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도쿄 조영숙 기자]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이 열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베총리를 비롯한 일부 극우파들이 활개를 치는 가운데 일본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순수 시민단체인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유이치)이 주최하는 여명을 찾아서(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독립운동의 여성들) 전시회가 29일 오후 1시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 전시실에서 개막식을 열었다. 이번에 마련한 시화(詩畵)는 한국에서보내온 것으로 이윤옥 시인이 항일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 쓴 헌시를 이무성 한국화가가 그림으로 그린 20여점의 족자와 그에 관련된 사진 등이 전시됐다. ▲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 전시장 모습 1 유관순과 같은 나이에 만세운동으로 숨져간 동풍신, 무명지 잘라 혈서 쓴 항일의 화신 남자현, 평남도청에 폭탄 던진 당찬 임신부 안경신,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길러낸 억척 어머니 곽낙원, 압록강 너머 군자금 나르던 임시정부 안주인 정정화 등 20여명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일본에 알리는 뜻 깊은 전시회다. 한일간의 역사는 크게 아는바가 없으나 최근 한일 사이에 위안부 문제, 안중근 의사 관계를 둘러싸고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육당 최남선 일제강점기에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처럼 남다른 생활을 한 조선의 지식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당은 조선이 일본 등 외세에 의해 수모를 당하는 것은 조선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숙지하고 1907년 18세의 나이에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여 민중을 계몽하고 교도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근대화의 역군인 소년을 개화, 계몽하여 민족사에 새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종합잡지 소년을 창간하였고 창간호에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다. 육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민족문화가 형성되고 전개된 모습을 한국사민속지리연구와 문헌의 수집정리발간을 통해 밝히는데 주력했다. 이런 육당의 노력은 민족사의 테두리를 파악하려는 의도와 함께 한국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탐구하고 현양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 사상을 집약시킨 조선정신(朝鮮精神)을 제창하기까지 하였다. 육당의 업적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한민족의 자존심의 발로이기도 한 「삼일(기미)독립선언서」을 기초했다는 점이다. 육당은 「삼일독립선언서」를 기초했음에도 막상 민족대
[그린경제/얼레빗 = 안동립 기자] 방어잡이에 나섰으나 모터가 고장 나 표류하다. 오늘은 육지로 갈 수 있으려나 일어나 바다를 보니 너울은 있지만 배는 댈 것 같다. 아침 일찍 울릉도매니아 김남희 사장으로부터 독도로 배가 출항하였고 오후에 강릉 가는 배편 표와 강릉에서 서울 가는 셔틀버스까지 모두 일정을 잡아 전화로 연락이 왔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아지메가 차려준 아침을 먹으면서 아제요 오늘은 방어 잡으러 가닝교 물어보니 나가보자. 파도가 있어 어렵다. 그래도 낚시를 넣어보자. 드디어 방어잡이의 시작이다. 잽싸게 카메라 렌즈를 챙기고 보트에 올랐다. 오랜만에 보트를 모는 김 이장도 신이 났다. ▲ 배에서 본 동도 해돋이 ▲ 배에서 본 서도 해돋이 ▲ 배에서 본 해뜰 무렵 동도 ▲ 코끼리바위 주낙을 바다에 띄우고 신 나게 파도를 타며 보트가 달린다. 너울성 파도가 보트의 옆구리로 넘실댄다. 망양대 사이로 오랜만에 멋진 일출이 올라온다. 섬 전체를 환하게 비추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독도가 연출된다. 독도는 검고 무서운 색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독도는 하루에 두 번은 금빛 찬란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잠시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보트가 멈춰 선다.
