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내에서 한국과 관련된 소식을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소식지를 꼽는다면 <시민이 만드는 일본·코리아 교류 역사박물관인 고려박물관, 아래 ‘고려박물관’>에서 만드는 회보 <高麗博物館>(72호, 2025. 11)를 꼽을 수 있다. ‘한국과 관련된 소식’이라고 했지만, 고려박물관의 회보 <高麗博物館>은 단순한 한국관련 소식지가 아니다. 컬러판 16쪽짜리 이 소식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한일 사이 깊은 역사성이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고려박물관은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결성한 지 올해로 3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회보 <高麗博物館>은 회원인 마츠자키 에미코 씨가 보내오고 있는데 이번 호(72호, 2025. 11)는 지난 12월 15일, 마츠자키 씨가 직접 서울을 방문하여 전해주고 갔다. 회보를 보니, 올 한 해도 고려박물관 회원들이 치열하게 활동한 모습이 눈에 띈다. 2025년 한해 여러 건의 기획전시가 있었지만, 특히 이 가운데 괄목할 만한 전시를 꼽는다면 <왜 조선인이 전범이 되었는가(なぜ「朝鮮人」が戦犯になったのか?>를 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성탄이 다가오니 까페의 음악은 온통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바다 건너 일본의 지인으로부터도 대문에 ‘직접 만들어 달았다’고 하는 크리스마스 장식(Christmas wreath) 사진이 날라왔다. 순간 나는 이것(일본에서는 ‘리스’라고 하는 장식라고 한다.)을 시메카자리(注連飾り,정초에 일본 집 대문에 다는 전통 장식)로 착각하고 아니 벌써 시메카자리를 달았냐고 했더니 지인은 시메카자리가 아니라 ‘손수 만든 리스’라고 한다. 그러면서 지인은 한국에도 리스(wreath)를 대문에 달아두냐고 묻는다. 글쎄? 라고 말끝을 흐렸는데 집 근처 까페에 가보니 현관에 반짝이는 ‘리스’가 달려 있다. 뿐만아니라 며칠 전 들른 대형병원 로비에도 사람 키 두어배가 넘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바야흐로 12월은 교회는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상점가, 병원, 관공서를 비롯하여 더러는 가정집 아파트 현관문에까지 크리스마스 장식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다. <동아일보>(2018.12.25.)에 따르면 ‘성탄트리 나무 한국서 유래…어떻게 세계로 퍼졌나’라는 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서 요구한 대장경(大藏經) 인쇄판을 귀국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절과 신사(神祠)에 비치해 둘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귀국의 사신이 돌아가는 배에 부탁하여 한 질을 청구하오니, 반드시 7천 권을 모두 갖춘 인쇄본으로 부쳐 오면 백마(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어 맹세한 것)의 지난 일을 금오(金烏) 해가 돋는 곳에서 거듭 보게 되겠습니다. 이웃나라의 변하지 않는 서약이 어떤 일이 이와 같겠습니까.“ 위는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1443년) 11월 18일 기록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음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보인 《팔만대장경》은 목판본이 6,815권으로 모두 8만 1,258매이며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은 몽골의 침입 때 불타버린 뒤 1236년(고종 23)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기로 유명합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우왕 14년(1388)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 주면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 북경의 시 경계에서 서남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약 15킬로를 가면 노구교(盧溝橋)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곳에서 고속도로를 내려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로 쌓아 올린 완평성(宛平城)이 있는데 이 성을 관통해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돌로 만든 다리가 하나 나온다. 11개의 아치를 이어 받친 길이 265미터의 이 돌다리 위에는 양쪽으로 난간이 있고 난간 사이로 281개의 난간기둥(望柱)이 서 있고 이 난간기둥 머리에는 각양각색의 돌사자가 조각돼 있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일어서 있거나 엎드려 있는 이 돌사자들은 자세도 다 다르고 더욱이 표정이 다르고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자는 새끼를 데리고 놀고 있다(이것은 암컷이다). 어떤 것은 지구 같은 공을 발밑에 끼고 놀고 있다(이것은 수컷이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이 다리 위에 있는 사자가 모두 몇 마리인지를 세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무지 셀 수가 없었다. 세다가 자꾸 틀리기 때문이다. 어느 끈기 있는 사람이 세어 본 결과 485 마리라고 하기도 하지만. 노구교(盧溝橋)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다리의 대명사였다. 위수(渭水)의 지류인 영정하(永定河)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날도 더운데 일본에서는 얼마전 유명한 만화가의 예언이라면서 '7월 5일 대지진설' 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일본 국내는 물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적이 있다. 야단법석이던 7월 5일은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대지진설’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듯 인터넷에는 별의별 걱정스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대학생 아들의 일본여행이 걱정된다면서 자신의 SNS에 올린 학부형의 글 가운데는 “대학생 아들이 7월 18일, 친구들과 일본 도쿄 여행을 계획하여 비행기표랑 숙소를 잡아두었는데 보내도 될까요? 몹시 불안하네요.” 와 같은 글도 눈에 띈다. 소동이 빚어졌던 7월 5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론에 따르면 일본 대지진설을 퍼뜨린 이는 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竜樹 諒, 70) 라는 인물로 그는 1999년 펴낸 《私が見た未来(내가 본 미래)》에서 '2025년 7월 5일 대재앙이 온다'고 예언한 것이 확산되어 일본 여행 취소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온라인상에서는 '7월 5일 새벽 4시 18분'을 기준으로 한 카운트다운 영상이 확산되었으며, 일본 현지
