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무성 한국화가] 여기는 일본 도쿄 한복판 일왕이 산다는 황거 앞이다. 도쿄 관광 코스에는 꼭 들어 있다는 필수코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저 평범하게 관광만 할 수 없는 유적지다. 앞에 보이는 이중교(二重橋-니쥬바시, 일명 안경다리)에서 1924년 1월 5일 관광객 틈에 몸을 숨긴 채 김지섭 의사는 황거를 향해 수류탄 3개를 던졌다. 당시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의 불발로 거사는 실패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었던 거사 장소인 것이다. 가까운 곳의 사쿠라다몽(櫻田門, 고려문) 곧 황거로 들어가는 문에서는 1931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수류탄 투척이 있었다. 일제는 당시 조선을 우습게보았겠지만 이 두 지사의 거사는 그야말로 조선인의 기개를 여지없이 보여준, 그래서 일본 경찰과 일왕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쾌거였다. 한국인들이여 황거 앞 이중교와 사쿠라다몽에 가거든 우리의 영웅 김지섭과 이봉창 두 지사를 꼭 기억하라!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앞 줄임)봄까치꽃은 그 크기가 아주 작습니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푸른빛이 도는 연보라색의 꽃은 가냘파 보이기까지 합니다. 작고 가냘픈 몸으로 어떻게 매서운 겨울을 났을까? 또 땅이 풀리자마자 꽃을 피워 남보다 먼저 새봄을 알려줄 생각을 했을까? 봄까치꽃, 이름이 참 예쁩니다. 그런데 봄까치꽃의 원래 이름은 큰개불알풀이라 합니다. 꽃이 지고 난 후 씨앗이 개불알을 닮았다하여 그렇게 불렸다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사람들은 그 이름이 민망하여 예쁜 꽃이름으로 개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뒤 줄임)” 위 글은 오마이뉴스 3월 14일에 전갑남 기자의 글의 일부다. 그는 봄을 맞아 “보라색 작은 꽃이 관심을 달라고 하네요”라는 글을 실었는데 이곳에 보면 “씨앗이 개불알을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늘은 이 꽃 개불알꽃에 대해 말해보자. 먼저 국립국어원의《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면 “개불알꽃 :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5~4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다. 5~6월에 붉은 보라색 꽃이 개의 불알 모양으로 줄기 끝에 한 개씩 핀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산이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키가 작고 뚱뚱한 대머리 일본군 장교가 딱 버티고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히죽거리기까지 했지요.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강압적으로 나를 끌고 침대로 갔습니다. 나는 말했죠. '절대 이런 짓을 할 수 없어요.' 그러자 그가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주마. 정말 죽이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칼을 뽑았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꼈습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를 침대에 집어던지고는 내 옷을 모두 찢어버리고 잔인하게 강간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어요. 나는 고통이 그렇게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방을 나갔고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욕실에 가서 다 씻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부끄러움과 모든 더러운 것을. 그저 다 씻어버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마치 전류처럼 몸속을 파고 흘러들거든요. 공포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동안 나와 함께 있었죠. 나는 밤이면 그 공포를 여기 내 응접실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날이 어둑해질 때쯤이면 소름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 최대 규모의 민영 뉴스통신사 지지통신(時事通信)은 최근 미국과 호주 등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려는 움직임에 대해 새로운 파문(新たな波紋)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도 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 내에서의 한중(韓中)시민단체의 연대 움직임은 전후 68주년간 참아온 늦은 움직임일 뿐임 결코 새로운 파문이 될 수 없다는게 중론이다. 