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전 서울법대 문우회 회장인 김영수 시인이 《The long road to the sixth ROK)》라는 책을 뒤쳤습니다. ROK라면 ‘Republic of Korea’의 약자인데, 그러면 제목을 직역하면 ‘제6공화국으로의 기나긴 길’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김 시인은 이를 《한 가족의 삶에 드리운 100년 동안의 폭풍우》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한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자기 아버지가 태어난 1907년 무렵부터 100년 동안 한국 격동의 역사와 그 폭풍우 같은 역사 속을 헤치고 나온 가정사를 버무린 책입니다. 책 제목을 저자는 한국이 군사정권을 끝내고 민간정부로 들어선 6공화국까지의 공적 역사에 중점을 두고 정했다고 한다면, 역자는 그 공적 역사에 휘둘린 한 가정의 가정사를 중시하여 제목을 붙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쨌든 영문책을 뒤친 것이니까, 저자는 일응 외국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자가 미국 시민권자이니까 외국인이긴 하지만, 저자는 김 시인의 친누님이십니다. 누님인 저자 김영란은 1960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그대로 미국에 눌러앉아 미국 시민이 되신 분입니다. 책을 읽으면 우리가 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늘날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들이 관직을 얻고 가문의 이름을 떨치는 것은 평범하고 우매한 자제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너희는 폐족의 자식들이다. 만약 폐족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잘 처신하여 이전보다 더 훌륭한 가문을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놀랄 만하고도 훌륭한 일일 것이다. (p.10) ‘폐족의 자식들’. 칼날 같은 이 표현이 폐부를 찌른다. 폐족(廢族)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말한다. 그랬다. 걸출한 당대의 학자이자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전도유망한 관료, 다산 정약용은 임금이 바뀌자 한순간에 폐족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배신과 상처도 컸다. 자신이 총애를 잃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벗들이 정적으로 돌변, 자신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머나먼 강진으로 유배되어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 마흔 살 정약용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학문에 손을 놓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학자 정약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천 리 밖에 있는 자신을 탓하며 자식교육에도 손을 놓았다면, 가문에 흐르는 유장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시대를 뒤흔든 양심선언! 어느 시대나, 양심을 깨우는 죽비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도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바른말, 옳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보며 미쳤다고들 한다. 그냥 눈 질끈 감고, 입 한번 닫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고생길을 자처하냐고, 누구는 그게 틀린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아느냐고 반문한다. 이들의 용기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의 객기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럼 그는 과연 모두를 각성시킨 그 외침은, 부질없는 만용이었을까. 설사 그 뒤로 바뀐 게 없더라도, 그들이 이건 아니라고 외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책의 지은이, ‘산하’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김형민 PD는 그들이 용기를 낸 덕분에 역사가 퇴보하지 않고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 《양심을 지킨 사람들》에서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라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넘나드는 시대도 다양하다. 책에 소개된 15인 가운데는 이준이나 남자현, 박종철처럼 비교적 알려진 이들도 있고, 검군이나 김성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청춘(靑春)! 푸르디푸를 것만 같은 ‘청춘’이라는 시절. 모두가 한 번쯤 거쳐 가는 그 축복 같은 시절. 청춘을 지나며 소년은 어른이 된다. 이 젊은 날들은 모든 것이 희망차고, 따뜻하고, 순조롭기에 ‘푸른 봄’이라 불리는 걸까. 그러나 청춘을 지나온 이라면 알 것이다. 그 시기가 그렇게 푸르지만은 않다는 것을. 현실과 이상의 괴리, 스스로에 대한 회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실망. 청춘은 이 모든 것이 점철된 채, 인생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을 한껏 안고 힘겨운 발걸음을 떼는 시기다. 설흔이 쓴 이 책 《소년, 어른이 되다》에 실린 7명의 소년도 그랬다. 목차만 훑어봐도, 이 소년들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범상치 않다. 홀로 바다를 건넌 소년 최치원, 과거에 거듭 실패한 소년 이규보, 학자와 관리 사이에서 방황한 소년 이황, 아버지를 원망한 소년 이이, 죽음을 일찍 깨달은 소년 허균, 부당한 차별에 눈물을 쏟은 소년 박제가, 신경증에 시달린 소년 박지원. 이들에게 청춘은 마냥 푸른 봄날은 아니었다. 아니, 푸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가까웠다. 어쩌면 인생을 겨울부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혜경궁 홍씨. 조선에서 이 여인만큼 지극한 영화를 누린 이도 드물 것이다. 아들 정조는 수원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원했다. 출궁하여 환궁하기까지 여드레에 걸친 원행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분을 빼앗기고 폐서인되거나 죽지 않으면 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왕실 여성의 신분으로, 이런 식의 외출을 해본 여성은 혜경궁 홍씨가 유일했다. 그해 봄, 혜경궁은 조선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영화로운 날이 있기까지 그녀야 삼켜야 할 울분과 고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남편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심지어 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남편을 죽일 것을 종용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던, 조선에서 가장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딸》 지은이는 이런 혜경궁 홍씨의 절절한 아픔과 고뇌를, 그녀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한중록》의 각 대목과 함께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홍봉한의 관계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 아버지 홍봉한, 시아버지 영조, 남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새로 낸 책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을 읽어보았다. 