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의 영화나 연극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해 왔던 오순택이 마당놀이 형식의 연극, 곧 <가주타령>을 올려 미 주류사회의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작품에서 김동석은 배경음악과 국악연주, 춤사위 지도, 사물놀이 장단, 타악기 다루는 법, 우리식 노래 부르는 방법 등을 지도해 주었다. 2000년 1월에는 김동석을 회장으로 선임한 <문화예술총연합회>가 조직되었다. 시인협회를 비롯 미술, 음악, 무용, 연극, 볼룸댄스, 다도, 서예, 영화, 수필, 사진, 크리스찬 문협, 시각디자인, 국악 등 12개 문화예술단체가 하나의 연합회를 조직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LA 고교에서 선택과목으로 한국음악을 교육할 계획을 세우고 그에게 자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김동석의 말이다. “LA 교육국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고등학교에서 이중 언어 교육과 함께 한국음악을 지도할 것을 검토 중인데, 자문해 달라는 거예요. 한국도 아니고 이곳 미국에서 교사든, 학생이든, 그 대상자가 누구든 간에 한국어나 한국음악을 지도하겠다는데, 머뭇거릴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 지난주에는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 학교방문 공연 외에도 특별 공연을 통해 재미동포와 미 주류사회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L.A 올림픽의 예술축제와 폐막 공연, 인갈스 오디토리움(Ingalls Auditorium)에서의 <아시아 태평양 무용축제>, <와츠타워 훼스티발(Watts Tower Festival)>, <할리웃 보울 한국음악 훼스티발(Hollywood Bowl Korean Music Festival)>, LA 다져스 스타디엄(LA Dodger Stadium)과 캘럭시 축구장(LA Galaxy Soccer Stadium)공연,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열린 <한국의 날-Korea Festival> 참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L.A에 거주하고 있는 재미동포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결집시키기 위한 <연합회>의 조직과 문화예술이나 구성, 또는 그 활동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미국의 영화나 연극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해 오고 있던 오순택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 이야기는 미국에서 학교방문 공연의 평가가 매우 엄격하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김동석 교수의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아 30년을 이어오는 유일한 단체로 인정받아 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동 예술단이 학교를 방문, 공연활동을 펼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점, 곧 학교 밖에서도 크고 작은 특별 공연들을 펼쳐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이야기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먼저 L.A 올림픽의 예술축제와 폐막 공연의 참여이다. 1984년 L.A 올림픽이 열렸을 때, 동 <예술단>은 미국 소수민족의 예술단체를 대표하는 단체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그 결과 L.A 다운타운에 있는 일미극장에서 단독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다양한 한국의 전통음악, 그리고 춤을 통해 한국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한인사회는 물론, 미주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4년 6월, 인갈스 오디토리움(Ingalls Auditorium)에서의 <아시아 태평양 무용축제>도 잊을 수 없는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이 축제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인도, 필립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 L.A와 그 이웃 지역에도 전속 예술단체가 되어 그동안 3,000개 이상의 학교에서 5,000회 이상의 방문 공연하였다는 이야기와 학교의 선생님들이 ‘경이로운(wonderful)’, ‘최고로 멋진(awesome)’, ‘아름다운(beautiful)’, ‘매혹적인 (mesmerized)’, ‘최고로 즐거운(really enjoyed)’ 등으로 평가해 줄 때, 김동석 교수는 보람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L.A 음악센터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 어떻게 그토록 긴 시간을 학교방문 교육에 동참해 올 수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본다. 김동석의 학교방문 공연수업은 한국의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서 국악기 연주와 무용 등을 선보인 다음, 한국말 몇 마디 가르쳐 주는 것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한 동양의 한 작은 나라, 코리아의 음악과 춤을 감상하는 시간이려니 해서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학생들의 반응은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하다가 이내 ‘원더풀’을 연호하며, 공연이 끝나면 사인을 해달라고 줄을 서기 시작한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L.A지역의 어느 중학교에서 실행한 다인종 문화의 이해를 위한 공연 수업을 소개하였다. 음악센터에는 약 60여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나, 창립 이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단체는 김동석의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이라는 이야기, 음악센터의 광장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는 항상 동 예술단의 공연 장면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김동석의 <한국음악무용예술단>은 창단 다음 해인 1984년부터 이웃 지역, 곧 오렌지 카운티와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county), 산디에고(San Diego)의 전속 예술단체가 되었다. 이들 지역을 합하면 남북한을 합친 길이보다 더 길다고 하는데, 대략 3,000개 이상의 학교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김동석 교수의 말이다. “어떤 날은 새벽 4시에 떠나 3시간 운전해서 학교에 도착, 공연하고, 또 어떤 날은 2~3개 도시를 돌면서 한국을 모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는 기쁨에 피곤을 잊고 뛰어다녔지요. 아마도 지난해 2019년까지 우리는 5,000회 이상의 방문 공연을 했을 겁니다. 