미국의 위안부 소녀상 움직임 등 최근 아시아인들의 움직임은 일본이 전후(戰後) 위안부 문제를 방치하고 한술 더 떠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 등 안하무인격 행동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며 최소한의 행동일 뿐이란 것을 일본 언론들은 간과한 채 파문운운 표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라는 견해다. ▲ 추운 듯 잔뜩 싸매고 있는 소녀상 (사진 최우성 기자) 일본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은 호주 시드니에 들어설 일본군 종군위안부상(日本軍の従軍慰安婦像)에 대해 싱가폴 특파원 요시무라(吉村) 기자를 통해 호주의 중국계와 한국계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호주 최대의 도시 시드니에 위안부상을 설치허가를 지방정부에 냈다.고 전하면서 요시무라 기자가 중국계단체의 양(楊)씨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실었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오빠들이 하던 장기놀이도 군인장기로 변했고, 내가 놀던 기차놀이도 어느새 전차놀이로 변했다. 그 시절은 아이들 놀이조차도 전쟁과 연관된 놀이 일변도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죠시가야 공원묘지에 있는 나츠메소세키(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덤을 타고 노는 놀이도 즐겼는데 관리인들이 내쫓아도 다시 몰래 들어가 높은 묘비석에서 뛰어내리면 2계급 특진 같은 군인들이 하던 행동을 흉내 내며 놀았다 이 이야기는 고모리교오코(小林香子, 1930~현재)씨가 《부인통신》 1월호에 기고한 전쟁 세대에 태어나서라는 글 속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인통신》은 1953년에 설립한 일본부인단체연합회에서 나오는 잡지로 2014년 1월호로 664회를 맡는 유서 깊은 잡지다. 이 잡지를 만드는 단체는 전후 반세기에 걸쳐서 평화와 민주주의,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일본의 수많은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단체로 극우로 치닫는 아베정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게 내고 있다. ▲ 부인통신 편집장 사토사치코 씨, 일본부인단체연합회 회장 시바타마사코 씨, 글쓴이(시계방향)는 3월 7일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만나 한국인들이 아베정권에 하고
[그린경제/얼레빗 = 도쿄 이윤옥 기자] 3월 9일의 도쿄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마치 가을의 어느 날처럼 말이다. 히비야역에서 내려 황거 뜰을 들어서니 전형적인 일본 소나무 정원이 펼쳐진다. 삼십 여 년 전 지방에서 올라온 일본인들과 함께 처음으로 하토버스(하토란 비둘기를 뜻하며 1일 동경 관광버스)를 타고 황거를 들렀을 때 가이드가 말하길 이곳은 천황폐하가 사시는 곳으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와보는 곳이란 말이 지금도 선명하다. ▲ 벚꽃 천지라해서 붙은 사쿠라다(櫻田)에 세운 문이라 사쿠라다문이라 부르며 이 문을 다른 말로는고려문이라 부른다. 이 앞에서 이봉창 의사가 일왕의 귀가를 기다리다 폭탄을 던졌다. 이후 일본 답사팀을 이끌고 거의 해마다 들리다 시피하는 황거(皇居)는 올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그것은 일본인들과 다른 감회일 것이다. 식민지 청년 이봉창과 김지섭 의사가 폭탄을 던져서라도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그 거룩하고 숭고한 마음은 한 시대 신문에 난 한 장의 기록을 뛰어 넘어 이제는 역사의식을 제대로 갖춘 한국인이라면 동경 방문 길에 누구나 그 현장을 가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 고려문으로 들어가서 다시 문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일본이 변하고 있다. 아니 우에노공원이 변했다. 기분 좋은 변화다. 어제 찾은 우에노공원의 변화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유쾌하고 기쁜 변화였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3년 전 기자는 우에노공원 안에 있는 왕인박사 기념비를 찾아보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기사제목은 “왕인박사 기념비, 내선일체에 이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던 것은 “왕인박사 기념비 앞에 작은 한글 안내 팻말이라도 세워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기자는 어제 3년 만에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강연차 도쿄를 방문하여 함께 온 일행들과 공원을 방문해보았다. 