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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신하들이 입었던 금관조복 보셨나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029]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금관조복은 조선시대 신하들이 나라의 경사 때나 정조(正朝, 설날)·동지·성절((聖節, 성인이나 임금의 생일) 따위 의식 때 입었던 대례복입니다.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된 이 금관조복은 조선 말기 승지였던 박해용(1885-?) 선생이 입었던 옷이지요. 박해용 선생은 고종 31년(1894)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로 있으면서 백성의 어려운 점을 헤아리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고종실록 37권 (1898) 8월 10일 기록에 당시의 문제에 대한 박해용 선생의 상소문이 보입니다.

“재물이라는 것은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한정이 있습니다. 한정이 있는 재물을 가지고 한정이 없이 쓰면서 의논하는 자들은 화폐를 만들고 금광을 개발하는 것이 재물을 생기게 하는 좋은 계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화폐의 수효는 전에 비하여 10배나 되는데, 물가가 급등하여 인심은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되고 금광을 개발하는 곳은 난리가 일어난 곳과 똑같습니다. 살던 백성들은 이로 말미암아 뿔뿔이 흩어지고 도적들은 이로부터 말미암아 더욱 성해지고 있습니다. 화폐를 만들고 광산을 개발하는 것을 일체 혁파하고 무익한 비용을 절약한다면 백성과 나라는 모두 넉넉해질 것입니다.”

 

   
▲ 신하들이 의식 때 썼던 금관

   
▲ 신하들이 의식 때 입었던 조복 앞면(왼쪽), 뒷면

당시 조복은 적초의(조복에 입는 겉옷)ㆍ적초상(조복에 입는 치마)ㆍ청초중단(적초의 안에 받쳐 입는 옷)ㆍ폐슬(蔽膝 조복 앞에 늘이는 헝겊)ㆍ대(帶, 허리에 두르는 띠)ㆍ후수(後綬, 조복 뒤에 늘이는 띠)ㆍ패옥(佩玉, 늘여 차는 옥)ㆍ화(靴, 신)ㆍ홀(笏, 조복을 입을 때 손에 쥐던 패) 따위로 한 벌을 갖추었습니다. 선생의 유품은 왕에게 아침문안을 드릴 때 입었던 조복 1벌을 비롯하여 제사지낼 때 입었던 제복, 평소 집무를 볼 때 입었던 관복 등 모두 13점에 이르며 구한말 조복 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