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이 비석은 부산 동래읍성 앞에 세워진 송상현을 비롯한 임진왜란에 전사한 순국자들의 비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싸우지도 않고 도망친 관군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부산지역의 부사 첨사등은 일본군과 첫 교전에서 싸우면 반드시 죽을 줄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싸우다 죽었다.
이들은 동래부사 송상현과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향교 교수 노개방, 유생 문덕겸 등이다. 이 제단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곧 세운 것이 아니라, 죽은지 150년이 지난 후 임진왜란으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후세들이 잊지 말게 하고자 영조 18년 당시 동래부사 김석일이 세웠다.
이 단이 세워지기 전에는 동래읍성 남문밖 농주산에 송상현을 비롯한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분들을 모셔져 있었으나 김석일이 이곳에 송공단이 세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송공단에는 여러분의 비석이 서있는데, 가운데 가장 큰 비석이 동래부사 송상현의 비석이고 좌우로는 당시 함께 순절한 관리들의 비석이 있으며, 그 앞쪽에 비석들과는 별도로 한쪽 구석에 담장을 달리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함께 모셔져 있다.
송공단에는 해마다 음력 4월 15일 관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1742년 이곳에 처음 송공단이 세워진 후 몇 차례 걸쳐 비석이 더 세워졌는데 1760년 부산첨사 정발과 함께 죽은 이정헌이 모셔졌고, 이후 6년 뒤에는 1766년 다대첨사 윤흥신이 모셔졌다. 이 후로는 동래성에서 전사하지 않은 사람은 제외했다고 한다.
송공단이 세워진후 끊이지 않고 모셔지던 순국선열들에 대한 제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이 훼손되어 갔다. 이후 다시 광복을 맞이하고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채, 근근히 제사를 모시다가, 최근에 다시금 정비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송공단은 2005년 다시금 정비한 것인데, 이는 본래 기록인 충렬사지에 기록된 모습대로 복원하여 현재는 7단 16기의 비석이 있다.