[그린경제/얼레빗 = 한성훈 기자]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오는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이윤옥 시인이 쓰고 이무성 화백이 그린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이 열린다. 전시기간 안에는 3월 8일(토) 이윤옥 시인의 일본인과 재일교포를 위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특별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때를 맞아 전시회 관람과 동시에 일본 속의 고대 한국 혼을 찾아 떠나는 답사단을 모집한다. ▲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열리는 여성독립운동가시화전(이윤옥 시, 이무성 그림) 전단 최근 일본 아베 수상은 2차 세계대전 1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여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런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제강점기 조선 침략으로 받은 조선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부인한다. 이때 조선에 큰 고통을 안겨준 일본의 심장부 일본 도쿄 한복판 신오오쿠보에서 일본 최초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 도쿄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1월 29일~3월 30일)은 일본에서 한국의 잔다르크들에 대한 비상한 관심 속에 열리는 것으로 이윤옥 시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1~3권》시집에서 20명의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재호주 광복회가 2014년 1월 1일자로 한국의 광복회 본회(회장 박유철)로부터 광복회 호주지회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광복회는 박유철 광복회장 명의의 승인서에서 본회 해외지회 관리운영규정에 의거 광복회 호주지회 설립을 승인함이라고 밝혔다.지난 2009년 1월 24일 시드니에서 약 30여명의 독립유공자 직계 후손들로 발족한 이래 6년 만의 일이다. ▲ 광복회 호주지회 승인서와 황명하 지회장 임명장 이로써 재호주 광복회의 산파역을 맡은 황명하 현 회장은 광복회 호주지회장으로 공식 임명장을 받게 되는데 광복회 호주지회 설립 승인서 및 지회장 임명장 전달식은 1월 21일(화) 11시 시드니 총영사관에서 있을 예정이다. 따라서 새해 1월 1일부터 재호주 광복회는 공식명칭이 광복회 호주지회가 되었고 황명하 회장은 광복회 호주지회장이 되었다. 광복회는 외교부에 발송한 공문서에서 본회는 해외 활동 조직 가운데 최초로 재호주 광복회를 광복회 호주지회로 결정했다.는 점을 밝히고 현지 공관의 제반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 재호주 광복회에 앞서 이미 미주에는 뉴욕 광복회, LA광복회가 활동하고 있는데 그보다 먼저 재호주 광복회가 나라밖 활
[그린경제/얼레빗 = 홍사내 기자] 현대 사회는 이른바 자유주의(liberalism)가 얼마큼 존중되는가를 중시한다. 리버럴리즘은 이미 서양 17세기 시민혁명 이후 끊임없이 대두되면서 사회 변혁과 개인의 자유를 대변해 주는 정신으로 존중되어 왔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그 잣대 구실을 해왔다. 서양의 근현대사에서는 봉건 체제에 반대하여, 의회제도, 권력분립, 법의 지배, 개인 인권의 자유 보장, 사유 재산제에 기초한 시장경제의 확립 등이 전개되었고, 종교개혁에서의 신앙의 자유 즉 인간정신의 전면적 개화까지 자유주의에 추가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비대해진 정부조직의 재정 적자에 대한 비판으로 권력의 축소를 요구하는 자유주의가 대두한다. 법의 지배하에 선택의 자유나 소비자주권, 자기결정권 등의 요구를 내걸고 복지 국가제도를 개혁하기도 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지금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발전과 사회적 변혁은 개화기 이후 1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두 깃발 아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이념적 핵심은 개인의 삶과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15세기 조선시대를 현대 이념으로 바라볼 수는 없지
