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위 내용은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읊조린 내용입니다. “일화즉사(日花即死)”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하루 피고는 바로 떨어지는 꽃을 의미합니다.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양귀비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텃밭 쑥갓 밭에 양귀비를 몇 뿌리 심으셨습니다. 쑥갓과 양귀비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발각될 염려가 적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양귀비는 모르핀이라는 마약 성분의 주원료이지만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는 가정상비약으로 양귀비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배앓이에는 특효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요. 가끔 양귀비꽃을 보았는데.. 참으로 예뻤습니다. 문제는 하루만 지나면 꽃이 지는 일화즉사의 꽃이라는 것이지요. 그 짧은 생의 붉음이 꽃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교정에 목련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봄의 순결 목련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고 숨이 가빠옵니다. 참으로 멋진 봄날의 한 장면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이지요. 문제는 그 목련이 그리 오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평년보다 열흘 정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避寇難吾土(피구난오토) 도적을 피하기 어려워 내 살던 땅을 떠나 攜家走異鄕(휴가주이향) 식구들을 이끌고 낯선 고장으로 옮겨가누나 荊榛行目蔽(형진행목폐) 가시넝쿨 앞길을 가로막고 눈앞을 가리니 桑梓耿難望(상재경난망) 상재(고향)는 눈에 선해 잊기 어렵네. 世險憐兒少(세험련아소) 세상이 이리 험난하니 어린아이들 가엽고 家貧仗友良(가빈장우량) 집마저 가난하니 어진 벗을 의지할 수밖에. 乾坤空自闊(건곤공자활) 천지는 부질없이 넓기만 하니 獨立興蒼茫(독립흥창망) 나 홀로 창망하게 섰노라. 정도전의 ‘도적을 피하다(避寇)’는 시입니다. 정도전은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3년이 지나 유배가 완화되어 고향에서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고향 영주로 와서 4년을 지내는데, 이 때 왜구가 쳐들어와 왜구에 쫓겨 고향을 떠나면서 쓴 시입니다. 아니? 내륙지방인 영주까지 왜구가 쳐들어오다니요! 당시 고려의 국방과 치안은 엉망이라 왜구가 영주까지 쳐들어와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 충청, 호남, 영남 지방 중 왜구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지요. 당연히 해안 지방은 멀리 평안도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렇게 된 얘기라 한다. 어느 광역시에 있는 방송사의 송출직원이라니까 업무상으로도 음악과 그다지 관련이 있는 직책은 아니다. 또한 음반 유통업계나 음반 수집가나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이른바 "촉"이란 것이 있었는지 아니면 누가 귀 뜀을 해 주었는지, 그는 횡재와 명성을 한 손에 거머쥐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십 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가 근무하는 직장에는 "계륵"* 같은 골칫덩이가 하나 있었다. 사세의 확장으로 방송 기자재는 자꾸 늘어나는데 보관할 공간은 줄어만 갔다. 그러다보니 직원들 하나 둘 음반실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씨디(CD)도 구닥다리라고 안 트는 세상에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4만 여장의 엘피(LP)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는 눈초리였다. 마침내 위에 계신분이 매각 형태의 처분결정을 내린다. 그냥 내다 버려도 아까울 게 없겠지만 혹시나 문제라도 생길까하여 판다고 해본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사의 간부치고 음악에 조예가 있거나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있는 간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야한다. 그걸 그가 솜씨 있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릇은 인류 문화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아마도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쓴 그릇은 나뭇잎 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목기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합니다. 비교적 널리 분포하고 작업이 쉽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기는 썩어 없어져 옛 모습을 추측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릇이 썩지 않는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바가지를 그릇으로 쓰기도 했고 플라스틱이나 놋으로 주발을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우며 현재에도 실용품으로 예술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청자와 백자와 같은 도기입니다. 대부분의 그릇이 음식을 담거나 보관하는 용도라면 또 다른 그릇 옹기는 숨을 쉬기 때문에 음식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옹기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기품이 있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진흙이 옹기장이가 손으로 주무르고, 내려치고, 빙빙 돌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과정을 통해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그리고 1,2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져 옹기로 탄생하는 것이지요. 옹기장이의 수고와 펄펄 끓는 가마에서의 연단이 없다면 옹기는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이고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 아이들 버릇없다고 혀 차지 마라. 저 밖에 모른다고 흘기지도 말고 감정이 메말랐다고 탄식도 하지마라. 하늘에서 떨어졌겠는가, 땅에서 솟았겠는가. 아이들이 거울이다, 잘 들여다보아라. 거울에 비친 저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예절이 밥 먹여 주냐고 남 생각은 뭐하러 하냐고 돈 안 되는 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우리의 모습이며 내 새끼 귀하다며 호호 불기나 했지 좋은 학교가라며 학원으로만 돌렸지 더불어 살아가는 법과 사랑의 소중함과 지혜가 지식보다 위라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다. 설명해보라.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망친다하면서도 게임 시장이 몇 십조 짜리라며 육성하는 현실을 몇이 하면 도박이고 카지노에서 하면 오락이 되는 현실을 필부의 거짓말은 왜 죄가 되고 위정자의 거짓말은 왜 기술이 되는지 설명해보라. 아직도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지구의 나이가 육천 살이라 우기는 자들이 여전히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해보고 정직하면 가난하다는 공식에 대해서도 아이들 앞에 나서서 설명해보라. 