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흔히, 우리가 사극 속에서 보는 옛 삶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다. 한복은 고운 빛을 발하고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며, 선비는 유배를 가서도 용모단정하다. 성균관 유생들은 막힘없이 문장을 외우고 임금을 수행하는 내시도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극을 보노라면, 한 번쯤 과거로 돌아가서 사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오늘부터 진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부터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돌아가자마자, 내가 여기를 왜 왔나 싶을 법한 고단한 삶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 《LET’S G古 시간탐험대》는 실제로 연예인들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는, tvN의 역사 예능 프로그램 <LET’S G古 시간탐험대>의 내용을 재구성해 만든 책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3년 첫 방영된 이후 참신한 기획과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시즌 3까지 제작되며 역사 예능의 한 획을 그었다. 출연진은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생생한 과거로의 여행!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생고생(生古生) 프로그램’이라는 제작의도에 걸맞게 완전히 옛날로 돌아가 양반과 노비, 성균관 유생과 반인, 임금과 내시의 삶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임승수 작가가 쓴 책 가운데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가 있습니다. 돈 많이 버는 일을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저자의 이야기지요. 돈이 목적이 되어서 내 시간을 갖다 바치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돈에서 멀어지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행복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이 가짐을 기준으로 보면 저자는 불량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성공과 행복이 기준이 꼭 물질이 아니라면 저자는 행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으니까요. 「2021 세계 행복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2020년 행복 지수는 50위입니다. 해당 국가의 국민총생산(GDP),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자유, 부정부패, 관용이라는 6개 항목에 근거하여 행복 지수를 산출한 결과이지요. 경제로 10위권을 달리는 나라가 자살률이 1위이고 노인 빈곤율이 높은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원전 400년을 살다간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5가지로 꼽았습니다. "첫째는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창빈 안씨 무덤을 얘기하자니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무덤도 생각이 납니다. 덕흥대원군의 무덤은 경기도 기념물 제55호로 상계동에서 덕릉고개를 넘어 남양주시 별내동으로 내려가다가 왼편에 있습니다. 고개 이름은 고개 근처에 덕릉이 있다고 하여 덕릉고개라고 합니다. 고개 밑에 3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이 있으니까, 이를 당고개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당고개는 당고개역이 있는 마을에서 수락산역쪽으로 넘어가던 고개를 말합니다. 당집이 많아서 당고개라고 한 것이지요. ‘덕릉’이라고 하면 왕릉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근처에 ‘덕릉’이라는 왕릉은 없습니다. 덕릉은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말합니다. 그런데 ‘릉’이라는 이름은 임금과 왕비의 무덤에만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덕릉은 정식 이름은 아닐 것인데, 어떻게 하여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덕릉(德陵)이라고 부르고, 또 고개 이름에 ‘덕릉고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여기에는 재미있는 야담이 스며있습니다. 추존왕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생전에 임금이 되지는 못했지만, 아들이 임금이 되는 바람에 사후에 임금으로 추존되면 추존왕이라고 하지요. 이를테면 성종의 아버지 덕종, 인조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많이 바꾸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방식의 변화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을 때에 반찬을 자기 젓가락으로 집지 않고 분배용 젓가락으로 자기 접시에 옮긴 후에 자기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 젓가락과의 접촉을 최대한 억제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은 먹다 남은 반찬, 곧 잔반을 어떻게 처리할까? 우리가 옛날에 가난했던 시절에는 잔반을 재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나 개인이나 어느 정도 잘살게 되면서 잔반을 재사용하지 않고 그냥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잔반 재사용에 대해서 법적으로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나 조사해 보았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2009년 7월 4일부터 잔반 재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때 15일 영업정지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위생과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세 가지 유형의 식재료에 대해서는 재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1. 조리하지 않아 씻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윤여정씨가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이 단연 화제다. 도하 신문들이 인용하는 그 소감은 이랬다. 신문 ㄱ “모든 상이 의미있지만, 이 상은 고상한 체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매우 행복하네요.” 신문 ㄴ “이번 시상식이 특별히 고마운 이유는 고상한 체하는 영국 사람들이 나를 좋은 배우로 알아봐 줬기 때문입니다” 방송 ㄷ "모든 상이 의미가 있죠. 하지만 이번 상은 영국인들, 그러니까 고상한 척하는 걸로 유명한 당신들로부터 받은 상이어서 의미가 크네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이 상을 '고상한 체(척)'하는 영국인들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는 소감인 것이다. 그런데 맨 처음 수상소감을 전한 어느 언론은 '고상한 영국인들로부터'라고 해서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이 아니라 고상한 영국인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다들 '고상한 체하는‘으로 바뀌어 전하고 있다. 