이 강의를 하면서 음악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창단한 <한국음악무용예술단(Korean Classical Music and Dance Company)>이 L.A 지역의 다문화 이해 프로그램에 참가, 초 중등학교에서 한국음악과 춤에 관한 강의를 해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처럼 작게 보이는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 미국민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문화의 강국”임을 심어 온 것이라 하겠다. 글쓴이가 김동석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어느 중학교 공연 수업에 나를 초대해 현장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 그는 <Korea>의 spelling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질문한다. 약 1/3 정도가 손을 든다. 이어서 한국은 어느 대륙에 위치하고, 인구수, 수도를 소개한 다음, 간단하게 역사와 한국인들이 즐기는 전통음악과 무용을 소개했다. 한국의 전통악기들, 예를 들어 장고를 소개한다면, 실제의 장고를 들어 올려 생긴 모양새를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오른손으로는 장고채를 잡는 법과, 치는 형태, 왼손으로 북편을 울리는 시범을 보이며 소리빛깔의 차이를 느끼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나면 무용수가 직접 장고를 메고 나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만나 온 <서한범의 한국음악이야기>가 지난주로 500회를 맞게 되었다. 두서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는 “한국정부의 지원 약속, 지켜지지 않아 실망”이라는 제목의 <한국민속보존단체>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의 운영자급을 받아 10여 명, 다음 해에는 20여 명의 생활비가 지급되었다는 이야기, 동 단체는 각급 학교를 방문, 한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 한국의 역사,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의 실연, 때로는 지역의 불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 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서 미 공화당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끝나게 되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 1980년 3월,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단원들은 대대적으로 환영 연주를 하였다는 이야기, 대통령을 수행하던 당시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과 상의해서 매년 30만 달러의 기금을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동석 교수가 <한국음악무용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매주 화요일, 독자들을 만나 온 국악속풀이가 이번 주로 500회를 맞게 되었다. 당시 <신한국문화신문>이란 이름의 인터넷 신문을 발간하고 있던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윤옥 시인, 이무성 화백 등, 3인은 나를 만난 자리에서 “국악 듣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 “국악감상이나 이해에 가까이 접근하려 해도 쉽지 않다는 점”, “그들을 위해 쉽게 안내하는 글을 신문에 써 주었으면 한다는 점” 등을 청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요청이 매우 현실적이며 진지했기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여 다소 시간 여유는 있게 되었던 차였고, 이러한 기회에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긍정적으로 대답한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주 1회, A4 2장에 국악 관련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작업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이야기, 또는 발표 공연이나 연주회, 학술모임, 등등, 국악 행사와 관련하여 보고 느낀 점 등을 중심으로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지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은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사회이어서 각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키워 감으로써 미국문화의 다양성이 미국의 국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 미국악원 정기연주회에는 이동엽 외 13명이 궁중악무와 민속악무를 발표하였는데, 윌셔이벨 극장 1,200석 좌석이 교포와 외국인들로 만석이어서 이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한국인 민속보존단체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1977년 1월의 일이다. 미주의 국악인들이 어떻게 하면 전공분야를 살려가며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오던 김동석은 고민 끝에 로스앤젤레스시 커미셔너로 있던 이천용 씨를 통해서 당시 지역사회의 유색인종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있는 CCDS(Community Care Development Service)의 회장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를 통해서 <한국민속보존단체>-(Korean-American Ethnic Heritage Group)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업 보장 프로그램의 하나인 CETA 기금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이 CCDS는 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70년대 초, L.A에 <재미국악원>이 발족하여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가적 행사, 교포사회의 문화 행사, 그리고 <연꽃축제>와 같은 아시아인의 행사 등에 초청되어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정작 자체적인 정기연주회는 미루어 오다가 궁중과 민속의 악무 10여 종목을 준비해서 <창립기념연주회>를 갖게 되었는데, 부래들리 L.A 시장의 축하 인사와 정부가 파견하는 문화 사절도 오기 어려운 시기에, <재미국악원>의 역할이나 이에 대한 기대가 높아간다는 총영사의 격려사도 소개하였다. 그렇다. <재미국악원>의 정기 연주회가 있던 1976년 당시의 한국은 지금과 같이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또한, 70년대는 외국을 여행한다는 그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국악학교를 졸업한 젊은 국악인들이 미국 L.A에 모여 살게 되면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미국 문화의 일부로 키워가려는 시동을 걸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사회다. 그래서 각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키워 감으로써 미국문화의 다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