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이윤옥 시인이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시로서 조명하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7권을 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벌써 7권째를 낸다고 하니 이윤옥 시인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지네요. 이번 책에서 이 시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외친 가파도 소녀 고수선으로부터 조국 광복의 어머니, 하와이 황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20분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우선 그 독립운동가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를 먼저 실은 후, 독립운동가에 대해 글을 쓰고, 필요한 것이 더 있으면 마지막에 ‘더보기’라는 제목으로 관련 글을 실었네요. 이번 7권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 박신애, 심영신, 전수산, 황마리아에 대해 조명을 한 것입니다. 하와이 교민들 가운데 남자들은 1902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들과 사진만 보고 결혼한 소위 ‘사진신부’인 경우가 많았구요. 사진신부들은 사진 속의 젊은 총각만 보고 하와이에 갔다가 늙은 총각이 나타나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이미 고국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상황, 한국의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멀리 떠납니다. 부디 행복하시길>단 두 마디 밖에 쓸 수 없었다. 아홉 해라는 세월을 어찌 다 쓸 수 있으랴. 영상이 흘렀다. 그녀 집안의 무조건적이며 집요한 반대. 노숙자 행색으로 낯 선 거리를 떠돌던 도피행각. 친척집이란 친척집은 죄다 돌며 두 육신 깃들 곳을 찾아 헤매던 날들. 열 개나 되던 그녀 오빠들의 거친 팔. 그 완력에 몸은 둘로 나뉘었어도 끝내 놓지 않았던 손, 손. 무모했으나 빙어 속 같이 맑고 시린 사랑. 다시 한 번 방안을 둘러보다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이런 것인가.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쪽지를 써서 그녀의 옷 보따리 위에 올려놓기는 했으나 선뜻 방문을 나설 수가 없었다. 쇠가 제 몸에서 이는 녹으로 사그러지듯 이렇게 우리 스스로 허물어지고 마는 것인가. 그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건만... 문틈 사이로 회한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알고 있는 글씨 가운데 기쁨이라든가 환희, 행복 같은 단어들은 모두 지워지고 상처, 아픔, 방랑 같은 단어들만 또렷이 살아났다. “윙윙, 어디로 간다고?” “어디 정해진 곳은 없고요. 윙윙, 가서 자리 잡히면 연락드릴게요. 윙윙” 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참으로 오랜만에 자네에게 편지를 쓰는군. 아니, 자네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기억조차 아스라하군. 아무리 기계문명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인본 위주의 가치관만은 버리지 말자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어느 바람에 우리의 다짐을 날려 보냈는지. 노장사상을 논하고, 헤르만 헤세와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논하고 헤겔, 프로이트를 희롱하는 것도 모자라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를 혀에 올려놓고 밤을 새운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지. 어느 물길에 우리의 그 순수함을 떠내려 보냈는지... 며칠 전 아내와 용문사를 다녀왔다네. 벌써 거목은행나무에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더군. 둘이 양 팔을 펼쳐 거목의 둘레를 잴 때 아내의 웃는 모습이 자네 얼굴과 오버랩 되었네. 그게 그러니까... 오, 벌써 30년도 넘었군 그래. 자네와 내가 그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게. 우리는 새로운 체험에 한껏 부풀어 밤을 꼬박 새웠지. 그 때 참여했던 새벽예불의 경험은 아직도 명화의 한 장면으로 나에게 돋을새김으로 남아있다네. 막 솟아오른 태양이 새벽안개를 몰아낼 때 은행잎을 모아 시루떡처럼 쌓아 올리는 한 젊은 스님의 평온한 표정에서 우리는 무심의 세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하늘의 무지개는 아름다운 만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자연적 현상으로서 무지개를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지개가 보이는 상황이 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청명한 날은 절대 무지개를 볼 수 없습니다. 천둥과 먹구름 속에서 장대같은 비가 내리고 난 후 햇살이 찬란할 때 무지개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무지개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관공서에는 사시사철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축 늘어져있는 깃발은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깃발이 아름다울 때는 바람에 나부끼며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일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련이라는 바람을 맞을 때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지요. 옛날 철기시대 때 철을 단단히 만드는 꺾어 접기라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뭉치쇠를 불에 달구어 모루 위에서 망치로 넓게 편 다음 접어서 다시 망치질 하고.... 이런 행위를 반복할수록 단단하고 질긴 쇠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맹자(孟子) 고자(告子) 장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시인)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한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에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KBS 임병걸 해설위원이 KBS 아침뉴스에서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라는 마당을 진행하였지요. 시인이기도 한 임 위원이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경제 이야기를 시와 접목하여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곤 했는데, 이제 그렇게 풀어낸 이야기가 같은 이름의 책으로 묶여서 우리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임시인이 친필로 사인하여 직접 저에게 손으로 건네 준 책을 펼쳐듭니다. ‘전월세 오디세이아,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가난, 벗어던져야 하는 숙명의 굴레’... 글의 제목만 보아도 임 시인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민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임시인은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와 경제, 얼핏 생각하면 전혀 무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인 하면.....