[그린경제/얼레빗 = 진용옥 명예교수] 2014년 1월 6일 박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 했다.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도박이냐고 비아냥거림도 했다.(경향신문) 그렇지만 모든 통일 논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고 평가했다(조갑제 닷컴). 망민[누리꾼]들 사이에는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박 대통령의 창작보다는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신창민 교수의 저술 제목이다. GDP 1%만 투자해도 엄청난 수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신교수의 대박 통일론이다. 골자는 R 이론에 의하여 사회간접 자본과 전파 퍼붓기로 요약된다. 통일은 원인에 따라 해법도 그에 비례하여 존재한다는 이론이 R 이론이다. 가령 통일 비용이 문제였다. 천문학적 비용이 제시되자 통일 기피 현상이 만연했다. 이를 경제 원리에 의하여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경제문제로 풀어야 한다. 또한 북녘 사회가 경직된 것은 소통의 장애 때문인데 전파 퍼붓기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와 해법은 등가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언급이 있자 이념적이고 정치적 통일론에서 단박에 경제적 통일론으로 전환되었다고 평가된다. 학술 연구
[그린경제/얼레빗 =정석현 기자] 전남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성풍사(聖風寺)의 5층석탑은 고려초기의 탑으로 추정되었으나, 1986년 탑의 복원 공사중 1층탑신 상면의 방형사리공에서 청자사리호와 함께 화강암제탑지석이 발견되었다. 이 탑지석의 발견으로 1009년(목종 12)이라는 석탑의 조성연대 및 성풍사(聖風寺)라는 절의 명칭, 영암현(靈嵒縣) 호장(戶長) 박문영(朴文英)이라는 제작 주체 등이 정확하게 밝혀짐으로써 이 석탑의 가치를 한층 높이게 되었다. ▲ 성풍사지오층석탑(聖楓寺址五層石塔) 연대 : 1009년(목종12년) 보물:제 1118호 세로 15.8cm, 가로 12.8cm, 두께 0.8cm, 글자크기 약 2cm 출토지,소재지: 성풍사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533-1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그렇다면 담징스님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일본서기 권22》에 보면, 스이코 18년(610) 봄 3월 조에 高麗王貢上 僧曇徵 法定 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并造碾磑 蓋造碾磑 始于是時歟 (고구려왕(영양왕)이 승려 담징(曇徵, 돈쵸)과 법정(法定, 호죠)을 보냈다. 담징은 오경(사서오경)에 능통하고 채색(그림)을 잘 했으며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물레방아와 맷돌을 최초로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담징스님이 법륭사 금당벽화를 그린 주인공이라고 밝힌 사람은 다카야마(高山樗牛1871-1902) 박사로 그는 《쵸규전집 제1권 일본미술사미정고, 樗牛全集,第一巻, 日本美術史未定稿》에서 분명하게 법륭사 벽화는 담징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채색의 마법사 담징스님이 법륭사에 그린 벽화는 모두 몇 점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당벽화는 금당 외진(外陣) 흙벽에 그려진 12면을 말하지만 실제로 담징스님의 벽화는 내진소벽(内陣小壁)의 비천(飛天) 벽화 20면과 외진소벽(外陣小壁)의 산중나한도(山中羅漢図)등 18면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비단 옷 걸친 천사 하늘을 난다 걸림 없이 이승 세계를 박차고 훨훨 서방정토 찾아 가는 그 얼굴에 살짝 드리운 미소 -이한꽃 비천- ▲ 고구려 담징스님이 그린 법륭사 벽화 비천(飛天) 담징스님의 금당벽화가 그려져 있는 법륭사(法隆寺, 호류지)는 인구 27,000명의 소도시 나라현(奈良県) 이카루가정(斑鳩町)에 있다. 서기 607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데 이웃해 있는 법기사(法起寺)와 함께 1993년 법륭사지역의 불교건조물(仏教建造物)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절을 지은 목수들과 벽화를 그린 스님 그리고 이 절에 주석했던 스님들은 모두 한반도 출신이다. 이들 백제출신 장인들에 대해 와세다대학의 미즈노유(水野祐) 교수는 《기기와사원(記紀と寺院)》이란 책에서 고대 도래인들은 일본 내의 절을 짓고 불교 발전을 위해 건너 온 인재 집단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지은 절 가운데 특히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 지어진 사천왕사, 광륭사, 법륭사, 약사사, 동대사 등은 이들 한반도계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사서들은 앞 다투어 적고 있다. 또 이러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