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5 (일)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사진나들이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에서 소치 허련을 만나다.

 

   
 작렬하는 햇볕을 받으며 운림산방으로 들어가는 길은 박석이 깔려 있었다.

   
 사랑채 앞에는 연못이 있고 구름다리도 놓여있다.

   
 맷돌을 쌓아서 물이 흐르게 한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배롱나무꽃이 한창인 운림산방의 사랑채 앞 연못

   
▲ 의제 허백련이 쓴 운림산방 현판

   
 사랑채 대청마루는 자연스럽게 굽은 소나무가 대들보가 되었다.

   
운림산방 현판 앞에서 함께한 사진가들과 함께

   
 대청마루 앞에서 연못을 감상하는 탐방객들. 대청 뒤에서 찍어본 정경

   
 초가로 이루어진 안채

   
 안채 옆 돌담사이에는 맥문동꽃이 한창이다.

   
 운림산방 소치의 초상화가 모셔진 사당

   
▲ 소치 허련의 초상화

 

   
소치의 영정이 있는 사당 전경

   
 안채로 들어가는 문

   
 간촐한 가구와 등잔이 있는 방안모습. 기우뚱 서있는 등잔모습이 무척 정겹고 여유가 있었다.

 

   
 부엌 벽면의 찬장, 찬장아래에는 여러 그릇, 솥, 기타 가재도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찬장에 놓여진 그릇들, 외부에는 판자로 벽이 있고, 찬장에는 술병과 제사용 목기들이 놓여있다.

   
 소박하고 정감이 넘치는 부엌의 아궁이에는 검은 가마솥이 걸려있다.

   
 멀리본 안채의 모습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명승 제80호로 지정된 운림산방은 조선조 말기 남종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소치 허련이 고향땅 진도로 내려와 가꾼 집이다.

소치는 본래 진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해남에 있는 윤선도가 머물던 녹우당에서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혔는데 당시 대둔사에 있던 초의선사의 추천으로 한양으로 올라가 김정희를 스승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그렇게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서예와 그림에 뛰어난 재주를 가다듬게 되었다. 

남종화(남화라고도 함)는 중국의 당나라시기 불교의 선종의 영향을 받아 싹이 튼 그림의 화풍으로, 일정한 법식에 따라서 그리는 북종화와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화통한 필치를 익혀 그리는 그림이다. 남종화는 각자 작가의 마음으로 본 사물과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풍으로, 조선의 선비들은 이를 발전시켜 사군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해왔다.

남종화는 선비들이 글씨를 쓰다가 먹으로 난을 치고 대를 그리고, 국화와 소나무 등을 담백한 필치로 일필휘지 하는 화풍으로 불교 선사들이 깨달음을 일갈하는 듯한 그림으로 볼 수있다..

이렇게 그림을 익힌 소치는 추사가 살아서도 그의 글씨와 그림의 뛰어남을 칭송하기를 압록강 이남에서는 그를 넘을 자가 없다고 칭찬했다고 하니,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는 스승인 추사가 타계하자 미련없이 벼슬을 다 버린후  한양살이를 접고 고향땅 진도로 내려와 자연과 벗삼아 집을 짓고, 사랑채 앞에는 한국 전통정원의 멋을 살려 정방형 연못도 만들고 연못 가운데에는 둥근 섬을 만들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그의 대를 이어 아들 허형 손자 허건에 이어 최근에는 증손자까지 연이어 남종화의 대를 잇는 한국화가로 일가를 이루어 소치의 화맥을 잇고 있으며, 이제는 한국화단의 성지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에 유학하여 동양화를 배워  한국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의제 허백련 또한 진도출신으로 소치가문의 한사람으로 유명하다. 현재 현판으로 걸려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허백련이 쓴 글씨이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내려와 구름과 숲을 벗삼아 자연속에 살고자 했던집으로 소치가 이름을 지었다. 사랑채는 기와집으로 짓고, 사랑채 뒤에 있는 안채는 초가로 지었다. 안채의 뒷편 에는 소치의 초상화를 모신 그의 사당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진도에 오면 꼭 둘러보아야 할 역사유적으로 손꼽는 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소치이래 허씨들의 대를 이어 배출한 화가들의 일대기를 알 수 있도록 기념관도 지어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본래 있던 조촐하고 운치있는 운림산방보다 너무도 큰 건물이 전시관으로 들어서있어, 아늑하고 여유있는 자연공간인 운림산방 전체의 분위기는 깨지는 느낌이었다. 구름과 숲을 벗삼아 산자락에 위치한다는 운림산방의 의미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그런 경험은 너무도 자주 겪는 일이기에, 운림산방만 탓할 일은 아니나, 이렇게 큰 박물관 또는 기념관이라면 바로 옆에 짓지말고, 차라리 입구 근처에 본채와 완전히 격리시켜 지어서 본래 유적과는 좀 차별화를 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면 어떻게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자리잡고 가끔씩 고향에 내려와  거들먹 거리기가 쉬운데, 소치는 기꺼이 고향으로 돌아와 살면서 고향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고향에서 인재를 기르고 타계한 뒤에도 고향을 빛내는 인물이 되어 고향에 많은 이익까지 주고 있으니, 진도의 보배로운 인물로 소치 허련만한 사람이 없는 듯 싶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문화유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