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이사 온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마을과 호수 사이는 모두 논이고,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마을 가운데에는 젖소 목장도 있고, 마을 안쪽 야산 아래에는 작은 절이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작은 도로는 경운기가 다니는 길인데, 승용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논과 야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약 20가구가 산다. 수기리는 작고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었다. 수기리로 3월에 이사 오면서 호돌이는 수기분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새로 전학한 학교는 전교생이 38명밖에 안 되는 분교였다. 정확한 이름은 봉담 초등학교 수기 분교다. 분교에는 선생님이 3명뿐이었다. 선생님 한 분이 교실 하나에서 2개 학년을 합반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호돌이가 전학 와서 3학년은 모두 4명이 되었다. 전학하고서 학교에 다녀온 첫날 호돌이가 “엄마, 나 이제는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우리 반에서 4등이네”라고 말해서 온 가족이 함께 웃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은 남자였다. 시골 분교로 전학을 온 이후 호돌이는 학교에서 마음 놓고 장난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 말 근대의 여명기에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그 어떤 사람보다 여러 가지 이바지를 하고 자기를 희생한 외국인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인 조지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였다. 그의 주선으로 1886년 조선에 온 헐버트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헐버트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의 개방과 관련된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고인이 된 조지 포크의 조선살이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1856년 펜실바니아에서 태어난 포크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아나폴리스의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너무 혈기방장하여 사관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4년 뒤 그는 선두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모든 분야를 기민하게 통달했으며 나이를 앞지르는 조숙성을 보였다. 그는 졸업한 뒤 곧 극동지역으로 발령받았다. 그의 명민함은 전문적인 학식과 기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곧 상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제독의 눈에 들어 부관이 되었다. 일상적인 근무와 별도로 그는 놀라운 속도로 일본어를 습득했다. 그는 타고난 언어학자였다. 나가사키에서 일본인 아가씨를 사귀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돌도끼 들고 사슴 쫓던 시대에는 먹거리 해결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입니다. 수렵과 채집이 여의찮으면 굶는 일도 다반사였을 것이고 저장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니 다른 동물처럼 먹거리 해결이 큰일이었겠지요. ‘삼순구식(三旬九食)’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순(旬)은 열흘 ‘순’ 자로 10일 단위를 나타냅니다. 한성순보(漢城旬報)는 10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신문이었고 한 달을 상순, 중순, 하순으로 구분하는 것도 열흘을 기준으로 합니다. 곧 삼순구식은 삼십 일 동안에 아홉 번 식사했다는 뜻으로 극심한 가난과 빈곤을 상징하며 그만큼 생활이 궁핍하고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가지로 뒤주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면 가장은 식솔 먹일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해야 합니다. 송기도 그중의 하나인데 소나무 속껍질의 얇은 부분입니다. 이 식재료들은 섬유질이 지나치게 풍부하여 위나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습니다. 결국 필연적으로 변비를 초래하게 되지요. 3박 4일 동안 변을 보려고 노력하다가 드디어 해산의 고통을 안고 성공했는데 거기가 찢어진 겁니다. 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탱고(TANGO) 흑인과 인디오의 혼을 담고 (심) 북미엔 재즈, 남미에는 탱고 (돌) 춤과 가락에 서린 웃픈 역사 (빛) 뜨거운 노래를 몸에 담노라 (달) ... 25.5.4. 불한시사 합작시 생애 처음으로 남아메리카 5개 나라를 다녀왔다. 브라질과 파라과이에 걸친 이따푸댐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쪽 이구아수 폭포도 보고 잉카의 수도 쿠스코와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도 가보고 4,000m 환상의 볼리비아 소금사막도 가봤다. 100년 전 세계 경제 6위였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화려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발상지 라보카지구도 가봤다. 항구가 있는 곳으로 세계 이민자와 선원들이 도착한 곳이다. 알록달록한 페인트칠의 허름한 집들이 있는 거리였다. 기념품 가게 외벽에는 메시와 에바페론, 그리고 탱고의 아버지 카를로스 가르델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로운 이민자들의 열정적인 춤과 음악이 탱고의 시작이었다. (라석)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48) 선생이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각각 그 재능을 살펴서 그것을 도탑게 했다. 질문이 있으면 반드시 그를 위하여 의문 나는 뜻을 분석하여 말이 미세한 곳에까지 파고들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하게 의문이 풀린 뒤에야 그만두었다. 1561년은 조선 교육계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 해였다. 퇴계 이황이 이끄는 도산서당이 안동의 청량산 줄기에 세워졌고, 남명 조식이 이끄는 산천재가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세워졌다. 이 두 학교는 당대의 으뜸 사립대학으로 나라를 지킬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이 되었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인 김경수가 쓴 이 책, 《남명 선생의 삶과 가르침》은 조선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교육자였던 남명 조식의 삶과 교육관을 조명한 책이다. 40년 가까이 남명학을 연구한 지은이는 사회에 남명 정신이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간 공부한 내용을 쉽게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남명 조식(1501~1572)은 독보적인 학문적 경지를 이룩해냈다. 무엇보다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는 <단성소>, <무진봉사> 등의 상소를 올려 천지를 진동케 했고, 비록 벼슬에 직접 나아가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사실 K 교수가 시골로 이사 온 것은 둘째 아들인 호돌이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호돌이는 형보다 무려 10년 늦게 늦둥이로 태어났다. 