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조동진 겨울비 수록 음반 표지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방안 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 두고 내가 하늘 보며 천천히 밤길 걸었을 때 내 마른 이마위에 차거운 빗방울이 어제 오후부터 시작한 겨울비가 오늘 아침나절까지도 내린다. 그동안 바람이 매섭다며 꼭꼭 닫아 놓았던 베란다 창을 열어젖히고 액자 속 그림 감상하듯 비에 젖은 겨울을 내다본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추위가 온다 하고 이미 고개 너머 세상은 폭설이 내린다니 어쩌면 갑오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비 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해가 또 내게서 떠나는구나! 창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결국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듯이, 나 역시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인생무상의 허탈감을 만끽하려고 밤늦도록 음악과 함께 주(酒)서방과 씨름한 결과가 고통스런 속 쓰림으로 돌아온다. 죽이라도 끓여 먹이려는 아내가 뒤주를 여니 습도 탓인지 유난히 쌀 향기가 진하게 퍼진다. 그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전에 제주 재판 갔을 때 가보았던 4.3 평화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때 평화공원 사무실에서 4.3과 평화라는 잡지를 받았었는데 글 중에 저승사자 탁성록이란 글이 눈길을 끄는군요. 탁성록은 당시 제9연대 정보참모로 중위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증언은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라고 몰아 죽였다거나 여러 여성을 겁탈했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탁성록은 아편중독자였군요. 아편에 취하니 눈에 뵈는 게 없었나봅니다. 탁성록은 제주에서만 만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고향 진주로 돌아가 특무대장을 지내며 고향 인근의 주민들을 보도연맹원으로 몰아 집단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는군요. ▲ 제주의 저승사자 탁성록 같이 근무했던 김정무 대위도 훗날 이렇게 증언합니다. 탁성록은 마흔이 다 된 사람인데 정보참모의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도 아니고 군악대에서 나팔 불던 놈인데 어떻게 특채됐는지 나보다도 먼저 대위를 달았어요. 이런 저런 구실을 달아 여자들 성폭행을 많이 했어요. 이 정도 인간이라면 우리가 많이 볼 수 있는 비열한 인간상이니까 제가 이 정도만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전에 책을 읽다가 1887년 조선 주재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한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와 결혼하였던 궁중무희 '리심'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아리따운 리심을 알게된 플랑시는 고종에게 리심을 요구하여 리심을 선물 받은거죠. 당시 궁중무희는 노비 신분이고, 더구나 왕의 명령이니 플랑시는 어렵지않게 리심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 1887년 조선 주재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한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 그런데, 날이 갈수록 리심의 아름다움과 지적인 총명함에 빠져든 플랑시는 3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리심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리심을 데리고 프랑스로 귀국하여 결혼을 하지요. 아마 리심이 최초로 프랑스 땅을 밟은 조선여인이 아니었을까요? 그 후 리심은 플랑시가 모로코 공사로 부임하자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땅도 밟습니다. 이 역시 아프리카에 상륙한 최초의 조선여인? 조선여인 리심에 비친 서양세계는 어떠했을까요? 또 낯선 백인들 땅에 유일한 조선여인 리심의 외로움은 어떠했을까요? 리심의 행복은 1896년 플랑시가 다시 조선 공사로 부임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고종이 리심을 미끼로 프랑스의 힘을 빌리고자 플랑시를 회유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요즈음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요? 12. 11.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더니 지금까지 그 기세를 몰아오며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이 기세대로라면 독립영화로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워낭소리의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15일(월) 저도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하니까, 흐~음~~ 영화가 뜬다고 하니까, 평소 영화 잘 안 보는 양변까지 영화를 보는구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영화를 감독한 진모영 감독과의 개인적 인연이 저를 더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나눔문화라는 시민단체 회원으로 있는데, 나눔문화 회원들 중 같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여행를 같이 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행을 통해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며 지내오고 있지요. 그렇기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극장에 걸리면서, 당연히 같이 모여 영화를 보았는데, 저는 그때 다른 일정이 있어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5일 송년모임에서 진감독을 만날 텐데,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지난해 이맘때쯤 북한의 한 실세 정치인이 실각을 하였다하여 언론매체가 연일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혹시 전쟁이 나지는 않을까 하며 걱정하는 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625라는 골육상쟁의 참극을 겪은 우리로선 괜한 걱정이라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저 이 땅에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들으며 625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되짚어 보기로 한다. 작사가 반야월(가수 진방남)은 동란이 일어날 즈음 미아리에 살았다. 전쟁 하루 전까지도 전쟁이 나리라곤 상상도 못한 채 콩쿠르 준비에 골몰하다가 새벽녘에 들려오는 포성소리를 듣고서야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자유당정부는 북괴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며 거짓으로 국민들의 동요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전쟁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적 치하에서의 생활이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붉은 완장 찬 사람들이 가가호호 뒤지고 다녔고 밤마다 인민재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예술인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살기위해서 각 공산단체에 자발적으로 가입을 해야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12‧12와 광주민주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언론과 기업을 강제로 통폐합하려 들었다. 