시커멓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말없이 서있던 왕인박사 기념비는 방금 목욕을 한 듯 깨끗한 모습이었고 그 앞에는 한글을 곁들인 깔끔하고 예쁜 모습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함께했던 일행들은 왕인박사안내판에 모두 감동했다. ▲ 한글을 곁들인 왕인박사 기념비를 함께 방문한 이무성화백의 그림 안내판에는 한글로 “<고사기>등 사서의 의하면 왕인박사는 백제에서 건너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래한 학자로서 왕인박사비는 왕인박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일본의 아베정권이 국내뿐 아니라 나라밖에서도 지탄을 받고 있다. 광복회 호주 지회 황명하 지회장으로부터호주지역의 3.1절 행사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과 중국 곧 한중 커뮤니티'가 일본의 신군국주의 부활 반대에 한 목소리로 규탄을 한 것이다. 이들은 3월 1일 호주 스트라스필드역 광장에서 한인 동포를 대표하는 단체장들과 현지 정치인들 중국 커뮤니티 대표들이 모여 일본의 신군국주의 부활을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궐기대회 뒤에 재호주 한중 커뮤니티 연대 행동 강령의 내용은, 우리는 일본 아베신조 총리의 전쟁 범죄자를 유치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력히 규탄하고 한중양국에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일본 신군국주의 부활과 역사왜곡,위안부 참상, 난징대학살 등 일본의 전쟁 범죄를 온 세계에 알릴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자라나는 2세와 호주 국민에게 한중의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위안부란 이름으로 일본군의 성노예로 유린한 잔악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호주 전역에 소녀상을 건립 할 것을 결의한다. 는 것으로김태홍 한국자유총연맹 대양주연합지부 회장이 낭독했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이순형 선생은 이명시 애국지사의 따님이다. 이순형 선생을 뵌 것은 작년으로 어머니 이명시 애국지사의 자료를 찾다 연결이 되어 뵈었는데대화 중에도조용조용한 말씨와겸손함이 뚝뚝 묻어나는 분이었다. 이번에 시서전에 어머니 이명시 애국지사의 작품이 선보인다고 알리니 단걸음에 달려 오셨다. 한편 이순형 선생의 언니 이영애 선생은 미국에 사시는데 이명시 애국지사님에 대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이기도 하다. 당시 17살이던 어머니는 만세운동 연락책을 맡았는데 나들이 때에는 처네(주로 시골 여자가 나들이를 할 때 머리에 쓰던 쓰개. 두렁이 비슷하게 만들며 장옷보다 짧고 소매가 없다)를 쓰고 다녔으며 늘 약병 같은 것을 갖고 다녔다고 했다. 이는 출입을 감시하던 경찰로부터 불신검문을 당할 것을 대비해 환자에게 약을 전하러 간다고 속이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박순천 여사와 함께 감옥생활을 하면서 서로 의지했으며 출옥 뒤에는 만세운동으로 감옥살이 하는 분들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했다. 8․15 광복 뒤에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혼자 사는 노인과 고아원을 찾아 봉사활동으로 생을 마감했다. ▲ 이명시 애국지사 따님 이순형 님과 글쓴이
[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3번의 시화전과 됴코 시화전에 이어 제1회 시서전이 어제 2월 27일 저녁 6시 종로구 와룡동 갤러리 일호에서 열렸다. 이번 개막식은 생존 몇분 중의 한분이신 오희옥 여성독립운동가와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물론 후원자인 김영종 종로구청장과 종로구청 관계자들, 한국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김원웅 회장과 관계자들, (사)한국서도협회 김영기 회장과 관계자들, (사)한글학회 김종택 회장과 관계자들 그리고 주최자인 한국문화사랑협회 회원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 제1회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서전에 전시된 시서 족자들 ▲ 김락 애국지사의 시서 만세운동하다 두눈 찔렸어도 독립투쟁 막지 못하리 김영조 한국문화사람협회장은 여는 말을 통해 3번의 시화전 그리고 오늘의 시서전에 이어 현재 일본 도쿄에서도 시화전이 열리고 있고, 호주광복회가 광복절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모이신 분들의 정성을 보태면 분명 머지않아 전 세계를 순방하는 전시회가 열릴 것이라 확신하다.라며 기뻐했다. 이어서 축사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차리석 애국지사의 아드님이신 차영조 전 광복회경기도지부 사무국장은 그동안 선열들이 이루어놓으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