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인간의 삶이 행복과 기쁨으로 점철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몽상가로 취급되기 일쑵니다...... 반면 경제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나무 중에서 길쭉하게 넷으로 갈라진 흰 꽃이 늦은 봄에 피는 이팝나무라는 것이 있다. 이팝나무의 이름은 원래 이밥나무에서 변했는데, 이밥은 쌀밥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에 피는 길쭉한 흰꽃을 밥알처럼 보고서 나무 이름을 이밥나무라고 부른 것이다. 옛날에는 쌀밥 먹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렸을 때에 배고픈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굶지는 않더라도 잡곡이 섞이지 않은 흰 쌀밥을 먹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쌀이 남아서 보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인구는 늘고 논 면적은 계속 줄어드는 데도 이처럼 쌀이 남는 것은 사람들이 쌀을 적게 먹기 때문이다. 2015년 일인당 쌀 소비량은 63kg으로서 1982년의 132kg에 비하면 1/2 이하로 줄어들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밥 대신 육류, 빵류, 푸성귀(채소), 과일 등을 많이 먹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식량을 자급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통계를 보면 지난 1975년에 75%에 달하던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015년에는 23%로 떨어졌다. (식량자급율은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열자 설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옛날 제나라 사람 가운데 돈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평상시와 같이 옷을 잘 차려입고 시장에 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어느 금은방에 들어가 금을 훔쳐 도망을 쳤습니다. 관리가 그를 쫓아가 잡고는 물었습니다. “대낮이라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 금을 훔칠 생각을 했는가?”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금을 훔칠 때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신기한 눈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늘, 같은 환경아래 살아가면서도 세상을 보는 눈은 천차만별입니다 영화를 보아도 그러합니다. 두 사람이 똑 같은 영화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기억나는 장면과 감동 받은 장면은 각각 다릅니다. 그건 자신의 경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장점만 보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단점만 보입니다. 사람의 눈은 두개인데도 편협한 시각을 갖기 쉽습니다. 문제는 한쪽 견해에 갇히면 세상의 다양성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지요.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면 그게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인정하든 그렇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바다사자의 하나입니다. 한 때 그런 강치가 독도에 넘실거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가지도 – 강치를 일명 가지라고도 하였지요– 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강치가 독도에 넘실거렸다? 독도에 강치가 넘실거렸다는 것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독도에 넘실거리던 그 강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거야?”라며 고개를 갸우뚱 하시겠지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강제로 자기네 영토로 편입한 후, 일본 어부들이 독도의 강치를 무수히 학살하였습니다. 강치의 가죽이 돈이 되었거든요. 당시 강치 한 마리 값은 황소 열 마리 값에 필적하였다는군요. 1905년 이후 약 8년 동안 일본어부들이 학살하고 잡아간 강치는 무려 14,000여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어부들은 강치가 줄어들자 강치를 확실히 잡기 위해 아기 강치를 먼저 잡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동작이 굼뜬 아기 강치를 먼저 잡으면 아기를 구하러 어미가 올 테고, 그럼 손쉽게 어미 강치까지 잡는 것이지요. 쪽바리 아니랄까봐 그런 비열한 방법까지 쓰다니... 일제 강점기 이렇게 독도의 강치를 잡아대니 결국 독도의 강치는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습니다. 성격이 꼼꼼하여 완벽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실수는 줄일 수 있겠지만 완전을 이룰 수는 없다는 이야기지요. 우린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기도 하고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기도 하고 쥐구멍을 고치려다가 문을 부수기도 하며 작은 여드름을 짜다가 큰 종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이 생명인 진주에 흠결이 있고 천하의 보배인 옥에 티가 있다면 그것을 없애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온전할 것을 그것을 없애려다 잘못하면 깨버리는 결과를 받아 들 수도 있습니다. 완벽(完璧)이란 말의 의미도 옥구슬을 온전히 지켰다는 인상여의 고사에서 출발한 것이고 보면 옥과 티는 불가원(不可遠)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물건이나 사람에 대하여 결점이나 흠을 찾아내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결점을 애써 찾아 비난 하느라 힘을 낭비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칭찬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합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남양주 마재마을은 다산 정약용의 생가로서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요즈음 남양주시가 다산을 남양주를 대표하는 역사인물로 집중적으로 띄우고 있지요. 그래서 마재마을에 실학박물관도 만들고 다산에 관련된 학회, 축제 등 다양한 행사도 펼치고 있구요. 그런가 하면 둘레길이 유행하면서 다산길도 만들었네요. 요즈음은 마재마을에 다산생태공원도 들어서 주말에는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헉! 한확 이야기 한다면서 뚱딴지 같이 왜 다산 이야기 하냐고 하시겠군요. 마재마을 입구에 세조 때 좌의정 한확(1400 ~ 1456)의 무덤과 신도비가 있습니다. 저는 마재마을 가면서 여기에 한확의 무덤과 신도비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았더니 한확에게는 누나 덕분에 출세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네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잠깐 풀어보겠습니다. 태종 때 명나라 영락제가 조선에 공녀를 요구합니다. 고려 때 원나라의 요구로 많은 고려의 처녀들이 원나라에 공녀로 바쳐졌는데, 명나라 때까지도 이런 요구가 이어지고 있었군요. 사실 영락제의 어머니는 원나라 때의 조선 공녀 출신입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여진족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