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2003년 경부고속전철 공사 과정에서 제기된 천성산 터널 중단 소송에서 도롱뇽은 원고 자격이 없으므로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송이 각하된 판례를 소개한 바 있다. 기존의 법에서는 자연(산, 강, 땅)과 동식물(나무, 개, 소)은 사람의 소유물로 본다. 그러므로 현행법에서는 도롱뇽의 주인이거나 도롱뇽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손해를 보는 사람만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도롱뇽 자체는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해석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2013년에 서울대공원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낸 이후 돌고래의 생존권에 관한 관심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과거 제주도 전역에서 1,000마리 이상이 발견됐지만, 현재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 부근에 12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체 수가 급격히 줄면서 2019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남방큰돌고래를 준위협종(멸종위기직전의 상태)으로 분류했다. 무분별한 선박 관광과 해상풍력발전 등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보호하려는 방안이 제주도 국회의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냈습니다. 박 시인은 저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낸 이후 써온 시 가운데 301편의 시를 고르고 골라 온통 짙은 파란색의 두툼한 양장 케이스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네요. 표지에서는 푸른색의 남자가 파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별들 사이로 두 줄기의 별똥별이 파란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고 있군요. 파란색의 디자인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도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저쪽의 그리움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나눔문화에서 저에게 시집을 보내왔는데, 나눔문화 연구원들이 내가 좋아할 만한 시가 수록된 쪽 3군데에 붙임쪽지(포스트잇)를 붙여서 보내왔습니다. 시집을 받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시에 붙임쪽지를 붙여 보내는 연구원들의 정성에 이번에도 감동을 먹습니다.^^ 붙임쪽지를 붙인 세 시 가운데 하나는 시집 제목과 같은 ‘너의 하늘을 보아’입니다. 역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 붙임쪽지를 붙여놓았네요.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봄이 드니 구경 가세 구경 가세 도리화 구경 가세 꽃 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인가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렴궁의 해어화인가 아리땁고 고을시고 나와 드니 빈방 안에 햇빛 가고 밤이 온다 일점 잔등 밝았는데 (p.144) <도리화가>를 부르는 채선의 목소리는 고왔다. 스승 신재효가 선물해 준 곡이었다. 한때 아이돌 수지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영화, <도리화가>의 제목도 여기서 따 온 것이다. 포스터를 가득 채운 수지의 해사한 얼굴과 그 뒤로 보이는 배우 류승룡의 근엄한 표정이 아직도 쉬이 잊히지 않지만,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해서인지 신재효과 진채선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편이다. 이 책, 《귀명창과 사라진 소리꾼》은 ‘우리나라 역사를 수놓은 두 인물의 아름다운 만남’을 주제로 한 토토북의 ‘아름다운 만남’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로 펴낸 책이다. 진채선과 신재효, 이 둘의 만남이 어떻게 판소리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는지 풀어낸 청소년 소설로,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그려놓아 재밌게 읽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요즘은 오히려 소리꾼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와 아사카와 노리타카 (1884∼1964)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에서 떠나와 한국에서 산 형제는 누구보다도 조선문화에 매료되었고 조선인의 진정한 친구였다. 특히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가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조선인들은 서로 그의 상여 메기를 자청했을 정도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지금 망우리공원 묘지에 잠들어 있으며 해마다 한국인들은 그의 ‘조선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죽은 기일에 무덤에서 모여 추모제를 연다. 6월 18일 도쿄 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기사에 따르면 “주일한국문화원(원장 공형식)이 한일 우호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 아사카와 형제 답사 행사를 형제의 고향인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18일 열었는데 이를 위해 30명의 정원을 모집한바 있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412명(일본인 387명·재일 한국인 25명)이 신청해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정했다.”고 문화원 측의 발표를 토대로 보도했다.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에 대한 한·일 간의 엄청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정된 30명은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 있는 아사카와 형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심산유곡에 피어있어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꽃도 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꽃은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손을 후대에 물려주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벌과 나비, 곤충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관심 밖에 놓인 인간의 찬양은 꽃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지요. 자연을 보면 인간사에서 느낄 수 없는 멋짐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인간 사회를 봅니다. 기업은 이윤을 위하여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익을 창출합니다. 노동자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려 노력하고 사용자는 많이 시키고 적게 주려 노력합니다. 그것이 상충하여 물리적 충돌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꽃은 그러지 아니합니다. 달콤한 꿀과, 기분 좋은 향기, 먹거리인 꽃가루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받는 것은 단순한 꽃가루받이인 수정인 셈이니까요. 