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연갑 국가상장연구회 위원] 애국가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문헌을 꼽는다면 1965년 발행된 《배재팔십년사》(培栽八十年史)이다. 이 책은 아펜젤라(appenzeller)목사가 설립한 신학문 발상지 배재학당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여기에 애국가에 대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정초식 기념식장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조선가독립가진보가를 불렀는데, 이중 조선가가 애국가라며 윤치호가 작사하였고 곡조는 벙커(D.H. Bunker) 교사가 편곡한 것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는 10년 전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6개월간의 조사 끝에 윤치호 작사 확정 유보로 결론을 내린 이후 기록이기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작사자 문제를 미결로 남긴 이후, 윤치호를 작사자로 주장하는 편과 안창호가 작사자로 보는편으로 갈라져 최근까지도 논쟁이 이어졌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랜 논쟁의 주제가 바로 이 애국가 작사자 문제인데, 지난 해 까지도 국가싱징연구회 회원과 흥사단 간에 격한 논쟁이 있었다. 그래서 애국가 작사자를 윤치호로 주장하는 편에서 이 책은 20
[한국문화신문 = 양인선 기자]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 -조문기 어록 가운데서- 오늘 오전 11시,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별관) 폭탄 의거의 주인공인 독립지사 조문기(19272008) 선생의 추모식이 경기도 화성에서 조촐히 열렸다. 추모식은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지부장 이호헌)와 광복회 화성지회 (지회장 신창우) 주최로조문기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화성시 화성매송초등학교에서 신용승(민족문제연구소 전 수원지부장)등 지역원로와 선생의 뜻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선생의 독립의지를 새기는 자리였다. ▲ 추모식에 묵념하는 참석자들 조문기 독립지사는 경기 화성(華城) 사람으로 1943년 5월 일본 가와사키(川岐市)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의 민족차별 반대시위에 참여하여 이를 주도하였다. 그리고귀국 후인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의 유만수(柳萬秀)의 집에서 유만수우동학(禹東學) 등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국내에서의 대일투쟁을 결의
[한국문화신문 = 진용옥 명예교수] 국궁에는 활과 화살 그리고 살꽂이 솔[과녁]이 있다. 활은 손으로 쥐는 줌통을 시작으로 커브를 트는 오금, 활시위를 올리는 부분 고자가 있다. 발사 직전까지 화살을 올려 두는 출전피가 붙은 쪽이 윗장, 아랫쪽이 아랫장이다. 활시위 중앙에 화살을 매기는 부분을 절피라 한다.이에 대한 각의 명칭과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다. ▲ 그림 출처- 웬하키피디아 살꽂이란 솔 또는 과녁을 말한다. 표적[的]에다 가죽[革]을 붙여 관통[貫通] 하기를 바랬으니 관혁[貫革]이라 했고 독음은 과녁이다. 우리 문헌 자료에서 관혁(貫革)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왜어유해》(1781~1782, 上:40b)에서이다. 유성음인 ㄴ과 모음 사이에 있는 ㅎ이 탈락하면서 만들어진 과녁은 19세기 무렵에 나타나서 현대에 이르는데 우리 사전에서는 이미 어원 의식을 상실한 말로 보고 관혁(貫革)을 이 말의 원래 말로 처리한 것 이외에 별도의 관련을 맺어 주지 않았다. 16세기에는 관혁(貫革)의 의미를 갖는 고유어로 솔이 있었다. 관적(貫的 사적(射的) 표적(標的) 등이 비슷하게 쓰인다. 이때 관의 중앙을 관중, 적의 중앙을 적중이라 하며 모두 정확하게 ዎ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전국에서 모인 청년백범 4기 38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적지 순례단이 지난 1월23일~27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상해, 가흥, 해염, 항주, 진강, 남경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중국내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에 앞서 1월 10일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을 찾아 홍소연 전 백범기념관 자료실장의 안내로 전시물을 관람하였고 이어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묘역과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 등 임시정부 요원 묘역에 뫼절을 올렸다. 이번 순례단은 초등학생인 10대부터 올해 60대 되는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백범일지를 읽고 여행에 오르기로 다짐하였다. ▲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둘러 보는 순례단들 첫날 상해에 도착해서 과거 프랑스 조계안에 있었던 보경리 임시정부 청사와 인근에 있는 중공 제1차 대회지, 김구선생과 가족들이 사셨던 장소를 둘러보았다. 이어 윤봉길 의사 폭탄투척 장소인 홍구공원 내 매헌 윤봉길기념관을 둘러보고 중국 현대문학의 상징인 노신의 묘를 찾아 가이드로부터 중국인들에게 왜 노신이 추앙받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2일째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난잎으로 칼을 얻다를 보았습니다. 제가 난잎으로 칼을 얻다를 보았다고 하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하실 것입니다. 지금 덕수궁 중명전에서 우당 이회영과 6형제를 다시 생각하는 전시회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당 이회영이라고 하면 지금은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우당 선생과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무슨 관계인가 갸우뚱 하시는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 뒤로 중명전이 보이고, 정문에 난잎으로 칼을 얻다 전시회 선간판이 걸려있다. 삼한갑족(三韓甲族) 우당 형제들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망명하여 경학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많던 재산도 봄눈 녹듯이 독립운동에 다 사라지고, 우당 선생은 배를 주려가면서 난(蘭)을 칩니다. 우당 선생이 난 그림을 잘 그렸거든요. 그러니까 전시회 제목은 우당이 난 그림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는 뜻이지요. 전시회에 걸려 있는 서해성 작가의 시 난잎으로 칼을 얻다가 이를 잘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이레에 세 끼 먹는 주린 북경의 밤, 홀로 부는 젓대가락에 얼었던 호야등은 펄럭이는데 붓을 높이 들어 난을
