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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문 음악인들이 넘어야 할 큰 고개, 영산회상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5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나는 영산회상과 관련하여 잊지 못하고 있는 경험담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중반이다. 당시 서울 음대에 출강하고 있던 나와 이화여대의 김선한(거문고)은 기말 전공시험의 채점을 마치고, 서울 음대 국악과 김정자 교수의 제안으로 함께 식사와 차를 나누며 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오늘 시험에 치른 학생들의 연주 능력이나 해석이 제각각 달라 지도하는 선생들이 더욱 더 근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우리 3인과 한양대학의 양연섭(양금) 교수는 함께 정악 공부 모임인 【정농악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국악계의 원로 사범이었던 김천흥(해금), 김성진(대금), 김태섭(피리, 장고), 봉해룡(단소), 이석재(피리, 장고) 선생 등을 모시고, 정례적으로 영산회상 합주를 주 1회 정도 공부한 적이 있다.

 

겨울에 시작된 공부가 3달 정도 지날 무렵, 우리 젊은이들은 노 선생들과 함께 영산회상 전곡을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하고 연습계획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젊은 교수들은 ‘매매일의 일정이 바쁘다.’, 또는 ‘이미 다 배워서 잘 알고 있는 곡이며, 현재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서 몇 번 연습하면 연주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곡이다.’ 등등의 이유를 앞세워서 주 1회 연습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원로 음악인들은 “우리는 평생 영산회상만을 연주해 왔음에도 그 정상은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그렇게 간단하게 준비해서 되는 음악이 아니다”라고 우리의 경솔함을 조용히 일러 주는 것이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용한 충고에 아무 변명도 못하고 지체없이 주 3회 연습으로 결정했던 기억이 있다.

 

 

 

 

원로 음악인들이란 어떤 분들인가? 12~13살 어린 나이에 이왕직 아악부에 들어와 지금처럼 격정적 표현의 산조음악이나 흥취를 돋우는 민속조의 음악, 또는 창작곡은 생각도 못 하고 오로지 영산회상 중심의 정악만을 평생 연주해 온 정통음악인들이 아닌가? 아무 때나 악기만 들고 당장이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그분들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연습시간을 요구하였고, 왜 그토록 긴장했는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획대로 우리는 6달쯤 열심히 연습한 다음, ‘영산회상 전곡 발표회’를 가졌고 결과는 예견한 대로 대성공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영산회상 9곡 가운데 한두 곡을 공개적으로 연주해 왔을 뿐, 전곡을 완주한다는 것은 당시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산회상 전곡발표회는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 이곳저곳에서 초청연주가 마련되었고, 이와 함께 음반작업도 시작되었다. 지금도 영산회상은 정농악회의 음반이 가장 애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소리, 강하고 약한 소리, 잔가락이나 표현적인 시김새의 처리, 장단과의 호흡, 관(管) 가락과 현(絃) 가락의 조화, 내 소리와 다른 악기와의 조화 등등 원로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그분들이 지적해 준 내용들은 지금도 소중한 경험이 되어 후진 양성에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이제야 영산회상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시선이나 영산회상을 대하는 음악적 태도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점을 지금에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보기에 영산회상은 쉽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영산회상의 제1곡 ‘상령산’의 음악을 거문고나 가야금의 악보로 보면, 마치 초보자의 연습곡처럼 2, 혹은 3정간에 율명 하나 정도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장고보를 보면 20정간을 6박-4박-4박-6박으로 구분하여 순서대로 <雙-鞭-鼓-搖> 만 표시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천하의 명고수(名鼓手)라도 이를 잘 치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정악 장단의 외양(外樣)은 지극히 간결하고 단순하여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누 구나 쉽게 장단을 잡지 못한다. 악곡 속에 숨어 있는 음과 음 사이의 보이지 않는 흐름 을 읽지 못하면, 누구도 연주하기 어려운 것이 정악의 장단이기 때문이다.”

 

초심자를 비롯해 젊은 음악인들은 간단하고 쉽게 생각하는 음악이 정악이고 영산회상이지만, 평생을 연주해 온 원로 대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음악이 또한 영산회상이다. 예술적인 값어치뿐 아니라, 문헌적인 근거가 분명하여 그 생성 시기나 변천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인 값어치, 음악학적인 값어치도 높은 우리 시대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며 큰 거봉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영산회상은 전문 국악인들이 도전하여 반드시 넘어야 할 큰 고개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