또한 동물의 위장을 빌려 씨앗을 먼 곳까지 이동하는 수고로움을 끼칠 때도 상큼한 과육을 넉넉히 제공하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나눔이 있는 유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듯 자연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범을 보이고 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이 《삼킴곤란,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우리문화 지킴이인 김 소장님은 인터넷신문인 <우리문화신문> 발행도 하면서, 그동안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서울문화 이야기》 등 우리 문화에 관한 책들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책은 제목부터 독특합니다. ‘삼킴곤란’이라니? 《삼킴곤란,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은 김 소장님이 자신의 투병기를 책으로 낸 것입니다. 김 소장님은 지난해 9월 11일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었는데, 후유증으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장애 곧 ‘삼킴곤란(연하장애)이 왔습니다. 그리하여 대학병원에서 그해 10월 25일까지 치료를 받다가 재활병원으로 옮겨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거의 100일 가까이 입원치료를 받았지요. 그리고 올해(2022년) 3월 3일까지 집에서도 열심히 치료를 하여 삼킴곤란을 극복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치료받기에 급급한데, 소장님은 그때그때 치료일지를 기록하였다가 이를 책으로 내셨네요. 역시 매일 매일 독자들에게 <얼레빗>이라는 번개글(이메일)을 보내주시는 분이라, 이러한 투병생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52) 향안에게 나 지금 들어왔어요. 아까까지 먹었던 것이 금방 또 배가 고파요.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이 아이스박스는 아주 조그만데 참 실속이 있어. 우리 이런 거라도 서울서 하나 가졌더라면) 핑크빛 포도 한 송이가 남아 있어요. 참, 포도를 보면 포도를 먹으면,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1963년 11월 13일 1944년, 두 사람은 혼인했다. ‘곱게 살자’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김환기와 김향안은 부부가 되었다. 장차 한국 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화가와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키워낸 문인의 결합이었다. 이 두 사람의 여정을 담아낸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 그리고 남겨진 향안의 행보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책에는 수화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썼던 다정한 편지와 그림, 그리고 지은이가 시적으로 풀어낸 두 사람의 서사가 차곡히 담겨 애잔한 정취를 자아낸다. 지은이는 이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 파리로 떠났다. 이들이 3년 동안 파리에 살며 걸었던 공원, 첫 전시를 했던 화랑, 함께 보러 다녔던 미술관을 찾아다닌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행복한 파리 생활이 손에 잡힐 듯 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처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역사는 없었던 듯합니다. 지금은 극단적 핵가족화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이 사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예로부터 참 묘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빼앗겼다는 서운함일까요? 아니면 질투일까요. 특히 홀로되어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기른 어머니일수록 갈등의 깊이가 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여인으로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인데…. 고부간의 갈등은 풀리지 않은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꽃엔 며느리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이 그러한데요. 이들 모두 구박당하는 며느리의 현실과 관계가 깊습니다. 반면에 꽃 이름 가운데 시어머니가 들어가는 예는 없지요. ‘며느리밥풀꽃’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집니다. 옛날 어느 가난한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흉년이어서 끼니를 잇기 힘들었는데. 시아버지 생신이 되어 며느리는 귀한 쌀 한 줌으로 밥을 짓습니다. 며느리는 솥을 씻으려다가 솥뚜껑 안에 붙은 밥알 두 알을 보고 얼른 입에 넣었는데, 마침 시어머니에게 걸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괘씸하게 여겨 내쫓아 버립니다. 억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월세로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자신의 건물을 갖고 영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1층은 레스토랑 2층은 까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3층에 수경채소를 기르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수경농장에서 재배된 신선하고 청정한 채소를 레스토랑의 재료로 쓴다. 아울러 이러한 채소를 원료로 해서 만든 케잌이나 요리를 레스토랑에서 파는 방식이다. 말만 들어도 흥미롭고 왠지 장사가 잘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러한 멋진 생각을 실현하고 사람이 일본에 있어 화제다. 요코하마시의 기비카요(吉備カヨ) 사장(56)이 그 주인공이다. 기비카요 사장은 3층의 수경재배 농장에서 10종류 정도의 허브 등 잎채소를 키워 이를 재료로 한 케잌과 요리를 만들어 1층 카페 겸 레스토랑 아이코닉 스테이지에서 판다. 기비카요 사장은 5층 규모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데 3층을 수경재배 농장(1차 산업)으로 개장하고 2층에서 요리나 과자 등으로 가공하여 (2차 산업) 1층의 매점이나 카페에서 판매(3차 산업)하고 있으며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이런 발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북촌한옥마을. 오다가다 한 번쯤 지나쳐 본 적이 있을 이곳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일본인이 경성에 몰려와 살며 조선인들은 점점 외곽 변두리로 내몰리는 것을 염려한 건축왕 정세권이 한 평 두 평, 땅을 사들여 조선인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낸 곳이다. 오늘날 보는 북촌한옥마을의 풍경은 거의 이 건축왕, 기농 정세권이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건양사’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살기 편하고 값싼 ‘조선집’, 곧 한옥을 대거 지어 보급했고, 덕분에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잠식해 오는 가운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세권을 알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 큰 사업을 일군 자본가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독립운동을 하다 1942년 일제에 체포, 갖은 고문을 받고 건축 면허와 재산을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책 《일제에 맞서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건축왕 정세권》의 지은이는 정세권이 지은 북촌과 익선동, 창신동과 같은 한옥마을이 오늘날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아무도 일제에 맞서 조선집을 지켜내던 정세권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그의 삶을 동화로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