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4절기 중 추분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가을도 그만큼 깊어가지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추분의 의미는 이것이 다일까요? 아닙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것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의 세계를 뜻합니다. 지나침과 모자람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가운데에 덕(德)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중용의 뜻이 있지요. 그런가 하면 추분엔 향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추분의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는데 그 냄새를 한자말로 향(香)이라고 합니다. 벼 화(禾) 자와 날 일(日) 자가 합해진 글자이지요. 한여름 뜨거운 해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벼는 그 안에 진한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내면에 치열한 내공을 쌓아갈 때 저 내면 깊이엔 향기가 진동하지 않을까요? 또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강렬한 햇볕, 천둥과 폭우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이렇게 추분은 중용과 내면의 향기와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미역국을 단숨에 마셔 버리고 빈 그릇을 살강에 놓는데 사립 쪽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위 글은 한승원의 ≪해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전 한옥 부엌에는 “살강”이란 것이 있었지요. 살강은 부엌의 부뚜막이나 조리대 위의 벽 중턱에 가로로 기다랗게 드리운 선반을 말합니다. 살강은 보통 대나무로 발을 엮거나 긴 통나무를 두 개 엮어서 만드는데 밥그릇이나 반찬그릇을 올려놓고 쓰기에 편하게 한 것입니다. 살강은 대부분 1층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더러 살강 위에 한 개의 선반을 더 얹어서 2층으로 만들어 쓰기도 하였는데, 위 칸에는 소반이나 허드렛상을 얹어 놓는 등 부엌을 더 넓게 쓰기 위한 수납공간이었던 것이지요. 어머니께서 누룽지를 긁으시면 언제나 살강 위에 놓아두셨습니다. 하지만, 종종 쥐란 놈이 먼저 실례를 하기도 해서 어머니께서는 누룽지를 담은 그릇을 더 큰 그릇으로 덮어두곤 하셨지요. “살강”, 이제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살강을 보게 되면 어머니께서 “얘야 살강 위에 누룽지 있다.”라고 하실 것만 같습니다.
8월에서 10월까지 시골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꽃 고마리를 보셨나요? 그런데 고마리는 왜 그런 이름을 지녔을까요? 먼저 고마리는 수질정화에 뛰어난 구실을 하는 고마운 풀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그런가 하면 고만고만한 것들이 모여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환경이 좋지 못한 물속이나 습지에서도 줄기차게 퍼져 나가서 인제 그만 되었다고 '그만이풀'이라고 부르던 것이 고마리로 변했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고마리는 형제들이 많지요. 메밀과에 속하는 식물들과는 잎과 꽃이 비슷한데다 모여 피었을 때의 느낌까지 많이 닮았습니다. 며느리밑씻개나 며느리배꼽 그리고 미꾸리낚시와는 꽃만 보고는 쉽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닮아서 형제간으로 볼 수 있고 줄기에 가시가 있는 것까지 닮은 쪽(물들이는 풀)이나 여뀌 식물과는 사촌 간이라 할 수 있지요. 고마리는 하수구나 개천 등 더러운 물 주변에서도 잘 자라서 더러운 물을 정화해주지요. 워낙 생명력이 강해 많이 퍼져 나가 인제 그만 되었다는 뜻에서 고마리라 불린다지만 그래도 더 많이 오래도록 피어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러운 물도 정화하고 도시에 찌든 우리 마음도 정화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너무 큰 욕심일까요? 참
삼척 하장면의 천연기념물 272호 느릅나무 느릅나무 잎
보름달 보며 비손 하는 날, 정월 대보름 정월대보름의 유래와 세시풍속 ▲ 정월대보름 달맞이를 하는데 맨먼저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 이무성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구름 타고 천천히 운명을 항해하는 저 보름달을 본다. 뒷동산에 올라 너그럽고 따뜻한 달빛에 온몸을 맡긴 채 지난 어린 추억을 더듬는다. 바로 이틀 뒤에 다가온 음력 정월 대보름(1월 15일)의 풍경이다. 정월 대보름의 달은 한해 가운데 달의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한다. 가장 작은 때에 비해 무려 14%나 커보인다는데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란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기본으로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였다. 또한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해를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하고,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본다.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우리
설날은 낲설고, 삼가는 날 겨레의 큰 명절, 말밑과 세시풍속 ▲ 오늘도 오늘이소서, 내일도 오늘이소서! ⓒ 이무성 '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 주셨다.밤새도록 자지 않고눈 오는 소리를 흰떡으로 빚으시는어머니 곁에서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중략)어머니가 밤새도록 빚어놓은 새해 아침 하늘 위에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어머니는 햇살로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 김종해 시인은 설날을 이렇게 노래한다. 어렸을 적 나는 섣달 그믐날 자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지키려다 잠들은 뒤 아침에 일어나서 하얗게된 눈썹에 놀랐었다. 설날 아침 설빔을 입고 세뱃돈을 받은 뒤 온통 내 세상 같았던 옛일이 그리워진다. 이 설날은 한가위와 더불어 우리 겨레의 큰 명절이며, 민족의 대이동이 있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 우리의 명절, 설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설"의 말밑과 유래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첫날이다. 이 새해 첫날 “설”의 말밑(어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 몇 가지 설이 있다.먼저 "섧다"라는 뜻으로 본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설날이 '달도일(
조선엔 위대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서평] 고진숙의
오늘은 유두날입니다 명절의 유래와 세시풍속... 불편했던 이웃과 같이 웃는 날 ▲ 유두와 여름에 즐겼던 발담그기, 조선 중기의 화가 이경윤의 '고사 탁족도(濯足圖)'.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이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와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날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오늘(10일) 음력 6월 15일은 '유두날'이지만 유두국수를 먹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유두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동방의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으로 보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다.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이다. 올해는 강원도를 비롯하여 온 나라에 큰 비가 내려 복날의 의미가 약해졌지만, 삼복의 유래와 세시풍속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후 셋째 경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한다.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에 모두 지지(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천간(자축인묘진사오미)을 조합하여 갑자·을축·병인 등으로 이름을 지었는데'경일'이란 지지의 '경' 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킨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이라고 한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다.'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의 기운, 가을철은 '금'의 기운이다. 그런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무학대사를 이긴 정도전의 궁궐 짓기는 잘못 국토사랑방, 2월 창경궁 답사 동행기 ▲ 창덕궁의 중심건물, 인정전 ⓒ 김영조 지난 1월의 국토사랑방 답사는 순천 선암사, 금둔사, 순천만에서 여수의 향일암으로 이어졌었다. 2월엔 가까이 있는 조선의 궁궐 창덕궁을 찾아보기로 했다. 토요일 늦은 2시 서둘러 가니 돈화문 옆 휴게실에 모여들 있다. 오늘은 꽃샘바람도 없이 온화한 날씨다.현존하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 들어갔다. 안내그림판 앞에서 문화해설사가 기본적인 설명을 들려준다. 금천을 가로질러 놓인 금천교를 건너간다. 아직 나무에 움이 트고, 꽃이 피기엔 이른 철이어서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