우리 언론만을 보고 도대체 '고상한 체'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윤여정씨의 영어소감을 확인해보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Thank you so much for this award. Every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고인도 나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예던길 앞에 있네 예던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쩌리 - 이황 ‘도산십이곡’ 중 제9곡 (p.4) - 고인은 더는 세상에 없어도, 고인이 걷던 길은 앞에 있다. 퇴계가 지은 도산십이곡에 나오는 ‘예던길(녀던길)’은 옛 성현이 걸어갔던 길, 곧 올바른 삶의 길을 뜻한다. 비록 퇴계는 수백 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걸었던 선비의 길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어찌 아니 걸을 수 있으랴.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퇴계가 예던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이 시대의 선비다. 1971년 공직 입문 이래 2005년까지 경제 관료로 봉직하며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은퇴한 뒤 2008년 2월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으며 지금까지 도산에서 주로 지내고 있다. 김병일 이사장이 지은 《퇴계의 길을 따라》는 퇴계의 학문과 사상, 정신과 더불어 그가 걸어간 삶의 행적을 두루 조명하면서, 퇴계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선비의 덕목을 전하는 책이다. 수필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퇴계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이라도 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나갑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를 만든 혁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그는 돈이 없어 사과밭 옆 창고를 빌려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명이 애플이고 먹다 만 사과로 로고를 쓰게 된 것이며 매킨토시라는 것도 사과 품종 이름의 하나랍니다. 최고 경영자의 길을 걷던 그는 매킨토시가 성능은 최고지만 비싼 값 때문에 매출이 실망스러웠고 그것을 빌미로 애플사에서 쫓겨납니다. 그 후 넥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애니메이션에 주력합니다. 토이스토리는 그를 백만장자의 대열에 올려놓았지요. 그 후 애플사로 복귀한 그는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그가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결국 그는 2011년 그의 꿈이었던 애플 신사옥의 착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뜹니다. 그가 남긴 참 많은 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富)이며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사람치고 동작동 국립묘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6.25 전쟁 때 전몰한 국군장병들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1955년에 국군묘지로 설치되었지요. 그러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격을 높이면서 독립유공자, 순직 경찰관, 대통령 등도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위해 공이 큰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곳에 이런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무덤이 있습니다. 바로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그러면 언뜻 “왜 창빈 안씨의 무덤도 이곳에 모셨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원래 창빈안씨의 무덤이 먼저 이곳에 있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국립묘지를 설치하던 당국자는 국립묘지와 상관없는 창빈안씨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고픈 생각을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오랜 세월 이곳에 먼저 터를 잡고 있던 임금의 후궁을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일 뿐만 아니라 선조의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곧 1567년 명종이 자식이 없이 죽자 후계 왕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명종비 인순왕후는 창빈 안씨의 손자인 하성군을 임금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 금요일은 4월 2일, 이날 망우리 한 묘역에 정장차림의 시민 50여 명이 모여있었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 巧)라는 한 일본인이 세상을 뜬지 꼭 90주년이 되는 날, 그를 알고 사랑하고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의 묘역을 찾은 것이다. 겨우 40년을 살다가 이 땅에서 간 이 사람은, 굳이 일본인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얽어매어 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그의 삶을 추적해 보고 그 삶의 의미를 되살려보고 있기에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1891년생인 다쿠미는 먼저 와 있던 형 노리다카의 권유로 1914년에 한반도로 건너와 형과 친구인 야나기 무네요시 등과 함께 도자기나 소반 같은 한국의 공예를 연구하고 일본 치하에서 사라질 운명에 있는 이들 예술을 구하고 지키기 위해 조선민족작물관을 만드는 등 무진 애를 썼으며, 임업에도 정통해서 우리나라 전역의 녹화사업에 공헌했으나 과로로 인해 1931년 4월 2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짧은 문장으로 그를 다 알릴 수는 없지만 1920년대 이 땅에 와서 살면서 땅과 사람들을 사랑했고 이 땅의 헐벗은 산야에 심을 나무를 가꾸었고 미처 우리가 알아보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1) 그러면 봄이 온 것이었다. 분홍 아지랑이로 버디기재 마루가 가물거리고 강 건너 큰골 장끼소리 빨랫줄 타고 내 귀에 꽂히면. 그러면 봄이 온 것이었다. 마른버짐 얼굴에 뭉게뭉게 피어나고 기계충* 꽃 까까머리에 빨갛게 피어나면. “할머이, 제비는 운제 와?” 이제 제비만 돌아오면 될 것 같았다. 나의 이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아 하늘님이 제비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라고 시킬 것 같았다. 그러면 뜬구름으로 떠도는 아부지도, 돈 벌러 서울로 간 어머이도 돌아와 온 식구가 오순도순 한 군데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똥 앉은 꽁보리밥은 더는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 제비가 와야 한다. 홍매화 지는 창가에서 내다보니 아직은 메추라기와 직박구리 같은 겨울새나 텃새들만 보이지만 밭가에 냉이꽃 피고 개구리 소리 들려오니 제비도 곧 오겠지. 그래야 제대로 갖춰진 봄이라 할 수 있겠지. 과연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지을까? 우리가 거들어 줄 방법은 없을까? 쑥국이 이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며 눈이 동그래진 아내에게 숟가락을 손에 들고 아침부터 제비 얘기만 해댔다. (3) 그래, 어쩌면 그때 이미 나는 은하수를 건넜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