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곡 한 번에 노래 한 곡 부르고서
술 한 잔을 따라 붓노라니
술잔이 윤회하듯
하루 종일 오가네.
기경(耆卿)은 벌써 죽고
사사(師師)도 늙었으니
강남에서 부는 구슬픈 옥피리를
그 누가 알아주랴!
▲ 기생 한섬, 자신을 돌봐준 이정보 대감 무덤 앞에서 온종일 곡하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위 시는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중인 이하 계층 시인)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이 쓴 《추재기이(秋齋紀異)》에 나오는 기생 한섬의 이야기를 노래한 시입니다. 한섬(寒蟾)은 전주 기생으로서 예조판서를 지낸 이정보(李鼎輔)가 집으로 데려다 가무를 가르쳐 온 나라에 이름을 날렸지요. 한섬이 나이가 들어 집으로 돌아간 뒤 한해 남짓 지나 이정보가 세상을 떴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섬이 곧바로 이정보의 무덤에 달려와 한번 곡하고 술 한 잔 따르고 그 술을 마시고 노래 한곡을 부릅니다. 다시 두 번째 곡하고 술을 따르고 그 술을 마시고 또 노래를 부르며, 하루 온종일 술과 노래로 슬퍼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한섬은 다른 기록에 계섬(桂蟾) 또는 계섬(桂纖)으로도 나오는 사람으로 실존인물이지요. 한섬이 무덤 앞에서 한 행동은 당시 노래하는 가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합니다. 기생 한섬은 자신을 돌봐준 그런 이정보에게 마지막 도리를 다한 것인데 배은망덕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세상에 기생이지만 은혜를 잊지 않고 도리를 다하려 했던 한섬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