주요기업 그룹 계열사 166개를 1984년까지 강제 정리하는 시책을 발표하고 밀어붙였다. 그러나 호락호락한 정주영이 아니었다. 한국이 사회주의 사회도 아닌데 정부가 나서서 민간이 만든 기업을 강제로 통폐합하려 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라며 반발했다. 이에 당황한 경총 사무국 책임자는 당국의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정 회장의 발언을 절대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두환 '국보위'에 당당하게 맞서 업무 지시 전 꼼꼼하게 사전 준비 그뿐이 아니었다. 정주영이 국보위가 마련한 구조조정안에 반대하자 국보위측은 국책에 대항하느냐며 다그치자 이에 지지 않고 다음과 같이 당당한 대응논리를 폈다. 나는 어떤 사업이든 땅을 준비하는 데서부터, 말뚝 박고 길 닦아서 그 위에 내 공장을 내가 지어서 시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그렇게 만든 사업체를 어려워서 넘겼거나 이득이 많이 난다고 프리미엄을 받고 누구한테 넘겨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만든 것들은 하나하나 전부가 다 자식
[한국문화신문 = 리창수 기자][오늘 토박이말] 버렁 [뜻] 일의 울타리(범위)[보기월] 그러면 토박이말 갈배움(교수학습)의버렁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보는 사람들마다 입이 왜 그러냐고 묻는 바람에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야 했습니다.왔었는지 안 왔었는지 모르는 듯 지나치는 아이도 있고, 하루 안 보였다고 걱정을 해 주는 아이도 있었지요.몸이 절로 나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따로 먹는 것도 없고 바르지도 않았는데 어제보다 더하다는 말을 듣고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어제 못한 일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제가 만든 일은 아니지만 다른 분들을 바쁘게 해 드려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어진 모임에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조금 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오는 길에 어제 있었던 토박이말바라기 모임 이야기를 하면서 왔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동안 땀을 흘렸는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풀어야 할 것들이 어디서 부터 무엇 때문에 꼬인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가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가 살아온 삶과 똑같은 삶을 되풀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은 사람을 사귐에 있어 꽤나 까다로웠던 모양이다.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흘겨보아 백안시(白眼視)하였고, 자기 마음에 들면 눈에서 푸른 광채가 나며 청안시(靑眼視)하였다 한다. 완적이야 그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아서 그렇다지만 사람을 만나다 보면 괜히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나에게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데도 예쁜 사람이 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러한 현상은 각자 지니고 있는 에너지 파 때문이라 한다. 에너지 파가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 반대일 경우엔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오늘은 그 에너지 파가 아주 잘 맞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러브 스토리를 추억해본다. ▲ 영화 러브스토리 OST 음반 표지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난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했으며 모차르트와 바흐, 비틀즈를 좋아했고 나를 사랑했죠.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눈 내리는 공원 한 모퉁이에 쓸쓸히 앉은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는, 1970년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로 에릭시걸의 소설을 필름으로 담아낸 영상미학의 걸작이다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 백성욱이 떠나고 몇 번의 계절이 바뀌자 김원주는 그를 잊기로 한다. 그렇게 결심이 선 이상 잊힐 때까지 기다릴 김원주가 아니었다. 신문사 기자인 국기열을 사귀기도 하고, 대처승 하윤실과 결혼을 하면서까지 백성욱을 잊으려 발버둥쳤으나 그의 빈자리만 커질 뿐이었다. 하윤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나자 그제서야 그녀는 백성욱의 참뜻을 이해하고 수덕사로 향한다. 하지만 불제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백성욱을 향한 불길이 쉬 꺼지질 않아 몸부림치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 오다 세이조와의 관계라든가 아들 오다 마사오에 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물었었다. 다만 꿈길로만 오는 아이 라는 시를 써서 모성애의 흔적을 남기긴 하였다. 김원주는 눈물범벅이 되어 달려드는 아들을 얼음장처
▲ 《다니니까 길이더라》,박희채, 책과나무,2014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박희채 전 영사의 책 《다니니까 길이더라》를 읽었습니다. 책은 저자가 오랜 직업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화나 삶에서의 느낌을 장자(莊子)적 관점에서 풀어본 수필집입니다. 저자는 2001. 12. 캐나다 밴쿠버에 근무할 때에 《장자》에서 종교를 초월한 인간 삶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아예 성균관 대학교 대학원 종교철학과까지 들어가 장자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더니, 장자의 생명적 사유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지요. 잠시 저자의 말을 들어보지요. 책을 통해 장자의 사상을 알아 가면서, 더 큰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정된 나의 세계에 빠져 살던 나에게 타자(他者), 그리고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내 생각은 옳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대상을 판단하며 살아왔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면서도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인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여운 한 마리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바깥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기록한 내용을 장자적 사유를 바탕으로 반추해본 것이다. (중략) 내 우물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