요즘 아이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 까닭 가운데 하나는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입니다. 요동 정벌을 한다면 명나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할 텐데, 정도전은 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을까요? 원나라가 명나라에 밀려 북쪽으로 쫓겨 간 후, 요동은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명나라도 새로 나라를 세워 안팎으로 나라 기틀을 잡는데 힘을 쏟느라고 아직 요동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기에는 힘이 딸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요동은 원래 우리의 선조 고구려와 발해가 차지하고 있던 땅이라서, 명나라로서는 고려나 뒤를 이은 조선이 이를 차지하려 할까봐 꽤나 신경이 쓰였나봅니다. 이미 공민왕 때인 1370년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온 일도 있으니까요. 우왕 14년(1388)에도 명나라는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위의 반환을 요구하여, 이에 반발한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무산되기도 하였지요. 이제 친명정책을 추구하는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국경 분쟁은 없을 줄 알았는데, 명나라는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자꾸 시비를 겁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명나라에 조선 건국의 승인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명 황제 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1985년에 울주군 온산공단에서 발생한 온산병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으로 기록되었다. 그후 6년이 지나 1991년에 온산병보다 더 충격이 컸던 환경 사고는 낙동강 페놀오염 사고였다. 경북 구미공단에 자리 잡고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었다. 3월 14일 밤 10시부터 3월 15일 새벽 6시까지 누출된 페놀은 30톤이나 되었다. 최초 언론에서는 오염물질을 무단 방류했다고 보도하였으나 페놀은 값비싼 공업 원료이기 때문에 일부러 방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8시간 동안 공장에서는 페놀 유출을 모르고 있었다. 유출된 페놀은 옥계천으로 흘러들고 옥계천은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페놀은 이어서 대구광역시의 상수원인 낙동강의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되었다.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자 취수장에서는 원인을 규명하지도 않은 채 염소를 다량 투입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페놀이 염소와 반응하면 냄새가 나는 클로로페놀과 트리클로로페놀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실수였다. 이 사고로 대구시민의 71%인 162만 명이 오염된 수돗물을 공급받은 것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1) 뭐가 자나갔을까? 눈 위에 뚜렷이 남은 이 자국은. 나무토막을 끌고 간 자리도 아니고 커다란 짐승이 지나간 자리는 더욱 아니니, 넓이로 보나 자국으로 보나 눈썰매 자리임이 틀림없다. 대설, 대한이 다 지나도록 눈 한 송이 구경할 수 없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조바심이 났으랴. 분명 어린 자식의 보챔을 당해내지 못한 아비가 첫 눈이 내리자마자 동 트기를 기다려 이 솔밭에서 눈썰매를 끌었을 것이다. 첫 발자국을 찍지 못한 아쉬움도 잊은 채 썰매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가 본다. 그 자리엔 아비의 사랑이 남아있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남아있고 옛 기억의 아련함이 남아있다. 그래, 그런 것이다. 지나갔다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은 자국을 남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바람과 저 부드러운 새털구름조차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기며 자나간다. (2) 아직은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찔렀다. 고향땅 해주에는 벌써 남풍이 불어와 봄 내음이 가득하겠지만 북국 만주의 사월은 봄이라도 봄이 아니었다. 중절모를 고쳐 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나온 날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일사보국(一死報國, 한 목숨을 바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훌륭한 수행자는 큰 깨달음을 얻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중간 수행자는 처음에는 부지런히 정진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급 수행자는 수행도 하지 못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큰 소리로 으스댑니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된 물은 향기가 없고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사소한 시비에 휘말리는 부류는 태권도 1단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조그만 능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권도 4,5단이 되면 좀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그 깊은 능력을 사소한데 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능력자는 큰 성공을 거둔 이후라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겸손함으로 평상심을 유지합니다. 야단스럽게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잊지 않으며 칭찬에 호들갑이 없고 남을 대할 때 가식이 없습니다. 남에게 보이기위함보다 자신에게 늘 충실하고 화려한 횃불보다는 은은한 촛불로 참된 삶을 살아갑니다. 진수무향에서 두 글자를 따서 진향(眞香)이라고 이름한 기생이 있습니다. 그는 시인 백석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곳곳에 공장이 세워지고 환경오염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의 미나마타병에 버금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질오염 사건으로는 온산병을 들 수 있다. 경남 울산시 남쪽 해안가인 울주군 온산면은, 1974년에 정부의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19개 부락 500만평이 중화학공업단지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구리ㆍ아연ㆍ알루미늄 등 비철금속 공업단지로 지정된 후 1980년대에는 화학ㆍ제지ㆍ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업종의 공장들이 입주해 종합단지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공업단지 개발을 위한 종합계획도 세우지 않고 개별 공장들이 공장을 세우는 바람에 전체 주민 1만 4천여 명 가운데 1,800여 명만이 이주를 하고 나머지 1만 2천여 명은 공단에 포위되거나 고립된 채 살 수밖에 없었다. 소득이 올라가 잘 사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던 주민들에게 공장이 가동된 지 5년이 지나 1983년부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환자들은 허리, 팔, 다리가 아프고 전신으로 통증이 퍼지는 전신 신경통 증세가 발생하였는데 심한 경우에는 수족마비, 반점이 생기기도 하였다. 노인들에게 신경통이 나타나면 이해가 되지만 이 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