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그 때도 사월이었다. 강가의 조약돌 같이 옹골차게 생긴 그녀가 내게 처음 오던 날이. 세상은 어지러웠다.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더 단단한 성을 쌓으려는 세력들의 이름이 연일 매스미디어를 장식하던 때였다. 나는 그 시절 서울의 한 음악 감상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유채 밭이 노란 물결로 출렁인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근무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솔깃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형, 제가 여자 소개해 드릴까요? 형 하고 잘 통할 것 같은 친구예요. 나는 그때 그 후배의 소개로 한 여성과 평생 지울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낯설지가 않았고, 그녀 역시 어디서 나를 많이 본 듯하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첫 만남부터 마음이 통한 우리는 머잖아 금병산으로 봄맞이 산행에 나섰다. 진달래꽃이 무더기로 피어난 산풍경은 동화책 삽화 같았다. 그녀는 세상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유정이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니 봄봄 같은 가작들이 나오지 않았겠느냐며 환히 웃었다. 그녀는 음악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다. 이상(李想)을 논하더니 소월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지난주에 롯데백화점 12층에 있는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한 김두례 화가의 개인전에 다녀왔습니다. 2012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 때는 화려한 색채가 단지 추상의 세계에서만 춤을 췄다면, 이번에는 그 추상의 색채 속에 인물이 걸어 들어갔네요. 추상의 세계에 인물이 들어가 있으려니, 인물들도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그냥 색채의 덩어리로 서 있기도 하구요. 롯데갤러리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주로 한국적인 색채로 추상과 구상 색면을 활용한 빛을 표현합니다. 오방색으로 표현한 화면 자체는 단순하지만 대담하고 역동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는 가벼운 붓질로 표현된 인물상들이 색채의 장 위에 등장합니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통해 한국적 영감을 시각화하였으며, 색면의 아름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미를 완성시켰습니다. 작가의 작품이 들려주는 한국적 모성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한국 전통의 오방색으로 색채를 눈부시게 뿜어내는 김화백의 그림을 보노라면 우선 당장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언제부터인가 봄이 좋아졌다. 청년시절엔 낙엽마저 다 떨어진 11월의 쓸쓸함이 그렇게 좋더니. 오늘은 원조 비바리가수 백난아의 찔레꽃을 감상하며 고향의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춥니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는 1925년 제주에서 오금숙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함경도 청진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 하였고 서울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였다. 1940년에 개최된 제1회 레코드 예술상이란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김교성의 눈에 들어 진방남과 함께 태평 레코드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김교성은 콩쿠르를 통해 신인가수를 많이 발굴해내 콩쿨대왕이란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백난아라는 이름은 선배가수 백년설이 지어 줬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늘 날 전 세계의 대중음악은 대부분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이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속성을 지니는데, 여기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은 문화의 우수성 외에도 국력을 포함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무력으로 그리스를 지배했지만, 우수한 그리스 문화만큼은 흠모하여 앞 다투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제국 전역에 전파하여 찬란한 꽃을 피우게 했다. 그리스문화의 우수성과 로마제국의 국력이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문화가 높은 곳 역할을 했다. 한자문화권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중국문화의 짙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국력이 막강했음에도 자기네 문화를 전파하지 못한 나라가 있다. 몽골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하였지만 변변한 문화를 지니지 못해 전파는 고사하고 오히려 지배지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별로 뛰어 나지는 못하지만 국력 덕택에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가 있으니 바로 미국문화이다. 특히, 영화와 대중음악이 본보기로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로큰롤이 기폭제 역할을 하였는데, 일부를 제외한 거개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매화가 만발이다. 멀리 청옥산은 아직 하얀 솜두루마기를 걸치고 웅크리고 있는데 삼화벌판엔 벌써 청보리가 한 뼘이다. 온갖 멧새 때 소리에 아침이 앞당겨져 양달 쪽 목련은 나발을 불고, 복사꽃 망울 속엔 연지가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먼저 피려고 꽃잎들이 다투는 소리에 밤마다 들뜬 잠을 잔다. 이미 남녘에선 벚꽃 개화소식이 들려오니 머잖아 상춘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닐 것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얼굴이 환해지지만, 꽃잎을 보면 떠나간 연인이 생각나 슬퍼진다고 노래하는 여인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그룹 에드 포의 운영에 한계를 느껴 해산을 하고 미8군 무대 복귀를 결정 하였다. 새로운 밴드 결성에 있어 실력자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었으나 여성 보컬이 필요했다. 마땅한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중 우연히 한 신인여가수가 무대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실력에 반해 즉석에서 발탁하여 팀에 합류 시켰다. 그 여가수가 바로 이정화이다. 그때가 1966년으로 팀 이름은 덩키스였다. 우리는 8군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정화의 노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며칠 전 음악선배 한 사람이 이 칠칠치 못한 후배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명도가 낮지만 한 때는 내로라하는 유명밴드를 두루 거친 보컬리스트였다.