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리 오너라. 안에 아무도 없느냐?”
“몇 분이시온지요?”
“벗과 둘이 왔소이다.”
“네 술과 안주를 준비하겠습니다.”
술 한 순배 마신 뒤
“술 한 주전자 더 청하오이다.”
“알겠사옵니다. 혹여 매운탕도 준비할까요?
“거 좋지요.”
▲ 주인은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상한 <내외술집>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조선 말기의 문인 유재건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이런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분명히 술집인데 손님만 보이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비칩니다. 이름하여 <내외(內外)술집>이라 하는 곳이지요. 그야말로 이상한 술집입니다. 주인이 나와서 아양을 떨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굳게 닫혀있던 중문이 살짝 열리고 개다리소반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손님이 술상을 가져다 먹습니다.
그러면 이런 <내외술집>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조선시대엔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평생 수절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 음란하다는 사유를 붙여 자녀안(恣女案)에 오르고 그러면 그 자식들은 관직에 임용될 수 없는 불이익을 받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수절하면서 재산이나 있으면 괜찮지만 끼니를 때우기가 어렵다면 어쩔 수 없이 <내외술집>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관직에 있는 양반들은 술집에 드나들면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위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내외술집에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내외술집>은 조선시대 말기에 있었던 희한한 술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