[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국립국악원(원장 직무대행 강대금)의 종묘제례악이 올해 싱가포르와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나라 밖 공연에 나선다. 종묘제례악의 나라 밖 전장 공연은 2000년 일본 아사히 신문사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2007년 이탈리아와 독일, 2015년 프랑스, 2022년 독일 4개 도시 순회, 2023년 헝가리와 폴란드 등 주로 유럽 국가 중심으로 선보인 바 있다. 올해 종묘제례악은 아시아 지역으로 무대를 옮겨 오는 4월 싱가포르 가장 큰 국립종합예술센터인 에스플러네이드의 '종교음악축제' 초청으로 첫 나라 밖 공연에 나선다. 이어서 한일 국교정상화 60돌을 기려 두 나라의 유네스코 무형유산 종목을 교류공연 형태로 선보이고, 올해 마지막 무대는 홍콩에서 열리는 한국10월문화제 프로그램에 종묘제례악이 초청돼 처음으로 홍콩 현지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종교음악축제 'A Tapestry of Sacred Music'에 초청 양국 수교 50돌 기려 종묘제례악 복식, 악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해 올해 종묘제례악 나라 밖 공연의 첫 무대는 싱가포르의 국립종합예술센터인 에스플러네이드 극장이다. 다문화국가인 싱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작업 중 다이너마이트 불발탄이 폭발하여 눈앞에서 죽은 사람만도 10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손발이 갈가리 찢겨 나갔고, 바윗돌이 가슴을 덮쳐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사체의 행방은 잘 모른다. 강제징용자들은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상으로 죽었다. 터널 공사 중 나온 돌덩어리를 나르는 짐차에서 떨어지거나 터널 받침목을 제대로 설치 안 해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공사장에서 죽은 사람을 끌고 나가는 것을 수백 번 이상 목격했다. - 나가노 히라오카댐(長野平岡) 강제연행노동자 김창희 증언, 경북 월성 출신, 160쪽 -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조선인 수는 얼마나 될까? 그들은 어디서 어떠한 극심한 노동을 하며 삶을 마감했을까? 조선인들의 강제노역지는 일본 전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만 특히, 발전소용 댐 건설지, 비행장 건설 현장, 도로 건설지, 군수용품 공장, 탄광 등이 유력한 곳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8일, 조선인 강제노역을 다룬 《본토결전과 외국인 강제노동》을 쓴 곤도 이즈미(近藤 泉, 73) 씨 일행과 대담을 했다. 곤도 이즈미 씨는 나가노현 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하였습니다. 화학공업 회사였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조선의 국경에 있는 압록강에, 당시 제일이라고 알려진 커다란 댐(수풍댐)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은 모두 일본 효고현 아시야(芦屋)에서 살았고, 아버지 혼자 현지에 파견을 나가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윤택하게 살았습니다. 1945년 한국이 광복을 맞자, 아버지는 실직했고, 9인 가족의 생활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1941년 태어나 일곱 형제의 막내였던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가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한국 사람을 지배하고 그 덕분에 집이 부유하다는 게 왠지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씨다. 나는 지난해(2022) 10월 하라다 교코 씨로부터 일본어로 쓴 책 《私と韓国、感謝と謝罪の旅》을 한 권 받았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나와 한국,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이라는 책이다. 하라다 교코 씨는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들의 모임'인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의 이사장을 지냈던 분(재임기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날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집집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때지만 80년대 초반만 해도 좀처럼 가기 어려운 특별한 일이었다. 방송국 기자생활을 하고 두 번의 해외 특파원으로 나라 밖를 많이 다닌 필자만 해도 첫 나라 밖 방문은 입사 후 6년이 지난 1983년이었다. 당시 유네스코 한국본부가 우리의 대학생 청년들이 나라 밖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일본역사문화탐방단을 만들었는데, 필자는 이 탐방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1983년 8월 17일에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배를 타고 들어가 첫날을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라는 도시에서 하루를 묵었었다. 그런데 지난 초여름 부산의 친구들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무선 동호인 연례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기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다고 해서 필자도 동행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가 해외탐방 첫날을 보낸 곳인데 이번에 꼭 40년 만에 다시 가게 되는 것이다. 하기라는 곳은 일본이 우리 동남해안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서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울산과 부산지역에서 차출한 우리의 도자기 장인들을 배로 싣고 곧바로 도착한 곳이고, 이때 끌려간 분들이 가마를 연 것이 유명한 하기요(萩窯)이다. 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인터넷으로 일본의 근현대 아시아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는 일본의 국립공문서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과 아시아 근린 제국 등과의 관계에 관련된 공문서, 기타 기록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의 개설 경위를 들어보자. “1994년 8월 31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이듬해에 맞이하게 될 전후(戰後) 50주년을 기념한 「평화우호 교류계획」에 관한 담화를 발표하면서 그 계획 가운데 「이전부터 필요성이 지적되어온 아시아역사자료센터의 설립을 검토하고자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를 기초로 센터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검토가 각계의 전문가 등이 포함된 15명으로 구성된 지식인 회의에 위임되었습니다. 지식인 회의는 국내외에서의 실상 조사,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 그리고 일반인들을 통해 널리 수집한 요망 사항 등을 근거로 1995년 6월 30일에 「일본과 아시아 근린제국 등 사이의 근현대사에 관한 자료 및 자료 정보를 폭넓게 치우침없이 수집하여 이를 국내외의 연구자를 비롯한 일반에게 널리 제공할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센터 설립을 제언하였습니다.”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