책은 미국판 입시부정 이야기로 시작한다. 2019년 3월 연방 검찰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33명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하여 교묘히 설계된 입시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조국 사태’라 불리우는 입시부정으로 한창 시끄러웠는데, 미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입시부정으로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평등을 주장해오던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이라고 하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어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됐지 않은가? 그런 미국도 지금은 대학이라는 간판, 그것도 명문대학이라는 간판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나 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단 입시부정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입시 스펙을 쌓고 다듬기 위해서, 또 학력을 높이기 위한 사교육비 등으로 고액의 돈이 들어간다. 또한 고급 입시정보나 기회는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궁’. 이 한 글자가 전하는 따뜻한 느낌은, 설레는 발걸음으로 궁을 찾아본 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궁에 가면 언제나 좋은 느낌이 들곤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덕수궁을 거닐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고, 경복궁 집옥재에서 책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고, 창덕궁 후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이들도, 궁을 참 좋아했다. 서울 상봉동에 있는 여행책방 ‘바람길’의 주인장인 지은이 박수현은 그래서 궁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서 같이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지 두 달여,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도 겸하고 있던 그는 외국어로 궁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국어로 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펴내게 됐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그림을 그려줄 작가를 찾는 것이었다. 궁을 수채화로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채화로 궁을 그려줄 작가를 수소문한 끝에 조은지 작가를 만났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궁의 색감과 느낌을 조금씩 찾아 나간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궁》이다. 《궁》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인생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를 친추(친구추가)했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친구신청 알람. 놀라서 친구목록을 확인한 나는, 쫌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로 찾아온, 조선시대 그분들의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 (p.13-15) 카톡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아니 《조선왕조실톡》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갑자기 내 친구목록에 조선 임금들이 쭉 뜨고, 그들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채팅으로 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재밌는 이 아이디어를 웹툰으로 구현해낸 것이 바로 역사웹툰작가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웹툰은 작가가 2014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이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네이버 웹툰 연재를 거쳐 7권의 책으로도 출판됐다. 이 《조선왕조실톡》 시리즈는 국민 채팅앱 카카오톡을 활용한 친근한 전달방식, 작가 무적핑크의 재기발랄한 창작, 해설자 이한의 재치 있는 해설, 실록에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을 구분해 짚어주는 친절한 기획 덕분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역사콘텐츠로 탄생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도 수능이 다가올 무렵이면 온 나라가 들썩들썩하지만, 조선에서도 과거시험은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처럼 진로가 다양하지 않던 시대, 과거시험은 벼슬에 나아가 뜻을 펼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자 평생을 바쳐 이뤄내야만 하는 ‘인생과업’이었다. 때로는 일찍 과거에 급제, 순탄하게 벼슬길에 나아가기도 했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지금의 ‘고시낭인’ 못지않게 ‘과거폐인’도 많았고, 평생을 적성에 맞지 않는 과거시험에 매달리느라 고생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른 길을 찾고 싶어도, 양반은 과거에 합격해 벼슬을 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수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을 삼킨 채 936년간 치러졌던 과거시험. 이 책 《과거제도 조선을 들썩이다》는 그런 과거시험의 모든 것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친절히 풀어낸 책이다. 책에서 풀어내는 과거시험의 이모저모를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1.한양에 사는 것이 과거 급제에 유리했다? 그렇다. 과거시험은 확실히 한양, 그중에서도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에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과거
[우리문화신문= 우지원 기자] ‘말 키우는 오랑캐’, 목호(牧胡)! 목호는 고려 말, 제주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몽골인이다. 그들은 몽골이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직속령으로 편입한 이래 제주에서 말을 비롯한 각종 가축을 키우며 100여 년 동안 살아가고 있었다.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든 몽골은 제주가 필요했다.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말의 산지로서 제주의 가치는 상당했다. 몽골은 제주를 원이 경영하는 14개 목장 중 하나로 삼고, 약 1,500명의 군사를 주둔시키며 말을 길러냈다. ‘목호’라 불리는 이 군사들은 처음에는 낯선 존재였지만, 점차 제주 토착민과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깊숙이 섞여들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100여 년간 살을 맞대고 살며 이들은 더는 오랑캐가 아닌, 이웃집 아들이자, 남편이자, 가장인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1374년, 최영 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깡그리 몰살당한다. 도대체 그 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지 ‘제주의 목호가 일으킨 반란을 최영 장군이 진압한 사건’으로 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응어리진 그해 여름의 역사를, 작가 정용연이 《목호의 난, 1374 제주》이란 한 권의 만화로 숨가쁘게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