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념무상(無念無想) 말 잊고 생각 없이 바라보네 (달) 염에 이르러 염을 다한 마음 (돌) 이제 아쉬움 다 없어졌느니 (빛) 지금 여기 이미 갖춰진 자리 (초) ... 25.2.10. 불한시사 합작시 옥광 시벗이 산책길에서 보내온 구절에서 합작시의 초구(初句)로 삼았다. 그의 “말을 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바라보네. 이것!”은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다. 그는 언어 이전, 사유 이전의 자리에서 세계를 마주한 체험을 건네주었다. ‘말을 잊는다’라는 것은 분별의 언어를 거두는 일이며,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것은 개념의 그림자를 거두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대상도 관념도 아닌,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드러나는 ‘이것’의 현전이다. 그가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이것'은 멀리 있는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하는 생생한 현존이다. ‘이것’은 주관적 심상도 객관적 사물도 아니다. 마음과 사물이 나뉘기 이전, 곧 심물합일(心物合一)의 장에서 드러나는 일물(一物)이다.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Es spricht(그것이 말한다)”의 ‘그것’ 또한 존재의 드러남을 가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할 생각으로 운전대를 놓았으나, 걸으면서 점차 걷기의 맛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걷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에 아예 하루에 12,000보 걸음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는 손목에 차는 갤럭시워치에 찍히는 걸음 수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화장실 가는 등으로 소소하게 찍히는 걸음수를 2,000보 정도로 생각하여 12,000보로 설정한 것이다. 이렇게 걸음 목표를 세우고 나니까 단순히 출퇴근 걸음 수만으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어 점심 식사 뒤에는 사무실이 있는 코엑스를 한 바퀴 돌고 때로는 근처 봉은사도 산책하였다. 그리고 걷는 것에 점점 맛 들여지니까 약속장소가 사무실 반경 2.5km 이내일 때는 약속장소까지 걸어가고, 약속장소에서 집까지 2.5km 이내일 때는 끝나고 집에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또 약속장소가 그보다 먼 곳일 때는 전철은 한 번만 타고 약속장소에서 가까운 전철역에 내려 걸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렇게 하니 목표 걸음 수 12,000보는 가뿐히 달성하게 되고, 약속이 있는 날은 15,000보도 넘어가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