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개다래나무가 자주 나타난다. 다래나무과에 속하는 개다래나무는 덩굴식물로서 줄기는 4~6m에 달한다. 잎의 상반부 또는 전체가 하얗게 되는 산반현상을 나타내어 멀리서도 개다래나무를 뚜렷이 알아볼 수 있다. 걷기에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벌들이 나타난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보고 벌을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벌통이 400통이나 길가에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가자 호기심 많은 가양이 요즘 무슨 꿀을 따느냐고 물었다. 피나무꿀과 밤나무꿀 그리고 잡꿀을 딴다고 한다. 벌통을 지나고 도로 차단기를 지나자 다리가 나타났다. 수항교다. 반대편에서 수항교까지는 차로 들어올 수 있다. 우회도로(구 59번도로)가 끝나고 터널을 통과한 59번 도로로 나왔다. 이제부터는 막동리가 시작된다. 막동리(幕洞里)는 진부면의 남부지역으로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움막을 치고 살았다고 해서 막골이라고 불렀다. 1906년에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 막동, 현재도 막동이다. 59번 도로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계속 오대천의 왼쪽 언덕을 따라 내려가자 마평1교가 나타났다. 마평1교는 세월교(洗越橋)다. 세월교는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도록 만들어진 다리를 말하는데, 잠수교라고도 한다. 평상시에는 다리를 건널 수 있으나 홍수가 나서 다리가 잠기면 건널 수가 없다.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교 아래에 있는 잠수교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마평1교를 건넌 뒤에 마평 삼거리로 올라가지 않고 왼편으로 걸어가 둑길로 들어섰다. 이제는 오대천의 오른쪽 둑길을 걷는다. 길 오른쪽으로는 감자밭, 배추밭, 파밭이 이어진다. 배추를 벌써 수확한 밭도 보인다. 배추를 수확하면 다른 작물을 심을 것이다. 이곳 진부에서도 이모작을 할 수 있다. 오대천의 오른쪽 언덕을 걷다가 다시 59번 도로로 올라왔다. 이제는 수항리로 접어들었다. 수항리(水項里)는 진부면 소재지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오대천의 물목(물이 흘러서 들거나 나는 어귀를 말하는 토박이말)이 되므로 물목, 수항, 물항이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에 수항리로 나왔고, 현재도 수항리라고 한다. 본래 강릉에 속했던 지역인데 1906년에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도로를 따라 걸어 낮은 고개를 넘어갔다. 낮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2년 6월 27일 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5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7월 11일 동강 따라 걷기 제5구간은 청심대에서 출발하여 막동계곡 입구에 도착하는 12.4km 코스이다. 이날은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와서 비가 많이 내린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또한 공교롭게도 회원들이 이런저런 사정들이 겹쳐서 5명만이 답사에 참가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홍종배 교수가 가양을 태우고 차를 운전하고 와서 참가했다. 석영과 석주는 기차를 타고 진부역으로 왔다. 우리 일행 5명은 11시에 옛골청국장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서 청심대로 이동하였다. 은곡은 청심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은곡은 사정이 생겨서 참가를 못 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막걸리 2병과 안줏거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는 여우재로 돌아갔다. 자상하고 고마운 회원이다. 우리는 낮 1시 10분에 청심대를 출발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커다란 우산을 들었다. 몇 사람은 비옷을 입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모처럼 비가 내리니 가뭄은 해소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신기교를 건너면 거문리(巨文里)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구)59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대천은 길의 왼쪽으로 흐른다. 거문리의 어원을 조사해 보았다. 옛날에는 거문리를 거커리라고 하였는데, ‘큰 글’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마을에 모양이 마치 붓끝처럼 생긴 문필봉(文筆峰)이라는 산이 있어서 거커리라고 하였다. 학자를 많이 배출할 지형이라고 한다. 벼농사가 잘 되어 ‘일강릉 이거컬’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거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둥근 돌탑 2개를 쌓아 놓았다. 돌탑이 있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거문리 마을이 나온다. 거문리는 넓은 분지 형상인데, 농경지가 많고 초등학교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마을이다. 우리는 거문리로 들어가지 않고 (구)59번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번 구간의 종착지인 청심대까지는 멀지 않았다.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걸쳐 있다는데, 오늘은 비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다. 청심대가 있는 곳의 지명은 마평리이다. 마평리는 진부면의 남쪽 방향에 있는 마을로 《조선지지》에 마평리(馬坪里)이고 현재도 마평리이다. 조선 시대 말먹이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봉평에 살면서 나는 노년에 귀촌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사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번 사람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돈 버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이제는 사업을 접고서 노년을 즐겨야지”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사업에서 손을 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아직도 “어디에 싼 땅이 나왔다”라는 정보를 들으면 반드시 가서 보고 온다. “돈을 더 벌어 자식에게 더 많이 물려주면 그것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술 마실 때 하는 건배사에 ‘쓰죽’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어가 아니고 ‘쓰고 죽자’의 준말이다. 내가 술자리에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답니다. 자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쓰~죽~”이라고 하면 모두 쓰~죽~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기회만 생기면 돈을 더 벌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은 틀림없이 돈이 되는 사업이 자꾸만 눈에 보인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정확히 24시간이고, 한해는 365일이다. 