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의 습성을 알고 있는 터라 자동차로 묵호등대를 찾았다. 등대 앞 광장에서 내려다보면 탁 트인 동해바다가 보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선배 역시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흡족해했다. 뒤이어 우리는 동해 조망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파도는 암전하여 간간이 밀려오는 잔물결은 학의 깃털이 날리는 양 평화로웠다. 동해항으로 들어가는 대형화물선도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고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여객선 꽁무니를 갈매기들이 떼 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일까. 영화의 한 장면일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다가 그 선배의 표정을 살피니 의외로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이 어디 안 좋은가 싶어 서둘러 내려오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선형 계단에 접어들자 식은땀을 소나기처럼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부축하여 한참 만에 내려오니 그는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굴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 친일문학인들과 달리 붓을 꺾었던 늘봄 전영택 다시 한 칼이, 내 가슴에 원수 왕의 충신 되란 맹세리니 이 맹세 내 붓으로 써 펴내라니 아프구나 이 칼이 더 아프구나 몇 십 년 아낀 내 붓 들어 이 글을 쓰단말가 꺾어라, 꺾어라, 내 혼도 꺾이누나. 늘봄 전영택 선생의 벽서라는 시입니다. 선생은 일제 말 왜놈들이 우리의 문학인들에게 일왕에 대한 충성의 글을 강요할 때 저 벽서라는 시를 쓰고 붓을 꺾습니다. 서정주,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강요와 협박에 어쩔 수 없었다며 이들이 요구하는 붓을 들 때에 늘봄 선생은 붓을 꺾었습니다. 늘봄 선생을 보면서 저들의 말은 한낱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안 들립니다. 그리고 일제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게 중에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친일의 붓을 놀린 문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소설가 김동인씨는 일제가 항복 선언하기 불과 2시간 전까지도 총독부 학무국을 찾아가 시국에 공헌할 작가단을 꾸리자고 자기 아이디어를 내놓기까지 합니다.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의 붓을 들 수밖에 없다고 칩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금당산이 숨을 크게 한 번 내뱉으니 청량함이 골 안 구석구석을 휘돌고 나간다. 머리 위에선 구름들이 소곤거리고 계곡 바위에선 물이끼 돋는 소리가 사르륵 사르륵 들려온다. 산수유 봉오리가 즐탁하여 병아리 떼가 나뭇가지에서 삐악거리고 떼죽나무 잎은 벌써 회돌이모양으로 삐치고 나왔다. 산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되지만 낮은 빨리 시작된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마치고 요사 채 앞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화사한 봄볕에 승복이 하얗게 보인다. 햇살이 가닥가닥 빨래에 부딪쳐 입자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알갱이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노 주지는 오수에 빠져 이미 삼사라를 떠나 코고는 소리가 대고 거죽을 어르고 운판을 치더니 범종 속을 맴돈다. 낚시 줄에 알밤을 꿰어 다람쥐와 꾀를 겨루는 장 처사 입에선 능글맞은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렇게 고즈넉한 오전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알록달록한 꽃잎 몇 장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이 사장 네구나 당구풍월이라더니 장처사도 신통력이 생겼는지 어떻게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까? 저, 매 바위로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던데 안내 좀 해주실래요? 점심공양 후 뻐근한 허리를 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눈이 부시다. 안과에서 동공촬영 한 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내 눈이 부신 건 눈(雪) 때문만은 아니다. 이 눈부심은 마음의 눈부심이다. 기다리던 님이 기척 없이 다가와 등 뒤에서 껴안듯 짜릿한 눈부심이다.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던 겨울이 봄에게 꼬리를 밟혔기 때문이다. 좔좔좔 눈 녹은 물이 얼음을 이고 시내를 흥건히 적신다. 겨우내 물 한 방울 없던 수중보에도 시냇물이 넘쳐 북평 앞바다에서 올라온 황어들이 용솟음친다. 왜가리 날개 짓에도 힘이 실렸다. 기록적인 폭설이라고는 하지만 눈이 그친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전천 산책로에는 무릎을 넘는 눈이 그대로이다. 상류 쪽은 사람은 커녕 짐승조차 지나간 흔적 없이 설원을 이루고 있다. 시(市) 당국의 무관심 덕택에 처녀설을 밟는 우수리까지 챙기는 운 좋은 날이다. 나는 어릿광대가 되어 새끼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본다. 중년 나이에 이렇게 촐싹거린다고 벌금 매기는 것도 아닐 테고 설령 매긴들 어떠랴! 취병산 너머로 남풍이 불어오는 오늘, 허식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이렇게 첫 봄을 맞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얼굴은 인품이란 말처럼 박인희처럼 외모와 행동거지가 일치되는 사람도 흔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악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온다. 도치 알집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음악 가운데 대중음악이 숫자 면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랑노래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까? 어떤 이는 군사정권시절에 존재했던 사전검열제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사랑 이외의 노래, 예를 들어 친구라든가 아침이슬, 물좀주소 같은 노래들은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금지곡으로 묶어버리니, 아예 시빗거리를 피하기 위해 사랑타령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긴 하나 사랑노래가 많은 건 비단 우리뿐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고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의 대명사인 제3공화국 시절에 왜색, 비탄조의 사랑타령은 국민에게 활력을 주지 못한다 하여 탄압을 가했던 사실을 돌이키면 더욱 그렇다. 또 다른 이는 사랑의 다양성을 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 감정 중 가장 가치가 큰 것으로, 동서는 물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쉽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