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 성균관의 1백 50여 명의 유생들이 대궐문을 밀고 뛰어들어 편전 문 밖에서
통곡하니, ‘아이고’ 소리가 궐내에 진동하였습니다. 승지가 상소문을 가지고 들어가니, 임금이 누가 곡하는지 묻습니다. 이에 승지가 개혁정치가 조광조를 처벌하지 말라는 유생들임을 말하자 임금은 “상소는 할 수 있지만, 어찌 함부로 들어와 통곡할 수 있는가? 유학자의 사리와 체면이 이러한가? 이제 곡성을 들으니 매우 놀랍다. 낱낱이 죄를 다스릴 수는 없으니 그 중에서 앞장선 자 5∼6명을 가두어 죄주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신들이 아뢰기를, “젊은 유생들이 잠시 정신이 흐려 이렇게 된 것이니 반드시 죄줄 것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조선시대는 시위도 “아이고”로 하고, 이에 임금은 그저 주동자 몇 사람만 옥에 가두는
정도였습니다. 요즘과 비교하면 조선시대는 시위도 처벌도 점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