). 그런데 술집에서 시비가 벌어지면 술병을 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대개의 술집 시비라는 것이 야간에 일어나는 것이니까 5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야 할 만큼 죄질이 안 좋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평소 교도소라고는 가 본 적이 없는 소시민이 술집에 갔다가 이런 경우에 휘말리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해 일본의 연호가 바뀌었습니다. 영화(令和, 레이와)가 그것입니다. 곧 올해(2019년)은 일본에서는 영화1년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황제가 바뀌면 연호가 바뀌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대정, 소화, 명치라는 연호가 그러하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썼던 중국 연호가 그러합니다. 우리나라는 광개토대왕 때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고려 왕건 때 천수(天授)라는 연호를 끝으로 중국연호를 써 왔고 조선 말 대한제국을 세운 뒤 고종(高宗)의 광무(光武), 순종(純宗)의 융희(隆熙)를 끝으로 자주적 연호 사용은 끝이 납니다. 조선은 친명배청 정책을 써 왔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의종입니다. 그의 연호는 숭정(崇禎)이었지요. 임금이 300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조선에서는 숭정연호를 300년 넘게 사용했으니 지독한 명나라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항복으로 막을 내리게 되지요. 우리나라는 서기라는 연호를 씁니다. 우리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단기(단군기원, 서기+2,333)라는 자주적인 연호를 갖고 있는데도 살려 쓰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연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제 공민왕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공민왕은 망해가는 고려에 마지막 희망을 던지며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사랑하는 노국공주가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심지어는 자제위를 설치하여 미남 청년들과 남색(男色)을 즐기기도 합니다. 《고려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민왕이 심화병이 나서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비를 강제로 능욕하게 했다. 비가 이를 거절하자 임금이 노하여 칼을 뽑아 치려고 하니 비가 겁을 먹고 복종했으며, 그 뒤에도 홍륜 등은 임금의 명령을 핑계 삼아 여러 번 왕래했는데, 비도 그것이 거짓말인 줄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아 드디어 임신했다.” 공민왕은 남색을 즐길 뿐만 아니라 관음증에도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자제위의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인 익비를 간음하게 하고 그걸 보면서 즐겼습니다. 당연히 왕비가 반항을 하니 칼을 뽑아 협박하고요. 으~음~~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 강간하는 것을 보면서 즐긴다? 제 정신으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세상에! 개혁군주가 타락하니 이렇게 변하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는 다른 한편으로 한 때 고려 부흥을 위해 개혁의 팔을 걷어 올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