[한국문화신문 = 이한영 기자] 사단법인 남북코리아미술협의회(이하 본 협의회)가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을미년(乙未年) 새해 들어 처음으로 1월 7일 오후 4시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남북한 작가들의 귀중한 작품들이 출품전시된 가운데 중국 조선족 대표를 비롯하여 재일거류민단 임원 그리고 우리 서화작가들이 영하 10℃의 혹한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이 참석하여 '제4회 남북코리아미술대축전'이 성대히 개최되었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전 통일부 차관이며 현재 개성공단 홍양호 이사장을 비롯하여 한국미술협회 조강훈 이사장, 이보영 추진위원장 등 한국측 작가, 중국문화부 예술평가심사위원 및 중국 연변미술관 이영인 관장, 중국 연변자치주정부 부비서관 및 중국 길림성 성황미술관 리성 관장 그리고 일본에서 일본 거류민단 왕청일 단장을 대신하여 일본 간사이한인회 이형배 상임고문 등이 참석하여 7천500만 남북한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 남북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생각이다. 지난 2014년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꽃다운 단원고 학생 등 301명의 어처구니없는 희생 속에서 안전(安全)이 실종되더니 연말에는 '땅
[한국문화신문 = 이한영 기자] 경북도는 국민들의 독도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지식 함양을 위해 포켓용 책자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 6천부를 펴냈다. 소책자는 우리 땅 독도에 대한 기본현황은 물론이고 역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담아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휴대용으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가로 11cm, 세로 18.5cm 크기에 약 100쪽 분량의 소책자는 독도의 일반현황, 독도 영유의 역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독도, 대한민국의 독도 관리와 이용, 일본의 독도 침탈 역사와 현황, 독도의 미래, 부록 등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독도연표'와 '지명 현황'을 그림으로 삽입하였고 독도전경, 독도 사철나무, 한국령 등 사진 10점과 팔도총도, 평화선, SCAPIN 677호 등의 지도와 사료 18점도 첨부해 일반인들의 내용 이해를 돕도록 했다. 부록에는 우리 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 입장을 실어 홍보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상욱 경북도 동해안발전본부장은 최근 일본 총선에서 3분의 2 의석 이상을 확보한 아베 정권이 우경화 정책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우리 국민들이 독도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선생님, 제 나이 이제 서른 하나입니다. 앞으로 서른 한 해를 더 산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쾌락이란 것을 모두 맛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쾌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상하이로 온 것입니다. 저로 하여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성업(聖業)을 완수하게 해주십시오. 이는 이봉창 의사가 상해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가 한 유명한 말이다.오늘은 이봉창 의사가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를 겨냥하여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수류탄을 던진 날이다. 이날 거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선생의 장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해 놓은 일본 왕의 행차에, 그것도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서 폭탄을 던져 타격을 가하려 했던 일은 한국 독립 운동의 강인성과 한국민의 지속적인 저항성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었다. ▲ 고려문을 통해 들어 가면 이봉창의사가 거사를 일으킨 사쿠라다문이 있다. ▲ 벚꽃 천지라해서 붙은 사쿠라다(櫻田)에 세운 문이라 사쿠라다문이라 부르며 이 문을 다른 말로
[한국문화신문= 이나미 기자] 파주시는 조선 왕조 최장수 영의정으로서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법률, 종교, 예술 등 전방위로 활약한 명재상 황희의 생애를 담은 '방촌 황희 평전'을 펴냈다. 황희는 승정원 관리인 지신사로서 태종을 보좌하여 태종에게서 이 말이 누설된다면 내가 아니면 네 입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으며 세종 때는 오랜 연륜을 바탕으로 모든 방면의 정사를 빈틈없이 처리해 왕이 그를 심복처럼 의지했다. 이처럼 그는 '해동요순'이라 일컬어질 만큼 찬란한 시대를 성군 세종과 함께 꽃피웠다. 이 책은 그동안 단편적 일화로만 알려져 있던 황희의 실제 삶과 공적을 역사적 맥락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하였다. 56년 관직 생활 동안 24년간 재상직을 맡았고 그 가운데 18년 동안 줄곧 영의정 자리를 지키면서 새 왕조의 기틀을 다졌으며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낸 크고 작은 업적과 더불어 황희의 전 면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이재홍 파주시장은 세종께서 회의마다 '대체로 황희 정승의 말대로 하라'고 명할 정도로 신임했던 탁월한 행정가이자 외교가로서의 방촌 황희 선생의 삶을 이번에 발간한 '방촌 황희 평전'에서 많은 분들이
[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이 터(사직단)에는 이렇게 백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런 근대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왕조적 발상으로 사직단을 복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일이다. 중앙집권적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민족주의 부흥의 제단을 복원하기에 앞서, 사직단의 본래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식량 위기에 처한 국가를 살리는 대책부터 세워야 하지 않을까? 아는 사람이 카톡으로 2014년 12월 16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조한혜정 씨의 사직단은 누가 왜 복원하려는 걸까? 를 찍어 보냈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글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하트모양의 이모티콘을 날리고 있다. 찬찬히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어? 이건 아닌데 싶어 몇 자 적는다. ▲ 종묘사직을 대변하던 사직단, 헐리고 축소되어 초라한 모습이다 ▲ 오늘날 사직대제를 지내는 것을 단순히 예산만 잡아 먹는1회성 행사로 보면 안된다. 조한혜정 씨는 한겨레신문의 칼럼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사직단 복원 건으로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올해 4월 사직단 복원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역사성과 민족정기 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의해 영역이 축소되고 훼손된 사직단의 복원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