호돌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열리던 해에 태어났고, 당시 올림픽 대회의 마스코트가 풍물굿 모자 쓴 호돌이였는데, K 교수는 아들 이름을 호돌이라고 지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살던 K 교수는 호돌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둘째 아이는 원래 장난이 심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편이지만 이 녀석은 장난이 심했다. 남자애들이 장난하는 것이야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녀석은 도가 지나쳤는지 날마다 선생님에게서 벌을 받고 야단맞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남자면 또 모르겠는데,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는 여선생님이 대부분이다. 호돌이의 담임 선생님도 20대 후반의 여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은 호돌이 때문에 수업이 안 된다느니 집에서 주의를 좀 주라느니 등등 아내를 통해서 들어보니 문제가 심각하였다. 아내는 늦둥이로 낳은 호돌이에게 사랑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호돌이가 사고를 쳤다고 젊은 여선생님이 젊지 않은 아내를 학교로 호출하면, 아내는 기분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 번에 이야기했듯이 미 해군 소위 조지 포크가 1883년 12월, 3명의 조선인과 함께 북대서양의 아조레스(Azores) 섬을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조선인들는 이 희귀한 여행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특명전권 대신 민영익(보빙사 대표)은 처음으로 서양 여행을 하면서도 유교 서적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조지 포크는 탄식을 삼켰다. 반면에 서광범과 변수는 열정적으로 서양에 대한 지식.정보를 수집하고 메모하였다고 조지 포크는 전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전해오지 않는다. 서광범과 변수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역적으로 몰리면서 자료가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조선인들의 첫 서양 방문에 대해 오직 조지 포크를 통해서 그 조각이나마 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조지 포크의 부모님 전 상서에서 아조레스 방문에 대한 첫 부분을 지난 번에 실었다. 그 뒤의 이야기를 여기 잇는다. “(부모님께) 저야말로 좌중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노부인들이 꼬치꼬치 캐물어 시베리아 탐험이며 일본 여행이며 중국 사원 탐방이며 등등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또 조선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제가 독차지하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2023년 7월에 폭우가 내려서 낙동강 상주보 제방 일부가 무너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8월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치수의 제1번은 하천 준설”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한 말씀 하시니, 환경부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준설 사업을 시작했다. 환경부에서는 2020년 8월에 집중 호우로 홍수 피해가 발생했던 낙동강의 제1지류인 황강을 대상으로 2024년부터 하천정비사업을 시작하였다. 황강 정비 사업 구간은 합천군 용주면 용주교에서부터 청덕면 청덕교까지 총연장 50km이며 사업비는 2,600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환경부에서는 준설과 수목 제거가 2027년까지 끝나면 황강의 홍수위가 최대 93cm, 평균 30cm 낮아져 홍수 피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래 하천정비사업은 국토교통부 소관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하천 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이관하였는데, 그 이유는 환경 보호를 주 업무로 하는 환경부에서는 4대강 사업 같은 무모한 하천 생태계 파괴 공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적인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대로 치수에서 제일 중요한 방안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떤 선문답(禪問答) 어떻게 왔는가 경봉이 묻자 (돌) 하늘 길로 달빛타고 왔쑤다 (빛) 저마다 자기 맥락에 살지요 (심) 무엇을 보고 무엇을 나눴나 (달) ... 25.4.24. 불한시사 합작시 설명 /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초청으로 1981년 시월 '인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조주의 프랑스 철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한국의 유가와 불가의 전통문화를 직접 보고싶다고 해서 유가는 양동 경주손씨 종택 서백당과 불가는 양산 영취산 통도사가 뽑혔다. 그의 일행은 600년 서백당에 묵으며 칠첩반상 놋그릇 독상으로 30여 명분을 차려내자, 그는 "이런 독특한 문명국가가 있다니“ 하고 탄복했다. 대문 밖 높다란 언덕의 재래식 뒷간과 영당 손소의 초상을 유심히 살피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요청에 따라 소를 사고파는 경주 시내 우시장을 찾기도 했다. 통도사 극락암에 이르러서는 경봉방장이 "어떻게 왔느냐?" 묻자, 통역자가 레비스트로스의 말 "비행기 타고 왔다"라고 통역했다. 그러자 경봉은 "하늘에는 길이 없는데ᆢ"라고 하였다. 우문우답이 오히려 선문답이 되어 좌중 모두 크게 웃었다. (라석) • 불한시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그동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내란사태를 보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몇 번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저까지 나서서 떠드는 것은 그 정도면 됐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이재명 파기 환송 대법원판결을 보고서는 오랫동안 법원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표현의 영역을 넓히려는 원심판결을 지지하지만, 어찌 되었든 대법원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문제입니다. 저는 대법원이 이렇게 초고속으로 판결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무리 대법원장이 6ㆍ3ㆍ3원칙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도 더 빠른 판결입니다. 그리고 여태 그 원칙대로 하지 않다가 하필이면 이재명 판결에서 이를 적용합니까? 더구나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재판기록을 모든 대법관이 숙독하고 결론을 내며 판결까지 쓴단 말입니까? 이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판사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물론 대법원은 법률심이니 사실심처럼 기록을 꼼꼼히 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사건은 유력한 대선후보에 대한 사건이고, 더군다나 원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므로, 일반 사건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