돈을 버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돈을 쓰는 시간은 적어질 것이다. 아주 간단한 뺄셈인데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깨닫지를 못한다. 박 사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2년 6월 14일 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형대 권중배 부명숙 오종실 이규석 이규성 원영환 최돈형 모두 9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7월 3일 동강 따라 걷기 제4구간은 진부면 호명리 오대천의 작은 보에서 시작하여 오대천 따라 청심대까지 걷는 10.5 km 거리이다. 이날 강릉에 사는 김형대 PD가 참석했다. 김형대 PD는 작년에 우리가 평창강을 걸을 때도 한번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유명한 <차마고도> 다큐멘터리 촬영팀에서 일했었다. 이날 그는 360도를 촬영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나의 중학교 동창인 권중배가 이날 처음 참석했다. 그는 전날 우리집에 와서 잤다.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친구와 함께 평창역으로 가서 석주를 태우고 다시 진부역으로 가서 김형대 PD를 태우고 점심식사 장소로 갔다. 국도 6번 도로가에 있는 옛골청국장 식당에서 11시에 모여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해당과 은곡과 이규성 교수는 막걸리를 한 병 시켜서 먹었다. 오대천 왼쪽 언덕 작은 보가 있는 지점에서 12시 45분에 출발하였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3구간 답사 뒤인 2022년 6월 5일 오후에 나는 혼자서 간평리의 집을 방문하였다. 막상 찾아가 보니 우리가 5월 30일 걸었던 코스에서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철망으로 만든 대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안채가 보였다. 시골집인데도 울타리가 있었다. 담을 왼쪽으로 돌아가니 철망 너머로 흙집이 보였다. 답사 전에 미리 갔었더라면 일행을 안내하여 그곳을 찾아가 보았을 터인데, 아쉬웠다. 그런데 내가 사진으로 본 수류산방은 ‘화전민이 살다 버리고 떠난 오두막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에 평창에 살면서 법정 스님을 존경한다는 채 아무개 씨를 만났는데, 그분과 대화 중에 오두막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법정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을 떠나 오대산으로 왔을 때 처음에는 수류산방보다 더 위쪽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잠시 살다가 수류산방으로, 말하자면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오두막집에 가보았다고 한다. 류시화 시인이 법정스님의 말씀을 엮어서 펴낸 《산에는 꽃이 피네》 책에 오두막집 사진이 나온다고 한다. 그분은 오두막집 사진을 내 손말틀(휴대폰)로 보내 주었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현장으로 되돌아가자. 동림교 왼쪽으로 난 돌계단을 내려가니 오대천 따라 작은 둑길이 나타났다. 길 양쪽에 큰 소나무가 심겨 있는 매우 호젓한 오솔길이다. 나는 이 길을 여러 번 와 보았다. 자연명상마을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정원이 있는데, 이 길은 비록 이름은 없어도 내가 매우 좋아하는 오솔길이다. 길 오른쪽으로 오대천이 흐르는데, 인간이 손대지 않은 전형적인 자연 하천의 모습이다. 요즘 가물어서 수량은 많이 줄었지만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한번 걸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오솔길이 끝나면서 월정사노인요양원이 나타난다. 이 요양원은 월정사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데, 2008년에 개원하였다. 이 요양원은 평창군에서 좋은 요양원이라고 소문나 있다. 이 요양원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답사 뒤에 이 요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요양원을 스님 두 분이 관리하는데 요양보호사가 80명이나 근무한다고 한다. 모두 13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니 상당히 큰 시설이다.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므로 법당이 있고 아침 예불이 있지만, 의무적으로 참석을 요구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2년 5월 30일 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부명숙,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이규성,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10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6월 10일 이날 걸은 제3구간은 월정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대천 따라 간평교 아래까지 주로 둑길을 걷는 9.6km 거리다. 국도 6번 길가에 있는 옛골청국장 식당에 11시에 모여 이른 점심을 먹고서 월정사 주차장으로 이동하였다. 12시 50분에 아홉 명이 주차장에서 출발하였다. 시인마뇽은 혼자 일찍 상원사로 가서 선재길을 걸어 내려와 우리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있는 아치형 다리가 금강교고 그 아래에 있는 연못이 금강연(金剛淵)이다. 예전에는 금강연에 하중도(河中島, 내의 중간에 물흐름이 느려지거나 흐르는 방향이 바뀌면서 퇴적물이 쌓여 형성되는 섬)가 있었다. 작은 하중도에 함박꽃나무(산목련이라고도 말함)와 소나무가 서 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멋있었다. 그런데 이날 보니 연못을 정비했는지 하중도가 사라지고 경치가 밋밋해져 버렸다. 답사 뒤에 내가 아는 월정사 문화해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선재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자작나무숲이 보인다. 자작나무는 하얀 껍질이 종이처럼 갈라져 있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나무다. 폐가를 지나 조금 내려가니 거제수나무 옆에 안내판이 서 있다. 거제수나무는 자작나무와 비슷하게 껍질이 벗겨져 있는데, 색깔이 황갈색이라는 점이 다르다.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물자작나무라고 불리는 거제수나무는 척박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나무로, 보통 높이는 약 30m, 지름 1m 정도로 자랍니다. 꽃은 5~6월쯤에 피며, 수피는 흰색 또는 갈백색을 띄고, 종잇장처럼 잘 벗겨집니다. 옛날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는 거제수나무껍질에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기도 했답니다.” 선재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섶다리가 나타난다. 섶다리 안내판이 서 있는데, 아래와 같이 섶다리를 설명한다. “섶다리는 나룻배를 띄울 수 없는 낮은 강에 임시로 만든 다리로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다리 상판 위에 섶(솔가지나 작은 나무 등의 잎이 달린 잔가지)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입니다.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